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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CEO를 위한 인문학-역사를 만든 ‘죽은 백인 남자들’(14) 존 로크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 

김환영 중앙일보 심의실장 kim.whanyung@joongang.co.kr
우리나라와 가장 밀접한 ‘죽은 백인 남자’는 누구일까. 영국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라고 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우리나라 국가 이념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중에서도 자유민주주의다. 정치사상사에서 존 로크는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존 로크는 ‘자유주의의 아버지’일뿐만 아니라 과학혁명의 전개와 과학적 방법론의 발전에 기여한 ‘경험주의의 아버지’로 칭송받는다.
존 로크는 ‘자유주의의 아버지’다. 로크를 빼놓고 자유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다.

하지만 로크가 우리의 뇌리나 매체에 등장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예컨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나 장 자크 루소(1712~1778)가 훨씬 인기 있다. 왜일까. 첫째, 원래는 혁명적이었으며 ‘위험’했던 로크의 사상은 민주정치에 수용돼 녹아 있다. 로크는 반역죄로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망명생활을 했다. 그가 주창한 삼권분립, 국가와 교회의 분리, 종교의 자유, 관용은 민주 정치의 당연한 일부가 됐다. 당연시되기 때문에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로크는 ‘자신이 이룩한 성공의 희생자(a victim of one’s own success)’다. 둘째, 로크의 사상은 그리스도교와 ‘지나치게’ 밀접하다. 그의 『통치론』은 성경을 1500여회 인용한다. 로크는 탈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인기를 확보하기 힘든 사상가다. (로크는 이신론에 대항해 그리스도교를 방어했지만, 이신론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이념 혹은 국시(國是)가 민주주의냐 아니면 자유민주주의냐에 대한 논란이 있다. 자유민주주의로 못박으면 사회민주주의 같은 다른 유형의 민주주의가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에 용어 선택에서 자유민주주의보다는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이 휴전 상태에서 대치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주로 공산주의·용공·종북에 반대하는 주의로 이해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의 이해는 자유민주주의의 진가를 보지 못하게 한다. 논란으로부터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유민주주의의 본바탕인 자유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존 로크를 통해서다.

미국 독립투사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서신에 로크를 인용해가며 독립 방략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존 로크는 영국의 철학자, 정치 이론가, 교육가, 관료, 신학자였다. 철학·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의학·농업·문학 분야에서 후세에 영향력을 남긴 글을 썼다. 그는 ‘자유주의의 아버지’일뿐만 아니라 과학혁명의 전개와 과학적 방법론의 발전에 기여한 ‘경험주의의 아버지’로 칭송받는다.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프랑스도 중요하고 영국도 중요하지만, 아마도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나라는 미국이다. 로크는 볼테르(1694~1778)와 루소와 같은 프랑스 계몽기 사상가를 통해 프랑스 혁명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는 우선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다. 로크는 미국 독립투사·혁명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로크는 미국의 건국기(1774~1797)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정치 철학자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서신에 로크를 인용해가며 독립 방략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미국 독립선언서(1776년) 작성을 위한 기초 작업을 했으며 미국 제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인류 역사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인물 3명으로 존 로크와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 아이작 뉴턴(1642~1727)을 꼽았다. 역시 건국의 아버지이며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1735~1826)는 “콜럼버스처럼 로크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고 평가했다. 1828년 『미국 영어사전』을 완성한 노아 웹스터(1758~1843)에게 로크는 ‘미국의 교사’였다.

로크의 정치사상에서 양대 핵심 개념은 ‘자연상태(State of Nature)’와 ‘사회계약(Social Contract)’이다. 두 개념에서 모두 강한 그리스도교 색채가 발견된다. 어쩌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약 자유주의가 동양에서 발흥했다면, 동양식 자유주의를 창안한 ‘동양의 로크’는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倫)이나 불교의 사성제(四聖諦)·팔정도(八正道) 개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유주의를 전개했을 것이다.

과거는 오늘의 현실을 비판하는 준거가 될 수 있다. 유교는 요순시대(堯舜時代)를 거론하며 덕이 사라지고 태평하지 못한 오늘에 경종을 울렸다. 마찬가지로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정부가 탄생한 순간을 이론화한 자연상태·사회계약론으로 현실 정치가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정당성, 정부가 통치할 권리는 사회계약의 준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즉 “국왕의 권리는 신에게서 받은 절대적인 것이므로 인민이나 의회에 의하여 제한되지 않는다는 설”은 신이 아담에게 부여한 왕권을 왕들이 승계한다고 주장했다. 로크는 왕권신수설에 반대했고 대안을 제시했다.

