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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43인의 신년 에세이] 나의 화두Ⅷ 

 

한국의 백조 | 이원재 요즈마그룹 아시아 총괄대표


내가 어릴 적 자란 이스라엘은 오늘날 세계적인 창업 국가가 됐다. 자원 하나 없는 인구 800만 명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 하지만 지금은 상장이 어렵다는 나스닥에 94개 기업을 상장시키며 미국,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스닥 상장 기업을 보유한 벤처 강국이 됐다. 이스라엘 최초 모태 펀드로 시작한 요즈마 펀드는 이스라엘 기술 벤처에 투자해 유대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시켰다. 운 좋게도 초창기에 투자했던 23개 벤처기업이 나스닥에 발을 들이며 수많은 젊은 벤처기업가의 희망이 됐다.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창업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요즈마그룹이 한국에 온 지 벌써 4년째다. 요즈마 펀드 창업자이자 그룹 회장은 투자심의와 검토 건으로 두세 달에 한 번꼴로 한국을 찾는다. 30년 넘는 글로벌 투자 경험이 쌓인 77세 회장은 한국 기업 얘기를 듣고 놀라곤 한다. 특히 ‘싸이월드’라는 벤처를 창업한 이를 만났던 날에 몇 번이고 ‘놀랍다’는 얘기를 되뇌었다. 싸이월드가 펼쳤던 서비스를 들을 땐 정말이지 한참 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회장은 “언제 창업했냐”고 물었다. 창업자는 “1999년 카이스트 동기들과 창업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회장이 한 말이 뇌리에 남아 있다.

“처음부터 글로벌로 나갔으면 페이스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페이스북은 싸이월드가 생긴 지 5년 후 세상에 나왔다. 한국의 새롬기술이 인터넷 기반으로 무료 국제전화를 선보였던 사실에도 놀라워했다. 미국 스카이프보다 훨씬 이전에 나왔던 서비스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네이버는 구글보다 1년 먼저 창업했고, 심지어 애플이 아이팟으로 전 세계 mp3 기기 시장을 장악하기 이전에 한국 아이리버가 세계 시장을 주도했으며 미국 유튜브보다 한국 판도라티비가 먼저 나왔다.

회장은 한국 시장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엔 ‘이 회사들이 애초에 글로벌로 진출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스카이프가 아닌 새롬기술의 다이얼패드가, 유튜브가 아닌 판도라 티피가, 페이스북이 아닌 싸이월드가 전 세계 IT 콘텐트 세상을 주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 벤처는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더 빠르고 더 좋은 기술을 지녔다. 하지만 시작할 때 한국에서 출발해서 글로벌 시장에 명함을 내밀기도 전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이스라엘 벤처는 자국 시장이 좁다고 생각해 출발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둔다. 올해 한국 벤처업계에 하고 싶는 조언이자 바람이 있다면 단연 ‘글로벌 진출’이다. 글로벌 시장엔 한국 벤처의 진가를 알아주는 수많은 이가 포진해 있다. 77세 노인인 요즈마그룹 회장은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인천공항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국의 우수한 기술을 가진 벤처는 마치 동화 속 ‘미운 오리 새끼’ 같다. 이들은 미운 오리가 아니고 백조 같은데 어찌 작은 시장에만 머물게 됐을까. 너무 인정을 못 받으니 이들 스스로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로 여기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노회한 회장이 내뱉는 탄식과 아쉬움은 한국인인 나에게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되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나를 비롯한 요즈마그룹인들은 오늘도 한국 백조를 찾고 있다.

즐거운 실패 | 윤자영 스타일쉐어 대표


대학생이었던 2011년, 나는 학교 지하 강의실에서 책상 몇 개를 빌려 친구들과 ‘스타일쉐어’라는 패션 앱을 개발해 론칭했다. 자기가 뭘 입었는지를 공유하고 곧바로 구매까지 연결하겠다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 조그만 화면으로 누가 패션을 봐?”, “SNS에서 누가 쇼핑을 하겠어?”라고 말하곤 했다. 똑똑한 사람들과 업계 어르신들에게 하도 냉소 반 우려 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지난 몇 년간은 이를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스타일쉐어는 어느새 월 100만 명에 이르는 ‘Z세대’가 사용하는 앱이 됐다. 의류산업 전체 성장률이 2%대에 불과할 때 우리는 3년 연속 300%씩 성장하며, 연 1000억 대 거래액을 달성했다. 그러는 사이 나의 20대가 가고, 올해 서른이 됐다.

