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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POWER LEADER 30 | Fashion] 계한희 KYE 대표 

예술과 대중성의 ‘하이브리드’ 

박지현 기자
타고난 예술 천재들은 언어로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 세계관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계한희 대표가 그랬다. 평범하고 겸손한 언어와 달리 그의 손에서 탄생한 옷은 예술과 대중성의 환상적인 교배로 에너지가 터져 나온다.

▎사진:계한희 제공
밝게 탈색한 헤어에 강렬한 눈빛과 달리 말투는 느리고 덤덤했다. N극과 S극 같은 온도 차를 가진 사람이다.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모티브로 디자인하지만, 옷은 화려하고 유머러스한 것과 비슷하다. 본인의 말대로 “상반되고 이질적인 것의 조화를 추구하는 스타일”은 디자이너를 닮았다.

패션업계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다. 데뷔 초창기부터 펜디의 칼 라거펠드, 루이비통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겐조의 움베르토 레온 등 세계 패션 거장이 그를 주목했다. 어느덧 9년째 자신의 성을 딴 ‘카이(KYE)’ 브랜드의 수장으로, 국내외 패션업계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계한희 KYE 대표는 이제 서른두 살이다. 2017년 포브스에서 선정한 ‘30세 이하 리더 30인’으로도 선정된 바 있다.

KYE는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 강렬한 패턴과 컬러로 펑키하면서도 재치가 돋보이는 디자인이다. 자칫 남성스러운 셔츠에 코르셋 모형으로 양 허리를 조인다든가, 스포티한 옷에 레이스 소재로 페미닌한 느낌을 ‘믹스매치’하는 게 주특기다. 졸업 패션쇼에 손가락들이 감싸쥔 듯한 모양의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몸에 관련한 아이디어를 키치스럽게, 손맛이 들어가는 크래프트적 요소를 살리고자 했다”는 게 브랜드 출발점이었다. KYE 로고도 손가락으로 형상화했다.

국내외 패피(패션피플을 줄인 말)들과 셀럽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연예인들이 줄곧 입어오며 더 유명세를 탔다. 지드래곤을 비롯해 K-pop 스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고급 스트리트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계한희 대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영국 런던의 패션 명문 대학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Central Saint Martins) 학부와 대학원을 최연소로 입학, 졸업했다. 대학원 입학자 중 가장 우수한 최종 5명으로 선발돼 F/W 런던 패션위크에 데뷔했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했다. 2012년 뉴욕과 서울패션위크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는 동시에 제레미 스콧과 아디다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2014년 국내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프라이즈(LVMH Prize) 파이널리스트에 진출했다. 지난해 울마크 프라이즈 아시아 대상도 차지하며 흔들림 없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KYE의 경쟁력에 많은 전문가가 “국내 출신 디자이너가 많이 시도하지 않는, 현대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모티브를 상업 제품으로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1월 17일 찾은 신사동 가로수길 쇼룸은 옷 수백 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2020 F/W 컬렉션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계한희 대표는 “한 시즌 끝나면 또 다른 옷을 구상하고 만들며 옷에 파묻혀 산다”고 멋쩍게 웃는다.

남성복 전공으로 유니섹스 스타일링에 도움


▎KYE 브랜드는 연예인들이 좋아하는 고급 스트리트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서울 패션위크에 참가했던 셀럽들. 왼쪽부터 공원소녀 레나, 모델 아이린, 가수 청하, 소녀시대 효연. / 사진:계한희 제공
독특한 예술세계는 어린 시절의 영향을 받았다. 동양화를 전공한 어머니와 CFO 출신의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 밑에서 예술을 향유했다. “자동차 안에서 미술사를 같이 듣고, 놀이터보단 미술관과 박물관을 자주 다녔어요.” 미술에 유독 소질을 보였던 그 자신도, 주변에서도 계한희 대표가 예술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또래 집단에서는 늘 최고였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향한 열망은 계속됐다. 서울 국제학교에 다닌 고등학생 시절엔 엄마 모피 코트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계마담’이란 별명이 붙었다. 심지어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고 해외 대학교 여름 학교를 다녔다. 뉴욕 파슨스를 비롯해 전 세계 미대 수업을 골라 들었다. “순수예술을 할 지, 패션디자인을 할지 방향을 미리 정하려고 했어요.” 심심할 땐 화려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학동사거리 커피빈을 찾기도 했다. 패션 기자, 스타일리스트 실장, 모델 등 ‘진짜’ 패션 피플들과 사교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패피로 유명했던 배우 배정남과도 친구가 됐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한 학년을 패스했다.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때부터 시련은 시작됐다. 처음 받아 든 성적표는 ‘꼴찌’였다. “벽에다가 이름을 일부 가려서 성적을 붙여놓는데 KY***, 이런 식으로 붙어요. 누가 봐도 저죠. 그곳에서 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더라고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도서관에 처박혀 패션에 관련한 책들을 섭렵했다. ‘생존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다는 걸 그때 받아들이면서, 내공을 쌓자고 마음먹었어요.”

