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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경영의 정석(7) 위기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윤리경영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dongho@joongang.co.kr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전자 옛 본관에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이 들어서자 국내외 언론사 카메라 기자들의 플래시가 집중적으로 터졌다. 삼성전자가 야심적으로 내놓은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 아흐레 만인 지난 9월 2일은 삼성전자 역사에서 가장 길고 긴박했다.

▎배터리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갤럭시 노트7 전량 리콜을 발표하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고동진 사장. 이번 전량 리콜을 통해 삼성은 1조원 가량의 손실을 입었다.
이날 고동진 사장의 발표 내용은 시장과 언론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 고 사장의 입에서 전량 리콜이 나오자 기자들 대다수는 귀를 의심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이런 상황을 방증했다. 이미 10여 개 나라에 인도되거나 소비자 손에 들어간 노트7이 250만 대에 이르는 상황에서 대규모 리콜을 한다는 것은 휴대전화 업체에서는 미증유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로선 노트7 배터리 폭발사고는 마치 땅속에서 갑자기 솟구쳐 올라온 진도 7 이상의 지진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갑자기 터져나온 사건이기 때문이다. 24일 인터넷과 모바일,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노트7이 연기를 내면서 폭발했다는 소식은 삼성 수뇌부에게 즉각 보고됐다. 아니 일부 간부는 보고도 되기 전에 자신의 노트7을 통해 각종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노트7 폭발사고 소식을 먼저 접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금 꺼림칙하지만 삼성 수뇌부와 무선사업부 관계자들은 이 불길한 소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과거에도 블랙컨슈머가 장난을 치다가 적발된 경우가 있었고 LG를 비롯한 경쟁사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4일 이후에도 폭발사고는 꼬리에 꼬리는 물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원인을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보고가 처음 들어온 뒤 일주일이 지나고 달을 넘기고 계절도 마침 가을의 문턱인 9월로 접어들자 삼성전자의 결단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소비자와 언론을 포함한 시장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증권시장이 마감되고 5시쯤 삼성은 드디어 입장을 밝혔다. 내용은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초강수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량 리콜이었다. 첫 폭발소식이 인터넷을 돌고 이날 리콜 발표가 공식화하기까지 삼성의 9일은 긴박했다. 한 삼성 관계자는 “9일은 9년 같은 갑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전량 리콜을 통해 삼성은 1조원 가량의 손실을 입고 신뢰를 얻었다. 이는 시장조사에 객관적으로 뒷받침된 사실이다.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안드로이드폴리스가 9월 4일부터 1만16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트7 전량 신제품 교환 사태에 대해 응답자의 76%는 삼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거나 바뀌지 않았다고 답했고, 인식이 나빠졌다는 대답은 24%에 그쳤다. 이런 결과는 삼성이 꼼수를 쓰거나 우회로를 돌아가지 않고 정공법을 택한 결과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닌 건 기업을 해본 사람이면 다 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면 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자가 드러나면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시장에서 퇴출되는 위기는 물론이고 곧 문을 닫는 사태까지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례는 부지기수다. 최근만 해도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사태와 아우디 폴크스바겐 연비조작 사건이 그랬다.

또 다른 세월호로 불리는 옥시 사건은 지금도 피해자가 몇 명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거의 10년이 다 돼 가고 있다. 하지만 옥시는 수많은 사상자가 나타날 때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히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그럴수록 피해자가 늘어났다. 급기야 원천적으로 잘못을 부정하기 위해 독성을 은폐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대학 교수가 옥시 측으로부터 의뢰받고 진행한 독성 실험보고서를 조작하거나 ‘가습기 살균제 노출평가 및 흡입독성시험’ 연구용역계약을 진행하면서 옥시에 유리하게 실험 결과가 나오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돈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언론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수사권한이 없는 언론이 진실을 은폐하는 사건을 파고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옥시는 뒤늦게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잘못을 인정했다. 이 회사 한국 법인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로 폐 손상을 입으신 모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머리 숙여 가슴 깊이 사과를 드린다”며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피해자에 대한 포괄적인 보상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옥시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지 않게 됐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방치하면서 수많은 사상을 낸 기업에 비윤리적인 행위를 용서할 소비자는 없기 때문이다.

