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이지윤의 ART TALK(15) 

패션이 아닌, 문화를 파는 기업: 프라다 

이지윤의 아트톡은 3개월간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중요한 미술거점들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엔 밀라노 외곽에 있는 미국 최고 거장들의 근현대미술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빌라 판자(Villa Panza)’였다. 지난달에는 피렐리사가 지역 재개발의 하나로 설립한 행가 비코카(Hanga Bicocca)라는 대규모 설치미술을 보여주는 공장 미술관을 설명했다. 이번 호에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대표하는 중요한 현대 문화 기관으로 자리 잡은 프라다 파운데이션을 소개한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초상 사진 / 사진:귀도 하라리
아마도 올해 밀라노 디자인 페어를 방문한 사람들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된 ‘must see’ 장소는 다름 아닌 이곳일 것 같다. 밀라노에 있는 폰다지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는 2011년 오픈한 베니스 프라다 파운데이션에 이어 프라다가 운영하는 두 번째 예술 문화 공간이다. 헤르조그 & 드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펠트리넬리 재단(Feltrinelli Foundation)의 도서관 건물, 안도 타다오의 아르마니 테아트로(Armani Teatro)와 같은 밀라노의 다양한 창조 산업 공간들은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협업으로 설립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와 함께 프라다 파운데이션 밀라노를 개관했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렘 쿨하스


▎프라다 파운데이션 밀라노 새로운 공간, 건축 공간 OMA 담당, 사진: 바스 프린센, 2015, Courtesy Fondazione Prada.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프라다(Prad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와 그의 남편 페트리지오 베텔리(Patrizio Bertelli)는 1993년 문화 재단 프라다 파운데이션을 설립했다. 오랫동안 극장, 시네마, 음악, 문학,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부는 예술에 상당히 깊은 식견을 갖추었다. 본인들은 예술에 관한 관심이 다소 늦게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프라다와 베텔리는 예술 속에 있는 생각의 정교함을 통해 패션 브랜드를 전개하는 사업가의 생각이 아닌 새롭고 다른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었으며 그들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말을 여러 번 피력해왔다.

프라다는 현대 예술을 바라볼 때 작품에 내재된 근본적인 생각들을 추구하여 자신들만의 문화적 관점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전시 공간을 계획했다. 그들은 밀라노의 창조산업 지역으로 재개발된 포르타 제노바(Porta Genova)에서 멀지 않은 도시의 남동쪽에 있는 1910년에 증축된 산업 공간인 증류주 공장을 구입했고, 건축가를 찾았다. 당시 그녀가 사람들에게 건축가를 소개받을 때 렘 쿨하스의 작품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아무도 그를 추천하지 않았다. 하지만 렘 쿨하스의 책을 본 부부는 그의 작품과 프라다 파운데이션의 방향성이 일치한다고 생각하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렘 쿨하스는 강한 오라(aura)를 지니고 있던 산업 공간을 허물기보다 과거와 현재의 다이얼로그를 생산하기를 제안했다. 그 결과 파운데이션에 들어오는 사람이 마음의 세계(State in Mind)에 방문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끔 하고자 하는 주된 개념이 나왔다.

사실, 공간을 거닐며 느끼는 놀라움은 렘 쿨하스의 산업적 재료를 이용한 건축의 디테일에서 비롯된 완성도였다. 프라다는 매우 ‘세련된’ 패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비닐 천으로 만든 가방과 가벼운 신소재로 시작된 브랜드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렘 쿨하스가 선정한 철망, 시멘트, 비닐과 같은 소재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즉, 낮은 옛 증류 공장의 수평적 공간과 새로 지은 건물의 수직적 공간의 만남, 서로 다른 새것과 오래된 것의 만남, 좁고 넓은 공간들의 대비가 어쩌면 앞으로 운영될 파운데이션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제시해준다고나 해야 할지. 커미셔너와 건축가의 협업이 매우 긴밀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공간이었다. 특히 건축가이지만 상당한 큐레이팅 경력을 가진 렘 쿨하스이기에, 이러한 프라다 파운데이션이 지향하는 ‘생각의 공유’라는 그들의 취지를 더욱 잘 경험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낳았다.

포디엄, 시네마, 토레 그리고 헌티드 하우스


▎프라다 파운데이션 밀라노 새로운 공간, 건축 OMA 담당, 사진: 바스 프린센, 2015, Courtesy Fondazione Prada.
렘 쿨하스는 파운데이션 공간을 세 개로 나누었다. 토레, 헌티드 하우스, 포디엄(Torre, Haunted House, and Podium)으로 구성된 이 건물들은 일정한 전시 공간, 강당,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는 타워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 약 1만9,000 인 하나의 복합 공간은 입구에서 연결된 포디엄과 황금색 잎으로 금박 장식된 건물 헌티드 하우스(Haunted House), 빌딩 토레로 나뉘어 각기 다른 주제의 전시와 컬렉션을 보여준다.

