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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미래산업으로 인공지능(AI)·로봇 키운다 

라스베이거스(미국)=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조성진 부회장은 생활가전뿐 아니라 LG전자의 모든 사업부를 아우르는 수장이 됐다. 생활가전에서 쌓아온 성공 신화를 모바일과 에너지,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도 재현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로봇산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5일(현지시각) 소비자가전전시회(CES)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내 LG전자 전시관. 2044㎡ 규모의 대형 전시관은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올레드 터널은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아 가던 길을 멈추게 만든다. 곡면 형태의 55인치 올레드 사이니지(광고판) 216대를 이어 붙여 만든 올레드 터널은 너비 7.4m, 높이 5m, 길이 15m에 달하는 대형 터널이다. 검은 화면에 쏟아질 것처럼 무수히 많은 별과 바닷속 깊은 심해를 헤엄치는 고래, 수정 동굴과 같은 화면이 바뀔 때마다 관람객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전시관 안쪽에 자리한 스마트홈 전시 공간에는 관람객들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이곳에는 음성 인식 기능이 추가된 사물인터넷(IoT) 냉장고인 패밀리 허브와 LG전자가 CES에서 처음 선보인 가정용 허브(Hub) 로봇, 청소 로봇 등이 전시돼 있다. LG전자는 이번 CES에서 첨단 기술력을 갖춘 제품을 선보이며 21개의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5일 공개된 신제품 LG 시그니처 올레드(OLED) TV W는 CES에 출품된 모든 제품 중 최고 제품 단 1개에만 수여하는 ‘최고상(Best of the Best)’과 TV부문 최고 제품에게 수여하는 ‘최고 TV상(Best TV Product)’을 동시에 수상했다. LG시그니처 올레드 TV W는 벽지처럼 얇은 두께를 구현했다. W는 벽(Wall)을 뜻하는 약자로 사용됐다. 화소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액정표시장치(LCD)와 달리 백라이트가 필요 없어 얇게 만들 수 있다.

LG전자는 이번 CES에서 ‘글로벌 1등 생활가전 브랜드’라는 청사진을 제공했다. 이곳에서 기자들과 만난 조성진(60) LG전자 부회장은 “1등 DNA를 이식해 글로벌 1등 생활가전 브랜드로 만들 것”이라며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로봇산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CES는 그에게 더욱 특별했다. LG전자의 전 사업부를 총괄하는 부회장으로서 참석한 첫 행사여서다. 조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생활가전을 담당했던 H&A사업본부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생활가전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


▎LG전자가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호텔에서 ‘LG전자 프레스 컨퍼런스’를 열고 LG 시그니처 브랜드 제품을 선보였다.
조 부회장은 생활가전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충남 대천 출신인 그는 1976년 용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했다. 입사 초기 그는 세탁기를 설계하던 전기설계실의 엔지니어였다. 당시 국내 시장의 세탁기 보급률은 0.1%도 안될 만큼 걸음마도 떼지 못했던 시기였다. 일본에 대한 기술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이에 그는 일본을 넘어서는 세탁기를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다.

80년대 후반 당시 세탁기는 세탁통과 모터가 벨트로 연결된 구조로 소음과 진동이 컸다. 조 부회장은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세탁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세탁통과 모터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DD(Direct Drive)모터’를 고안해냈다. DD모터는 세탁 성능과 에너지효율은 높이고 소음은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정밀한 핵심 부품을 국산화하려니 투자비가 많이 들고, 가능성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150번 넘게 일본을 드나들며 밑바닥부터 기술을 배웠고, 회사에는 침대와 주방 시설까지 마련해놓고 개발에 몰두했다. 그 결과 1998년 세계 최초로 세탁기에 상용화한 DD모터는 LG 세탁기가 세계 1등 신화를 쓰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2001년 3월 LG전자 세탁기연구실장 상무로 승진했다. 고졸 엔지니어 출신이 임원이 됐다. 2005년 1월 LG전자 HA사업본부 세탁기사업부장을 맡은 뒤에는 듀얼분사 스팀 드럼세탁기를 개발했다. 세계 최초였다. 그는 LG 세탁기의 대명사인 트롬 드럼세탁기를 세계 시장에 알리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2013년 H&A사업 본부장을 맡은 이후에는 세탁기뿐 아니라 냉장고, TV 등 생활가전 사업을 이끌었다.