옥시 사태와 폴크스바겐 연비조작 사건의 교훈


▎1. 윤리경영은 기업 성장을 좌우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아우디폴크스바겐은 사실상 국내 시장에서 퇴출됐다. 사진은 지난 7월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사장이 ‘폴크스바겐 제작차 인증취소 청문회’에 참석하고 있는 장면. / 2. 지난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하는 옥시코리아 아타 샤프달 대표. 옥시는 뒤늦게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잘못을 인정해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다.
아우디폴크스바겐 연비조작 사건도 판박이다. 처음부터 연비를 속이려는 고의성이 매우 컸다. 미국에서 들통이 나자 그제서야 폴크스바겐은 잘못을 인정하고 대규모 리콜에 나섰다. 한국에서는 처음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선 법적 기준이 달라 문제가 없었다고도 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입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검찰은 폴크스바겐은 디젤차뿐 아니라 휘발유차도 국내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아우디폴크스바겐은 환경부와 검찰을 통해 조작의 근거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자 입장을 바꾸었다. 환경부가 국내에 판매한 32개 차종(80개 모델) 8만3000대에 대해 인증 취소 처분을 내렸다. 배출가스나 소음 시험서류를 위조해 인증을 받은 것으로 밝혀진 차량들이다. 지난해 11월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으로 인증 취소된 12만6000대를 합치면 지금까지 모두 21만 대 가량이 인증 취소됐다. 지난 10년간 판매된 폴크스바겐 차량의 68%에 이른다. 과징금도 법정 최고 한도인 178억원을 부과했다. 자동차 회사에 가해진 사상 최대, 최고 수준의 제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여전히 봉 취급을 받고 있다. 폴크스바겐 본사가 이번 스캔들과 관련한 비용으로 162억 유로(약 21조3900억원)를 설정하고 미국에선 100억 달러(약 1조1700억원)를 우선 배상키로 했고, 유럽에서도 대규모 리콜을 실행하고 있는 데 비하면 한국에선 과징금 납부 정도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옥시와 폴크스바겐은 지금도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국 형식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등 떠밀려 마지못해 하면서 뜨뜻미지근했다. 삼성전자 노트7, 옥시 가습기 살균제, 아우디폴크스바겐 자동차는 소비자에게 1등 제품으로 꼽힌다. 그래서 고객 충성도가 높다. 돈이 많아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더러 있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큰 마음을 먹고 제품을 구입한다. 하지만 제품에 하자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반응은 달랐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윤리경영(Ethical Management)에 대한 기업의 태도다.

기업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등장한 윤리경영


▎서울 종로구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갤럭시 노트7을 구매한 고객이 배터리 점검을 하고 있다.
윤리경영이란 회사경영 및 기업활동에서 ‘기업윤리’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며, 투명하고 공정하며 합리적인 업무 수행을 추구하는 경영정신이라고 정의된다. 이익의 극대화가 기업의 목적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다는 의식과 경영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기업윤리 의식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잃으면 결국 기업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요구를 바탕으로 한다.

국제적으로는 국제표준화기구(ISO) 산하 소비자정책위원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관한 표준안 작업을 승인함으로써 윤리경영을 ISO 9000(품질인증), ISO 14000(환경보호 인증)과 같은 범주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경제사회에서 ‘기업윤리’가 기업이 갖추어야 할 기업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대두되면서 윤리경영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윤리경영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등 윤리경영을 도입하고 있다. 윤리경영이 중요한 것은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대부분이 소비자의 안전(Safety)과 보건(Health)에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 근원은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장수기업 듀폰은 1915년부터 이미 안전에 관한 소책자를 만들어 종업원에게 배포하도록 했다. 1900년대 초반에 미국의 경영을 주도하던 패러다임이 직원을 공장의 부품처럼 다루던 테일러리즘(Tailorism)이었던 것에 비하면 듀폰의 이러한 시도는 이례적인 조치였다. 직원에게 반복적인 안전 교육을 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전통이 이어지면서 듀폰은 산업환경 변화에 맞춰 주력사업을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장수기업이 됐다. 듀폰은 1802년 설립 당시 화약 제조 업체였지만 이제는 생명공학·식량산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윤리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윤리경영은 여전히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 이익을 내면 그만이라던 단견이 윤리경영을 가로막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접근은 결국 소비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기업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역사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리콜들은 모두 안전ㆍ보건과 관련돼 있다. 존슨앤존슨은 1982년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투입한 범죄로 8명이 숨지자 시중의 모든 타이레놀을 회수했다. 이로 인해 2억4000만 달러의 손해가 났지만 타이레놀의 신뢰는 지켜냈다.