계한희는 남성복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당시 남성복에 여성스러움을 가미하고, 스키니 바지 등 다양한 시도가 섞이는 것이 흥미를 끌었다. “부모님은 가장 경쟁력이 낮았던 것 아니냐고 농담하시는데 그건 아니고,(웃음) 어차피(제가) 여성이라 언젠가 본능적으로라도 여성복은 잘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남성복에 큰 트렌드 변화가 올 때 배우는 게 좋을 것이라 판단했지요.” 선택은 현명했다. 이 덕에 계한희 표 유니섹스 디자인이 브랜드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취미도 다양하다. 가장 아까운 걸 시간이라 생각해서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은 없어야 한다’는 게 모토다. 직조를 배우기도 하고 살사댄스도 배워본다.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땐 퍼즐을 맞춘다. 1000피스(조각) 정도는 쉽게 해낸다. 계 대표는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 많아서 디자인도 다양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계한희 대표는 디자이너이자 9년 차 경영인이다.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는 가깝고도 멀다. 스스로 고민이 가장 많은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나름대로 유행을 좇기보다 의미 있는 스토리를 담는 게 KYE 브랜드 특징이었는데, 아직도 만들면서 늘 해소되지 않는 게 있다.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옷에 표현되는 것들이 좀 자제되는 부분도 있다”고 고백한다. 해외에서 KYE 브랜드 인수 제안이 간혹 들어올 때마다 거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시작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왠지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는 고집 때문이다.

그는 KYE 디자인에 시대상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청년 실업을 주제로 한 컬렉션에서 ‘청년 홈리스’를 형상화했다. 노숙자 박스집, 서울역의 그라피티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픈 청춘을 위한 치유’라는 주제에선 옷에 반창고 프린팅을 적용했다. 지난여름 컬렉션 테마는 미래를 알기 위해 미신에 집착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래는 지금의 행동을 하기에 달려 있는 것을 모르는 모순을 꼬집었다”고 말한다.

KYE는 한국에서 론칭했지만 해외 세일즈가 90% 이상이다. 아시아를 비롯해 미주 지역으로 뻗어 나가 있다. 중국시장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계한희 대표는 “중국은 상대적으로 컬러풀하고 튀는 옷을 좋아하고, 독특한 디자인에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 상하이엔 좀 더 적극적인 세일즈를 집중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국내시장도 공략하기 위해 2016년엔 아이아이(EYEYE)를 론칭했다. “KYE가 내 생각을 많이 담고 있다면, EYEYE는 매일 입고 싶은 옷으로, 좀 더 여성적인 귀여움이나 밸런스를 살린 브랜드”라며 “강한 브랜드 색깔보다 베이식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만들었다”고 말했다.

KYE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고 있는 건 많은 유명 브랜드들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해서이기도 하다. 뉴욕패션위크 이후 아디다스와 시작으로, 클리니크, 배달의민족, 씨제이 쁘띠첼 푸딩, 슈에무라, 루이까또즈, 루나 등과 호흡을 맞췄다. 발랄하고 개성 있는 그의 디자인에 세계가 손을 내민다. 계 대표는 “컬래버를 하면서 흥미롭고 새로운 시도를 표현해낼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한다.

계한희 대표는 여전히 ‘독창성’을 추구한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이코닉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카이스럽다’고 할 수 있을 때까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좋은 아카이브를 가진 브랜드이자, 디자이너로 남고 싶어요.”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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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호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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