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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엘러간 김은영 대표 

‘엘러간’ 자존심 회복에 나서다 

김영문 포브스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보톡스’의 원조는 엘러간(Allergan.Inc)이다. 메디컬 에스테틱 사업 등 새로운 사업영역 확대에 나서며 ‘원조 자존심’ 확보에 나선 김은영 한국엘러간 대표를 만났다.

▎김은영 한국엘러간 대표는 ‘소통’을 중시한다. 메디컬 에스테틱 사업을 비롯한 보톡스 치료, 안과 사업부 등의 리더십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한국은 ‘미용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한국의 시장에서 보톡스(Botox®)는 조금 특별한 대접을 받아왔다.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의 시술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일명 ‘주름 펴는 주사’로 알려졌던 것. 시술 시간이 짧고 통증이나 출혈, 붓기 등 부작용이 거의 없어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는 유명 인사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게 있다. 보톡스는 특정한 시술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미국의 제약회사 엘러간이 만든 제품 이름이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 보톡스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가 오리지널 회사인 엘러간이 아니라 국내 업체들이라는 점이다. 업계 1위는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메디톡스다. 나머지는 대웅제약과 휴젤이 양분하고 있다. 보툴리눔 독소제를 원료로 한 제품명 역시 메디톡신(한국)·디스포트(입센)·BTXA(중국)·나보타(대웅제약)·보툴렉스(종근당) 등 모든 제품이 모두 다르지만, 시장에서는 하나같이 ‘보톡스’로 불리고 있다. 과거 전자 복사기가 상표명인 ‘제록스’로 불린 것과 마찬가지로 ‘엘러간의 보톡스’가 아니라 ‘보톡스의 엘러간’이 된 셈이다. ‘보톡스’의 원조인 엘러간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국내의 왜곡된 시장 상황을 영업력 하나로 정면 돌파하겠다고 나선 당찬 경영자가 있다. 제약업계 최연소 여성 CEO 출신인 김은영(42) 한국엘러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1월, 강남의 한국엘러간 사무실에서 만난 김은영 대표는 에너지가 넘쳤다. “많은 사람이 보톡스를 일반명사로 알고 혼동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보톡스는 엘러간 제품의 상품명이지만 워낙에 많이 알려지다 보니 일어난 일이죠.”

보톡스, 특별한 치료제

1973년부터 질병치료제로 쓰였던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는 수만 명을 사망하게 할 수 있는 ‘독소’로 알려졌지만 보툴리눔 독소가 주름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접한 뒤 글로벌 제약사인 엘러간이 이 독소에 대한 연구에 돌입하게 된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89년 엘러간은 사시 및 안검경련 치료제로 미국 FDA에서 승인을 받아 1991년 보톡스라는 상표를 등록하게 된다. 엘러간의 보톡스는 현재 글로벌 톡신 시장에서 76%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치료용 보톡스 분야에서는 단연 한국엘러간이 가장 선두다. 특히 국내 적응증 획득에서는 다른 경쟁 제품들 보다 훨씬 앞서 있다. “보톡스가 단순히 그 물질이 가진 자체 특성만으로 치료제로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엘러간은 보톡스에 대한 연구개발만 25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다양한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김 대표의 설명에 힘이 실린다.

