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산업의 대표주자로 P2P금융(개인 간 대출 거래)이 뜨고 있다. 금융권을 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자금을 모집하고 수요자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이른바 ‘크라우드펀딩’이다. 한 젊은 창업가는 P2P금융이 ‘재테크 민주화’의 단초가 되리라 믿고 있다.
▎서상훈 어니스트펀드 대표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경제활동이 활발한 3040 세대가 투자소득을 불리는 주도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P2P투자와 같은 소액투자 시장이 커질 것에 대비해 양질의 투자상품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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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쌓은 이미지는 잘 바뀌지 않는다. 특히 대부업이 그렇다. 무지막지한 고금리와 가혹한 채권추심,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대부업 이미지는 그렇게 굳어갔다. 정부나 정치권도 ‘대부업’이란 명패를 거는 곳이라면 쏘아붙이기 일쑤다.하지만 최근 ‘금융 약자’를 울렸던 대부업 이미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부, 정치권, 재계 모두 한목소리로 대부업 편에 섰기 때문이다. 이른바 P2P금융법(정식명칭: 온라인투자연계금융법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여야 합의로 지난 8월 14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만세삼창을 불렀다. 200개가 넘는 P2P금융사 종사자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아직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 등이 남아 있지만, 법안소위에서 여야가 이견 조율에 성공했기에 법제화는 시간문제라는 게 이들 생각이다. P2P금융은 단순 대부업을 넘어 핀테크산업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금융권을 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자금을 모집해 수요자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이 ‘불법’ 대부업의 굴레를 벗게 됐다.동시에 P2P금융은 직거래금융 시장을 모든 업종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키’가 됐다. 덕분에 기존 금융업은 물론 정부, 기업, 창업가에게도 확실한 창업 소재가 됐다. 지난 9월 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사무실에 만난 서상훈(29) 어니스트펀드 대표는 일찌감치 P2P금융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수석 졸업한 서울대 경영학도, 1년 내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 ‘와튼스쿨’에서 창업 수업만 들었던 교환학생, 2017년 포브스아시아가 선정한 ‘한국 30세 이하 유망주 30인’에 이름을 올린 창업자, 누적 투자금 214억원 유치까지. 그의 이력은 화려했고 누구보다 어린 나이다. 공자가 말한, 기초를 세우고 스스로 일어설 나이인 이립(而立, 30세)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관련 업계가 들썩이고, 지난해 1월보다 누적 투자 실행액이 8배 늘어난 6000억원을 돌파하면서 서 대표에게 시선이 쏠린다. ‘비결이 뭘까’, ‘P2P금융 정말 믿을 만할까’, ‘P2P금융을 고집한 이유가 있을까’ 등 이런저런 궁금증을 그에게 물었다.
P2P금융법 이슈, 타이밍이 좋다. 박용만 회장처럼 만세삼창을 불렀나?당연하다.(웃음)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규제란 단어를 두고 이런저런 얘기하기가 사실 조심스럽다. 정부 눈치가 보인다는 얘기가 아니다. 학생 시절 공부할 때는 규제는 타파해야 할 대상같이 여겼었다. 하지만 막상 금융업종 종사자의 눈으로 보니 규제가 왜 필요한지 깨닫는 중이다. 금융은 무형재이면서 가장 비싼 상품이다. 사건·사고에 취약하고, 사고가 터지면 피해자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규제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그 본질을 이해하는 중이다. 물론 새로운 산업이 태동할 때 규제 중심주의로 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혁신과 사회적 약속 간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겠나. 박 회장님도 적절한 균형을 찾았다고 생각하시는 듯싶다.
법제화가 이뤄지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겠다.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고 끝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세칙인 시행령을 만드는 작업에 있다.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P2P금융업계 판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정부가 제대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더불어 관련 업계 주요 플레이어들이 각종 연구자료를 토대로 피드백을 주면서 도와야 건강한 룰이 생기고, 정부가 세울 육성정책도 빛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슈가 되니 투자금이 몰린다.200억원 넘게 투자받았다. 물론 이슈가 되기 전부터 투자받은 돈이다. KB인베스트먼트, 한화인베스트먼트, 뮤렉스파트너스, 두나무앤파트너스 등이 주요 투자사다. 이보다 앞서 사업 초창기인 2015년엔 DFG, 세틀뱅크, 신현성 티몬 의장이, 이듬 해인 2016년엔 신한은행이 우리를 믿어줬다. 특히 ‘투자자 신뢰 구축’이라는 미명하에 사업 초기부터 신한은행과 전략적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안정성 강화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7년엔 업계 최초로 신한은행과 P2P금융 예치금 신탁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기존 제도권 은행의 존재가 우리에겐 정말 큰 힘이 됐다. 홈페이지에 걸린 신한은행 로고를 보고 찾아오는 고객이 많았다.
신한금융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신한퓨쳐스랩’ 1기 출신이라 더 그랬겠다.그렇다. 돌이켜보면 시중은행권의 도움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상상도 못 한 이유가 있다. 처음엔 미국 P2P금융업체 렌딩클럽이 대형 금융사 웰스파고의 투자를 받은 것을 보고, 한국 시중은행 관계자부터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2015년 상반기 그렇게 거의 모든 금융사를 돌아다녔다. 핀테크뿐만 아니라 P2P금융이란 말조차 생소할 때였다. 담당자를 만나면 “군대는 다녀왔냐”, “법인이나 사무실은 있냐”, “대부업은 행장 아들이 해도 취급하지 않는다” 등 별의별 얘기를 들었다. 그때 신한퓨처스랩 1기 공고를 봤다.
