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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년 신발 가업 잇는 ‘캠퍼’ CEO 플룩사 

늘 새롭게 보이도록 ‘업데이트’ 한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스페인 프리미엄 캐주얼 슈즈 브랜드 ‘캠퍼’는 마요르카 방언으로 ‘농부’라는 뜻이다. 투박한 듯하지만 멋스러운 디자인, 좋은 가죽으로 만든 편안한 신발을 만들어 입지를 다졌다.

▎캠퍼 브랜드와 플룩사 CEO는 태어난 지 41년 된 동갑내기다. 플룩사는 “브랜드를 늘 새롭게 보이도록 ‘업데이트’하는 것이 CEO로서 중요한 업무”라고 말했다.
캠퍼의 젊은 CEO 미겔 플룩사(Miguel Fluxa·41)는 캠퍼와 동갑내기다. 아버지 로렌조 플룩사(69)가 캠퍼를 설립한 1975년에 태어났다. 플룩사 집안은 캠퍼 이전부터 신발 사업을 시작해 벌써 4대째 이어오고 있다. 미구엘의 증조부가 1877년 고향인 지중해 마요르카 섬에 신발 공장을 차린 게 출발이다.

캠퍼의 독창성은 어디에서 오나.

조직 DNA에 각인돼 있다. 할아버지는 품질 좋은 신발을 만드는 재능과 노하우를 물려줬다. 아버지는 제품을 혁신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걸 보여줬다. 새로운 것을 찾는 문화가 조직에 전해졌다. 지중해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었다. 마요르카는 예부터 화가·작가 등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곳이다. 일본·독일·체코·미국·중국·네덜란드·영국 출신으로 구성된 디자인팀의 문화적·에스닉 다양성도 한몫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할아버지는 장기적인 비전과 신발 제조에 대한 열정, 글로벌화에 대한 꿈을 가르쳐 줬다. 아버지로부터는 모든 걸 배웠다. 혁신과 모험뿐 아니라 겸손한 태도, 좋은 파트너를 고르는 안목, 인재를 선별하는 법 등이다.

아버지에게 혁신·안목·겸손함 배워


▎좋은 디자인은 수명이 길다. 베스트셀러 ‘펠로타스’(오른쪽)는 1995년 출시 이래 소재와 디테일을 변주해 왔다. 88년 출시한 ‘트윈스’(왼쪽)는 각기 다른 디자인을 한 쌍으로 신어 한 켤레를 완성하는 게 특징이다.
가업 승계자로서 책임감이 무겁겠다.

4세대 경영인으로서 자부심이 크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무겁다. 선대가 일궈 놓은 전통 산업을 디지털 시대에도 번성하도록 만드는 게 내 과제다. 사업을 온전하게 유지해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더구나 요즘은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하고, 테러가 빈번해지는 등 비즈니스에 있어 어려운 시기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나 스스로 묻는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희망을 가지려고 한다. 전쟁·기아, 그리고 강도 높은 노동을 겪어 낸 조상들에 비하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캠퍼가 지금은 세계 70개국에 진출해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오랜 기간 국내 브랜드에 머물다 1986년 스페인의 유럽연합(EU) 가입,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후에야 해외 진출을 꿈꿨다고 한다. 92년 파리·런던·밀라노에 처음으로 해외 매장을 냈을 때는 플룩사의 말에 따르면 “완전 재앙 수준”이었다. 스페인에서는 나름 성공한 브랜드였지만 해외에선 무명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버는 돈을 몽땅 해외에 투자해야 했다.

그 고비를 어떻게 넘겼나?

자신을 믿고 캠퍼의 브랜드 정체성을 꾸준히 알렸다. 당시 일부 스페인 브랜드들은 해외 진출 시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브랜드로 위장하기도 했다. 우리는 반대로 스페인, 특히 시골 마요르카 출신 티를 확 냈다. 모험이었지만 돌이켜보니 옳은 결정이었다. 파리로 관광 온 일본인들이 캠퍼의 독창적인 디자인에 관심을 보였다. 95년 일본에 진출했고, 스페인 밖에서 첫 성공을 거뒀다. 일본인들이 유럽에 와서 자꾸 캠퍼를 찾으니까 유럽인들도 캠퍼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글로벌 성공을 꿈꾸는 기업에 조언한다면?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독창적인 상품, 고유의 브랜드 정체성과 독보적인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인내심도 중요하다. 최강자와 경쟁하겠다는 자세도 필요하다. 우리가 첫 진출지를 파리와 밀라노로 정한 것처럼 말이다.

성공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세상엔 좋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운도 좋아야 한다.

한국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토머스 에디슨을 인용하고 싶다. ‘더 열심히 할수록 더 많은 행운이 쌓인다.’ 행운은 노력과 함께 온다.

디지털 시대 고객과의 소통이 과제

플룩사 가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발 제조 가족’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급변하는 디지털시대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나 판매 방식도 완전히 달라진 시대다. 플룩사 CEO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게 캠퍼를 늘 새롭게 보이도록 ‘업데이트’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모던함이란 뭔가, 컨템퍼러리 브랜드란 어떤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고 했다. “창의성·상상력·유머 등 캠퍼가 30년 전부터 추구해 온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이를 구현하는 방식은 달라졌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에 브랜드 정체성은 달라졌는가

우리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하는 브랜드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둘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게 관건이다. 그래서 매주 또는 격주로 새로운 콘텐트를 올리고 홈페이지를 꾸미고 뉴스레터를 보내고 페이스북 소셜미디어용 콘텐트를 별도로 제작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사업 다각화도 필요하다. 우리는 호텔(바르셀로나·베를린)과 레스토랑 사업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캠퍼 바르셀로나 호텔은 유명 여행사이트(트립어드바이저)에서 도시 내 700개 호텔 가운데 1위를 장기 석권하고 있다. 특히 퓨전 레스토랑은 미슐랭 1스타를 받았다.

성공 비결이 뭐라고 보나?

고객의 입장에서 편안한 여행이 되도록 초점을 맞춘 것이 주효했다. 좋은 디자인의 객실, 편안한 침대, 24시간 오픈 무료 바를 뒀다. 음식을 방으로 가져갈 수도 있게 했다.

호텔 사업 확장 계획은?

호텔 사업은 아주 매력적이다. 누구에게나 여행은 기분 좋은 일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가족에게 추억을 선사하는 일은 선행을 베푸는 것 같다.

좋은 신발은 주인을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말이 있다. 캠퍼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201609호 (201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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