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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녹음, 합법과 불법 사이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
사회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갑의 폭언을 녹음해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는 일이 종종 있다. 상황에 따라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는 일이다. 대화의 비밀을 어느 선까지 보장할 것인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떠나서 살기 어렵다.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원만한 교류는 필수다. 대화는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중요한 도구다. 좋은 대화 기술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서 평가도 좋고 성공할 확률도 높다. 물론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도 있다. 대화가 늘면 말 실수 확률도 높아진다. 무의식적이든 고의적이든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상대방을 향한 날카로운 말들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 결국 자신의 사회적 평판 및 명예를 훼손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최근 모 대기업 회장이 자신의 차 안에서 운전기사와 나눈 대화가 외부로 유출된 일이 있었다. 그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모욕적인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운전기사는 몰래 그 대화를 녹취해 그 파일을 한 언론사에 제보하였고 이는 상당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해당 기업의 이미지 훼손 및 타격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이 사건이 형사법정으로 가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자. 본 건은 두 가지가 문제될 수 있다. 모욕죄와 강요죄가 그것이다.

모욕죄의 경우는 형법 제311조에서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면 바로 모욕죄가 성립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모욕죄 성립은 힘들다. 모욕죄는 ‘공연성’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공연성이라는 것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회장은 운전기사에게만 모욕적인 말을 했을 뿐 그 외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은 없었으므로 공연성이라는 형법의 구성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강요죄 성립 가능성은 반반이다. 강요죄의 경우 형법 제324조에서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① 폭행 또는 협박으로 ②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해야 한다.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교통법규를 어기고 운전할 것을 지시하였으므로 두 번째 요건은 쉽게 충족된다. 이 사건에서 강요죄 성부의 쟁점은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폭행 또는 협박을 행사했는지 여부이다. 폭언도 폭행의 범위에 포함되는지, 회장이 한 말에 협박의 의도가 있는지, 회장이 한 말을 운전기사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이 쟁점이 될 것이다.

모욕죄는 공연성 있어야 성립

형사재판의 경우 엄격한 증거재판주의가 적용된다. 여기서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운전기사가 회장과의 대화를 녹음한 파일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일까?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된다면 위법증거가 되므로 회장은 무죄가 될 것이고,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면 적법한 증거로 형사재판에서 활용될 것이다.

이제 통신비밀보호법을 구체적으로 파헤쳐보자.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는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우편물의 검열, 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를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위법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한다. 즉 현대사회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했으므로 개인 간 의사소통이 매우 편리해진 반면 감청 및 도청 기술도 같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기관이 국민의 통신비밀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으므로 이 법의 수범자는 우선 국가기관이 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월등한 공익, 예컨대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도청 및 감청을 해야 하는 경우에만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국가기관의 개인에 대한 도청이 가능할 뿐이다. 또한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를 보면 ‘누구든지’ 함부로 녹취를 해서는 안 된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에 따르면 ① 공개되지 않은 ②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지 못할 뿐이다. 이를 반대해석하면 ‘공개된 대화’ ‘자기가 하는 대화’는 녹음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공개된 대화란 무엇일까? 공개된 대화란 말을 하는 사람, 즉 발화의 당사자가 대화의 내용이 공개되고 있음을 예상하고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가 그 예이다. 공개된 대화의 녹음이 적법한 이유는 발화의 당사자가 대화가 공개되어 있음을 예상하고 있으르모 이를 녹음하더라도 발화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타인 간의 대화’에 대해 살펴보자. 타인 간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하면 불법이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화의 ‘당사자’는 ‘타인’으로 보지 않는다. 앞의 사례의 경우 운전기사와 회장은 대화의 당사자이지 타인이 아니다. 따라서 대화의 당사자인 운전기사가 설령 회장의 동의 없이 몰래 녹음했더라도 이는 불법적인 증거 수집이 아닌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통화녹음과 관련된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의 한 국회의원이 기자와 통화 중 비정규직 비하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적이 있으며 자유한국당의 한 도의원도 국민을 레밍이라는 들쥐에 비유한 발언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모두 통화 중 녹취가 문제가 되었던 사안이다.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7월 20일 대표발의했는데 이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 신설될 전기통신사업법 제32조의 9는 ‘전기통신사업자는 이용자가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경우 그 사실을 통화 상대방에게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되면 통화 중 상대방이 통화녹음 버튼을 누른 경우 휴대전화에서 ‘상대방이 녹음버튼을 눌렀습니다’라는 음성 안내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상대방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시키려면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면 된다. 즉 통신 비밀보호법 제3조를 ‘누구든지 대화를 녹음하지 못한다’라고 바꾸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갑의 폭언을 녹음해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대화의 비밀을 어느 정도로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

201712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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