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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7) 

초경쟁시대 근로자의 여력(Slack)과 앙트레프레너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구성원 개개인에 경영초점을 맞춰 탈진(burn-out)보다 여력(slack)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여력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이 펼쳐지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발휘된다.
바야흐로 한 순간도 여유를 부리거나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초(超)경쟁(Hyper-Competition)시대다. 방심했다가는 살아남는 건 고사하고 도태되는 줄도 모르고 사라지기 일쑤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인력경영을 해야 최소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어울릴 수 있을까. 『미래를 경영하라』의 저자 톰 피터스(Tom Peters)는 그 길을 이렇게 제시했다. “기업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전략, 조직구조, 시스템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며, 특히 ‘창조성과 상상력’이다.” 경쟁력의 원천이 노동이나 자본이던 시대는 갔다는 얘기다.


▎독일은 잔업을 한 시간만큼을 저축해서 한꺼번에 몰아서 쓸 수 있는‘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운용하고 있다. 사진은 독일 BMW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5시리즈 차량을 조립하고 있는 장면. / BMW 제공·중앙포토
대신 창조적 상상력이 부(富)의 원천이 됐다.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 즉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주목받는 이유다. 그러려면 단순 생산기지로서의 기업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일할 맛 나는 곳이 돼야 하고, 인재를 최우선시 하는 곳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재화의 생산이나 설비 구축은 후순위 경영포인트다. 오히려 구성원 개개인에 경영초점을 맞춰 탈진(burn-out)보다 여력(slack)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여력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이 펼쳐지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발휘된다. 이게 기업의 활력으로 작용하고, 근로자의 성과소득을 끌어올림으로써 기업과 근로자가 윈윈(Win-Win)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여력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장시간 근로와 이로 인한 과로는 초경쟁시대를 헤쳐가야 하는 기업에 겐 큰 걸림돌이다. 노동력 투입에 의존하는 산업은 오래가기 힘들다. 잔업과 특근이 만연한다는 건 업무관리와 조직문화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이런 산업이나 기업에서 근로자의 여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아이디어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정형화되기 일쑤다. 창조성이나 상상력은 애초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게다. 장시간 근로에 지쳐 피로를 풀 시간도 없는데 자기계발이나 업무의 효율적 탐색이 가능하겠는가. 그렇다고 단순히 칼퇴근으로 여력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그저 제도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그에 맞춰가는 수동적 관리로 흐를 수밖에 없어서다. 당연히 뻗어나가려는 시도라기보다 최소한의 수성을 위한 경영전략일 뿐이다. 그러다 잘못되면 도태를 감수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앞으로는 수성보다 기회 선점, 현실보다 상상력에 방점을 두는 근로시간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얼마나 많이(How much)’가 아니라 ‘어떻게(How)’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패러다임에서 핵심 키워드는 현명한 근로, 유연한 근로다. 장시간 근로를 선호하는 건 비용절감(기업)과 추가소득 확보(근로자)라는 근시안적 윈윈 게임의 산물이다. 더욱이 생산현장의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근무강도가 낮아져 소득을 노린 근로자의 장시간 근로 선호도는 수그러들 줄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게임이 계속되면 창조력이 필요한 미래에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추가 근로에 따른 비용 뿐 아니라 막대한 산업재해 보상금까지 덤으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업무상 뇌혈관이나 심혈관질환 발병자의 86.5%가 발병 당일 8시간 넘게 일하거나 발병 전 3일간 24시간 이상 일한 경우였다(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장시간 근로가 경영상 큰 위험요소(Risk)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근무시간은 조만간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후진적이냐, 생존할 수 있겠는가, 미래에 주도적 경제주체로 성장할 수 있느냐, 외풍을 이겨낼 수 있는 혁신이 가능한가 등을 따지는 경영지표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탠포드대의 제임스 마치(James G. March) 교수는 “근로자의 여력은 급변하는 환경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는 완충재로서 기능한다”고 말했다.

글로벌기업이 창조성을 강화하며 승승장구한다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한데 그 바탕에 근로시간을 중요한 경영지표로 여기고 개선하고 있다는 건 간과한다.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느냐

‘Imagination at Work(상상을 현실로)’를 내세운 GE나 Bank of America 등 미국기업들은 근로시간의 여력 확보를 위해 ‘Reduced-Load Work(업무부담 경감)’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주일 중 하루를 쉬어 주4일제로 근무하게 하거나 여름 휴가철 등 3개월 동안은 50%만 일하는 등의 방식이다. 독일은 잔업을 한 시간만큼을 저축해서 한꺼번에 몰아서 쓸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운용하고 있다.

노동계라고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노동운동의 목표는 태동할 때부터 근로시간 단축이었다. 영국노총(TUC)은 2000년대 초반부터 근로자의 욕구와 회사의 목표를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근로시간 단축방안을 강구해왔다. 파트너십에 기초하고 있다는 얘기다. TUC는 전체 근로시간은 유지토록 했다. 대신 2주 동안 9일 근무와 같은 집중근무제와 같은 유연하고 몰입도 높은 근무문화 혁신을 유도했다. 노사의 신뢰에 기초한 여력확보운동인 셈이다.

TUC나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 단순히 근로시간만 줄인다고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는 건 아니다. 반드시 고려해야 할 건 생산성과 몰입도다. 글로벌기업에선 근무시간에는 온전히 일에 집중한다.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개인 용무를 보는 근로자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그걸 죄악이라고 여긴다. 이같은 근로자의 인식전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경영진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 경영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라도 업무혁신과 같은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 한다. 결국은 기업을 성장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근로시간 단축 효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만성적 초과근로 완화→근무집중도와 효율성 제고, 건강증진→근무의 활력 제고와 창의적 활동 여력 확보→기업 성과 개선→근로자의 소득증대’라는 선순환 고리로 말이다. 장시간 근로관행을 털어내는 것은 기업에게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고, 근로자에겐 장기근속을 대비한 보험이라고도 했다.

물론 제도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초과근로나 휴일근로에 따른 할증률이 10~35%인 선진국에 비해 한국(50%)은 지나치게 높다. 이게 소득을 노린 장시간 근무로 근로자를 끌어들인다. 피로에 쩔은 상태에서 생산성이 높을 리 없다. 또 탄력적 근로나 간주근로(전문직 등 특정 업무와 사업장 밖의 업무에 대해서도 근로시간으로 간주하는 제도)와 같은 다양하고 유연한 근로형태를 활성화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시대다. 전통적인 대면근무 방식이 줄어들고 있다. 오래 일하는 근면성보다는 창의성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될 수밖에 없다.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게 인간이다. 창조성이고 혁신성이다.

도움말=삼성경제연구소

-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201610호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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