그 후 4년 만에 생활가전뿐 아니라 LG전자의 전 사업부를 아우르는 수장이 됐다. 생활가전에서 쌓아온 성공 신화를 모바일과 에너지,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도 재현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 부회장은 올해 1월 신년사에서도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CEO를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이제는 시간의 투입량이 아니라 효율, 스피드, 실행력으로 일을 완성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LG전자 부회장으로서 그가 내세운 중점 사업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LG 시그니처 제품을 바탕으로 초 프리미엄 가전 통합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이다. LG전자는 그동안 대중적인 제품부터 프리미엄 제품까지 ‘LG전자’라는 브랜드로 운영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라기보다 가전 시장의 리더라고 인정받았다. 이제는 ▶본질에 집중한 최고 성능 ▶정제된 아름다움 ▶혁신적인 사용성을 지향하는 ‘LG 시그니처’로 글로벌 가전 전문 기업의 위상을 강화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물량보다 품질 경쟁에 집중하겠다


▎올레드 사이니지(광고판) 216대를 이용해 만든 LG전자 전시장의 올레드 터널에 관람객들이 몰렸다.
올해부터는 올레드 TV와 셀 기술을 탑재한 수퍼 울트라HD TV를 앞세워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와 중동, 중남미를 중심으로 시장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올레드 TV시장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179.1%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레드 TV 전체 시장에서 LG전자 올레드 TV의 시장점유율은 90%가 넘는다. 최근 중국 스카이워스, 일본 소니, 유럽 필립스 등 올레드 프리미엄 업체도 뛰어들어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다.

LG전자는 해외 시장을 넓히기 위해 생활가전 생산공장을 미국에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 부회장은 “올 상반기 중에는 (방안이) 정리될 것 같다”며 “(미국에서) 생산해도 어디까지 현지화를 할지, 간단하게 부품을 갖고 와 조립만 하면 되는지 등 여러 가지를 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테네시주 등 한두 곳을 후보지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중점 사업은 로봇이다. 그는 이번 CES에서 선보인 로봇에 대해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LG전자는 인공지능(AI)을 결합한 가정용 허브 로봇, 잔디깎기 로봇, 공항용 로봇을 선보였다. CES에서 첫 선을 보인 공항용 로봇은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공항용 로봇은 고객들이 문의할 경우 화면과 음성으로 공항 내 현재 위치를 알려주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내해준다. 올해 안에 인천공항에 도입된다. 허브 로봇은 집안 곳곳의 미니 로봇과 연결된다. 사용자가 무엇을 하는지 뭐라고 하는지를 관찰해 기능을 수행한다. 허브 로봇은 집안의 비서 역할을 하는 로봇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조 부회장은 “앞으로 우리가 가정이나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정·공공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로봇은 앞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인 만큼 딥 러닝 기술인 ‘딥 싱큐(Deep ThinQ)’를 탑재한 로봇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딥 러닝은 기계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류해나가며 스스로 학습하는 시스템이다. 딥 러닝 기술이 탑재된 가전은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데이터로 축적해가며 이에 맞게 맞춤형 솔루션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정한 시간엔 잠을 자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냉장고는 이 시간에 스스로 절전 모드로 들어가고, 커피 머신은 아침 6시쯤 커피를 내려 주인을 깨울 수도 있다. 아이들이 매일 오후 4시쯤 귀가해 뛰어논다면 에어컨은 이 시간에 좀 더 차가운 바람을 내보낼 수도 있다.

그는 현재 고전 중인 스마트폰 사업(MC사업본부)이 올해부터는 호전될 것으로 기대했다. LG전자는 1월 6일 지난해 4분기 실적 잠정치 발표에서 스마트폰 부진 등으로 6년 만에 적자전환했다. 조 부회장은 “틀만 있으면 찍어낼 수 있는 가전과 다르게 휴대폰은 칩셋·메모리와 같은 기술의 준비 기간이 짧아도 3~6개월 걸린다”며 “생산 대수만 늘리는 속도 경쟁보단 제품의 본질인 품질에 대한 경쟁력을 더 높이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MC사업본부의 빠른 턴어라운드를 위해 한 달에 3~4일을 MC사업부가 있는 서울 가산동과 평택으로 출근해 집중 관리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자택과 집무실을 신제품 테스트 장소로


▎CES가 열린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LG전자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가정용 허브로봇 등 스마트홈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조 부회장은 안정적인 수익과 성장을 위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와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의 균형을 강조했다. 시스템에어컨과 빌트인 등은 B2B 영역에 자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부품 사업도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그는 “전기차부품, 리어램프 등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고품질 제품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모든 사업의 중심은 제품이라는 신념이 확고하다. 2013년 H&A사업본부장으로 부임한 후 냉장고를 시작으로 주요 제품들을 일일이 분해하며 부품 하나하나까지 쓰임새를 확인한다. 자택과 집무실을 신제품을 테스트하는 장소로 사용한다. 또 시제품이 나올 때마다 직접 사용해보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등 제품 개발 과정에 적극 참여한다. 그가 청소기 테스트를 위해 지난해 4월 여의도 LG트윈타워 집무실 바닥의 카펫을 걷어 내고 마룻바닥으로 바꾼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물걸레 키트에 보조 걸레를 달아 바닥의 찌든 때를 닦아내는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에도 반영됐다. 직접 샘플까지 만들어 개발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도 조 부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증권사들은 LG전자 실적이 올 1분기를 기점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LG전자는 조 부회장 체제 이후 MC 부문의 중장기 사업방향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과거와 달리 상당히 현실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HE(가전제품 생산사업부), H&A사업의 안정적인 성장과 함께 올해 3월 프리미엄 스마트폰 G6가 출시되면 MC사업부문의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LG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3% 늘어난 1조7000억원으로 전망했다.

- 라스베이거스(미국)=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201702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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