신한금융에서 곧바로 제의가 왔겠다.그럴 리 없다. 우리조차 안 될 거라며, 모집공고에 접수조차 하지 않았었다. 신한은 훨씬 더 보수적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담당자를 만났다. 이거 웬걸. 우리가 적임자라며 지원서를 내라고 독려까지 했다. 마감 하루 전에 밤을 새워가며 지원서를 냈다. 나중에 들었지만, 내부 심사위원 평가 1등으로 선정됐다. 사무실 공간도 내주고 MOU도 체결하면서 하룻밤 새 스타 아닌 스타가 돼 있었다. 심지어 조용병 회장님도 비전 있는 회사로 봐주셨고, 그룹사 투자도 이어지며 10억원을 받았다. 꿈만 같았다.
투자받은 돈으로 뭐부터 했나?인재 영입이다. 최고의 인재가 일해야 고객에게 더 두터운 신뢰를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삼고초려도 마다치 않았다. 하버드에서 도시개발 석사를 마치고 맥킨지 컨설팅사에서 활약한 배현욱 전략기획실장, 카카오톡의 대용량 메시징 시스템을 개발한 임승현 CTO, 우림건설·메리츠종합금융·NH농협캐피탈 등에서 14년간 기업금융과 부동산 PF 업무를 한 김경숙 기업금융실장 등 업계에서 독보적인 맨파워가 있다고 자부한다. 부대표이자 막역한 친구인 김주수 CIO는 서울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합격하고도 포기했는데, 한동안 집안에 학업 포기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가족까지 설득했다. 나보다 다 뛰어난 분들이다.
회사에 갖는 의지나 열정이 대단하다. 그래도 너무 빠르지 않나?빨리 시작해서 빠른 거다. 친구들은 전부 고시나 취업을 생각했다. 고백하면 취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도 무슨 대기업 오너도 아닌, 금리 몇 프로에 은행을 오간 그야말로 평범한 집안이다. 장학금을 모았고, 아르바이트와 주식투자도 하면서 4년 내내 모은 돈이 6000만원. 첫 사업의 종잣돈이 됐다.
처음부터 P2P금융을 타깃으로 잡았나?염두에 둔 여러 타깃 중 하나였다. 여느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밀고 나갈 사업은 수시로 변했다. 학동역 근처 빌라를 개조한 사무실에서 사업자등록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친구, 후배, 군대 선임 등 알음알음 알던 사람들을 모아 팀을 꾸렸고, 아이디어 회의에 몰두했다. 당시 만들었던 아이템을 떠올리면 모바일에서 이미지나 영상으로 소통하는 앱, AI(인공지능)으로 일정을 관리해주는 앱 등이 있다. 만들고 투자자를 찾아다니며 투자를 유치하는 식이다. 당연히 다 실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팀 분열까지 일어났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자본금이 바닥나고 투자자 유치 못 하니 조직은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그러다 투자자를 만난 건가?아니다. 6000만원을 다 날리고 나서 그냥 포기했었다. 그러자 사무실을 알아봐준 선배가 미국 벤처캐피털에서 사람을 구한다며 소개해줬다.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고, 한국 상황도 잘 아는 신생국(한국) 파견 벤처캐피털 심사역같은 일을 했다. 그러다 다시 창업을 결심했다.
신한퓨쳐스랩에 선정 전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누구보다 짧은 기간인 건 맞다. 창업에 뛰어들자고 시작한 때부터 각종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6년 남짓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운이 좋았다. 모든 경험이 다 필요했고, 다 시의적절하게 다가와 줬다. 마치 창업이 내 길인 양 하늘이 도왔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더 악착같이 확신을 가지고 움직였다.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사람을 채용할 때도 0.1% 가능성으로 한 명을 뽑기 위해 1000명을 만나는 수고스러움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엔 부동산, 기업금융, IT 개발 부문도 활발히 채용 중이다. 부동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겪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투자다.
P2P금융이 주목을 받지만, 회사 측 노력만큼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맞다. 규모를 키워야 하지만 절대 양적인 성장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융업은 재무적인 건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아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막말로 당장 부동산 프로젝트 대출 상품을 두 배 찍어내면, P2P업계 순위(누적 대출액 기준)야 올라가겠지만, 연체는 5배가 늘어난다. 이건 성장이 아니다. 시장이 안 좋을수록 고객이 돈을 벌어야, 고객이 우리를 믿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상품군도 다변화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홈쇼핑 투자상품도 그런 맥락에서 내놨다. 부동산 담보의 정밀한 평가를 위해 프롭테크 기업 빅밸류와도 손잡았다.실제 그의 생각대로 200여 개 P2P금융업체 중 어니스트펀드의 연체관리는 업계에서 가장 엄격한 편이고, 이용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서상훈 어니스트펀드 대표에게 또 다른 인기 비결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솔직해서가 아닐까요. 제 부모님도 무턱대고 브릭스 펀드 가입했다가 절반을 날리셨고, 금리 혜택을 좇아 이 은행 저 은행을 전전하셨죠. 다 재테크를 제대로 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바람이자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솔직하게 다가가고자 했어요. 조직도보다 임직원 프로필을 솔직담백하게 보여줬습니다. 다양한 분야 인재들이 일하는 곳이니 나올 아이디어도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린 거죠.”-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