그 반대 사례가 2000년 미국의 파이어스톤이다. 이 회사는 타이어 결함을 몰래 숨겨 오다 미국에서만 46명이 숨지자 뒤늦게 650만 개의 타이어를 리콜했다. 미 정부가 국민 생명과 관련된 중대 사안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파이어스톤은 결국 파산에 몰려 일본 브리지스톤에 매각됐다.

윤리경영은 앞으로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경영의 종착점이자 지향 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윤리경영은 조직의 문화와 관행을 기본 배경으로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아우디폴크스바겐은 연비조작 사건 이후 내부에 엄격한 상명하복이 관행화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품에 하자가 발행해도 문제를 제기할 소통 장치가 작동될 리 없다.

이런 조직 문화에 길들여진 구성원은 문제가 발생하고 부실을 발견해도 즉각 회사에 보고하기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일의 권한이 상층부에 있는 만큼 시키는 대로만 일하자는 면피주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옥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옥시는 한국의 법규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장기간 문제를 방치해 세월호처럼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 윤리적으로 무장이 됐다면 잘못를 발견하고 보는 즉시 비상벨을 눌렀겠지만 복지부동을 선택했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의 노트7 전량 리콜은 삼성전자의 전반적인 건강함을 보여준다. 이번 리콜 사태에서도 실무자들은 앞다퉈 전량 교체를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악한 불량률은 0.0024%였다. 100만대 중 24대꼴이다. 한때 유행했던 식스시그마 기준 이내의 불량이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윤리경영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는 2010년 6월 일명 ‘안테나게이트’로 몸살을 앓던 애플과도 대조를 이룬다. 애플은 당시 전파를 수신하는 안테나를 본체 측면에 배치한 ‘아이폰4’를 내놓았지만 손으로 폰을 잡으면 수신감도는 크게 떨어졌다. 대책이 나온 것은 한 달 이상 지난 시점이다. 스마트폰 케이스를 무료로 주거나 환불해주겠다는 게 골자였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스마트폰을 다른 방식으로 쥐거나 케이스를 사라”고 응답해 빈축을 샀다. “아이폰도 완벽하지 않다”는 그의 해명은 자기방어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불러왔다.

이는 애플이 ‘카피캣’이라고 조롱하던 삼성전자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고 사장은 지난달 2일 기자회견에서 “가슴이 아플 정도로 큰 금액이지만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내려야 할 결단”이라고 토로했다. 리콜에 따른 비용은 1조~1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올해 2분기 무선사업부 영업이익의 25~30%가량 되는 금액이다. 결국 돈 대신 소비자들의 신뢰와 안전을 택한 것이다. 땜질식 조치와 사고원인에 대한 변명은 결국 삼성전자 자체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돈 대신 소비자들의 신뢰를 선택한 삼성전자

시장전문가들은 일시적 타격을 떠안았지만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신뢰를 얻은 것은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만약 삼성전자가 옥시나 폴크스바겐 같은 대응에 나섰다면 어떻게 됐을까. 삼성전자는 이미 신뢰를 잃고 시장의 패배자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한 방에 훅 가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윤리경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9월 8일 ‘기내 갤럭시노트7 사용·충전 금지’ 지침을 내놓자 일본·유럽·캐나다 등에서도 뒤따랐다. 그러자 미 정부기관인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사용 중단’을 공식 권고하고 나섰다. 이 또한 삼성전자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보호무역주의 바람을 타고 미국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지만 안전과 연관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삼성으로선 치밀한 대응으로 위기를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김동호 - 중앙일보 논설위원. 경제와 산업에 관한 칼럼과 사설을 쓰고 매주 목요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201610호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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