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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오 기업이 살아남는 법 

 

잇단 임상 실패로 침울했던 한국 바이오업계가 코로나19 사태로 다시금 살아났다. 그동안 꿈만 좇는 듯했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기술’에만 목매던 이들이 ‘시장’을 보기 시작했고, 우직하게 연구·개발했던 결과물이 빛을 보고 있다.

▎SK바이오팜 연구진이 화합물을 합성해 살펴보고 있다. 이들이 하루에 검토하는 후보물질은 무려 1만 종에 달한다. / 사진:SK바이오팜
“바이오 분야의 경쟁력과 가능성도 확인되었습니다. 비대면 의료서비스와 온라인 교육, 온라인 거래, 방역과 바이오산업 등 포스트 코로나 산업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3대 신성장산업을 더욱 강력히 육성하여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겠습니다.”

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진행한 ‘취임 3주년 특별연설’ 중 일부다. 문 대통령은 또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며 의료 분야를 꼽기도 했다. 국회도 바이오헬스에 힘을 실어줬다. 20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이 발의 2년 만에 통과된 것이다. 이로써 생명공학 관련 정책이 기술의 융복합 트렌드나 산업화 등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됐고, 바이오 혁신기술의 지식재산권 창출·보호·활용, 창업·사업화 지원 등이 폭넓게 시행될 길이 열렸다. 기존 법은 연구개발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바이오헬스 산업화엔 걸림돌로 지적돼왔다.

정부는 이보다 앞서 바이오산업을 ‘포스트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는 밑그림도 공개했다. 지난 2월 기획재정부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년 연두 업무보고’에서 창업·벤처자금 지원을 3조7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으로 확대해 현재 11개인 ‘유니콘기업’을 2022년까지 20개로 늘리겠다고 했다. 유니콘기업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벤처기업을 말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바이오헬스 분야의 수출 목표치를 100억 달러로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수출 비중을 10% 이상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발 ‘멍석’은 깔린 셈이다. 정부가 바이오헬스 분야를 키우겠다는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 보인다. 코로나 사태로 한국 바이오산업 위상도 높아졌다. 진단키트와 데이터 기반 방역시스템 등 한국 바이오 기술력에 세계인이 이목이 쏠렸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한국 바이오산업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다. 지난 몇 년간 신약 개발이 임상 3상을 통과하지 못해 ‘사기’란 비아냥까지 들으며 체면을 구겼었는데 분위기가 달라졌다. 포브스코리아가 만났던 씨젠은 코로나19 진단키트 1000만 개 수출을 돌파했고, 삼성의 ‘아픈 손가락’으로 여겨졌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제약업체가 치료제를 개발하면 위탁생산을 하기로 계약했다. 계약 규모는 4418억원으로 단일 수주 기준으론 가장 큰 액수다.


잔뜩 움츠러든 기업공개(IPO) 시장도 바이오 앞에선 활기를 띤다. 올해 신규상장을 철회했거나 중단했던 바이오 기업들이 움직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세포치료제 개발 전문 바이오 기업 SCM생명과학, 항바이러스 의약품을 개발하는 제놀루션, 알츠하이머 조기 혈액진단 키트를 개발하는 피플바이오, 창상치료제를 개발하는 티앤엘 등이 올해 신규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코스피 상장에 도전하는 SK바이오팜이 올해 IPO 최대어로 꼽힌다.

바이오 스타트업도 양적으로 성장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29일 발표한 ‘창업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보건산업 분야 창업기업은 2011년 624개에서 2017년 1362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만 5만955명(2018년 12월 기준)이나 된다.

하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양적인 성장이 한국바이오업계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시장’과 좀 더 가까워져야 한다. 그간 단순히 신약, 의료기기 등 최종 산출물이 주는 기대감만 좇을 정도로 기술이 최우선이었다. 연구원들이 사업을 시작하면 연구개발 업무도 과중하다며 자금 확보, 인력 확보, 전략 수립, 시장 진입, IR 준비 등을 뒷전으로 미뤄놨었다. 바이오, 가상현실, 인공지능, 첨단소재 분야의 첨단기술 스타트업 50여 곳에 투자한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도 “첨단기술 스타트업이 시장 수요를 반영한 핵심기술과 사업 모델을 보완하고 타 기술 분야와 융복합을 추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냉온탕을 오간 바이오헬스업계는 이 대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새다. 많은 바이오 기업이 하루빨리 적용 가능한 기반 플랫폼 기술을 강화하고 있고, 시간과 비용을 줄여 연구개발이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암, 고령화, 감염병 확산, 신약 등은 인류가 해결할 큰 과제로 두되 시장 변화에 맞춰 기술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의미다. 장지상 산업연구원장도 “전 세계가 한국의 바이오·헬스 역량에 주목하고 있어 이번 기회에 높아진 국가 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디지털에선 우리가 보유한 기술을 어떻게 접목할지 연구해 새로운 바이오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시장에 다가가는 ‘법’은 뭘까. ▶기술 수출 ▶기술 고도화 ▶기술 응용력 ▶기술 융합 등 크게 4가지 측면에서 관련 기업을 살펴봤다. 기술 수출을 주목표로 잡은 지놈앤컴퍼니, 기술 고도화에 나선 레보스케치, 기술 응용력을 모색하는 플라즈맵, 생명공학과 IT 기술을 융합한 스탠다임이 대표적인 예다. 바이오 분야에서 기술의 융복합 트렌드나 산업화에 부단히 노력하는 곳으로 알려진 기업들이다. 이들이 연구하고 사업하며, 걸어온 길에서 답을 찾아보자.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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