특히 2018년 완공된 가장 높은 건물 ‘토레(Torre)’는 프라다의 소장품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60m 높이의 흰색 노출 콘크리트로 제작됐다. 타워의 각 층은 카스텐 횔러,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모나 하툼, 마이클 하이저, 존 발데사리 등 국제적으로 명성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공간 내부는 불투명 재질, 알루미늄, 유리 소재로 반사되어 공간감을 확장시킨다. 통유리로 설치된 건물 한쪽 면은 실내외 공간의 경계를 없애고 밀라노 시내의 전경을 내부 공간과 연결한다. 계단을 올라가는 핑크색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실내 공간 재질은 관람객들에게 프라다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며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가운데 안뜰(Courtyard)에 있는 건물은 골드 신전을 생각케 하는 헌티드 하우스(Haunted House)라고 불리는 근사한 공간이다. 헌티드 하우스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초현실적 경험과 느낌을 주는, 로버트 고버와 루이스 부르주아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주로 성, 관계, 자연, 정치, 종교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 미국 조각가 고버의 무제 작품(1993~1994년 제작)을 소장하고 있고, 위층에는 프랑스계 미국인 여성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이 있다. 거미 조각 마망(Maman)으로 잘 알려진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 자연, 신체는 그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주제다. 1996년 작품 셀(옷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물건들을 함께 조합한 조각품이며 그녀의 어린 시절과 신체 부분의 연관성을 이야기한다.


▎‘아틀라스’ 전시 전경, 토레 - 프라다 파운데이션, 사진: 델피노 시스토 레그나니 에 마르코 카펠레티, Courtesy Fondazione Prada, 카스텐 횔러, 업사이드 다운 머쉬룸 룸, 2000.
포디엄(Podium)은 기본적으로 어떤 기획이든 보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전시 공간이다. 넓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며, 이번엔 미술 큐레이터가 아닌, 벨기에 출신 주요 작가인 뤼크 튀이만(Luc Tuymans)이 기획한 ‘상귄(Sanguin). 바로크에 대하여’ 전시는 국제적인 작가 63명의 80개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과 일치한 전시 동선은 작품의 스토리텔링을 돕는다. 이 전시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동시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였으며 포퓰리즘 급증에 영향을 받는 현대 시각 문화에 대한 물음을 바로크 미술과 현대미술을 조합하여 구성한 기획이다. 기획자로서 튀이만은 바로크 거장 카라바조의 회화와 제이크 챔프먼과 디노스 챔프먼의 설치 작품을 병치하는 등 새로운 문맥을 제안한다.

사고 카운슬(Thought Council)


▎‘아틀라스’ 전시 전경, 토레 - 프라다 파운데이션, 사진: 델피노 시스토 레그나니 에 마르코 카펠레티, Courtesy Fondazione Prada, 제프 쿤스, 튤립, 1995~2004.
특히 많은 예술 문화 파운데이션이 하루가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 프라다 파운데이션이 제시하는 구조는 매우 눈여겨볼 만하다. 독특하게도 프라다 파운데이션에는 재단의 디렉터는 존재하지 않으며, 예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그들의 비전을 위해 사고 카운슬(Thought Council)을 운영한다. 세드릭 리버트(Cedric Libert)와 니콜라스 컬리넌(Nicholas Cullinan)을 설립 멤버로 시작했다.

학생, 큐레이터, 예술가, 건축가, 과학자, 작가들을 초대하여 자신들의 컬렉션에 새로운 지평과 해석을 제공하도록 권장한다.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이론화한 이탈리아 미술사가인 제르마노 셀란트가 기획한 전시를 시작으로 그들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문화 기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는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건축가 렘 쿨하스는 프라다 파운데이션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다양하게 대조되는 사항들이 변주를 이루는 복합 단지 안에서 예술과 아이디어가 조화롭게 작용하고 있다.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루이비통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구찌의 프랑수아 피노 등 패션 기업가 및 디자이너들은 파운데이션을 형성하고 건축가들과 협업해 예술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과거와 현재를 공존시킨다는 사업의 일환으로 가장 구체적인 비전과 운영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특히 19세기에 만들어진 수제 구두 회사인 영국 처치스(Church’s)사 및 밀라노 중심가에서 1884년부터 시작한 디저트 사인 마르케시(Marchesi)를 인수하며 프라다는 자신들의 기업 비전을 패션을 넘어선, 문화의 거점으로 확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초현실주의 작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그림에서도 나타나듯, 과거와 현재의 공존은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예술의 고장 이탈리아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프라다 기업은 이탈리아 문화적 자산을 통해 패션, 음식, 예술이 어우러진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다. 이탈리아의 풍부한 문화유산과 역사, 현대 예술이 공존하는 방법을 앞으로 프라다 파운데이션에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프라다 파운데이션(Fondazione Prada) 건물 내부 전경. 사진: 이지윤



▎토레, 폰다지오네 프라다, 밀라노OMA 건축 프로젝트, 사진: 바스 프린센 2018, Courtesy Fondazione Prada



▎프라다 파운데이션 밀라노 새로운 공간, 건축 공간 OMA 담당, 사진: 바스 프린센, 2015, Courtesy Fondazione Prada.



▎‘상귄. 뤼크 튀이먼의 바로크에 대하여’ 전시 전경, 폰다지오네 프라다, 사진: 델피노 시스토 레그나니 에 마르코 카펠레티, Courtesy Fondazione Prada, 데니스 티푸스, 네덜란드 녹화기 (Vlaamse Blokfluiten), 2012



▎‘상귄. 뤼크 튀이먼의 바로크에 대하여’ 전시 전경, 폰다지오네 프라다, 사진: 델피노 시스토 레그나니 에 마르코 카펠레티, Courtesy Fondazione Prada, 왼쪽부터 오른쪽, 버린드 드 브렉커, 플란더스 벌판에서, 즐라트코 코플리아, K9 Compassion BW, 2003


※ 이지윤은…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 박사/미술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국제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큐레이터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자하 하디드 360도]를 기획했고, 3년간 경복궁 옆에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첫 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컬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905호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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