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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분 자코모 대표이사 

35년 장인정신, 명품 국산 소파 시대 열다 

업계를 장악한 1등 제조기업의 성공에는 대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고집스런 품질제일주의, 유통·구매망 혁신, 철저한 신용 등이다. 여기에 직원 행복을 책임지려는 CEO의 살뜰함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국내 소파업계 1위 브랜드 자코모 역시 품질과 신뢰를 바탕으로 내로라하는 경쟁자들보다 저만치 앞서고 있다.

1985년 재경가구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자코모는 올해로 창립 35년을 맞았다. ‘백지영 소파’, ‘황신혜 소파’ 등 셀러브리티가 찾는 소파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4년 무렵부터다. 하지만 이미 그전부터 업계에선 ‘품질만큼은 자코모가 최고’라는 평가가 자자했다.

자코모의 철저한 품질제일주의는 창립 이래 35년간 회사를 이끌고 있는 박경분 대표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영 원칙이다. 자코모는 소파의 골격인 목재부터 사람의 몸에 직접 닿는 가죽에 이르기까지 최고급 원재료만 고집한다. 그러면서도 경쟁사보다 3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가성비’까지 잡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해 900억원대 후반이었던 매출액이 올해 1200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OEM 명가에서 독립 브랜드 론칭까지


지금은 어엿한 독립 브랜드를 보유한 소파업계 리딩 기업이지만, 35년 전 처음 공장을 세울 때만 해도 직원 3명이 전부인 영세 업체였다. 박 대표는 남편인 박재식 회장과 함께 은행 대출금과 적금을 깨 마련한 자본금 3000만원으로 경기도 남양주에 터를 잡았다. 사업 초기부터 재경가구는 업계 유통 관행을 깨뜨렸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일반적인 대리점 유통망 대신 직접 판매에 눈을 돌렸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가구점에 공급해 판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어요. 자재 구입도 대리점을 통해야 했죠. 하지만 사업 초기 자본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자재 구입과 제조, 판매를 직접 해보자 마음먹었어요. 동대문시장 자재상에서 직접 물건을 떼다가 만든 소파를 트럭에 싣고 전국을 다니며 팔았죠.”

8만~10만원 하는 저가 소파였지만 경쟁사보다 좋은 자재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거래처와도 철저한 현금 거래 원칙을 고집해 신뢰를 쌓아갔다. “재경 소파는 믿을 만하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한 달에 400~500세트를 팔며 인기를 얻었고, 직원도 20명 넘게 늘었다.

본격적인 성장세는 대형 메이저 업체의 OEM 수주로 이어졌다. 마침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서초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이에 발맞춘 원청 업체 주문이 밀려들면서 1988년 한 해에만 1만3000세트를 제작했다. 당시 올린 수익은 현재 남양주 1공장 증개축의 시드머니가 됐다. 재경가구 소파를 찾는 주문은 계속 이어졌다. 리바트, 퍼시스, 에이스침대, 리오가구 등 내로라하는 대형사들이 앞다퉈 OEM 소파를 주문했다. ‘메이저사가 찾는 소파’라는 명성이 쌓이자 사업 기반도 더욱 탄탄해졌다.

늘 탄탄대로만 걸은 건 아니었다. 자코모라는 독립 브랜드를 론칭하기까지 힘든 고비도 있었다. 특히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전화위복이 돼 경영 원칙을 다시 정립하고 현재의 고유 브랜드를 내놓는 계기가 됐다.

“외환위기 이후로 국내 가구업계는 너나없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향했어요. 우리도 칭다오에 공장을 세웠죠. 하지만 한국인 공장장이 아무리 노력해도 중국 특유의 낮은 퀄리티를 벗어나기 어렵더군요. 낮아진 제조원가보다 늘어난 애프터서비스(AS) 비용이 더 클 정도였죠. 결국 손해를 감수하고 몸만 빠져나오다시피 했어요.”

중국 사업 철수 후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던 박 대표는 자체 브랜드를 기반으로 한 B2C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원가 절감만 줄기차게 요구하던 원청사에 박 대표는 “직접 디자인과 제작에 나서겠다”며 ODM 사업을 역제안했다. 한국 가구업계 최초로 가구 본고장으로 통하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디자인사무소를 연 계기다.

“가장 부족한 역량이 역시 디자인이었어요. 그때까지 디자인이나 설계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보루네오, 리바트, 퍼시스, 냅스 같은 대형사들의 투자를 받아 밀라노에 디자인사무소를 꾸렸죠. 그때 ‘우리 소파를 이탈리아에 수출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로 만든 브랜드가 바로 자코모예요. 재경(Jaekyung), 코리아(Korea), 모빌레(Mobile·가구)의 앞 두 글자를 따 2003년에 론칭했죠.”

온라인과 쇼룸으로 판매망 혁신

창업 초기 제조·유통·판매 구조 단순화에 성공했던 경험은 자코모 론칭 이후 또 다른 유통 혁신으로 이어졌다. 기존 대리점과 백화점 위주의 판매망에서 벗어나 온라인에서 승부를 보기로 결정했다. 지금이야 온라인 거래가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는 인터넷에 물건을 파는 ‘몰’을 만든다는 개념조차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온라인 사업 초기에는 연간 40억원씩 적자를 봤어요. 플랫폼 자체가 아직 시장에 자리 잡기 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2010년대 들면서 점차 활성화됐어요. 2014년 남양주 본사에 4층짜리 쇼룸을 열자 월 매출이 한꺼번에 10억원씩 오르더군요.”

