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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2) 

사랑과 희생의 함수 관계 묻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감동을 주는 글, 따뜻한 글, 그 글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르게 만드는 ‘인생을 흔드는(life-shaking)’글이 좋은 글이 아닐까. 읽은 사람 수만큼 해석이 다른 글, 토론을 촉발하는 글도 좋은 글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바로 그런 텍스트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감동을 주는 글, 따뜻한 글, 그 글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르게 만드는 ‘인생을 흔드는(life-shaking)’ 글이 좋은 글이 아닐까.

읽은 사람 수만큼 해석이 다른 글, 토론을 촉발하는 글도 좋은 글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1964)가 바로 그런 텍스트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전 세계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어린이 문학의 클래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울면서 읽었고 우연히 수십 년 만에 읽었는데 역시 눈물이 난다’고 한다. 심지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펑펑 난다’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부모 생각나게 하는 장면 많아


이 책의 원제는 그냥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 ‘아낌없이’를 덧붙임으로써 원제의 의미가 강화됐다. 책의 주인공은 나무와 소년(boy)이다. 나무의 성별은 여성이다. 그는 거목이다. 큰 사과나무다.

이 책에는 페이지(쪽) 번호가 없다. 책의 전반부에서 둘은 사랑한다. 매일매일 소년은 숲에 있는 나무를 찾아와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어 쓴다. 소년은 부러울 게 없는 숲 속의 왕이다. 나무타기를 하고 나무와 술래잡기를 하며, 놀다가 지쳤을 때에는 나무 그늘 아래서 쉰다.

책의 첫 반은 행복만으로 가득하다. 이 책에서 ‘사랑했다(loved)’라는 말은 딱 두 번, 책의 상반부에 나온다. 나무는 소년을, 소년은 나무를 사랑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정이란 무엇일까. 어찌 보면 별게 아니다. 같이 있는 것, 매일매일 보는 것, 매일매일 함께 노는 게 사랑이고 우정이다.

문제는 아이가 자라면서 생긴다. 나무를 찾는 아이의 발걸음이 뜸해진다.

첫 번째 오랜만에 청소년이 된 소년이 나무를 찾아와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돈이 없는 나무는 사과를 준다. 사과를 팔아서 돈을 마련하라고. 사과를 내준 나무는 ‘행복하다’.

두 번째 오랜만에 청년이 된 소년이 나무를 찾아와 ‘집이 필요하다’고 한다. 추위에 떨지 않고 장가가고 애를 낳으려면 집이 필요하다는 것.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내어준다. 소년은 가지로 집을 짓는다. 가지를 내준 나무는 ‘행복하다’.

세 번째 오랜만에 중년이 돼 찾아온 소년은 ‘배(boat)가 필요하다’고 한다. 떠나기 위해서다. 나무는 배를 만들라고 몸통(trunk)을 내놓는다. 몸통을 내준 나무는 ‘행복하다’.

네 번째 오랜만에 노년이 돼 찾아온 소년은 뭔가를 바라서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무는 지레 미안하다. 이 대목에서 나무는 세 번이나 “미안하다(I am sorry)”라고 말한다.

평생을 자녀들을 위해 희생했으면서도 ‘잘해주지 못 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 네 번째 오랜만에 나무를 찾아온 늙은 아이는 돈도 집도 아내도 아이도 떠나는 것도 필요 없었다. 그저 ‘앉을 곳’이 필요했다. 아이는 이제 그루터기(stump)에 불과한 나무에 앉는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

‘줄 게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는 없다’는 소중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적어도 ‘그루터기’가 될 수 있다.

여러 각도에서 이 책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올 때마다 뭔가를 달라고 하는 아이도 문제지만, 나무도 문제다. 나무는 아이가 어렸을 때 함께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무는 아이가 그를 다시 찾을 때마다 놀자고 한다. 그때마다 아이는 자신이 놀기에는 너무 크다(big), 바쁘다(busy), 늙었으며 슬프다(too old and sad)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무는 둘이 서로 사랑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집착한다. 미련(未練)이 지나치면 미련한 사람이 아닐까.

수년 동안 출판사 찾지 못했던 베스트셀러

다른 수많은 베스트셀러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 또한 출판사를 수년 동안 찾지 못했다. 어린이들에게는 ‘너무 슬프고(too sad)’, 어른들에게는 ‘너무 단순하다(too simple)’는 반응도 있었다. 일부 출판사들은 결말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실버스타인은 단호했다. 처음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책은 아니었다. 입소문이 크게 작용했다.

이 책은 특히 교회와 주일학교가 사랑한 책이었다. ‘베품의 즐거움(the joys of giving)’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을 표상하는 책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신(神)과 인간의 관계를 아름답게 암시하는 우화로도 평가됐다. 예수는 그 자신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온 인류를 위해 희생했다. 예수를 따르는 크리스천들 또한 희생해야 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러한 희생의 길을 예시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결혼식, 어머니날, 아이를 출산한 지인에게 주는 선물로 무난한 책으로 인기가 높다. 여기저기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선물 받다 보니 집에 이 책을 두어 권 소장하는 일도 흔하게 됐다. 동네 도서관을 포함해 크고 작은 도서관에 반드시 있는 책이 됐다.

복잡한 인생 단순하게 생각해볼 기회 제공


이 책은 영어 기준 630단어로 지극히 복잡한 인생에 대해 지극히 단순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선사한다. 단어 수준은 4~7세 어린이가 대상이다.

