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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최신 드론에서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 매장까지... 

체험형으로 변신하는 인천공항 면세점 

이현택 기자
인천공항 면세점은 해외로 출국하는 고객의 쇼핑장소로 상징성이 강하고, 환승하는 중국 고객에게 면세점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곳이다. 3기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마다 마케팅 차별화에 한창이다. 최신 드론에서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까지 안 파는 물건이 없고, 후불 서비스를 도입하는가 하면 24시간 영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체험형 매장으로 변신한 인천공항 면세점을 찾아가봤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2시. 한 쌍의 남녀가 최신 드론 제품의 전원을 켜보고 제대로 날개가 돌아가는 지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몸에 부착한 채 촬영하는 ‘액션 카메라’를 테스트 해보는 여행객들도 있다. 그 옆에선 조선호텔김치·전복삼계탕·재래김 등 신세계 간편가정식 자체브랜드(PB) ‘피코크’ 식품을 팔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보세구역 안에 있는 신세계면세점의 풍경이다.

SM면세점 ‘후불형 예약’ 서비스 최초 도입


▎‘차별화된 경험’을 콘셉트로 하는 인천국제공항 3기 면세점이 1월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왼쪽 위부터 롯데·엔타스·신세계·신라 면세점. / 각 면세점 제공
지난해 2월 사업권을 딴 인천공항 3기(2015~2020년) 면세점들이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서는 모양새다. 3기 사업자 선정에서는 구역을 총 12곳으로 나눴다. 롯데는 향수·화장품·주류·담배·럭셔리부티크(명품)·탑승동 전체 사업권을, 신라는 향수·화장품·주류·패션·잡화 사업권을 가져갔다. 신세계면세점은 패션과 잡화만 취급한다. 중소·중견기업 몫으로 배정된 면세사업권은 엔타스·SM·삼익·시티 등 4사가 가져갔다.

인천공항 3기 면세점들은 지난해 9월 1일부터 영업을 개시했다. 하지만 기존 자리에 면세점을 확장했느냐 아니면 새로 들어왔느냐에 따라 매장 공사와 입점 브랜드 유치에 시간차가 있어 개점일과 그랜드 오픈 시기가 제각각이다. 신라면세점은 1월 15일 인천공항 담배·주류매장의 그랜드 오픈 행사를 진행했다. 롯데는 명품 매장을 정비하고 있어 오는 8월 그랜드 오픈 행사를 하지만 현재 일부 명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매장이 영업 중이다. 신세계는 사업권을 받은 직후인 지난해 9월부터 임시 매장을 운영하다가 1월 초 본격 영업에 들어갔다. 별도의 그랜드 오픈 행사는 없었다. 엔타스 등 중소·중견기업 면세점 4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인천공항 면세점 중 관심을 끄는 매장은 3월 중 오픈이 예정된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이다. 미국 유명 속옷 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은 그동안 시드니·두바이·런던·도쿄 등에 면세 매장을 냈지만, 국내 면세점에는 인천국제공항이 최초다. 하나투어가 대주주(지분 78.1%)로 있는 SM면세점이 운영한다.

SM면세점은 또 국내 최초로 ‘후불형 예약’ 서비스를 선보인다. 기존의 온라인 면세점은 홈페이지에서 결제를 마치고 공항 내 인도장에서 면세품을 수령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SM면세점의 예약제는 홈페이지에서 ‘찜’해 놓은 상품을 공항 내 면세구역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바로 받는 방식이다. SM면세점 측은 “홈페이지에서 결제하느라 액티브X 등과 씨름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1월 중 서울 인사동에 시내 면세점을 오픈하는 한편, 모기업인 하나투어의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영업에 나선다.

신라면세점은 ‘원스톱 쇼핑’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여객터미널 서편 42번 게이트를 중심으로 화장품부터 향수·주류·담배를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는 동선을 꾸민 것이다. 당초 인천국제공항 2기 면세사업자(2007~2015년) 선정 당시 신라면세점이 서관에서 화장품·향수, 롯데면세점이 동·서관에서 담배·주류, AK면세점이 동관에서 화장품·향수 매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선정이 됐었다. 하지만 경영난에 처한 AK면세점을 롯데가 인수하면서 여객터미널에서는 롯데만 모든 제품을 취급할 수 있었다. 이번에 2기 면세사업에서의 아쉬움을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라면세점은 또 지난 2013년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에 입점해 인기를 끌었던 자체 시계 편집숍 ‘메종드 크로노스’도 인천공항에 오픈했다.

면세점 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은 체험형 매장과 대형화를 들고 나왔다. 인천공항의 롯데면세점 매장 규모는 기존 5940㎡(약 1797평)에서 45% 늘어나 8595㎡(2600평)가 됐다. 탑승동 사업권이 생긴 덕분이다. 롯데의 3기 매장 중에서는 스타일온의 뷰티 프로그램 ‘겟잇뷰티’와 협업한 체험형 화장품 매장이 눈에 띈다. 키오스크에서 고객의 피부 타입을 진단해주고, 거기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 주는 코너가 있다. 또 계절별로 한류 스타들의 화장법을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소개하는 형식의 행사도 진행한다.

