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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43인의 신년 에세이] 나의 화두Ⅴ 

 

현장주의 | 이기호 ABC마트 대표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이 신발을 구입했을까?’ 지난 30년간 날 이끈 질문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신발업계에 뛰어들었다. 신발 제조, 수출업계에 종사하는 동안 생긴 특기(?)는, 한눈에 신발 사이즈를 알아보고, 제조원가까지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다. ABC마트가 국내 슈즈 멀티숍 시장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을 당시만 해도 국내 신발 시장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대부분 한두 켤레 신발로 생활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던 시기였고, 소위 TPO에 맞게 스타일링해 신거나, 신발을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였다. ABC마트는 고객들이 손쉽게 브랜드 제품을 한자리에서 비교해보며 신발을 구입할 수 있는 카테고리 킬러 매장을 선보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소비자들이 브랜드 신발들을 간편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됐고, 신발은 의류만큼이나 중요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해답은 현장에 있었다.

ABC마트 매장이 친근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면 직원들이 고객의 니즈를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 신입 직원 채용도 현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ABC마트만의 차별화된 기업문화로 ‘NO’스펙 고용 원칙을 고수한다. 인재 모집요강에 학력을 적는 칸이 없다. 학력보다 더 중요한 건 다양한 생각과 일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판단에서다. 입사 만 1년 되는 날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실제 200여 매장의 점장은 직영점 사원 출신 인재들로 배치돼 있고 본사 직원 중 전문적인 파트를 제외한 80% 이상은 현장 출신이다.

직원들의 주말 매장 근무는 이런 안목을 길러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를 포함해 ABC마트 전 직원의 공식 휴무일은 금요일이다. 토요일, 일요일 중 하루는 매장에 나가 근무한다. 매장 근무를 하면서 직접 고객과 소통해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얻는다.

직원들은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식과 담당 업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답을 현장 스태프들과 함께 찾아가며 ABC마트의 성장을 견인한다. 그래서 더 자신한다. “ABC마트에 가면 내가 찾는 신발은 꼭 있다.”

관계와 역할 |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을 땐 항상 아쉬움과 설렘이 함께한다. 꿈꾸는 일이나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매년 점검하고 설계하며 새로운 매듭을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내가 가진 능력보다 더 잘될 때가 많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운도 따랐지만 항상 귀인의 도움이 있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관계 속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

몇 해 전 친구 아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문을 마치고 친구를 위로하려고 하는데 옆 사람을 권했다. 옆에는 친구 아들이 서 있었고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아들이 상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내가 사라지니 남편의 자리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은 물론이고 조직 내 상하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역할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관계와 역할이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정이나 기업은 물론 국가조직에서도 각자가 가진 개성과 역할이 있다. 각자 역할의 의미와 개성, 특성을 서로 인정하고 공유하면서 공존하는 세상이 신바람 나는 세상이 아닐까.

지난 20여 년간 식품인으로서 꿈꾸던 일이 올해는 더 가까워질 것 같다. 세계 음료 시장이 만들어진 지 230여 년이 지났고 한국에 들어온 지 70여 년이 흘렸다. 외국 음료의 각축장이라 할 수 있던 한국 음료 시장에 우리 소재와 우리 브랜드가 자리 잡게 하는 것이 세계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달려왔다. 음료 산업화는 늦었지만 먹을거리와 마실거리 문화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임을 아는 까닭에 이를 찾아 발전시키는 선도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국내 음료 시장에서 우리 음료가 두 자리 숫자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게 되었으며 메이드 인 코리아 음료 제품이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코카콜라가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것처럼 세계인에게 인정받는 대한민국 대표 음료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대명제를 식음료에서도 보여주는 기해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쫓기지 않는 삶 | 선우예권 피아니스트


잰걸음으로 바삐 사는 현대인은 마치 조바심과 숨통을 조이는 스트레스를 견디며 사는 듯하다. 괜히 나도 마음이 급해진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너무 뒤처져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조급함은 질투로 변형되기도 하고 좋지 않은 영향도 미친다. 물론 고민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는 하지만 소모적인 비교의식으로 나만의 시간을 살지 않는다면 내게 남는 건 뭘까.

나처럼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지 않은 독주자의 삶은 겉보기엔 화려하고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안정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외로운 직업이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다르고 시기도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기약 없는 기다림일 수도 있겠지만)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시간 안에서 걸어가야 만족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명성 높은 공연장,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함께하는 연주를 누가 원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오랜 기다림을 누리면서 편안함도 생겼고, 그 안에서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나도 보통 처음 접하는 곡을 들을 때 곡 해석이 작곡가 의도와 잘 이어져 있는지 고민한다. 하지만 음악가는 대중에게 드라마틱하고 상품성 있는 효과보다, 더 큰 걸 봐야 한다고 들었다. 감히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음악을 남긴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게 내 역할이다. 그게 표출되는 건 실황 연주다. 단 한 번에 불과한 라이브 공연은 순간 감정을 쏟아 전달하는, 집중력이 꼭 필요한 시간이다.

