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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BES GLOBAL 2000] 글로벌 IB로 발돋움하는 한국 증권업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사진:각 사
덩치가 작아도 자기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작은 고추’들이 있게 마련이다. ‘2019 포브스 글로벌 2000’에 포함된 한국 증권사들이 그렇다. 이번 조사에 이름을 올린 국내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1427위)를 비롯해 한국투자금융지주(1441위), NH투자증권(1785위), 메리츠종금증권(1915위), 삼성증권(1942위) 등 5개사다. 은행 등 대형 금융기업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준수한 성적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56개 증권사의 전체 당기순이익은 1조4692원을 기록했다. 2018년 4분기에 거둔 9456억원 대비 183.8% 증가했고, 지난 2007년 1분기에 기록한 1조2907억원을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미중 무역분쟁이 타결의 실마리를 찾고 남북·북미 간 평화 모드가 자리 잡으면 올해 본격적인 랠리가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위탁매매 벗어나 IB 강화에 올인

증권업의 기본은 위탁매매(브로커리지)다. 고객에게서 주식 매매 주문을 받고, 이를 대신 거래해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을 말한다. 올 1분기 국내 증권사의 수수료수익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도 수탁수수료다. 1분기에 국내 증권사의 수수료수익은 총 2조2422억원으로, 이중 수탁수수료가 8913억원을 기록해 39.7% 비중을 차지했다. 증권사의 여러 사업 부문 중 여전히 브로커리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과거에 비해 수탁수수료 비중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 IB 부문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올 1분기 국내 증권업계의 수수료수익 중 IB 수수료는 7066억원을 기록해 전체의 34%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면 IB 수익이 브로커리지 수익을 넘어설 날도 머지않았다.

IB는 기업의 자금조달, 인수·합병(M&A),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모펀드(PEF) 운용 등 기업금융과 관련된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말한다. 증시에 상장을 원하는 기업의 기업공개(IPO) 주관, 유상증자 등 자본발행 주관, 회사채 등 채권 인수 주선, 기업 간 M&A 자문 및 주선, 부동산 등 자기자본투자(PI) 등이 대표적인 IB 사업이다.

증권업계가 IB에 열을 올리는 건 사업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브로커리지는 증시의 부침에 따라 수익 규모도 들쭉날쭉하다. 반면 IB 비즈니스는 사업역량을 확대하면 안정적인 수익창출이 가능하다.

올해 포브스 글로벌 2000대 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국내 증권사들 역시 IB 영역에서 두드러진 실적을 기록했다. 자기자본 8조원대로 업계 1위인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IB 부문의 영업이익이 2496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48.7%를 차지했다. 회사가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의 절반을 IB가 책임진 셈이다. 올 1분기 말 기준 미래에셋대우의 투자자산 규모는 6조5000억원에 달한다.

미래에셋대우는 박현주 회장이 글로벌전략고문(GISO) 및 홍콩법인 회장을 맡아 국내 영업에선 한 발 물러난 상황이다. 다만 박 회장은 해외 투자 및 사업에서 여전히 최고경영자(CEO)로서 굵직한 IB 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8조원이 넘는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프리IPO를 통한 지분투자, 대형 오피스빌딩 매입 등 부동산 투자, PF를 통한 대형 개발사업 등 미래에셋대우의 IB 사업은 경쟁사를 저만치 따돌리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1441위에 오른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증권과 자산운용, 저축은행, 여신전문사(캐피털)를 비롯해 인터넷전문은행(카카오뱅크)까지 거느린 자산규모 64조원의 대형 금융그룹이다. 그룹의 핵심은 역시 증권업이다. 지난해 한국투자금융지주가 거둔 5195억원 당기순이익 중 한국투자증권의 순이익만 5035억원에 달했다. 금융지주 전체 순이익의 97%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 2186억원을 기록해, 국내 증권업계의 분기 순이익 기록을 갈아치우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해당 기간 순이익이 2000억원을 넘어선 곳도 한국투자증권이 유일하다. 오너 최고경영자(CEO)인 김남구 부회장은 올해 초 IB 전문가인 정일문 사장을 CEO로 임명하는 등 IB 역량 강화를 꾸준히 주문하고 있다. 올 1분기 한국투자증권의 IB 부문 수익은 51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4%포인트 증가했다.

1785위에 오른 NH투자증권도 4조원대 자기자본을 바탕으로 IB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대표이사에 취임한 정영채 사장은 옛 우리투자증권 시절부터 IB 비즈니스에 몸담아온 정통 IB맨이다. 정 사장 취임 이후 NH투자증권의 IB 실적은 눈에 띄게 뛰어올랐다. 지난해 1분기 393억원이었던 IB 부문 영업이익은 올해 1분기 89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28%나 급증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상반기에 IB 부문에서 영업이익 873억원을 올렸다. 올해 들어선 1분기 만에 지난해 상반기 전체 실적을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동남아 증시 신흥강자 된 한국 증권사


메리츠종금증권도 1915위에 오르며 처음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메리츠종금증권은 독특한 사업 전략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IB와 자산운용(트레이딩) 부문의 영업수익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IB가 전체 영업수익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IB에 특화된 증권사다.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부회장은 지난 2010년 CEO에 취임해 10년째 회사를 이끄는 장수 CEO다. 최 부회장은 오너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을 비롯해 항공기금융, 신재생에너지 같은 대체투자로 큰 폭의 실적 상승을 이끌고 있다. 자기자본 3조원대의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4338억원을 기록해 쟁쟁한 대형사들을 앞지르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삼성증권은 자산관리(WM)의 명가로 꼽힌다. 현재 삼성증권은 예탁자산이 30억원 이상인 개인고객이 2000명, 이들의 평균자산이 300억원을 넘는 등 WM 사업에서 경쟁사를 압도하고 있다. 장석훈 사장은 WM 외에도 고액자산가 네트워크를 활용한 IB 사업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올 1분기 삼성증권은 주식발행시장(ECM), 채권발행시장(DCM), M&A 등 IB 부문에서 거둔 양호한 성과를 바탕으로 당기순이익 117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기록한 1326억원 대비 역대 두 번째로 큰 분기 순이익이다.

활발한 해외 진출은 글로벌 20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증권사들의 공통점이다.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신남방 정책을 기반으로 현지 사업이 비교적 용이한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10개국 14개 거점(현지법인 11개, 사무소 3개)으로, 국내 증권사 중 가장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해외 법인의 자기자본 규모만 2조3000억원을 넘어섰고, 현지 직원 수도 700여 명에 달한다. 홍콩과 미국, 인도, 베트남, 호주 등 글로벌 부동산 투자도 활발하다. 최근 미래에셋대우가 전 세계 부동산 대체투자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평가받는 배경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말 인도네시아의 단빡증권을 인수해 지난해 7월 KIS 인도네시아 법인을 정식 출범시켰다. 지난해에는 38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베트남 법인인 KIS 베트남을 현지 8위 증권사로 키우기도 했다. KIS 베트남은 현지의 외국계 증권사 중 최초로 하노이 증권거래소에서 파생상품 라이선스를 받는 등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올 1분기 홍콩법인이 세전이익 106억원을 올리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정영채 사장은 지난해 10월 홍콩법인에 1억25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지원해 홍콩법인을 해외사업의 거점으로 키우고 있다. 이 밖에도 NH투자증권은 지난해 12월 304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인 NH코린도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를 525억원 수준으로 크게 높였다. 올 들어선 49% 지분을 보유 중이던 베트남 증권사 CBV의 나머지 지분을 모두 사들이며 NHSV를 새로 출범시키는 등 신남방 투자에 올인하고 있다.

201907호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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