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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권 조인그룹 회장] 1000권 책이 일깨운 기업가의 길 

 

“이대로는 꿈을 이룰 수 없다”며 절망하던 스무 살 청년이 무작정 고향을 떠나 상경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청년은 고향을 떠난 지 40여 년 후 국내 최대 계란 생산·유통업체의 수장이 됐다. 학교가 아닌 현장과 책에서 터득한 경영 철학은 이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경영 자산이 됐다.

▎한재권 회장은 학교 대신 책과 현장에서 경영을 익혔다. 자동차 뒷좌석이 그에겐 도서관이다.
둥그런 계란 모양을 본떠 지은 3층 건물 외벽이 시선을 압도한다. 사옥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은빛 계란 조형물, 계란을 모티프로 꾸민 회화 작품이 또 한 번 눈길을 잡아끈다. 국내 최대 계란 생산·유통 기업인 조인그룹 본사다. 조인 자체 농장과 계약생산 농가에서 한 달에 생산하는 계란만 약 8000만 개에 달한다. 1년으로 치면 9억 개가 넘는다.

조인은 자체 브랜드 ‘누리웰’을 비롯해 CJ와 이마트, 롯데, 홈플러스, 삼성웰스토리 등 대기업에 계란을 납품한다. 최근에는 이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마켓컬리, 쿠팡 등 온라인 유통도 활발하다. 국내에서 계란을 판매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조인이 생산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 2위 기업이 조인 매출액의 3분의 1 수준임을 감안하면 명실상부한 계란 1등 기업이다. 이 밖에도 친환경 토마토 재배 및 유통, 첨단 시설을 통한 장어 양식 등 농수산식품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매출 규모가 2500억원에 달하는 국내 식품업계 숨은 강자가 바로 조인이다.

한국 최고의 계란 기업을 일군 이는 한재권 회장이다. 1979년 서울 내곡동에 작은 양계장을 세워 사업에 뛰어든 한 회장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이대로는 어떤 꿈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상경한 게 스무 살 무렵. 10년간 양계장에서 닭똥 냄새를 참아가며 모은 돈으로 작은 부화장을 열었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업계 리더로 명망을 얻었다. 어림잡아 1000권이 족히 넘는 ‘독서 학습’으로 경제·경영을 스스로 익혔고, 인터넷 동영상으로 영어를 배웠다. 전경련이나 세계경영연구원(IGM) 등의 경영 관련 강연도 그의 ‘학습’ 목록에 빠지지 않는다. 정직과 섬김, 열정이라는 그룹 핵심 가치가 탄생한 배경이다. 그에겐 자동차 뒷좌석이 도서관, 휴대폰이 스승이다.

“내겐 자동차 뒷좌석이 도서관”

한 회장은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전쟁의 참화가 모든 것을 삼켰던 시절, 시골 농가가 으레 그랬듯 그의 부친도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끼니 때우기에 급급한 형편에 위로 형과 아래로 여동생을 둔 둘째 아들에게 애당초 보살핌의 손길이 전해지기란 어려웠다. 미군이 나눠준 강냉이로 죽을 끓여 먹고, 솔방울을 주워 군불을 때던 형편에 배움이란 건 그저 허황된 꿈일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이 결코 민망하진 않아요. 그게 제 삶인걸요. 당시는 중학교만 가려 해도 과외 받고 시험 쳐야 했던 시절입니다. 사실 공립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차석을 하고 장학금까지 받았지만 결국 진학을 포기해야 했어요.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서였죠.”

갓 14살이 된 소년의 손엔 책 대신 쟁기가 들려 있었다. 한 회장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스무 살 되던 해에는 무작정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던 사촌 누이 집으로 올라왔다. 변변한 졸업장 하나 없는 청년이 처음 잡은 직장이 바로 양계장이었다. 주경야독으로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했고, 중학교 검정고시와 방송통신고등학교도 마쳤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대학 진학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어요. 대신 양계장에서 병아리 부화 기술을 익혔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선택이 오늘의 저를 만든 계기가 됐어요.”

무일푼으로 상경한 청년이 학업 대신 기업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 건 1975년 무렵이었다. 부화 기술을 익힌 후, 규모가 더 큰 서울 상계동 양계장으로 직장을 옮겼고, 이곳에서 기술은 물론 거래처와 고객 관리를 익혔다. 한 회장은 “못다 이룬 학업의 꿈을 사업에서 찾겠다는 희망을 다시 품었다”고 회상했다.

“내 사업을 직접 꾸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제일 먼저 한 게 운전면허 취득이었습니다. 1979년 들어 강남 내곡동에 건물을 얻고 부화사업을 비로소 시작했죠. 부화를 위해 종계를 위탁사육하고, 종란을 가져다가 병아리로 부화해 팔았어요. 그 병아리가 바로 우리가 먹는 육계입니다.”