대형 병원의 재활의학과, 신경과, 비뇨기과 등 전문과를 중심으로 ‘치료제’로서 보톡스를 널리 인식시킨 한국엘러간의 전략은 적중했다. 한국엘러간은 2008년 미간주름, 겨드랑이 다한증 및 성인 상지 경직, 2011년 성인 만성편두통, 2012년에 성인 신경인성 배뇨근과활동성, 2013년에는 성인 과민성 방광 적응증을 취득하는 등 올해까지 총 8개 적응증을 승인받았다. 특히 올해 말부터 기존 약물로 적절한 치료에 실패한 과민성 방광환자에게 투여할 경우 국민건강보험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한국엘러간은 이같은 의료분야의 성과에 그치지 않고 메디컬 에스테틱 사업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 의약사업 시장 규모는 세계 13위이지만 의료·미용 관련 분야는 세계 5위일 정도로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인구수로 따져보면 세계 1위 수준이다. 김 대표는 “엘러간 본사에서도 한국 미용 시술·수술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어서 우리가 하는 메디컬 에스테틱 사업에 관심이 많다”며 ‘원조 보톡스’ 회사로서 메디컬 에스테틱 사업에서 자존심 회복에 나설 것임을 내비쳤다. 김 대표는 이를 위해 지난 6월 취임 이후 의료진과의 ‘소통’에 주력해 왔다. 김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톡신이나 필러 모두 의료진이 시술하는데, 고도의 숙련이 요구되는 일이죠. 제품을 출시한 회사마다 시술법도 다 다르고요. 그러니 의료진과의 소통이 중요할 수 밖에요.” 시술 능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에도 힘썼다. 한국엘러간은 지난 10월 초,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세계 의료 미용 시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한 성형외과 전문의인 아서 스위프트(Arthur Swift) 박사를 초청해 ‘엘러간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이날 강연에서 스위프트 박사는 히알루론산(Hyaluronic-Acid) 필러와 같은 비수술적 방법으로 시술하는 노하우를 한국 의료진에게 설명하면서 최신 정보도 교환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에스테틱 미용 분야로 확대


김 대표는 교육 효과가 높은 엘러간 아카데미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계획도 마련했다. 김 대표는 “현재 운영 중인 ‘엘러간 아카데미’라는 플랫폼을 내년에 ‘엘러간 메디컬 인스티튜트(Allergan Medical Institute)로 정례화해 업그레이드시킬 예정이다. 초청강사와 강연내용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가 의료진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고 교육에 정성을 기울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김 대표 자신이 의약 전문가 출신이다. 김 대표는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약사 출신인 그에게 의료진과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김 대표가 제약업계와 인연을 맺은 계기도 흥미롭다. 약사로 일하던 어느 날, 제약사 영업사원의 담당 의약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접하고, 제약업계에 매료돼 약사 일을 그만두고 영업사원으로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고 했다. “초짜 영업사원이 되어 의료진 앞에서 담당 의약품을 설명하던 때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때만 해도 제약회사 여자 영업사원이 드물던 시절이었죠. 전문가인 의료진을 설득시켜 의약품 주문을 받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밤새 약과 관련 질환 책을 뒤적여 준비했었지요.”

이런 집요하고도 특별한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리 없다. 제약업계에서 그는 놀라운 영업성과를 올려가기 시작했고, 업계에서 제약전략 및 마케팅 전문가로서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그리고 지난 2012년, 김 대표는 글로벌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의 싱가포르 대표 타이틀을 39살의 나이에 거머쥐게 된다. 노바티스 내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지사장이었다. 국내 제약업계 최연소 대표이기도 했다. 그녀는 2015년 6월, 과감하게 한국엘러간을 선택하게 된다.

사실, 김 대표의 ‘대담한 시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회사 내에서도 마케팅 전문가로 수년을 일하다 전략 및 라이센싱 부서장으로 자리를 옮겼던 적이 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그간 쌓아온 커리어를 날려버릴 수 있으니 위험 부담이 따랐죠. 하지만 늘 안전지대(Comfort Zone)에만 머물러 있으면 발전도 없을뿐더러 리스크만 더 커지는 겁니다.” 김 대표의 주관은 확고했다.

“제약 전문가가 이제 에스테틱 사업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니 리스크가 너무 큰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글로벌 엘러간이 새로 내세운 ‘대담한 시작(a Bold Start)’이란 슬로건이 다시금 제 열정에 불을 당겼죠(웃음). 한국엘러간이 조직도 젊고 역동적인 문화와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도 매력적이었다”고 답했다. 김 대표가 한국엘러간에 반한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제가 히알루론산 필러 제품인 ‘쥬비덤’이나 실리콘겔 인공 유방인 ‘내트렐’ 등을 중심으로 한 메디컬 에스테틱 사업부에 뛰어든 것은 한국엘러간에 와서 처음이거든요. 그런데 직원들과 만나 얘기하면서 업계 상황을 파악해보니 직원들의 시장 분석이나 제품에 대한 지식이 정말 해박하더라고요. 빠르게 변하고 있는 메디컬 에스테틱 시장의 트렌드를 비롯해 소비자를 더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대단하고요.”

