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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하고도 화려한 맛, 세련된 고급스러움 

좀 더 싸고 편하게 즐기게 되는 호주 와인 

최성순 와인21닷컴 대표

▎와인 오스트레일리아(Wine Australia)제공, 최성순
지난해 12월부터 한국-호주 FTA가 발효되면서 다양한 호주 와인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주한 호주무역대표부에 따르면, 호주 와인에 부과되었던 15%의 관세가 사라지면서, 2015년 상반기의 호주 와인 수입액은 전년 대비 33.6% 증가했다.

호주 와인은 90년대 후반, 한국의 와인 문화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싹틀 무렵부터 꽤 매력적인 와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와인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대개 시중에서 찾기 쉬운 프랑스산 레드 와인을 맛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와인은 그저 떫거나 거칠고, 드라이하면서도 강한 신맛이 첫 느낌이었을 것이다. “원래 비싼 고급 와인은 이런 맛이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온갖 인상을 쓰면서 와인을 소주 마시듯 마시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어느 정도의 와인 내공이 쌓였을 때야 발견할 수 있는 프랑스 와인 특유의 복잡 미묘한 개성들을 와인 초보자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비유하자면 가요에 익숙한 사람에게 난이도 높은 재즈를 이해시키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그런 이들이 달콤하고 맛깔스러운 호주 와인을 만나게 되면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풍부한 과실적 향미와 함께 감미로운 진한 맛의 호주 와인에 한번 이끌린 사람들은 한동안 와인하면 호주 와인만 찾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후 호주 와인은 와인 커뮤니티에서 종종 선택되는 인기 아이템이 되었다. 그 무엇보다 가격이 유사 품질의 프랑스 와인에 비해 훨씬 저렴했기에 와인 초보이건 애호가이건 호주 와인을 많이 즐기게 되었다.

그 호주 와인이 한국-호주 FTA 발효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호주 와인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 초에 유럽 이주민에 의해 포도밭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그 우수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90년대부터다. 그 일등 공신은 바로 레드 품종인 쉬라즈(Shiraz)다. 프랑스 론 지방의 대표 품종인 시라(Shrah)가 호주로 건너가면서 호주 스타일의 쉬라즈가 만들어졌다. 특히 1988년 영국의 유명 와인 잡지가 호주 와인인 펜폴즈(Penfolds)의 그랜지(Grange)를 비유럽권 최고의 와인으로 소개하면서 저가 와인으로만 알려져 왔던 호주 와인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달라지는 계기를 맞는다. 그 이후 펜폴즈 그랜지는 호주 와인의 자존심으로 평가받고 있다.

호주의 대표 품종 쉬라즈


▎왼쪽부터 호주의 대표 품종인 쉬라즈와 샤도네.
호주의 대표 레드 품종 쉬라즈는 강인한 느낌으로 남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게 하는 품종이다. 진하고 풍부한 맛과 향을 즐기는 남성들이라면 충분히 반할 만한 맛이 아닐까 싶다. 농익은 자두, 검붉은 베리류, 초콜릿, 민트류, 구수한 너트류와 오크의 향, 그리고 감초의 매콤한 향기는 복합적이고 화려하다. 입안을 꽉 조여주는 듯한 타닌은 부드러우면서도 조밀하고 단단하며, 뒤에 남는 감칠맛이 한동안 유지된다. 상당수의 고급 쉬라즈는 이러한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호주 와인 메이커들은 이후 보다 더 좋은 품질의 진한 맛과 풍미를 높이는 데 더욱 힘을 쏟았고, 그 결과 고급 와인들이 소개되면서 호주 와인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져 갔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와인 가격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세금 및 여러 가지 이유로 와인 소비자 가격이 평균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2~3배 높게 책정되어 있다. 호주 와인을 맛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가격적인 부담감은 차츰 국내 와인 애호가들로 하여금 유사한 품질의 좀 더 낮은 가격대의 칠레 와인에 눈길을 돌리게 했다. 칠레는 2002년부터 한국-칠레 FTA 발효와 함께 최고의 밸류와인으로 급부상했고 단박에 호주 와인을 누르고 그 인기를 한 몸에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난 호주 와인의 시장 점유율은 점차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한국-호주 FTA 발효는 호주 와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호주 와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호주 와인 생산자를 보면 크게 2가지 그룹이 있다. 우선 호주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자이언트급 대형 기업체들이 호주 와인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숫자가 적다. 나머지 30%는 가족 소유의 매우 작은 와이너리들로 수백 개에 이른다. 이들 와이너리들은 꽤 높은 품질의 고급 와인들을 소량 생산하는 특징이 있다. 대형 기업체가 소유한 호주 와인 브랜드는 옐로우테일, 펜폴즈, 제이콥스크릭, 린데만, 로즈마운트, 하디스 등이 있다. 어느 정도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친숙하게 와 닿는 와인들이다. 매우 체계적인 품질 관리와 함께 대량 생산을 통해 경쟁력 있는 베스트 밸류 와인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저렴한 가격대의 품질 좋은 와인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고급 와인들도 많이 생산하고 있다. 가격 대비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품질의 지속성을 잘 보여주기에 와인에 대한 이미지도 좋을 뿐더러 마케팅 기술과 상업성도 뛰어나다.

