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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성 티몬 의장이 만난 스타트업] 최정이 고스트키친 대표 

극한직업 ‘배달 외식업’ 리스크 잡는 플랫폼 

한국 증시엔 이상하게 요식업으로 상장한 기업이 없다. 백종원의 더본코리아도 국내 외식업계 1위 기업이지만, 상장이 쉽지 않다. 그만큼 이윤 내기 어렵고, 쉽게 망하는, ‘레드오션’ 중에 최고봉에 가깝기 때문이다. 극한업종에서 한 투자자와 창업자가 머리를 맞댔다.

▎한국 요식업계는 극강의 ‘레드오션’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신현성 티몬 의장(왼쪽)과 최정이 고스트키친 대표가 업계 ‘판’을 바꾸려 한다.
1인 가구 600만 시대, 한국 요식업 판도가 변했다. 음식점업과 식품제조가공업 영역이 쪼그라든 반면, 배달과 배송 서비스, 라스트마일(최종구간 이동) 물류 서비스가 고도화됐다. 여기서 생겨난 게 ‘공유주방’이다. 공유오피스처럼 저렴한 비용으로 주방을 빌려줘 누구나 쉽게 음식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도입 초기엔 곧바로 시장에 파고들진 못했다. 기존 음식점업이 위치나 손님 맞을 공간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고스트키친’, ‘개러지키친’, ‘위쿡’, ‘심플키친’ 등 여러 공유주방 업체가 생겨났다. 하지만 한동안 기관투자자들도 투자를 꺼렸다. 왜일까.

“요식업 자체가 리스크가 상당히 큰 시장입니다. 대다수 기관이 보는 시선도 비슷할 겁니다. 특히 국내 외식산업은 식당이 생기는 만큼 문을 닫는 초경쟁 시장입니다. 초기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폐업 시 손실도 큽니다. 목 좋은 곳에 매장을 내도 높은 임대료, 고정 인건비, 과당 경쟁에 시달리다 망하기 십상입니다.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도 증시에 상장하기도 어렵고, 식당 몇 개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짙게 깔린 탓도 있죠.” -신현성 티몬 의장

하지만 배달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고스트키친(Ghost Kitchen, 배달 주방)은 이 업종에서 기관투자를 끌어낸 첫 번째 국내 스타트업이 됐다. 지난해 9월 기관투자자로부터 신규 투자 92억원을 유치했다. 이 투자엔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메가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 데브시스터즈벤처스, 패스파인더H, 우미건설, 아이파트너스가 새롭게 합류했고, 기존 투자사인 패스트파이브와 슈미트는 후속 투자로 참여했다. 이보다 앞선 2월엔 패스트인베스트먼트, 베이스인베스트먼트, ES인베스터, 슈미트 등 기관투자가로부터 21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이로써 지난해 고스트키친 누적 투자액은 120억원을 넘겼다. 기관투자자들이 왜 유독 고스트키친에만 마음을 열었을까.

“고스트키친은 IT를 베이스로 하는 하드웨어 플랫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주방을 공유하고, 이용료를 받는 공간이 아닙니다. 물론 달라진 시장 분위기도 한몫했습니다. 2018년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이 ‘공유주방’ 사업을 한국에서 벌이겠다고 한 직후였어요. 게다가 제가 우아한형제들에서 투자유치(IR)와 배민수산, 배민키친 등 신사업 서비스 출시를 주도했던 경험을 높이 사주신 듯했습니다. 점차 폭주하는 배달음식 시장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는 잠재력(?) 같은 것 말이죠.(웃음)” -최정이 고스트키친 대표*

* 고스트키친은 ‘단추로끓인수프’라는 법인이 운영하는 공유주방 서비스 이름이다. 최정이 단추로끓인수프 대표로 지칭해야 하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스트키친으로 통일한다.

지난 2월 17일 고스트키친 강남점에서 만난 신현성(35) 티몬 의장과 최정이(45) 고스트키친 대표가 차례로 답했다. 기관투자를 받는 측면에선 고스트키친이 경쟁업체보다 한 발 앞선 셈이다. 최 대표가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했던 이력도 화제다. 지난해 말 배달앱 요기요의 모회사이자 독일 상장사인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가 우아한형제들의 주주 지분 87%를 기업가치 40억 달러(약 4조7000억원)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DH 경영진으로 올라선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글로벌 거물이 됐다.