최근 회사의 내년을 계획하며 ‘올해 우리가 했었어야 하는 일’을 돌아봤다. 더 급해 보이는 일,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일, 이미 어딘가에서 검증된 선택지 위주로 의사결정을 내리다 보니 1년이 금방 지나갔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의사결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연 단위로 회고해보니 현실이 더 날카롭게 자각된다. 회사가 고객의 변화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는 시점이라면 이미 그 일은 우리가 했었어야 하는 일이었다고 반성한다.

새해를 기대하는 마음도 크다. 1년 후에는 우리가 또 어떻게 성장해 있을까? 어느 회사에나 성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결과가 있으려면 더 많이 도전해야 하고, 도전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나 우리의 주 고객은 트렌드를 주도하고 도전을 즐기는 젊은 세대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더 실험하고, 더 도전하는 조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2019년 우리의 화두는 ‘즐거운 실패, 계속되는 도전’이다.

‘기업가책임’ 시대 |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기업가정신’을 이제는 ‘기업가책임’으로 이해해야 할 새해가 다가온다. 지금 우리나라는 기업가의 리더십을 어느 때보다도 갈망한다.

우리나라는 산업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의 변화, 미국·중국의 관계 등 세계적 정치·경제 환경의 변화, 남북관계의 변화라는 세 가지 커다란 변화 속에서 격동기를 보내고 있다. 이에, 경제를 아는, 경제에 종사하는 기업인들이 자사의 생존을 넘어 기업가로서 국가적·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는 시대적 사명감을 스스로 체감하며 행동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당면한 ‘경제의 딜레마’를 정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정책을 쏟아내는 정부에 부족한 것은 기업 현장에 관련된 깊은 이해와 기업 경험의 노하우인데, 기업인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대안 제시에는 입을 닫고 있다. 경영을 어렵게 만들어가는 정책이 쏟아져 나온다면, 경제의 실체를 만들어갈 책임이 있는 기업인들은 반대 의견을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잘못된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바로잡는 일은 정치인들이나 야당의원들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에게는 기업경영 현장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도 힘든 민생을 해결하려는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명확한 대안을 제시할 만한 충분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당면한 ‘한국 경제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다.

한편, 기업가들이 자신의 기업 내부만의 문제의식을 넘어 경제계의 ‘빅 픽처’를 이해하기 위해 논쟁하며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자신의 기업 내 조직원들에게도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기업의 크기는 기업가들의 사회적·시대적 책임의 크기에 비례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세상의 변화를 읽고 그에 우선 대비하는 기업들이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기업가책임 의식에서 시작되는 참된 ‘기업가정신’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활력을 되찾아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브랜딩에 대한 집착 |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


동요를 브랜딩하기로 마음먹었다. 핑크퐁이다. 유튜브에서 100억 회 이상 재생된 핑크퐁 콘텐트. 4000여 편에 이르는 모든 콘텐트의 도입부에 빠짐없이 8초 길이의 인트로를 재생시켰다. 영상 콘텐트에서 8초라는 시간은 그리 짧지 않다.

유아들의 집중 시간이 성인보다 짧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핑크퐁!’ 소리와 함께 분홍색 여우 캐릭터가 등장하는 로고 영상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들 정도로 아이들이 먼저 인지하고 좋아한다. 인트로가 재미있어서 그 부분만 반복 재생되는 콘텐트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할 정도다. 지난 8년간 플랫폼에 상관없이 모든 콘텐트 앞에 인트로를 일관되게 노출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 결과다.

인트로에 끈질기게 집착한 이유는 핑크퐁을 오감으로 기억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서다. 판교에 있는 핑크퐁 오프라인 스토어에는 동작인식 센서가 설치되어 있어 아이들이 입장할 때마다 스피커에서 ‘핑크퐁!’ 소리가 흘러나온다.

‘핑크퐁’이란 브랜드를 청각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 제품에도 인트로를 삽입했다. 음원도 예외가 아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에 제공하는 음원 앞에 인트로를 삽입하기 위해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브랜딩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다양한 노력이 쌓여 이제 여러 채널과 수많은 콘텐트를 통해 인트로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핑크퐁!’ 소리를 들으면 순식간에 뒤돌아본다.