1년 9억 개 달걀 생산하는 1등 기업


▎경기도 용인 본사 GP(포장·등급선별) 센터 라인에 선 한재권 회장. 정직한 먹거리는 조인의 핵심 미션이다.
입을 것, 먹을 것 줄여가며 어렵게 모은 돈 1000만원과 곗돈을 부어 받은 돈을 합쳐 자본금 2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 10·26 사태가 터졌고 한동안 계엄령이 내려 닭 판매가 완전히 막혔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여파로 병아리 값이 3분의 1로 폭락했고, 연말이 되니 수중에 있던 돈도 다 떨어져 무일푼이 되다시피 했다. 한 회장은 “함께 일하던 친구 부모님이 1000만원을 빌려주셨는데, 그게 아니었으면 오늘날 조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980년대 접어들자 새 세상이 열렸다.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난 1980년을 제외하곤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이 당연시될 만큼 호황이 찾아왔다. 급격한 인플레이션 덕에 1년에 두 번이나 직원 봉급을 올려주기도 했다. 인구, 소득수준 등 경제 전반의 질과 양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계란과 육계 소비량도 큰 폭으로 늘었다. 병아리 부화와 육계에서 출발한 한 회장도 알을 낳는 산란계 병아리에 이어 산란계 농장, 계란 유통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오늘날 조인그룹이라는 외형을 갖춰가기 시작한 건 1993년 들어서다. 지인에게 담보를 빌려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계열화사업자금 35억원을 대출받았다. 그동안 모아둔 자금을 더해 50억원을 투자해 경기도 여주에 40만 수 규모의 산란계 농장을 세웠다. 이어 평택에도 5만 수 규모로 종계 육성농장을 신축했다. 여주와 평택 농장 모두 큰돈을 들여 당시 유럽과 미국의 첨단 설비를 도입해 선진 영농 시스템을 갖췄다.

2015년 들어선 충남 홍성에 100억원을 투자해 토마토 온실 재배 농장을 세웠다. 역시 자동화 온실 재배 시스템을 갖춘 첨단 농장이다. 비슷한 시기 연간 500~700톤가량을 생산하는 장어 양식 사업도 시작했다. 덮밥용으로 가공한 훈제장어가 주요 품목이다. 한 회장은 계란과 농수산물을 합쳐 올해 연결매출액을 3800억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신용과 신뢰로 위기를 넘다


▎한재권 회장은 “손에 책을 들기 시작한 이후 직원과 기업, 일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고도성장기 수혜를 받으며 승승장구만 이어진 건 아니다. 대다수 기업가가 그렇듯, 한 회장도 수차례 위기를 헤쳐오며 단단한 굳은살을 얻었다. 창업 초기 겪은 뜻하지 않은 계엄령 여파가 그랬고, 1997년에는 누구도 피해 가지 못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때는 부도 직전까지 갔어요. 있는 계란을 다 팔아도 사룟값에 못 미치더군요. 온 나라가 그랬듯이 저도 더는 버틸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한 회장은 사업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신용과 신뢰 덕분에 극복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창업 초기엔 믿고 의지하던 친구(부모님)의 도움 덕에 위기를 넘겼고, IMF 위기 역시 그간 쌓아온 신용이 위기 탈출의 열쇠가 됐다는 설명이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사채를 많이 얻어다 썼습니다. IMF 사태가 터지고 나니 당장 이자 낼 돈이 없더군요. 그대로 있다가는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었죠. 채권자들을 찾아가 ‘1년간만 이자를 유예해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데, 웬걸요 ‘당신이라면 그렇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채권자 중 단 한 명도 압류를 거는 이가 없었습니다. 6개월 만에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이자를 두 달 치씩 갚아나갔죠.”

한 회장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신뢰와 신용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았다고 말한다.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회사를 일구기는커녕 사업 실패의 쓴잔을 맛볼 수밖에 없었을 거란 설명이다. 한 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현금구매’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스스로 “돈 주는 건 우리가 1등”이라는 자부심이 크다. 납품사가 돈 걱정 없게 하자는 게 그의 오랜 소신이다.

“젊을 때 겪어보니 돈 잘 주는 고객이 제일이더군요. 조인과 거래하는 곳이라면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대금을 치르게 하자고 마음먹었죠. 요즘이야 온라인 거래가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대금 지급일이 오면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송금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좋은 물건을 살 수 있고, 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매출이 3000억원이면 2500억원은 외부에서 사들여야 합니다. 계약농가 계란은 물론이고 사료, 약품, 백신, 포장재 등 수없이 많은 거래처와 공생해야 하니까요.”