잘나가던 배민을 그만둔 최 대표는 고스트키친 창업자로 다시금 스타트업계에 발을 들였다. 고스트키친은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의 1, 2호점에 이어 송파에 3호점까지 연 상황. 배민, 요기요 등 배달 앱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결제, 주문한 음식이 라이더에게 갈 때까지의 과정을 소화한다. 입점한 업주는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에 설치된 태블릿PC 화면을 보고 요리 시작 버튼을 누르면 된다. 별도의 솔루션이 깔린 PC 사용법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최 대표는 여기에 들어온 주문을 토대로 쌓인 데이터를 가지고 메뉴 개발, 마케팅, 광고 등 배달음식점에 필요한 모든 부분의 컨설팅과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수년간 품어온 생각을 현실화하는 데 배민이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줬다면, 투자 받을 물꼬를 트는 데는 신현성 티몬 의장이 힘을 썼다. 하지만 신 의장이 처음부터 선뜻 투자에 나섰던 건 아니다. 두 사람의 인연부터 물어봤다.

언제 만났나.


최정이 고스트키친 대표(이하 최정이): 2017년 겨울쯤인 것 같다. 신현성 의장이 공동 창업자로 있는 패스트트랙아시아 계열 회사 중 투자 관련 법인인 패스트인베스트먼트의 투자를 받고 싶어 지인에게 소개를 부탁했다. 그 와중에 신 의장이 베이스인베스트먼트를 차렸고, 투자를 유치하러 갔을 때 만났다. 그때 창업 테마는 공유주방이 아니라 배달음식점이었다. 당시 요식업에 대한 송곳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결국 투자는 받지 못했다. 그러다 1년여 시간을 보냈고, 비즈니스 방향을 공유주방으로 틀면서 2019년 들어서 투자가 이뤄졌다. 신 의장을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숱하게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교감한 터였다.

무엇이 궁금했나.

신현성 티몬 의장(이하 신현성): 공유주방이 가진 근본적인 가치가 뭔지 묻고 싶었다. 공유주방이 활성화되면 요식업 시장의 판도가 바뀔 거란 점에선 공감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IT와 데이터는 어떻게 활용하고, 업계를 혁신하는 데 설득력 있는 접근법인지 궁금했다. 물론 늘 그렇듯 정답은 없다. 비즈니스를 직접 일궈나갈 CEO가 세운 가설과 각종 변수에 맞설 문제 해결 능력이 성패를 좌우하니까.

공유주방을 ‘IT를 베이스로 하는 하드웨어 플랫폼’이라고 표현했다.

최정이: 그렇다. 경험의 산물이라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IT업계에서 일했다. 비록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아니지만, 하드웨어 개발자였고 IT를 베이스로 하는 배민에서도 2년간 IR과 신사업을 담당하며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창업해야겠다는 의지를 꺾지 못하고 배민을 나와 배달음식점도 차렸다. 물론 망했지만, 그간의 경험이 고스트키친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배달 시장에선 공유주방이 대세라는 확신도 섰다. 음식점은 자리 회전율에 집착하지만, 배달음식점은 무한대로 주문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나조차도 배달음식점을 직접 차리면 부딪힐 수많은 문제를 간과했다. 그걸 해결해주고 업주는 요리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먹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이곳으로 쏟아져 들어올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었던 셈이다.

이런 얘기에 공감한 건가.

신현성: 그렇다. 주방만 임대하는 점에 주목했다면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방이란 공간을 인프라, 플랫폼으로 보고 이곳에 쌓이고 전달되는 데이터를 가지고 고스트키친 사업주와 배달음식을 시키는 이가 어떻게 하면 유기적으로 닿게 할지 그 과정을 본 거다. 모든 플랫폼이 그렇듯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말처럼 쉽게 엮이지 않는다. 최 대표도 데이터분석을 기반으로 주문 자체를 늘리기 위해 게임회사에서 데이터분석 전문가를 영입했다고 들었다. 이런 일련의 접근법에 공감한다.

평소 신 의장과 어떤 대화를 나누나.

최정이: 비즈니스 확장 같은 얘기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되레 내부 조직 문제를 두고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직원은 늘어나는데 뭔가 조직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과 자료만으론 알 수 없었기에 신 의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는 티몬을 창업했다가 매각했고, 그걸 다시 사들였다. 몇 명에서 시작한 조직부터 수백 명이 일하는 조직까지 그 모두를 경험해본 인물이다. 실제 사업을 해보니 대면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무한대로 늘리는 건 불가능하더라. 조직이 아무리 커져도 관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 의장 조언을 들으니 내가 헛똑똑이였음을 알게 됐다.

조직관리 말고 힘든 점은 없었나.

최정이: 매 순간이 쉽지 않다.(웃음) 조직관리부터 성과관리에 이르기까지 주먹구구식이면 절대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걸 경험상 알기에 ‘플레이북’, 일종의 매뉴얼 작업에 공을 들인다. 분명 외형적으로는 지점과 조직, 입점하는 가게들이 늘어나는 등 커지고 있다. 그런데 프로야구에서 ‘2년 차 증후군’ 또는 ‘루키 신드롬’같이 성적이 제대로 안 보이더라. 막연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기엔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가는 뒤처질 게 뻔했다. 다시금 신 의장께 조언을 구했다. 다행히도 평소 내가 일하는 스타일에 맞아서 빠르게 흡수했다.