“브랜드를 위해서라면 3년 이상 지긋하게 밀어붙여라”라는 말이 있다. 브랜딩에는 그 어떤 것보다 지구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끝없는 집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핑크퐁 브랜드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기까지 여러 요인이 기여했지만 인트로를 일관성 있게 노출하기 위한 집착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아직 확신이 없다면, 최대한 많이 노출하는 일에 꾸준히 끈질기게 집착하라.

변하지 않는 본질 | 이의현 로우로우 대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넘나드는 영화 [백투더 퓨쳐]에 나온, 아주 먼 미래라고만 봤던 2015년이 지나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에서 나온 2020년을 앞두고 있다. 어렸을 때 공상영화와 만화에서 보았던 미래의 모습. 우리는 작가의 예상과 달리 그 정도로 먼 미래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브랜드를 직접 만들어 창업을 꿈꾸며 살던 학창시절이 얼마 전 같으나 창업한 지 7년이 됐다. 대출이나 투자도 한 번 없이 매년 흑자를 내며 차근차근 로우로우에서 가방, 신발, 안경 등을 만들고 있다. (물론 규모 자체가 상당히 작다.) 대단한 전략이 있어서라기보다 같은 제조업 기반의 무인양품이나 나이키 등의 모습을 본받고 따른다. 단, 지금의 혁신적이고 글로벌한 모습 말고 그들의 사업 초기 “고작 7살짜리 브랜드는 어땠을까?”를 가장 많이 묻고 고민한다. 세상이 변한다 한들 창업 초기에 그들은 무엇에 가장 집중했을까? 평균 40여 년의 업력을 가진 을지로 노포들은 세상이 어찌 변하든 한결같이 육수와 재료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만족하는 수준의 재료가 떨어지면 더 팔지 않고 장사를 일찍 마친다. 각종 매체나 인터넷에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대를 언급하고 대처 방안을 논한다. 로우로우는 변화를 이끄는 주체도 아니며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도 힘들다. 2차산업의 꽃인 제조업에 몸담고 있는 아주 작은 가방 가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편지→공중전화→삐삐→핸드폰→스마트폰→앱으로 연인들의 속삭임 수단이 발전했지만 사랑의 깊이는 그보다 더 발전했을까? 순식간에 나오고 들어가는, 당장 없어져도 대체 가능한 수많은 가게나 제품과 서비스들이 아니라 없어지면 가슴 아프고 슬퍼할 대체 불가능한 가게와 제품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로우로우는 그런 제품에 더 집중해서 만들고 싶다. 이제 겨우 7살짜리 브랜드다.

실행력 | 백복인 KT&G 사장


“느리면서 좋은 의사결정이란 것은 없다. 빠르면서 좋은 의사결정이 있을 뿐이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한 말이다. 스마트폰이 휴대폰 시장의 판도를 바꿀 때 중저가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시장에서 도태된 기업이 있다. 시장 변화를 읽고 얼마나 민첩하게 대응하느냐, 이는 기업 생존을 좌우해 빠른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 지난 1년 어느 때보다 급격한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으며 ‘빠른 의사결정’의 힘을 확인했다. 변화의 기로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에 과감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후발 주자였음에도 장점을 극대화한 제품을 선보여 시장에 안착했고, 단기간에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춰나갔다. 최근에는 시장에 없던 신개념 뉴플랫폼 제품 ‘릴 하이브리드’를 선보이며, 전통적인 담배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혁신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패러다임 변화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공헌활동(CSR)에서도 마찬가지다. 1세대 사회공헌이 기업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순수 자선활동 및 기부 행위라면, 2세대엔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수단으로 사회공헌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최근에는 소위 3세대 ‘소셜 임팩트’를 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에 ‘사회공헌’에서 ‘사회혁신’으로의 변화를 주도하고자 한다.

‘주춤하면 기회를 놓친다’는 말로 새해를 맞아 새로이 각오를 다져본다. 2015년 취임할 때부터 강조한, 임직원들의 일과 가정 양립(워라밸: Work & Life Balance)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다.

2018년 12월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 우수기업(국무총리 표창)으로도 선정됐으니 이는 당위 명제가 되었다. 여러모로 어려운 경영환경에 처해 있지만 워라밸은 지속가능경영을 실천하고 더 멀리 가는 영속기업이 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시대상이다. 대한민국 직장인, 나아가 모든 국민이 따뜻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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