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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열정(9) 윤동섭 강남세브란스병원장 & 허종기 강남세브란스병원 치과병원장 

코로나19와 사투 벌이는 의료계 두 수장 

고교 선후배는 병원에서 동료로 만났다. 그리고 30여 년 후 두 사람은 서울 강남권의 대형 대학병원인 강남세브란스를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을 비롯한 의료진 2000여 명과 병원 임직원이 사력을 다해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 서 있는 윤동섭 강남세브란스병원장(왼쪽)과 허종기 강남세브란스병원 치과병원장.
“긴박했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연일 쉴 새 없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우리 의료진에는 국내 감염관리학 부문의 리더급 의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고, 메르스 이후 준비를 철저히 해왔습니다. 병원 임직원부터 환자 모두의 건강이 최우선이란 점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 윤동섭 강남세브란스병원장

“의료진과 환자 모두 메르스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조치한 통제 절차를 모두가 잘 이해했고, 잘 따라줬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구강을 치료하는 입장에서 체온을 몇 번 더 재고, 엄격한 동선 분리에 나섰음에도 누구 하나 불평불만 하지 않았습니다.”
- 허종기 강남세브란스병원 치과병원장

지난 3월 16일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이하 강남세브란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올 초부터였다. 강남세브란스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설 연휴 전날인 1월 20일 코로나19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윤동섭(59) 강남세브란스병원장과 허종기(54) 강남세브란스병원 치과병원장이 그곳에 있었고,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퇴치 전쟁이 떠올랐다. 강남세브란스는 메르스는 물론 코로나19 확산 차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병원이다.

수십 년간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던 두 사람에겐 코로나19 극복은 의사로서 숙명이나 다름없다. 두 사람을 비롯한 의료진 2000여 명과 병원 임직원이 사력을 다해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었다.

코로나, 메르스도 뚫지 못한 ‘안전병원’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강남세브란스는 ‘안전병원’으로 유명했다. 평소 국내외 국제인증을 획득해 감염관리에 만반의 준비를 해온 덕분이다. 2010년 4월 국내 종합의료기관으로는 4번째, 서울 강남권 병원으로는 최초로 국제의료기관평가(JCI) 인증을 받았다. JCI는 전 세계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3년마다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 등 수십 가지를 비롯해 1200여 개 평가 항목을 통과해야 인증서를 준다. 특히 이 중에서 ‘환자안전’ 항목인 감염관리 활동 부문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통과하려면 정교한 절차를 마련해야 하며, 의료진 모두가 수십 번씩 실전 같은 훈련을 해야 한다. 손을 씻고, 소독하고 청소하는 과정까지 평가 항목에 포함돼 있을 정도다. 병원 구성원의 열정 없이는 인증 통과가 불가능한 셈이다. 인터뷰 당일에도 강남세브란스는 출입문 두 곳을 제외하곤 모두 폐쇄했고, 문진표 작성, 체온 측정 등 검역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절차를 거쳤다는 스티커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엄격한 통제 앞에서 병원 구성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전병원’이란 자부심 외에 이곳엔 남다른 사연도 있다. 서울성모병원(1980년), 아산병원(1989년), 삼성서울병원(1994년)과 더불어 4대 강남 병원으로 꼽히는 강남세브란스(1983년)는 옛 서독에 파견됐던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의 피와 땀이 서린 1500만 마르크가 쓰인 곳이다.

사연은 이렇다. 1960~70년대 서독 정부가 고용한 1만여 명이 넘는 파독 간호사의 귀국 후 일자리가 문제였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독일에 간 간호사는 1만여 명. 한국에 돌아왔지만 일할 병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서독은 낮은 이자로 1500만 마르크 차관을 제공하고, 이 돈으로 한국에 병원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서독 차관으로 지은 강남세브란스


1975년 당시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김효규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게 얘기했고,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가 종합병원 건설 예정지로 정한 곳에 강남세브란스(당시 영동세브란스) 병원을 지었다. 강남 허허벌판에 올라선 병원은 2008년 서독 차관을 전액 상환했다.