하지만 이 책은 차츰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책으로 부상했다. 어찌된 일일까.

세상살이에서 호혜적인 이익교환(利益交換·reciprocity), 기브앤드테이크(give-and-take, 공평한 조건의 교환)는 중요한 원칙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이 원칙을 무참하게 깨는 책이라는 지탄을 받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반감을 사게 된 이유는 시대 정신, 에토스(ethos)가 바뀐 것도 한몫 했다. 탈그리스도교적(post-Christian) 사회 분위기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은 전통 윤리에 대해 냉담하다. 나무에게 계속 뭔가 달라고 하는 소년의 태도는 ‘착취(exploitation)’로 이해됐다. 나무와 소년의 관계는 병적인 공의존(共依存·codependency) 관계로도 낙인 찍혔다. 아이들, 특히 ‘딸에게는 절대 읽어줘서는 안 되는 책’으로 손꼽는 사람들은 이 책이 여성에게 자멸(self-destruction)과 자기부정(self-negation)을 마치 로맨틱한 것처럼 포장하고 강요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환경운동가들도 합세했다. 나무는 인간의 착취로 희생된 ‘대자연(大自然·Mother Nature)’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환경운동은 인간의 자연 정복(conquest)이 아니라 ‘청지기 정신(stewardship)’을 강조한다. 크리스천 환경운동가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쓴다면 어떤 플롯으로 바뀔까. 하지만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환경윤리(environmental ethics)를 가르치는 교재로도 활용된다.

일각에서는 복지국가의 폐해나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책이라고 독해하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면 그렇게 보인다. 책이라는 것은 참 묘하다.

이런 왁자지껄한 논란에 대해 저자인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 1930~1999)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1961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뭔가를 하면, 그게 간단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그러기를 바란다면 나로서는 오케이(OK)다.”

사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는 아무런 메시지가 없다’는 게 실버스타인의 입장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그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한 사람은 주고 한 사람은 가져간다(It’s just a relationship between two people; one give and the other takes.)” 나무와 소년의 관계를 사랑 관계라든가 우정 관계로 정의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관계다. 또한 저자는 나무와 소년의 행태에 대해 아무런 가치판단도 하지 않는다.

실버스타인은 자신의 책을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에 대해서도 “결말이 꽤 슬프다(It has a pretty sad ending)”라고 말했다. 이 책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쉘 실버스타인은 좀 험상하게 생겼다. 동화작가 같지 않다. 여러 방면에서 재주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5분, 10분이면 뚝딱 노래를 작곡할 수 있었다. 만화가·시인·극작가·가수·작곡가로 활동했다. 그가 쓴 책들은 30여 개 언어로 번역돼 2000만 부 이상 팔렸다. 실버스타인이 가사를 쓴 ‘수라는 이름의 보이(A Boy Named Sue)’(1969)는 1970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1974) 또한 1983년 오디오 앨범으로 출시돼 1984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만화가·시인·극작가·가수 등으로 활동했던 저자

1930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유대인 가문이었다. 아버지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 어머니는 시카고 태생이었다. 1999년 68세를 일기로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두 명의 여자 청소부가 숨진 그를 발견했다.

7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삽화도 직접 그렸다. 실버스타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소질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림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자 실버스타인은 여보란 듯이 집을 나와 독립했다.

정규교육을 무시하는 독학자(autodidact)였다. 대학을 중퇴했다. 일리노이대와 루스벨트대에서 총 2학기 정도 예술을 전공했지만 “시간 낭비였다”고 술회했다. 대학공부보다는 여행 다니며 사람을 만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국전 참전용사다. 보병으로 지원했으나 전장으로 투입되지는 않았다. 미국 군사 전문 일간 신문 ‘스타스 앤 스트라이프스(Stars and Stripes)’를 위해 한국과 일본에서 1953~1955년 카투니스트(cartoonist)로 일했다.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1926~2017)를 만나 인정을 받은 후 인생이 바뀌었다.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시카고 출신에 카투니스트였고 여자를 좋아했다. 1957년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플레이보이’의 카투니스트로 활약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여행기를 썼다. 그의 글은 모델들 사진 못지않게 인기가 좋았다. 수백 명의 여성들과 성관계를 했다.

실버스타인은 블루진과 카우보이 모자를 즐겨 착용했다. 그의 글과 그림은 때가 묻지 않았다. 누군가를 모방한 흔적이 거의 없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또한 미가공의(crude) 신선한 문체가 느껴진다. 한때 야구장에서 핫도그를 팔았다. 자동차를 소유한 적이 없다. 소유를 싫어했다. ‘무소유’쪽이었다.

작가들 중에는 편집자(editor)가 자신의 글을 고치는 것을 기꺼이 수용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 쉘은 용납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종이의 질이나 폰트까지 꼼꼼하게 챙겼으며 책의 훼손을 막기 위해 하드커버를 고집했다.

그는 자유를 꿈꿨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어느 곳이든 내가 바라는 대로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내가 하고픈 그대로 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편안한 신발과 떠날 자유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다(Comfortable shoes and the freedom to leave are the two most important things in life)”라는 말도 남겼다.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코뿔소 한 마리 싸게 사세요!(Who Wants a Cheap Rhinoceros?](1964)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The Missing Piece)](1976) [다락방의 불빛(A Light in the Attic)](1981) [골목길이 끝나는 곳(Where the Sidewalk Ends](1974) 등이 있다.


※ 김환영은… 중앙일보 논설위원. 쓴 책으로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수업]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외교학과 학사)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01호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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