로크와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계약론자인 토머스 홉스(1588~1679)와 마찬가지로 로크는 ‘자연상태’를 상정한다. 자연상태는 아직 정부나 법이나 조직화된 사회가 없는 상태다. 홉스에게 자연상태의 본질은 ‘만인 대만인의 투쟁’이다. 반면 로크의 자연상태는 나름 살 만한 곳이다. 로크의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국가나 정부나 시민사회는 없지만 신(神)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법(自然法)이 자연상태를 규율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연법은 신이 부여한 법이다. 사람은 이성을 통해 자연법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법의 기원은 신법(神法)이다. 따라서 자연법에 의해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자연권(自然權·“자기 보존이나 자기 방위의 권리, 자유나 평등의 권리 따위”) 또한 그 원천은 신이다.)

또한 신이 인간에게 이성과 양심을 주었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평화로운 가운데 선의를 바탕으로 상호부조를 실천한다. 그래서 로크에게 자연상태가 “완전한 자유의 상태”이지만 방종은 용인되지 않는다. 자연상태에서도 사람은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는 없다.

자연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연상태를 떠나 사회계약을 맺고 국가·정부·시민사회를 탄생시킨다. 왜일까. 로크에 따르면 더 강력한 보호를 받기 위해서다. 이미 자연상태에도 존재하는 생명·자유·재산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받기 위해서다. 자연상태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 당사자들이 각자 해결해야 한다. 심판관이 없다. 국가가 들어서면 심판관이 생긴다.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피할 수는 없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자연법의 위반에 대해 직접 응징할 수 있는 자유를 사회계약 체결 이후 상실한다. 그러한 권리를 상실하는 만큼 사회계약에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사회계약의 산물이다


▎정부가 사회계약의 산물이라고 했을 때 그 시원적 모형은 그리스도교의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이다. 자유주의는 신과 인간도 계약을 맺는 그리스도교 문명을 배경으로 생성됐다.
‘국가나 정부라는 것은 정복에 의해 생긴 것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사회계약론자인 로크는 정부가 폭력이 아니라 자발적인 계약에 의해 생겼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계약의 ‘계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사회계약의 산물이라고 했을 때 그 시원적 모형은 그리스도교의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이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구약은 “예수가 나기 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구원의 약속”, 신약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새롭게 한 약속”이라고 나온다. 또 계약(契約)을 찾아보면 그 두번째 뜻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약속. 모세를 통하여 세운 것이 구약이고, 예수를 통하여 세운 것이 신약이다”라고 돼있다.

자유주의는 이처럼 신과 인간도 계약을 맺는 그리스도교 문명을 배경으로 생성됐다. 신조차도 인간이 싫다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은 인간의 동의를 바탕으로 한다. 사람들끼리 맺는 사회계약은 더욱 그렇다. 구약과 신약의 신은 계약을 깨지 않는다. 계약에서 이탈하는 것은 인간으로 상정된다. 사회계약을 깨는 것은 군주를 비롯한 통치자다. 통치자들이 계약을 깨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권을 가진 것은 왕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은 정부에 통치를 신탁한 것이다. 자연권을 보호하라고 일단 믿고 맡겼다. 로크에 따르면 국민은 기본적으로 통치에 승복해야 한다. 혁명은 최후의 수단이다. 국민은 정의롭지 않은 정부를 전복시킬 수 있다. 왕이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사익을 추구할 때 왕을 폐위시킬 수 있다는 게 로크의 견해다. 로크는 심지어 국왕 시해까지 정당화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혁명이 국민의 권리를 넘어선 의무라고 로크는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에 불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만 해도 권리라는 것은 국왕이 허가하는 것이었다. 로크가 특히 중시한 것은 재산권이다. 로크에게 재산권은 정부가 있건 없건 존재하는 자연권이다. 정부의 주요 목표는 재산의 보호다.