깊은 애환만큼이나 강남세브란스의 진료 수준도 국내 최고를 자부한다. 한국에서 연간 1000여 명이 앓는 대동맥 질환의 경우 전체 환자의 3분의 1 정도가 이곳에서 치료받는다. 1984년엔 새로운 기법의 척추 수술 성공, 1996년 폐 이식 수술, 1999년 근육병 환자에게 근육세포이식 수술, 2003년엔 630g 극 저체중아에 대한 장천공 수술을 국내 최초로 실시해 성공했다. 최근엔 세계 최초로 개발된 희귀 근육병 유전자 치료제를 국내 환자에게 가장 먼저 투여하기도 했다.

윤 병원장은 “갑상선, 척추 분야에서 수술이나 진료 면에선 세계 최고”라며 “강남세브란스 내 암병원, 척추병원, 치과병원, 심뇌혈관병원 4개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이고, 호흡재활과 미토콘드리아 질환 등 희귀 질병 분야의 경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연구 성과를 보유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윤 병원장 자신도 한국에서 췌장암 수술 명의 중 한 명이고, 국내 최초로 췌장암 로봇 수술에 성공한 의사다. 치과계 메인 학회인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 보험이사와 최대학회인 대한구강악안면임플란트학회(KAOMI) 부회장으로도 활동 중인 허 원장도 턱관절 분야에선 국내 최고 권위자다.

두 원장의 ‘행복병원 만들기’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으로 성장한 강남세브란스병원은 ‘행복병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윤동섭 병원장은 구성원의 자부심 키우기에 집중하고, 허종기 원장은 조직원들의 얘기를 들으러 병원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종합병원 수장 자리에 오른 두 사람의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병원장과 허 원장은 경남고 5년 선후배다. 고교 시절엔 서로의 존재를 몰랐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치과대학을 다니면서 알게 됐다. 사석에선 각별한 사이지만, 공적인 자리에선 예를 지켰다. 허 원장은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숱하게 밤샐 때 큰 힘이 돼준 선배”라며 “30여 년이 지나 병원장님 되셔서 만나니 몸가짐이 조심스럽다. 제가 먼저 원장이 된 덕에 특혜 의혹을 벗어나 천만다행(웃음)”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허 원장은 2017년 3월 강남세브란스 치과병원 원장에 부임했고, 윤 병원장은 2018년 8월 강남세브란스 전체를 총괄하는 병원장 자리로 옮겼다.

뛰어난 진료 수준이나 두 사람의 친분으로 병원 운영이 수월해지는 건 아니다. 상급종합병원, 특히 대학병원의 경우 진료뿐만 아니라 연구, 교육, 경영까지 기업 못지않게 복잡한 곳이다. 두 사람이 리더십을 펼치는 건 그만큼 고되다. 자칫하면 의료진, 환자, 임직원, 연구직, 교육생까지 모두 따로 노는 삭막한 조직이 될 수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병원이 되려면 모두를 아울러야 한다. 우선 둘은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조직과 소통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른바 ‘행복병원 만들기’다. 윤 병원장은 크게 강남세브란스 조직원의 자부심 키우기에 집중했고, 허 원장은 조직원들이 원하는 바를 듣기 위해서 뛰어다녔다. 직원 만족도를 높이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나 거창한 조치보다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윤 병원장은 “과거 우리는 병원에서 밤새워서 수술하고 마냥 헌신하는 게 전부인 줄 아는 때가 있었다”며 “병원과 병원 구성원, 의료진과 환자 사이가 ‘갑을 관계’였던 시대는 끝났다. 환자를 고객으로 대하는 진료 문화가 정착됐고, 의료 서비스 제공의 최전선에 서 있는 구성원의 직장 만족도도 중요한 요소가 됐고, 내부 소통은 그만큼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허 원장은 ‘디테일’을 보탰다. 그는 치과병원 원장이 되고 나서 직원 이름부터 다 외웠다. 허 원장은 “교수, 환자, 레지던트를 불문하고 오가다 마주치는 이가 있으면 이름과 얼굴부터 익혔다”며 “엄청난 민원을 해결한다기보다는 구성원이 가진 가치를 인정해주고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싶었다. 소통은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또 “누가 건의사항을 얘기할라치면 메모장부터 꺼내 들었다”며 “그렇게 들은 내용을 모아 정리해서 치과병원 각 과 과장들과 공유하고 병원에 요청할 부분은 매주 월요일 운영위원회에서 윤 병원장께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허 원장은 현장에서 윤 병원장의 눈과 귀가 돼주었고, 강남세브란스의 큰 그림은 더 구체화됐다. 윤 병원장은 “병원 조직을 좀 더 활기차게 바꾸려면 당장의 보상보다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며 “내가 일하는 병원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이고, 구성원 스스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느끼며, 병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윤 병원장은 병원 자원을 활용할 때 잡음이 생길 것 같으면 공개를 넘어 직접 나서서 설득하고 또 설득한다. 단순히 ‘돌격 앞으로’ 식의 리더십을 펼치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세계 최고 의료기관으로 거듭날 것”