고품질 소량생산 부티크 와인들


▎1999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바로사 밸리 지역에 설립된 투핸즈 와이너리. 레드 품종인 쉬라즈를 재배한다.
몇 년 전 호주 와인 산지여행을 통해 필자가 유난히 흥미를 느낀 것은 부티크 와인(Boutique Wine)들이었다. 부티크 와인이란 소량 생산되는 고품질 와인을 상징한다. 공통된 특징은 오너가 직접 생산라인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과 최상급의 와인을 만드는 데 많은 정성을 쏟는다는 것이다. 물론 생산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가격도 높은 편이다. 가족 단위의 작은 호주 와이너리들의 경우 높은 인건비로 인해 소량 생산의 고품질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은 투핸즈는 꽤 성공적인 호주의 대표적인 부티크 와이너리다. 건축가와 회계사가 만나 함께 손을 잡고 회사를 이룬 동업자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투핸즈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1999년에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바로사 벨리 지역에 설립된 투핸즈는 짧은 기간에 매우 빠르게 성장했고, 로버트 파커를 포함한 세계적인 와인평론가와 와인전문지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풍부한 아로마와 농익은 과일의 농축미, 묵직한 무게감과 감칠맛으로 인해 특히 국내 남성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이들의 대표적인 와인 엔젤스쉐어와 벨라스가든은 시중에서 9만원대와 10만원대 후반에 형성되어 있는 비교적 비싼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고깃집에서 즐기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발견하곤 한다. 특히 동업자가 만나 새로운 비즈니스의 성공을 기원하는 자리에 많이 추천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와인이다.

와인 브랜드의 인지도와 인기도에 따라 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량을 늘리지 않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투핸즈의 필 키틀리(Phil Kightley) 총괄 매니저는 “생산량을 높이기 보다는 높은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양보없는 높은 품질이 이들의 핵심가치를 추구’ 한다는 것이 투핸즈가 추구하는 기업 철학이다.

호주 최고 서열의 와인 펜폴즈 그랜지와 쌍벽을 이루는 헨쉬키(Henschke)의 힐 오브 그레이스(Hill of Grace)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는 그랜지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와인이다. 5대째 와인양조 가업을 이어온 헨쉬키 가문은 150년 역사를 자랑한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이기도 하다. 힐 오브 그레이스는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에덴벨리에 위치한 꽤 오래된 포도밭에서 생산되었다. 숨은 진주와도 같은 이 와인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필자가 헨쉬키 와이너리를 방문했던 당시, 소유주이자 와인메이커인 스티븐 헨쉬키에게 힐 오브 그레이스가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땅이 좋았기에 좋은 포도가 나왔고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운이 좋았던 것이지요.” 겸손한 그의 대답이 지금도 인상 깊다.

실험 정신 뛰어난 호주 와인들의 다양성

와인이 좋은 이유를 와인 생산자에게 물으면, 국가를 막론하고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답이 테루아(Terroir)다. 즉, 땅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호주만큼은 예외로 두고 싶을 때가 많다. 물론 좋은 품종과 토양, 기후 조건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호주 와인 산업이 빨리 성장하고 번창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환경을 꼽으라면 필자는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있어서 까다로운 규제들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이러한 환경이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 실험적인 양조 방식이라든가 새로운 품종개발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일부는 실패하기도 하고 일부는 성공을 거듭하면서 품종들이 매우 다양해졌고, 생산지역도 매우 포괄적으로 확장되었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와인들이 전부일 것 같았던 호주 와인들이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헌터 밸리에 이어 뉴사우스 웨일즈, 퍼스, 프랭클랜드, 펀그로브 그리고 심지어 타즈마니아 지역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우수한 품질의 와인들을 선보이면서 남다른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호주는 레드 품종인 쉬라즈뿐만 아니라 까베르네 소비뇽, 피노누아 등 매우 다양한 품종들이 재배되고 있다. 화이트 품종으로는 샤도네가 대표적이고 그 외 리슬링, 소비뇽블랑 등 꽤 다양한 품종들이 실험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싱그럽거나 혹은 기분 좋은 오크 향이 잘 어우러진 특징을 잘 표현하는 화이트 품종 샤도네는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이다. 최근에 접하게 된 비오니에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품종이었다. 특유의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매끄러운 질감과 함께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향기를 뿜어내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호주 와인 생산자들의 노력 때문인지, 대다수의 호주 와인들은 일정 수준에만 도달한다면 최고 서열의 와인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와인들은 풍부하고도 화려할 수 있으며 진한 농밀감과 함께 세련된 고급스러움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유명 브랜드에서 찾을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2만 ~3만원대의 와인들도 와인 소비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가격 대비 맛의 만족도를 줄 것이다.

- 최성순 와인21닷컴 대표

201510호 (201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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