암기식 교육에 반대한 교육가

재산권 보호에 대한 강조는 로크를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적인 사상가로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로크는 평등의 사상가이기도 하다. 자유주의는 자유 뿐만 아니라 평등을 원칙으로 삼는 사상이다. 로크에 따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 생명·자유·재산에 대한 권한을 자동으로 얻는다. 양도불가능한 천부인권이다. 또한 로크는 모든 사람들이 지적인 면에서 ‘타불라 라사(Tabula rasa·깨끗한 석판), 백지(white paper)로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로크에 따르면 사람은 자연상태이건 사회계약 체결 이후이건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 또한 누구나 정직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잉여가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왜일까. 사람은 누구나 신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로크는 관용의 사상가다.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떤 종교든 관용적인 종교라면 정부가 관용으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 가톨릭과 무신론은 사회를 분열시킨다고 보고 관용의 대상에서 배제했다. 그는 모든 개신교회가 동일하게 훌륭하지는 않지만, 정부가 우열을 정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교육 분야에 미친 영향도 지대하다. 루소의 『에밀』(1762)에 영향을 주는 등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끈 그의 『교육론』(1693)은 ‘건강한 몸에 깃든 건강한 정신’을 중시했다. 어린이를 어른과 마찬가지로 이성적이라고 본 그는, 아이들을 애지중지 하면 안 되고, 또 때려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로크는 또 암기식 교육에 반대했다. 외국어는 문법이 아니라 실습과 사례를 통해 습득해야 한다고 봤다.

로크에 따르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소유물은 자신의 몸이다. 사람이 자신의 몸을 사용해 얻은 노동의 대가는 자신의 것이다. 그는 노동과 재산권의 개념을 발전시켜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

잉글랜드 서머싯 주에서 링턴이라는 마을에서 출생한 존 로크는 신중했으며 스스로를 잘 통제하는 인물이었다. 온화하고 현명하며 겸손했다. 하지만 그는 열정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매력 있는 인물이었으나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로크는 한 때 자신과 연서(戀書)를 주고받았던 매셤 부인의 시골 저택에서 사망했다. 로크가 임종할 때 매셤 부인은 그에게 『시편』을 읽어줬다.

다시 생각해보자. 자유민주주의의 근거가 되는 자유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나온다. “(1)17~18세기에 주로 유럽의 신흥 시민 계급에 의하여 주장된 시민적ㆍ경제적 자유와 민주적인 여러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는 사상이나 운동. 로크, 루소, 벤담, 밀 등이 주창하였으며,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2)개인의 인격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자발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상. 개인의 사유(思惟)와 활동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가능한 한 자유를 증대시키려고 하는 생활 방식이다.”

우리는 미국과 프랑스가 혁명으로 쟁취한 것을 광복으로 얻었다. 역사적 대가를 치르지 않고 ‘거저’ 얻은 것은 아니지만, 혁명의 과정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든 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모든 이가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체제를 운영하고 있는지···또 자유가 생활 방식 속으로 들어왔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존 로크의 인생

1632년: 잉글랜드 서머싯 링턴에서 출생. 변호사인 아버지는 하급관리.
1646~52년: 잉글랜드 최고의 중등교육 기관인 웨스트민스터스쿨에 다님.
1652~67년: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하고 가르침(56년에 학사, 58년에 석사).
1675~80년: 건강상 이유로 프랑스에서 체류.
1683~89년: 네덜란드에서 망명 생활.
1689년: 『인간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 출간
1693년: 『교육론(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 출간
1695년: 『그리스도교의 합리성(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 출간
1704년: 잉글랜드 에식스 오츠에서 사망

존 로크가 남긴 음미해볼 말말말

● 새로운 의견은 항상 의심의 대상이다. 아직은 흔하지 않은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통 반대의 대상이기도 하다.
● 그 어떤 사람의 지식도 그의 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
● 어떤 사람이 오류에 빠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과 그가 진리를 소유하게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 어디든지 법이 끝나는 곳에서 독재가 시작된다.
● 모든 부(富)는 노동의 산물이다.
● 지식은 마음에 지식의 재료를 줄 뿐이다. 우리가 읽은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생각이다.
● 토론 중에 남의 말을 끊는 것보다 더 큰 무례는 없다.
●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만들어진 법은 실행이 필요하다.
● 진정한 행복을 발견해야 할 필요성이 우리 자유의 기초다.
● 어떤 사람의 행동은 그의 생각을 해석할 최선의 기준이다.
● 우리는 어른들의 담론보다는 아이가 묻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서 얻는 게 종종 더 많다.
● 여러분의 걱정거리들이 여러분을 지배한다.

김환영 -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서울대 외교학과,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등이 있다.

201705호 (201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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