어떤 얘길 해줬나.

신현성: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느 기업이 그렇듯 외형적으로 성장하는 걸 막연하게 잘된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앞으로 성장할 거란 낙관주의(?)에 빠져 있을 때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지점이나 조직 등 구획별 유닛 이코노믹스의 기준점을 구체화하는 것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지점에서 이런 인력과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고 최소 이 정도 매출과 활용도가 나와야 흑자라는 식의 기준 말이다. 부서에 목표 성과를 줄 때도 같은 식이다. 그래야 단계별 성장이 가능하고, 스케일업 가능한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입점하는 가게들의 성과도 중요하지 않나.

최정이: 당연하다.(웃음) 입점하는 가게 사장님들은 매출만 잘 나오면 불만은 없다. 식당을 창업하면서 의지할 곳이 없어 우릴 택한 건데 잘돼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늘 소통이 문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간담회 형식을 빌려 업주들을 만난다. 때로는 저녁에 소주 한잔하기도 하면서 이분들이 겪는 애로 사항을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한다. 치밀한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함께 사업을 일궈나가는 이들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매출이 안 나오는 곳도 분명 있겠다.

최정이: 분명 문제가 있다. 그게 보이고, 그걸 해결해주는 팀도 만들었다. 하지만 수용하지 않는 곳이 있다. 누군가 나한테 그랬다. ‘백종원 얘기도 안 듣는데 네 얘기 듣겠냐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데이터를 들고 간다. IT 출신들만 모인 팀이 가면 설득력이 떨어질까 봐 요리사 출신도 뽑았다. 잘 모르면 배우고 개선하면 된다. 하지만 그냥 입점 업체만 늘려서 아르바이트로 돌리고 외부에서 이윤만 가져가려는 업체는 오래갈 수 없다. 결과적으로 고스트키친에서 실패하는 업주가 없었으면 한다.

외식업도 산업이 될 수 있을까.

신현성: 다시 말하지만, 정답은 없다. 최 대표에게도 외식업과 관련해서 조언하긴 어렵다. 투자자 입장에서 다양한 회사 CEO를 만났고, 그들의 성패를 옆에서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지속해서 운영하고 시장 파이를 키워가는 이들의 모습을 들려준다. CEO는 누구보다 뛰어난 능동적인 학습자다. 내 경험 중 일부분만 들려줘도 곧바로 자기 일과 업에 투영한다. 분명 사업을 하다 보면 흔들릴 때가 많다. 나조차도 실패할 때가 많다. 하지만 큰 회사를 만들거나 생태계를 바꿀 플랫폼을 만들려면 흔들리지 않을 철학도 세워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최 대표도 창업계에 발을 들인 지 벌써 20년 차다. 2004년 디빅스 플레이어를 만드는 회사를 차렸을 때도 그의 옆엔 장병규 크래프톤 회장이 투자자, 이사회 멤버, 액셀러레이터 역할까지 자처했었다. 사업을 넘기고 장 회장 소개로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했다. 그곳 IR팀에서 전략투자를 담당하는 콥뎁(CorpDev) 업무도 했고, 회를 배달하는 ‘배민수산’과 공유주방인 ‘배민키친’ 등 신규 사업을 내놓을 수 있도록 ‘역할의 벽’을 깨준 김봉진 대표의 조력도 있었다. 이번엔 신현성 티몬 의장이 최 대표에게 곁을 내줬다. 외식업에 대한 노하우 없이 공유주방만 만들면 부동산 임대업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에도 말이다. 배달형 공유주방이 단순히 주방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주문, 포장, 배달, 고객 서비스, 매출 확대를 위한 컨설팅 등 모든 운영 과정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될 거란 믿음 때문이다. 최정이 고스트키친 대표도 공감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두 사람은 배달형 공유주방이 단순히 주방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주문, 포장, 배달, 고객서비스, 매출 확대를 위한 컨설팅 등 모든 운영 과정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될 거란 믿음을 갖고 있다.
“수많은 IR과 인터뷰에서 제 경력과 사업 논리를 설파했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숱하게 망하고 다시 생기는 외식 자영업을 지속할 수 있게….’ 제가 이 사업을 하는 이유입니다. 배달도 해보고, 음식점도 망해보고, 짧지만 굵었던 경험을 해보면서 믿음이 생겼습니다. 온전히 자영업자가 원하는 걸 고민하는 동력이기도 하죠. 실제 자영업자를 고객 삼아 MRO(기업용소모폼, 산업용자재)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 고스트키친이 인프라, 아니 진정한 플랫폼이 되는 게 제 꿈입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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