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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의 對話(9) 한재권 조인그룹 회장 

“식품기업도 글로벌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한국의 농축산업은 흘러간 사양산업 신세다. 특히 축산업은 제대로 된 사육장 하나 건설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토로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이 농축산업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는 것과는 반대다.

▎한재권 회장은 한국이 이미 수축사회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이를 타개할 방안이 글로벌 진출이다.
최근 글로벌 농축산업은 ICT 기술과 인공지능(AI) 등으로 무장한 최첨단 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연간 농업 수출액은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의 반도체보다 큰 규모다. 손욱의 대화 아홉째 순서로 한재권 조인그룹 회장을 만났다. 한 회장은 바른 먹거리로 상징되는 식품산업의 중요성과 업계 발전을 위한 고언을 격정적으로 토해냈다.

손욱: 네덜란드에 가보니 나이 지긋한 노인 두 명이 돼지 2000두를 사육하더군요. 공기정화, 사료 공급, 건강관리 등 모든 게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운용되기 때문입니다. ‘농업강국이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어요. 가까이에 중국과 일본이라는 큰 시장을 둔 우리는 왜 1등 농축산 기업이 없을까요? 안타깝습니다.

한재권: 네덜란드, 정말 부럽죠. 토지를 비롯해 모든 농축산 시설이 규격화돼 있습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일정한 산업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뜻이죠. 또 하나, 정책 자체가 정말 농업 친화적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1차산업, 특히 축산업에 대한 이해 자체가 매우 부족해요. 업 자체에 대한 시민의식이라고 할까, 산업 전반을 바라보는 문화와 인식이 개선돼야 합니다. 정책적 지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요.

손욱: 각종 규제가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빗장으로 지목되는데, 축산업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습니까?

한재권: 단적으로 아무리 좋은 축사를 지으려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지자체마다 축사 신축을 막는 제한지역이 있는데, 대부분 농가에서 2㎞ 이내의 독립된 장소여야 하죠. 설령 적당한 부지를 구해 축사 신축 허가를 신청해도 반대 민원이 거세 웬만해선 허가를 내주지 않아요. 좋은 시장이 있는데도 사업 확대를 위한 투자 자체가 어려운 거죠. 이런 사정은 사실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잘 몰라요. 첨단 양계장을 만들어 품질 좋은 계란을 생산하려 해도 허가를 받지 못해 포기하는 셈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양돈장을 새로 짓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양계장도 마찬가지죠.

손욱: 축산업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듣자니 솔직히 놀랍고 안타깝습니다. 조인그룹은 악조건 속에서도 40여 년간 한 우물을 파오면서 1등 업체로 자리 잡으신 거군요.

한재권: 저희도 지금 시작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노동구조도 문제가 많습니다. 농축산업 같은 경우 인건비를 일본, 중국과 비교하면 한국이 제일 높습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걸 업계에선 다 알고 있죠. 가공공장이나 유통센터 등에 내국인을 채용하려 해도 일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 제한을 획기적으로 풀어달라고 하는 이유죠. 내국인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려 해도 오질 않으니, 인력 아웃소싱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숙련도가 떨어져 생산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죠.

얼마 전 사업차 바레인을 찾았는데, 농가마다 온갖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더군요. 더 인상적인 건 출신 국가별로 임금 수준이 달랐던 겁니다. 고용과 임금에도 철저한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한 사례죠. 조인그룹이 미얀마에 진출했는데, 그곳 노동자 임금이 특근비까지 합쳐 월 15만원에 불과합니다. 한국에서 50만원만 준다 해도 줄을 설 거예요. 채용 미스매치가 해결되지 않는 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이 농업이나 중소기업의 인력 수급을 돕고, 한국에서 새로운 시장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세워야 합니다.

손욱: 외국인 노동자 역할을 강조하셨는데, 이미 전반적인 인구 감소가 확실한 시점에서 주의 깊게 들어야 할 제언이라 생각합니다.

한재권: 한국은 이미 수축사회에 접어들었어요. 식품산업만 해도 먹거리 총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죠. 놀라실만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요? 계란 납품가격이 지난 2년 연속 생산원가 이하입니다. 일반인들은 모르는 이야기죠. 1980년 3700만 명이었던 인구가 2014년 5000만 명을 넘어섰어요. 팽창사회에선 인구와 먹거리 등 모든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죠. 양계장도 계속 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했던 시기보다 훨씬 빨리 시장 수요가 마이너스로 돌아섰어요. 산란계(알 낳는 닭) 적정 수요가 국민 1인당 1마리예요. 한국은 5200만 마리면 충분하다는 뜻이죠. 지금 전국에 있는 산란계가 6500만 마리입니다. 조인그룹도 창업 후 지난 2년간 처음으로 적자를 봤어요. 시장과 산업 전반이 왜곡된 구조에 처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국가가 나서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전환을 유도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해외서 인정받는 식품기업 만들겠다


▎손욱 회장은 “행복지수의 첫째 요건이 먹거리” 라면서 친환경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힘쓰는 조인그룹의 노력에 귀를 기울였다.
손욱: 내수 시장이 포화를 넘어 잉여생산에 처했는데, 이를 극복할 방안은 없습니까?