오프라인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직접 체험한 후, 온라인에서 손쉽게 주문하는 시스템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자코모 소파를 사려면 전국 어디서든 남양주에 가야 한다”는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희소성과 브랜드 충성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소파는 100만원이 넘는 고관여 상품이에요. 대리점 광고만 믿고 살 수 없죠. 고급 인테리어 매장 같은 쇼룸을 찾아 직접 제품을 느껴보게 만들었어요. 직원들에게도 쇼룸을 찾은 고객들에게 일일이 달라붙어 판매에 열 올리지 말라고 지시했어요. 대신 문의가 있으면 최대한 자세하고 친절하게 응대하라고 했죠. 회사와 직원, 고객 모두가 최고의 상품을 만들고 찾는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멋들어진 디자인과 화려한 쇼룸을 자랑한다 해도 제품의 본질, 즉 소비자가 믿고 찾는 품질은 제조업체의 숙명이다. 자코모의 성공 역시 경쟁사가 따라오기 힘든 깐깐한 품질관리가 원동력이 됐다. 특히 지난 2007년 전파를 탄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 믿을 만한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자코모라는 이름을 알린 결정적 계기였다. 소비자들은 건설현장 폐자재를 소파 뼈대로 쓰거나 밴드 자리에 폐타이어를 넣은 엽기적 행태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고 분노했다. 반면 작은 자재 하나에도 원칙을 지킨 자코모는 “TV에 나온 정직한 업체”라며 직접 공장을 찾아오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본드와 밴드는 이탈리아에서, 목재는 북유럽, 가죽은 미국 위스콘신에서 수입해요. 스펀지는 국내 대기업에서 납품받고 있죠. 본드만 해도 국내 기업 제품보다 많게는 3배 이상 비싸지만 친환경과 퀄리티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어요. 우리 제품에서 소파 특유의 접착제 냄새가 나지 않는 이유죠.”

기본 뼈대를 이루는 목재 역시 북유럽산 하드우드(자작나무)를 고집한다. 사면을 매끄럽게 마감한 사면포 목재가 기본으로, 곰팡이나 벌레를 사전에 방지하는 최고급 자재다. 소파의 탄력을 오랜 기간 보존하는 최고급 이탈리아산 밴드, 미국산 최고급 소가죽과 친환경 가공 시스템도 자코모만의 자부심이다.

‘디자인에 멈추고, 가격에 웃고, 디자인에 춤추다’라는 자코모의 슬로건은 최고급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거품을 뺀 ‘가성비’ 전략에서 절정을 이룬다. 유통 구조 혁신을 통해서다. 자코모는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직접 제조·판매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대리점 직영, 원자재 직수입 등으로 아낀 돈을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만드는 데 투자해 소비자에게 환원하는 방법이다. 업계 최고급 소파 브랜드 대비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30% 저렴하게 내놓으니 소비자 입장에선 자코모를 구매 순위 1위에 올리는 게 당연하다.

지난 2015년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신세계, HDC아이파크몰 등 대형 백화점에 입점한 자코모는 2017년 경남 양산 쇼룸, 2019년 경기 일산 쇼룸 문을 차례로 열었다. 지난해 새롭게 론칭한 패브릭소파 전문 브랜드 ‘에싸(ESSA)’도 최첨단 소재로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업계를 리드하는 품질은 CEO 한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다. 실제 제조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없다면 불가능한 경영 목표일 수도 있다. 자코모는 이직률이 높고 영세한 사업장이 많은 가구업계에서 유독 장기근속자가 많은 기업으로 통한다. 창업 초기 입사해 지금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는 직원은 물론이고, 2세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부모를 따라 입사한 경우도 있다.

1988년 주5일제 도입으로 업계 ‘깜짝’

1988년 당시 재경가구가 시행한 ‘주5일 근무제’는 요즘도 업계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다. 치열한 논의와 진통 끝에 국내에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된 건 지난 2004년이다. 그마저도 일부 업종별 단계적 시행이었음을 감안하면, 박 대표의 결단이 국가 시책을 15년 이상 앞서간 셈이다.

“6시 퇴근을 30분 늦추고 점심시간도 40분으로 줄여 토요일 근무시간을 충당하기로 했죠. 주변에서 다들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러다 망한다’고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생산성이 늘고 이직률도 확 떨어지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에요.”

입사 이후 한부모가정이 된 경우 자녀들의 학자금을 100% 지원하는 제도는 직원들 사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생계에 어려움이 닥친 직원이 안심하고 직장생활에 전념하게 하려는 박 대표의 배려다. 전월 대비 매출이 오르면 일정 부분을 상여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도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연말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전 직원에게 100% 상여금을 따로 지급한다. 국내 가구업계에선 보기 드문 제도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해 고객의 행복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코디네이터라는 자부심은 CEO뿐만 아니라 모든 임직원의 몫이에요. 시대가 바뀌어도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본질을 잃지 않는 100년 기업으로 키워가는 게 제 꿈입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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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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