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M 명가에서 독립 브랜드 론칭까지
온라인과 쇼룸으로 판매망 혁신창업 초기 제조·유통·판매 구조 단순화에 성공했던 경험은 자코모 론칭 이후 또 다른 유통 혁신으로 이어졌다. 기존 대리점과 백화점 위주의 판매망에서 벗어나 온라인에서 승부를 보기로 결정했다. 지금이야 온라인 거래가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는 인터넷에 물건을 파는 ‘몰’을 만든다는 개념조차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온라인 사업 초기에는 연간 40억원씩 적자를 봤어요. 플랫폼 자체가 아직 시장에 자리 잡기 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2010년대 들면서 점차 활성화됐어요. 2014년 남양주 본사에 4층짜리 쇼룸을 열자 월 매출이 한꺼번에 10억원씩 오르더군요.”오프라인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직접 체험한 후, 온라인에서 손쉽게 주문하는 시스템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자코모 소파를 사려면 전국 어디서든 남양주에 가야 한다”는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희소성과 브랜드 충성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소파는 100만원이 넘는 고관여 상품이에요. 대리점 광고만 믿고 살 수 없죠. 고급 인테리어 매장 같은 쇼룸을 찾아 직접 제품을 느껴보게 만들었어요. 직원들에게도 쇼룸을 찾은 고객들에게 일일이 달라붙어 판매에 열 올리지 말라고 지시했어요. 대신 문의가 있으면 최대한 자세하고 친절하게 응대하라고 했죠. 회사와 직원, 고객 모두가 최고의 상품을 만들고 찾는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멋들어진 디자인과 화려한 쇼룸을 자랑한다 해도 제품의 본질, 즉 소비자가 믿고 찾는 품질은 제조업체의 숙명이다. 자코모의 성공 역시 경쟁사가 따라오기 힘든 깐깐한 품질관리가 원동력이 됐다. 특히 지난 2007년 전파를 탄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 믿을 만한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자코모라는 이름을 알린 결정적 계기였다. 소비자들은 건설현장 폐자재를 소파 뼈대로 쓰거나 밴드 자리에 폐타이어를 넣은 엽기적 행태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고 분노했다. 반면 작은 자재 하나에도 원칙을 지킨 자코모는 “TV에 나온 정직한 업체”라며 직접 공장을 찾아오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본드와 밴드는 이탈리아에서, 목재는 북유럽, 가죽은 미국 위스콘신에서 수입해요. 스펀지는 국내 대기업에서 납품받고 있죠. 본드만 해도 국내 기업 제품보다 많게는 3배 이상 비싸지만 친환경과 퀄리티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어요. 우리 제품에서 소파 특유의 접착제 냄새가 나지 않는 이유죠.”기본 뼈대를 이루는 목재 역시 북유럽산 하드우드(자작나무)를 고집한다. 사면을 매끄럽게 마감한 사면포 목재가 기본으로, 곰팡이나 벌레를 사전에 방지하는 최고급 자재다. 소파의 탄력을 오랜 기간 보존하는 최고급 이탈리아산 밴드, 미국산 최고급 소가죽과 친환경 가공 시스템도 자코모만의 자부심이다.‘디자인에 멈추고, 가격에 웃고, 디자인에 춤추다’라는 자코모의 슬로건은 최고급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거품을 뺀 ‘가성비’ 전략에서 절정을 이룬다. 유통 구조 혁신을 통해서다. 자코모는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직접 제조·판매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대리점 직영, 원자재 직수입 등으로 아낀 돈을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만드는 데 투자해 소비자에게 환원하는 방법이다. 업계 최고급 소파 브랜드 대비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30% 저렴하게 내놓으니 소비자 입장에선 자코모를 구매 순위 1위에 올리는 게 당연하다.지난 2015년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신세계, HDC아이파크몰 등 대형 백화점에 입점한 자코모는 2017년 경남 양산 쇼룸, 2019년 경기 일산 쇼룸 문을 차례로 열었다. 지난해 새롭게 론칭한 패브릭소파 전문 브랜드 ‘에싸(ESSA)’도 최첨단 소재로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업계를 리드하는 품질은 CEO 한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다. 실제 제조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없다면 불가능한 경영 목표일 수도 있다. 자코모는 이직률이 높고 영세한 사업장이 많은 가구업계에서 유독 장기근속자가 많은 기업으로 통한다. 창업 초기 입사해 지금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는 직원은 물론이고, 2세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부모를 따라 입사한 경우도 있다.
1988년 주5일제 도입으로 업계 ‘깜짝’1988년 당시 재경가구가 시행한 ‘주5일 근무제’는 요즘도 업계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다. 치열한 논의와 진통 끝에 국내에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된 건 지난 2004년이다. 그마저도 일부 업종별 단계적 시행이었음을 감안하면, 박 대표의 결단이 국가 시책을 15년 이상 앞서간 셈이다.“6시 퇴근을 30분 늦추고 점심시간도 40분으로 줄여 토요일 근무시간을 충당하기로 했죠. 주변에서 다들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러다 망한다’고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생산성이 늘고 이직률도 확 떨어지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에요.”입사 이후 한부모가정이 된 경우 자녀들의 학자금을 100% 지원하는 제도는 직원들 사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생계에 어려움이 닥친 직원이 안심하고 직장생활에 전념하게 하려는 박 대표의 배려다. 전월 대비 매출이 오르면 일정 부분을 상여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도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연말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전 직원에게 100% 상여금을 따로 지급한다. 국내 가구업계에선 보기 드문 제도다.“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해 고객의 행복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코디네이터라는 자부심은 CEO뿐만 아니라 모든 임직원의 몫이에요. 시대가 바뀌어도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본질을 잃지 않는 100년 기업으로 키워가는 게 제 꿈입니다.”-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