한재권: 결국 정부와 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합니다. 인구는 계속 주는데 남아도는 양계장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두가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업체 스스로는 고부가가치에 힘써야 합니다. 조인그룹도 자연 방사 유정란, 방사복지 유정란 같은 고부가가치 계란과 가공식품 생산·판매에 주력하고 있어요. 구운란, 계란찜, 에그샌드위치 등을 개발했죠. 이미 내수시장 수축을 피할 수 없으니 글로벌 시장 진출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손욱: 동남아시아 시장은 대표적인 팽창사회입니다. 그만큼 시장 확대 전망도 밝은 것 같습니다.

한재권: 하루아침에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리도 15~20년의 장기 비전을 바라보고 있어요. 인도네시아 20억원, 미얀마와 베트남에서는 50억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해외 진출 5년 만인 올해부터 흑자전환이 예상됩니다. 올해 해외 매출 170억원, 영업이익 10억원을 예상하고 있죠. 동남아는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른 시장입니다. 현지 고용 창출은 물론이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강합니다. 현지 반응도 좋고요. 2050년이면 우리나라 인구가 4500만 명으로 쪼그라들 거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세계 인구는 90억 명이죠. 0.5% 시장에서 초우량 기업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무조건 글로벌로 나가야 하는 이유죠. 2030년까지 20개국, 2040년까지 100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먹거리 청정기업이 제 오랜 꿈입니다.

경영이란 사람을 섬기는 일

손욱: 앞서 잉여생산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웃에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만 해도 1억2000만 명에 달하는 시장이 있고요. 이들 국가에 수출하는 것은 어렵습니까?

한재권: 먹거리, 특히 농축산물은 검역 관련 규정이 매우 까다롭고 엄격합니다. 안전이 최고의 가치죠. 검역법의 경우 국제 표준이 있지만 국가마다 표준이 제각각입니다. 수출입이 이뤄지려면 국가별로 당국끼리 서로 합의해야 하죠. 예를 들어 중국에 우리 계란이나 우유가 수출되면 현지에선 최고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우리 농축산물 시장에 완전 개방을 요구할 수 있죠. 먹거리라는 특수성 때문에 무조건 글로벌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정답은 아닙니다. 대신 우리 고유의 기후 환경에 맞는 작목을 특화하는 것이 더 유리한 방법이죠. 예를 들어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산 사과와 배, 딸기는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죠.

손욱: 먹거리가 중요한 게 ‘잘 먹어야 잘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행복지수의 첫째 요건이 먹거리라고 하더군요. 계란 외에도 친환경 고부가가치 식자재 개발에도 힘을 쏟고 계십니다.

한재권: 5년 전, 네덜란드의 최신 시설을 벤치마킹해 충남 홍성에 토마토 농장을 세웠습니다. 100억원을 들여 일조량과 온도, 환기가 모두 자동화된 설비를 갖췄죠. 생산성과 품질이 어떤 농장보다 우수하다고 자부합니다. 3년 전부턴 전북 고창에 최첨단 장어 양식장을 세워 수산업에도 진출했습니다. 계란이든 농수산물이든 대부분의 기업이 유통에만 관심을 쏟고 원물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적은 게 사실이에요. 생산 과정 전반에 대한 컨트롤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명색이 식품기업이라면 원물부터 뛰어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원재료가 좋아야 좋은 상품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죠. 계란도 철저한 위생관리하에서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가 지금의 성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손욱: 먹거리에 대한 회장님의 비전과 경영 철학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말씀을 듣고 있으니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수도 철학’이 떠오릅니다. 가전제품을 수돗물처럼 싸게 만들어 전 세계인을 행복하게 만들자는 비전이었죠. 한 회장님의 경영 비전은 무엇입니까?

한재권: 정말 좋은 먹거리, 올곧은 먹거리죠. ‘안전한 먹거리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가 조인그룹의 기업 미션입니다. 이를 실현할 핵심 가치 중 첫 번째가 정직인 이유죠. 먹거리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죠. 나머지 핵심 가치는 섬김과 열정입니다. 직원들에게도, 제 아이들에게도 ‘경영이란 사람을 섬기는 일’라고 항상 강조합니다. 고객은 물론 기업 구성원 모두를 섬겨야 하죠. 직원들에게 무슨 책임이 있을까요. 경영의 최종 책임은 오롯이 CEO에게 있습니다.

※ 손욱 전 회장은… 40여 년간 삼성그룹에서 근무한 정통 ‘삼성맨’이자 국내 최고의 기술경영자(CTO)로서 평생을 혁신에 전념해왔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최측근에서 보좌했고, 삼성그룹의 프로세스 혁신과 정보 시스템 구축도 그의 작품이다. 삼성인재개발원장, 삼성종합기술원장 이후 농심에서 현역 생활을 마친 손 전 회장은 현재 한국형리더십연구회 회장, 감사나눔운동 전파 등 사회문화 운동으로 또 다른 혁신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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