비전은 성과로 이어졌다. 윤 병원장은 ‘미래(MIRAE)’라는 목표를 세우고 움직였다. 병원 행정, 간호 조직을 간소화하고 수술실과 상담실은 대폭 늘렸다. 최신 MRI, 로봇수술기 다빈치 XI 등을 도입했고, 전화예약시스템(CTI) 개선, 간편 진료예약시스템 도입,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등 현장에서 이구동성으로 꼽혔던 불편함이 개선됐다. 특히 강남세브란스가 만성적으로 시달렸던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잡혔다. ‘지구단위 계획’을 구체화한 것. 윤 병원장이 ‘지구단위 계획’을 구체화하자 치과병원도 발 빠르게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허 원장은 병원 내 치과용 유닛체어(진료의자) 얘기를 꺼냈다. 그는 “그간 치과병원 내 유닛체어를 10년 넘게 쓰면서 고장이 잦았고, 교체 계획을 수차례 세웠으나 공간 문제 해결의 큰 그림이 없어 번번이 무산됐다”며 “윤 병원장께서 10년 공사 계획의 로드맵을 그리면서 40대 넘는 유닛체어를 교체할지 수리할지가 명확해졌다. 유닛체어를 설치하는 건 단순히 의자를 들고 나르는 문제가 아니라 배관, 전기, 내장 공사까지 해야 하는 대공사라 애로사항이 많다”고 설명했다. 단계별 신축과 공간 구획 계획이 명확해지면서 강남세브란스의 분과별 사업도 훨씬 구체화됐고, 진행 속도도 빨라졌다.

윤 병원장은 현재 의료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에 한국의 IT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CES 2020’에 다녀온 후 윤 병원장의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그는 “유전체,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디바이스, 의료정보시스템 등 한국 의료업계가 지금까지 없던 헬스케어 서비스를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고 했다. 윤 병원장은 “앞으로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커맨드센터 도입, 의약품 조제 자동화 시스템, 원무 행정 시스템 효율화 등으로 ‘스마트병원’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며 “의료진과 임직원 모두 한국에서 가장 최첨단 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결과”라고 덧붙였다.

허 원장은 여기에 기초연구 성과를 더할 생각이다. 실제 그는 치과병원을 경영하고 직접 진료하면서도 기초 및 임상 연구력 향상을 위해 국책 연구비 확대, 연구 성과 확보를 위해 치과병원 교수진들을 독려하고, 강남세브란스병원 의생명연구센터의 시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연구력 증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두 사람은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코로나19 사태 탓인지 인터뷰 도중에도 두 사람의 스마트폰은 쉴 틈 없이 울렸다. 또 다른 회의가 있어 먼저 일어난 윤동섭 원장을 뒤로한 채 허종기 원장이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고교 선후배라지만, 형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의 첫 만남이 외과 교수와 인턴(치과병원)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석에선 친해도 업무상 만나면 5분 이상 사담을 나눠본 적이 없어요.(웃음) 일과 중에 이렇게 오래 얘길 나눠본 건 처음입니다. 강남세브란스를 키우자며 서로 일에 매달린 덕(?)이겠지요. 제가 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 데는 윤 병원장의 철학도 한몫합니다. 항상 말씀하세요. ‘모든 결정 전에 한 번 더 숙고하고 환자, 병원 구성원과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요.”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004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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