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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의 ART TALK(1)] 데미안 허스트 

'난파선에서 건져낸 믿을 수 없는 보물전' 

이지윤 미술사가·숨 프로젝트 대표
2008년 소더비 이브닝 세일에서 호가 2200억원을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는 동시에, 미술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킨 허스트가 10여 년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왔다.

▎팔라조 그라시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작품으로 높이가 19m나 되는 청동처럼 보이는 조각. 하지만 레진으로 만들어 청동 조각과 같은 페인팅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 볼을 들고 있는 데몬, 채색된 레진, 1822x789x1144㎝ / ©이지윤 제공
이달부터 연재되는 ‘이지윤의 ART TALK’의 첫 주인공은 10년에 한 번 돌아오는 국제미술계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 아트 그랜드 투어, 그 중 최고의 작가 데미안 허스트이다. 아트 그랜드 투어란 17세기 유럽 귀족들이 문화와 예술을 배우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며 교양인으로 입문하는 그랜드 투어에서 따온 말로, 국제적인 현대미술 행사들이 브랜드화된 오늘날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진행되는 대장정을 일컫는다. 지난 30년간 명성을 쌓아가며 현대예술의 패러다임에 가장 영향을 주는 행사들, 예를 들어 1970년대 시작되어 세계 최고 아트페어로 발전한 아트바젤,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카셀도큐멘타와, 10년에 한 번 우리를 찾아오는 독일 뮌스터 시티 조각 프로젝트이다. 이 행사들은 전 세계 미술인과 미술을 향유하는 아트노마디안들에게 매우 중요한, 거의 종교의식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번 에세이는 다양한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전문가와 비전문가 모두에게 가장 많이 회자된 미술의 상상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의 주인공 데미안 허스트를 소개한다.


▎데미안 허스트, 전사와 곰, 청동, 713x260x203㎝ / ©이지윤 제공

▎데미안 허스트, 콜렉터와 친구, 청동, 185.5x123.5x73㎝ / ©이지윤 제공
2008년 소더비 이브닝 세일에서 호가 2200억원을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는 동시에 미술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킨 허스트가 10여 년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왔다. 2016년 런던에 자신의 콜렉션을 선보이는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Newport Street Gallery) 개관 외에 개인전을 열지 않았던 그의 전시는 개관 전부터 매우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인 신작은 범상치 않았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심연의 바다 속에 모습을 드러낸 난파선에서 예술품을 건져 올리는 다이버들의 영상과 사진을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세기 초 안티오크(Antioch)에 살던 부유한 콜렉터 시프 아모탄(Cif Amontan) 2세는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막대한 재산을 모은 전설적인 인물로, 막대한 양의 조각·보석·동전과 세계의 진귀한 물건들을 모아 들였다. 그가 모은 보물을 싣고 아시트 메이어(Asit Mayor)시에 준공될 해의 신전으로 향하던 거대선 ‘아피스토스(믿을 수 없는 이란 뜻의 고대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했다. 그리고 전설이 되어 떠돌던 그 유적들은 2008년 아프리카 동쪽 해안 인도양에 가라앉았던 전설적인 보물들로 재발견되었다. 이 유적들은 2년 뒤인 2010년 인양되어 바다 세계의 흔적을 안고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유물들 사이사이에는 배에서 건져 올린 기록들과 설명들이 제시된다. 배와 함께 발견된 4페이지의 이상한 물건들 리스트 말미에 적힌 ‘이 물건은 자유인 아모탄이 그의 배 아피스토스에 소장품을 실었다’는 문장은 이 전설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허스트가 전시를 위해 만들어 낸 픽션이다. 관객은 작품과 기록을 마주하며 진실과 허구 사이의 개연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게 된다.