문득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들었던 슈베르트 즉흥곡 작품90의 2번, 베토벤 소나타 1번 4악장의 강렬한 열정이 떠오른다. 수줍음이 심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무슨 곡인지 물을 수도 없었다. 서점에 찾아가 비슷한 악보를 찾아내곤 행복해하던 유년 시절. 음악으로 느꼈던 뜨거운 열정을 간직한 채 2019년 주어진 나만의 시간을 천천히 살아내고 싶다. 시간이 지나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 올해 6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리사이틀 공연도 열정과 감정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투지와 존중 | 차상윤 안젤로고든아시아 대표


2019년은 내 인생에서 주요한 전환점이다. 흔히 말하는 100세 인생 시대의 절반에 도달했고,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시작한 지 25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2019년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주요 요인들을 되돌아보는 해가 될 것이다.

먼저 내 스스로에게 적용해온 두 가지 원칙이 떠오른다. 하나는 투지(grit)고 다른 하나는 존중이다. 우선 투지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는 실패란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혹은 포기하는 순간 현실화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공이란, 실패를 어떻게 활용할지, 또는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지의 문제다. 전문 부동산 투자자로서, 아시아 전역에 100개가 넘는 다양한 섹터 및 리스크를 가진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투자자라면 당연히 이익을 볼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으며, 이는 투자자라는 직업에 수반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초기 투자 커리어 중 처음으로 손실을 경험했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는 굉장히 심란했고, 손실을 업무적인 측면을 넘어서 개인적인 실패로 받아들였다. 그때, 최근 작고하신 우리 회사 설립자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당신이 실수에서 배울 수만 있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그때가 바로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성공은 실수에서 얻은 교훈과 투지를 바탕으로 일궈내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존중이다. 나의 성취는 내 것만이 아니라 주위 팀과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부동산 투자자로서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가는 창조 과정에 있다. 슘페터가 정의한 ‘창조적 파괴’에 빗댈 수 있는 이러한 과정은 집단 공동체에 의해 수행된다. 이러한 공동체를 결집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효과적인 리더십은 개개인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사람들을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칸트의 철학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목적 없이 타인에게 선하고 친절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2019년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지난 50년간 인생에서 배운 지혜는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투지와 존중, 친절을 발휘해 다가올 난관을 인내하고 극복해나갈 것이다.

실현 | 장재혁 코오롱LSI·코오롱MOD 대표


2019년 1월은 내게 새해 시작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코오롱LSI의 방향키를 잡은 지 꼬박 1년이 되는 시점이어서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코오롱LSI의 토양을 다시 다지고 씨를 뿌린 시간으로 기억된다.

물론 모든 순간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높은 이상과 큰 꿈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목표에 미치지 못했던 순간들은 자체로 크고 작은 좌절을 남겼다. 당시에는 역량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질책했으나, 돌아보면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했는지도 모른다. 경주 코오롱호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부산 씨클라우드 호텔, 서울의 호텔 카푸치노까지 다양한 자산을 갖추고 있음에도 먼 미래에 매달려 현재 이룰 수 있는 것들을 놓쳤던 것이다.

올해는 열매를 수확하는 해로 만들고자 한다. 성장은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데서 출발한다. 코오롱LSI의 2019년 목표 중 하나는 호텔 콘텐트를 다양화하고 고객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 개장 41주년을 맞은 코오롱호텔의 내방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풍성한 고객 체험시설을 마련하고, 골프장을 더욱 다채로운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또 플리마켓을 운영해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고객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마우나오션리조트와 씨클라우드 호텔도 다양한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다.

또 일하는 방식을 바꿔 임직원 모두가 책임 있는 경영 의식을 느끼게 할 것이다. 임원을 제외한 모든 직원의 호칭을 ‘지배인’과 ‘매니저’로 통일하며, 모든 구성원이 맡은 직무에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책임경영 체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또 성수기와 비수기에 맞게 인력을 적절히 운용해 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렇게 크고 작은 실현 가능한 목표들을 이루어나갈 때 더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기는 것도 습관’이라는 말이 있다. 한 번이라도 이겨본 사람이 또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복권처럼 한 번에 비현실적인 목표를 이루고 나태해지는 것보다는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이 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삶이 아닐까. 올해는 우리 모두가 ‘이기는 습관’을 체화해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여 끊임없이 그다음 단계로 전진하는 시간으로 일구고자 한다.

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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