책에서 배운 일류 기업의 길

병아리 부화장에서 시작한 작은 농장은 피땀 어린 노력 끝에 국내 계란 생산 1등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쌓아둔 배움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사업이 잘될수록 커져만 갔다. 한 회장은 나이 마흔에 접어들자 이제껏 잊고 지내던 갈증이 커졌다고 말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굳이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더군요. 아무리 사업이 잘나가도 관성과 타성에 젖은 삶으로는 제대로 된 꿈을 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적으로 학업이 어려우니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죠.”

주변 기업가들의 소개로 가입한 독서클럽이 시작이었다. CEO와 교수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서 매주 한 권씩 책을 읽으며 토론에 나섰다. 삶의 현장에서 얻은 지식과는 다른, 또 다른 지혜의 숲이 책장 사이사이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됐다. 신문 서평도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 독서모임에서 철학과 문학 등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데 열중했고, 스스로는 경제경영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재무제표를 모르는 CEO는 눈먼 자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회계 관련 서적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독학에 나섰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배움의 즐거움은 지금까지 어림잡아 1000권이 넘는 독서 리스트를 낳았다.

“손에 책을 든 지 몇 년 지나니,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구상이 달라지더군요.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 사회에 대한 기여, 구성원의 행복을 고민하게 된 건 독서가 제게 선물한 운명일 테지요.”

한 회장은 “철학이 부재한 삶을 깨달은 순간 커다란 충격을 받았노라”고 고백했다. 기업을 이끄는 CEO라면 사업을 하는 이유와 목적, 즉 기업 이념을 바로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었다.

“1등 기업은 전략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류 기업은 철학 없이는 안 돼요. 천년을 가는 기업, 지속성장이 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일, 사람은 가도 기업은 영속하는 뿌리를 만드는 게 지금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세워야 했죠.”

조인의 기업 미션은 ‘정성을 담은 먹거리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업’이다. 한 회장은 “조인은 먹거리 기업”이라며 “먹거리에는 연습이 없다”고 강조했다.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경각심이 모두 담긴 말이다.

“먹거리에 연습은 없다”

기업의 사명을 이루기 위한 핵심가치에도 한 회장이 꿈꾸는 먹거리 기업에 대한 철학이 녹아 있다. 첫째, 정직이다. 모든 걸 정직하게 하는 삶이 불가능할지라도, 조인에서 생산하는 먹거리만큼은 정직하게 내놓자는 다짐을 담았다.

그다음은 섬김이다. 한 회장은 기업의 존재가치를 ‘모든 이해관계자의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은 물론 임직원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 전체의 행복을 위한 활동이 기업의 본령이라는 의미다. 지난 2003년 법인전환을 계기로 시행한 성과급 제도는 구성원이 행복한 기업을 만들려는 의지를 담은 사례다. 한 회장은 매해 세전이익의 10%를 연말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전 직원과 약속했다. 최근 2년간 업계 전반적인 공급과잉으로 인해 성과급이 지급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곤 매해 회사의 이익을 직원들과 공유해왔다. 업계에선 조인을 ‘축산업계 삼성’이라 부른다. 기본 급여 자체가 업계 평균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CEO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일까요. 사업 잘해서 이익 많이 남기고, 그만큼 직원들에게 성과로 돌려줄 때입니다. 직원이 행복한 회사에서 좋은 제품이 나옵니다. 고객 만족과 가치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바탕이죠. 근래 2년간은 솔직히 직원들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올해는 턴어라운드가 예상돼 고개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회장은 올해 우리 나이로 ‘종심(從心)’을 맞았다. 병아리 부화에 재미를 느꼈던 20대 청년은 그 사이 계란 생산·유통 1등 기업의 수장이 됐다. 정직한 먹거리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기업가의 신념은 일상의 철학에서도 흐트러짐이 없다. 매일 아침 5시 반이면 스트레칭과 팔굽혀펴기로 시작하는 하루는 사업을 시작한 지 47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루틴이다.

“6시간 정도 수면시간을 꼭 지키려 합니다. 아침 기상과 동시에 스트레칭을 하고 팔굽혀펴기를 80개 정도 해요. 스쿼트 200개도 매일 하는 운동이죠. 올해 일흔이지만 아직 복근이 있어요. 못 해도 여든까지는 복근을 유지하는 게 꿈입니다.”

한 회장이 철저하게 건강관리에 힘쓰는 이유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서다. 죽는 날까지 다른 사람을 어렵게 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뜻한다. 한 회장은 “죽고 사는 건 신의 영역”이라며 “조금이라도 남에게 득이 되는 삶을 살다 가고 싶다”고 말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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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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