▎바닷속에서 작품을 발굴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조각과 함께 라이트박스 사진 작업으로 소개했다. 데미안 허스트, 네 명의 잠수부에 의해 발견된 히드라와 칼리, 알루미늄, 프린트된 폴리에스터, 아크릴 라이트 박스, 244.2x366.2x10㎝ / damien hirst and scince ltd.
허스트는 75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19m가 넘는 조각에서부터 약 100개의 조각과 21개의 캐비닛을 채우는 작은 오브제 등 총 189점을 제작하고 2개의 뮤지엄을 가득 채우는 전시를 감행했다. 현대미술작가가 이런 막대한 제작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이렇게 엄청난 제작비를 필요로 하는 현대미술작품시대라는 것에서 미술 현장의 대대적인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개최한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와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의 주인이자 Kering그룹 회장, 예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오너인 프랑수아 피노의 지원을 받았다는 설은 허스트의 깜짝쇼와 같은 이 전시가 상업미술의 극치를 축하하는 장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일으켰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박제 상어, 나비 페인팅 등으로 미술에 새로운 시각언어 및 가치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준 일종의 악동과 같은 천재 작가 허스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미술에 대한 질문과 그의 전시는 단순한 상업미술로 치부하기엔 그 내용과 맥락이 매우 난해하고도 깊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많은 숫자와 대규모 물질들로 만들어진 작품은 물론이지만 ‘작가의 창의적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맥락과 전시적 표현이다. 많은 관객이 그의 초기작 박제 상어와 돼지 등을 보면서 매우 기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작가의 생애 연구에 근간하여 살펴본다면 영국의 리즈(Leeds)라는 작은 도시에 살던 당시 14세 소년이던 허스트가 본 첫 현대미술전이 우연히도 자연사박물관과 함께 공간을 나눠 쓰는 미술관에서 열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늘 박제된 동식물들의 캐비닛을 보면서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게 그러한 오브제들이 그의 작품으로 연결될 수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10년 전 필자가 허스트를 만나 알게 된 사실은 고대 문명에 관심이 깊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역사는 물론이고 페루에서 마야문명의 판초나 여러 가지 문명사와 관련된 오브제들을 모으는 콜렉터였다. 특별히 이번 전시를 보면서 그가 지난 10년간 공부한 많은 고대 예술품들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영감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는 마치 J.R.R. 톨킨스가 호빗이라는 종족을 만들어 대서사시 <반지의 제왕>을 쓴 것과 같이 아모탄2세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문명사적 오브제와 새로운 역사, 미래의 역사유물 만들기를 시도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그는 상상의 세계가 가지는 새로운 서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상상 세계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품으로 연출한 문명박물관을 통해 새로운 전설을 만든다.


▎데미안 허스트, 히드라와 칼리, 조각과 라이트박스 전시 전경 / damien hirst and scince ltd.
본 전시가 주목할 부분은 아무리 좋은 이상적 개념이라도 어떤 예술로 승화하지 못한다면 그저 좋은 아이디어에 그치지만 그를 넘어 아날로그적이며 매우 완성도 높은 장인정신이 미술품을 만들어내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세계 최고의 많은 장인이 그의 스튜디오에서 주문하는 작품들을 만드느라고 상당히 바쁘지 않았을까. 허스트가 만든 청동과 대리석 조각들에는 적어도 전시를 준비한 3년 이상 기막히게 색칠된 산호조각과 바닷속 퇴적물 등이 부착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부식 과정은 기존 조각을 또 다른 새로운 문명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새로운 형과 색을 부여 받은 스핑크스와 크로노스, 비너스의 토르소, 라오콘을 오마주 한 듯한 동상들은 오랜 시간과 함께 남겨진 고대 유물로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경이를 지우고 하나씩 천천히 그 작품들을 들여다본다면 놀랍게도 우리는 산호가 감싸고 자란 작가의 초상조각이나 미키마우스를 들고 있는 이 전시의 후원자이자 미술관의 주인 피노씨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유희를 볼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모두 고대 문명과 문물에서 시작된, 우리 눈에 익숙한 그러한 작품들이지만 한 작품 한 작품이 작가의 새로운 해석에 의해서 또 다른 문맥을 창조하고 있다. 그리스시대와 로마시대의 조각같이 보이는 여인의 대리석 흉상의 몸매가 장난감 바비인형의 몸매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지. 매우 섬뜩이는 재치와 유머가 각 작품에 녹아있다. 이번 전시는 데미안 허스트가 직접 기획한 1988년 골드스미스 졸업전이자 YBA신화를 만들어낸 프리즈(FRIEZE)전 만큼이나 중요한 제2의 신화를 시작하는 여정이 아닌가 한다. 그가 앞으로 자신이 만든 이 세계를 어떻게 진화시켜 나가고 풀어갈지가 매우 기대되는 바이다.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푼타 델라 도가나는1682년 주제페 베노니에 의해 완공된 대저택이다.

본 건물은 17세기부터 베니스 상권에서 가장 중요한 세관이 있었던 건물로 이 해상도시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지난 100년간 전혀 사용되지 않고 버려져 있는 공간이었다. 이를 프랑수와 피노가 새로운 미술재단으로 다시 탄생시켰다. 피노 파운데이션이 새단장한 이 공간은 팔라조 그라시와 더불어 베니스시와의 33년간 계약을 통해 본 건물의 보존·운영권을 얻었다. 그 이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에 걸쳐 일본 건축가 안도타다오의 지휘 아래 약 220억원(2000만 유로)을 들여 구겐하임 다음으로 큰 현대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33년 후에 본 공간은 베니스시로 기부체납된다.


▎데미안 허스트, 시클롭스의 두개골, 조각과 라이트박스 전시 전경 / damien hirst and scince ltd.
※ 이지윤은…
지난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미술경영을 수학하고, 국제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큐레이터이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자하하디드360도>를 기획하였고, 지난 3년간 경복궁 옆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초대 총괄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콜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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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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