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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대 금리 시대, 신탁 활용법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정부는 0%대 금리 시대를 선언하고 있다. 경제 불안이 커지자 백기를 드는 모양새다. 어떤 투자법도 딱히 먹히지 않는 난리 통에서 신탁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한국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연 0.75%로 인하됐다. 사상 첫 0%대 금리 시대다. 먼저 미국이 포문을 연 탓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긴급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금리를 1% 낮춰 제로 수준인 0~0.25%로 인하했다. 일본 중앙은행도 가세했다. 한국 정부는 한은의 금리인하 조치에 이어 유동성을 추가로 공급하겠다는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만큼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백신·치료제 말고는 ‘돈발’이 안 먹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풀린 자금과 시중에 흘러다닌 자금이 도합 1045조원에 달한다. 바닥 모르게 추락 중인 증시를 살릴지, 한껏 오른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갈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극단적인 금리인하 조치에 영향을 받는 이가 고령의 퇴직자들이다. 연금과 예금금리, 부동산 월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와 1인 가구 증가라는 한국 사회의 문제는 이번 바이러스 사태로 더 심화된 느낌이다.

퇴직자는 ‘0%대 금리 시대’, ‘코로나19’라는 악재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다. 수익을 좇는 시대에서 이제 가진 것을 ‘제대로’ 지키는 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금융계에서도 금리 혜택은 점차 사라지고, 노년층을 위한 자산관리가 정교화돼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65세 이상 치매 인구가 75만 명이 넘는 한국 현실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이런 현실에서 앞으로 신탁은 고령화 시대 자산관리 솔루션으로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이유가 있다. 신탁은 ‘믿고 맡긴다’는 의미다. 금전·유가증권·부동산 등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신뢰할 수 있는 대상에게 그 관리와 처분을 의뢰하는 것이다. 이때 맡기는 사람을 ‘위탁자’라고 하고 이 신탁을 맡아 운용·관리·보관하는 재산 관리 기구를 ‘수탁자’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재산이나 수익을 받는 이를 ‘수익자’라고 한다. 과거엔 주택과 부동산의 관리와 처분, 신규 개발 등을 맡는 ‘자산신탁’이 주였다. 하지만 최근엔 금전 자산을 관리하는 ‘금전 신탁’에 노후케어, 후견업무 지원, 맞춤형 자산관리 설계 기능까지 추가됐다.

특히 금전신탁은 위탁자가 투자 대상을 정하고 수탁자에게 돈을 맡기는 방식인 ‘특정금전신탁’과 수탁자가 자유롭게 위탁자의 자금을 운용하는 ‘불특정금전신탁’으로 나뉜다. 수시입출금식형신탁(MMT)·주가연계형신탁(ELT)·파생결합형신탁(DLT) 등이 대표적인 특정금전신탁이다.

신탁은 고령화 시대 ‘최소한의 안전판’이자 ‘가족 분쟁을 최소화’해주는 역할도 한다. 가장 쉽게 비교한다면 유언장은 본인의 사망 직후 수익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는데, 이와 비교해 신탁은 노후에도 자산을 관리하면서 이후 수익자의 재산도 지속해서 관리해준다. 수익자가 스스로 재산을 통제할 수 없는 미성년자라면 신탁은 더할 나위 없는 대안이다.

정부도 신탁의 순기능을 인정했다. 지난 2월 19일 금융위원회는 신탁 제도 전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2020년 상세 업무 계획을 공개했다. 금융위는 “신탁 제도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자산관리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수단으로만 활용됐다”며 “국민의 노후 대비와 생활 안정을 위해 신탁 제도가 ‘종합 자산관리 제도’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정부도 신탁을 ‘종합 자산관리 제도’로 인정

규제도 완화했다. 특히 수탁 가능한 재산 범위의 확대가 눈에 띈다. 현재는 금전·부동산 등 ‘적극 재산’만 수탁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부채 성격의 자산인 ‘소극 재산’과 담보권 등도 수탁할 수 있다. 부채를 포함한 예금·대출·부동산 등 재산 일체를 자산관리 ‘틀’에 넣을 수 있게 됐다.

필자가 실제 상담하며 알게 된, 노령자가 느끼는 순기능을 보태면 이렇다. 금융사기 예방·생활비 조달·노후케어·상속 기능 등 총 4가지다. 신탁은 금융사기 예방에 큰 역할을 한다. 보이스피싱 기법이 날로 고도화되고 있어 정기적으로 인출할 때 가족의 동의를 받도록 신탁할 수 있다. 또 일정 금액 이상의 자금을 신탁에 넣어 두고 생활비로 쓸 수 있다. 다음은 노후케어 기능이다. 치매 또는 일상생활 장애로 금융거래를 단독으로 하기 어려운 상태가 올 때를 대비해 자금관리 방법을 미리 정해두면 불특정 다수에게 자기 재산이 유용되는 걸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속 기능이다. 신탁된 재산의 사후수익자를 지정해놓아 사후에 자신이 원하는 방법대로 상속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안전한 노후생활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을 할 기회다. 10년 후 노령층에 진입하는 세대라면 자기 재산부터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유언대용신탁·치매신탁 등 고령화 시대에 정말 필요한 종합 자산관리 제도다.

-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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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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