외국항공사가 모여 있는 탑승동 면세구역 역시 롯데가 새로 운영을 하면서 변신하고 있다. 그동안 외항사 탑승동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국적기 중심의 여객터미널에 비해 면세점 수익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를 바꾸기 위해 롯데가 꺼낸 카드가 바로 명품시계다. 탑승동에 중국 항공사들이 많이 있는 것을 감안해 롤렉스·태그호이어·브라이틀링 등 고급 시계 브랜드 매장을 전면 배치했다. 또한 젊은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레고 매장과 국내 최대 전자제품 면세 매장을 만들었다. 최난영 롯데면세점 인천공항점 부점장은 “탑승동에 롤렉스·브라이틀링·태그호이어 등 고급 시계를 전면 배치하는 한편, 레고·뽀로로 매장을 꾸며 20~30대 외국인 고객층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익면세점은 화장품·향수 매장 24시간 운영


▎지난 12월 30일 인천국제공항 내 신세계면세점에서 고객들이 전시된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 신세계면세점 제공
신세계는 드론·액션카메라 등 전자기기와 자체 간편가정식(HMR) 브랜드 ‘피코크’를 전면에 배치하고 인지도 높이기에 들어갔다. 신세계는 그동안 부산 시내면세점(구 파라다이스 면세점)을 운영하고 지난해 11월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까지 얻었지만 아직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인지도는 롯데·신라보다 약한 편이다. 드론은 정용진 부회장이 일산에 체험형 마트 ‘이마트타운’을 오픈할 때에도 주력 상품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피코크는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비싸지만 맛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준홍 신세계면세점 인천공항점장은 “이번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려고 한다”며 의욕을 보였다.

이번 3기 면세점 중에서는 편의점처럼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도 생겼다. 삼익면세점은 에스티로더·설화수 등 43개 브랜드가 입점한 화장품·향수 전문 매장이다. 이곳은 지리적 이점을 살려 24시간 영업에 도전한다. 탑승동으로 가기 위한 셔틀 트레인을 타러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여객 터미널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공유선 삼익면세점 전무는 “잇츠스킨·토니모리 등 유커(중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한국 화장품을 앞세워 10%에 불과한 심야 면세점 활용률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삼익악기 측은 중국에 있는 500여 곳의 대리점에도 화장품 매장을 만들어 인천공항 면세점과의 시너지 효과를 추진한다.

주류와 담배 위주로 소규모(171㎡)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엔타스면세점은 지난해 9월 오픈 직후부터 흑자를 내면서 쏠쏠한 영업을 하고 있다. 유커에게 인기가 높은 시가와 전자담배, 전자제품 등을 입점했다. 이승규 엔타스면세점 부사장은 “하루 평균 매출 1억원 이상을 내는 것은 물론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3기 면세점에서는 주류와 담배의 상품군이 다양해진 것도 특징이다. 롯데면세점은 막걸리·소주·맥주 등 국산 주류의 라인업을 확장했다. 또 중국인이 선호하는 까뮈·레미마틴 등을 모아 ‘꼬냑존’도 만들었다. 엔타스 면세점에서는 남성 애연가들에게 인기 있는 전자담배를 판매한다. 롯데에서는 대만 담배도 들여왔다.

인천공항 면세점에는 중국의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집안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샤오황디(小皇帝)를 겨냥한 유아동용품도 입점해 있다. SM면세점에는 매일유업 계열 유아용품 업체인 제로투세븐의 ‘궁중비책’이 입점했다. 궁중비책은 한방 원리를 기반으로 한 국산 유아용 스킨케어 제품이라는 특징을 살려 유커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신세계면세점은 공항 면세구역에 ‘아동용품관’을 만들고 이폴리움의 프리미엄 유아용품 편집매장 ‘디밤비’를 입점했다. 이곳에서는 디밤비가 취급하는 인기 아기띠 ‘에르고베이비’, 아기 침구 ‘스와들디자인’ 등을 판다.

인천공항 면세점 노하우로 해외시장 공략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모습. SM면세점은 오는 3월 인천공항 면세점에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을 열 예정이다. / 뉴시스 제공
인천공항 면세구역에는 국산 중소기업 제품 전용 매장 ‘아임쇼핑’도 생겼다. 여객터미널 서편은 시티가, 동편은 SM면세점이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여행용 고데기, 메모리폼 목 베개 등 국내 중소기업들이 만든 제품들을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판매한다. 시티면세점에는 인삼공사의 정관장, 쿠쿠전자의 밥솥 등 해외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국산 브랜드를 판다.

세계적인 허브공항인 인천공항 면세점은 임대료가 비싸다. 2014년 인천공항 면세 사업자들이 인천국제공항 공사에 낸 임대료는 외부에 정확히 공개되진 않았지만 모두 합쳐 6000억~7000억원 선으로 업계에선 파악하고 있다. 면세 사업자들의 인천공항 매출액이 2조2000억원 가량이니 여기서 인건비와 상품 매입비, 임대료 등을 내고 나면 적자를 볼 가능성도 꽤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인천공항 면세점은 입찰 공고가 나면 늘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대해 면세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출국 고객의 쇼핑장소로 상징성이 있고, 환승을 하는 중국 고객에게도 면세점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대기업들은 인천공항 사업권 확보에 공을 들인다. 해외 면세점 운영권 경쟁에서 인천공항 운영 경험을 높이 쳐 주기 때문이다. 고선건 신라면세점 인천공항점장(상무)은 “창이·마카오공항 면세점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플래그십 스토어’ 격인 인천공항 면세점에서의 성과 덕분이었다”면서 “인천공항 면세점을 키워 앞으로도 해외 면세점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현택 기자

201602호 (201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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