김 대표는 그러면서 부임한 지 얼마 안돼 겪었던 일을 들려줬다. “대표실에 앉아 서류나 모니터를 들여다보기보단 영업팀 직원부터 찾았어요. 직원과 대화를 나누다 한순간 내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죠. 바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었어요.” 김 대표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 영업팀 직원을 따라나서 고객을 만나기 시작했다. “고객들과 직원들이 만나는 자리에 동행해보니 우리 직원들이 저보다 공부를 열심히 한 듯해 제가 다 뿌듯하더군요. 약사를 그만두고 처음 외국계 제약사 영업 전선에 나섰던 제 젊은 시절이 생각나더라고요(웃음).”

김 대표는 그때부터 직원들과 소통하는 일이 즐거워졌다고 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타운홀 미팅’보다 무작위로 직원들과 점심 약속을 잡았어요. 평소 말수가 적은 직원에게 말을 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웃음).” 김 대표가 “오늘 미팅 어떠셨어요?”, “고민이 뭐예요?”, “회사에 바라거나 원하는 게 있나요?”라며 던지는 질문이 많을수록 돌아오는 직원들의 답변도 점차 다양해졌다. 김 대표보다 경험이 훨씬 많은 직원에게 메디컬 에스테틱, 의료기기 등에 대해 배우고 함께 고민하는 일이 늘게 됐다. 지금도 대표실에 앉아있기보다는 사무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대화하기를 즐긴다. “왜냐고요? 경영자와 직원 간 틈을 줄여서 중요한 것에 더 역동적으로 대응하는 대담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죠.”

김 대표는 아시아 시장의 트렌드 파악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김 대표가 제약사에 근무하던 2007년, 스위스 파견 시절에 접했던 뼈아픈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제약업계 최연소 CEO의 새 도전


“제가 스위스에 파견돼 새로 출시될 고혈압약 글로벌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가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한국 시장에 대한 정보뿐이잖아요. 그때 제게 아시아 시장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있었다면 더 신속하게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죠.” 김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요즘도 글로벌 시장 파악의 중요성을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이유다.

2015년은 한국엘러간이 통합 법인으로 출범한 원년이기도 했다. 덕분에 3개 사업부로 구성된 한국엘러간도 한결 더 조직이 탄탄해졌다. 우선 한국엘러간을 대표하는 제품인 보톡스, 히알루론산 필러 쥬비덤, 실리콘겔 인공유방 내트렐을 주로 담당하는 메디컬 에스테틱 사업부를 배치했다. 다음으로 녹내장 치료제, 안구건조증 치료제, 망막질환 치료제를 주력으로 하는 안과(Eye Care) 사업부, 마지막으로 신경계 및 뇌와 다양하게 연관된 신경전달 물질과 관련 질환 치료제들을 공급하는 보톡스 치료(Neurosciences & Urology) 사업부 등의 시장지위를 더욱 확고히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앞으로 주력 사업이 안정되면 김 대표는 새로운 사업영역도 개척해 볼 작정이다. 김 대표는 “한국엘러간이 국내에서 집중하고 있는 3개 사업부 중 한국에 미출시된 제품들이 있어 이들 제품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비즈니스 확대 가능성이 있는 사업부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7개 주요질환 영역에서 리더십을 구축하겠다는 복안도 점차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제약사의 최연소 CEO로서, 한국엘러간의 대표로서 메디컬 에스테틱 사업을 성장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김 대표는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본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저 자신부터 그 본능에 충실하고자 합니다”라며 에스테틱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한국엘러간은 대형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메디컬 에스테틱, 안과 등 주력 분야에서 리더가 되는 것, 특히 글로벌 메디컬 에스테틱 선두 기업인 엘러간의 면모를 확고히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당찬 각오는 2016년, 특히 메디컬 에스테틱 분야에서 한국 엘러간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예견케 했다.

-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201601호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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