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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오 히든 챔피언] 이성운 레보스케치 대표 

혈액 속 ‘암’ 흔적 추적할 진단장비 

항공, IT를 아울렀던 한 ‘연쇄 창업가’가 이번엔 디지털 PCR 진단장비로 바이오 분야에 도전했다. 조만간 혈액 한 방울만 있으면 암을 정복하고 유전 관련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

▎항공, IT, 광학 분야를 아울렀던 ‘연쇄 창업가’ 이성운 대표는 이제 3세대 디지털 PCR 장비로 암 정복에 도전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에서 마스크와 더불어 진단키트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코로나19 진단키트 긴급사용승인(EUA)을 획득한 한국 업체도 오상헬스케어·씨젠·SD바이오센서·시선바이오·랩지노믹스·진매트릭스 등 여섯 곳이나 된다.

이들이 일주일간 생산할 수 있는 양은 2만여 키트(1키트당 96~100테스트)로 60만 명 이상 한꺼번에 검사할 수 있는 분량(1명당 3회 테스트 진행)이다. 한 달이면 8만 키트를 생산할 수 있는데, 이들 업체는 앞으로 지금보다 3배 이상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진단키트는 충분한데 문제가 있다. 현재 실시간 PCR(중합효소 연쇄반응) 검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특이 유전자 2개를 실시간으로 증폭한 뒤 검출해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 별도의 DNA 증폭과 대조가 필요 없어 최종 확진 판정까지 약 6시간이면 충분하다. 진단키트로 검체는 빨리 채취할 수 있지만, 특이 유전자를 검출하고 분석하는 진단장비가 많지 않은 게 문제다. 써모 피셔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 바이오래드(Bio-rad), 엘리텍(ELITech) 등 미국 업체가 독점해 수급도 쉽지 않은 상황. 한국이야 보유 장비가 많아 다행이지만, 진단장비가 애초 없었던 국가는 비상 상황이다.

한국 스타트업 레보스케치가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도 업계 최초의 단일 장비인 3세대 디지털 PCR 장비를 내놨다. 지난 5월 14일 대전 레보스케치 기업부설연구소에서 만난 이성운(49) 대표는 “일단 미국 장비 가격이 비싼 데다 검체 시료를 넣는 장비가 단계별로 다르다”며 “이 과정에서 시험 과정은 더 복잡해지고, 시료가 오염될 가능성이 훨씬 커지기에 1인당 3번 정도 테스트를 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레보스케치가 유명한 건 장비 덕이 크지만, 이 대표의 이력도 한몫한다. 그는 이미 4번이나 창업한 연쇄 창업가로 우주·광학에 이어 최근 바이오까지 분야를 넓혀왔다. 진단장비 기술부터 그간의 창업 스토리까지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다.


▎사진:김성태 객원기자
3세대 디지털 PCR 장비는 기존 장비와 뭐가 다른가.

현재 코로나19 검사 방식부터 보자. 실시간 유전자증폭기술을 접목한 RT-PCR 진단키트로 검체에서 시료를 채취해 연구소나 대학병원으로 보낸다. 바이러스 내 특정 유전자를 증폭한 뒤 진단장비에 돌려 확진 여부를 보기 위해서다. 실제 연구소에 가보면 진단장비는 시료 분획, 유전자 증폭, 형광 검출하는 3가지 단계에 맞춰 따로 있다. 그나마 바이오니아가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세 장비를 합친 단일 장비는 없었다. 우리는 이미 제품 개발을 완료했고, 인증과 양산만 남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진행 중인데 늦은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애초에 감염병이 아닌 암 진단을 목표로 잡았다. 사실 감염병은 유전자 검출이 쉬운 편이다. 굳이 지금 사용하는 장비 체계를 대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암세포가 배출하는 유전자는 극소량, 저농도라 검출이 어렵다.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미세구조 체임버를 확 늘릴 수 있는 반응로를 장비에 탑재한 이유다. 기존엔 10만 개 정도 마이크로 체임버를 구축해 유전자 검사를 했다면 우린 400만 개까지 만들어 검사한다. 증폭한 유전자를 검출하는 데는 독자적인 고해상도 레이저 스캐닝 기술이 쓰인다.

성능만 들어보면 미국 장비보다 비쌀 것 같다.

우리가 훨씬 싸다. 미국 진단장비 값은 대당 15만~35만 달러에 달한다. 대당 억대를 우습게 호가한다. 게다가 단계별 장비를 모두 사야 하고, 설치할 공간과 관리할 인력도 필요하다. 우린 이걸 하나로 합쳐서 2만~3만 달러대에 출시하고자 한다. 소모품으로 제공하는 카트리지에 혈액, 비말, 각종 유전자 샘플이 될 만한 검체 시료를 담아 진단장비에 넣으면 끝이다. 별도의 진단키트를 구하러 다닐 필요도 없는 셈이다.

기존 진단 체계가 확 바뀌겠다.

정밀 의료(진단) 시장을 보편화하고 싶다. 현재 정밀 의료 시장은 3차 진료기관인 대학병원과 대규모 실험실이 주도하고 있다. 이걸 일반 동네병원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번에 개발한 진단장비 매출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가격을 대폭 낮춘 가정용 장비도 개발할 예정이다. 지금 우리가 내놓은 장비가 미국 장비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싸다고 해서 성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강한 원심력으로 유전자 검사에 필요한 체임버를 400만 개로 늘릴 수 있고, 검출된 유전자도 1조 배 증폭할 수 있으며, 5개 형광 채널로 표시해 구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출시된 어떤 장비보다 성능이 우수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의료기기 양산은 다른 문제다.

맞는 말이다. 수차례 창업하며 깨달은 바이기도 하다. 올해 양산을 위해서 국내 1호 바이오벤처이자 디지털 PCR 진단장비 국산화에 성공한 바이오니아와 손잡았다. 바이오니아는 25년간 쌓은 제조 노하우로 레보스케치를 돕기로 했다. 양산 테스트가 필요한 경우 의약품 제조및품질관리기준(GMP) 인증 시설도 제공하기로 했다. 글로벌·혁신 의료기기 인증 과정뿐만 아니라 전략적 투자자로서 레보스케치에 투자도 해줬다. 본격적으로 양산되면 바이오니아가 전 세계 시장에 구축한 네트워크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바이오니아는 경쟁사 아닌가.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와 인연이 있다. 2015년쯤 바이오니아에서 바이오 신호를 센서화할 수 있는 영상 엔진을 개발 중이었다. 어디나 그렇듯 관련 기술 노하우가 없으면 쉽지 않다. 마침 내가 영상 엔진 기술이 있었고, 관련 영상을 처리할 수 있는 기판을 설계해줬다. 지금도 한국 업체 누구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돕는다. 험난한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동반자나 협력자로 생각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협력을 꺼리면 더 큰 걸 놓치는 법이다.

일찍부터 창업했다고 들었다.

이번이 네 번째 창업이다. 첫 창업은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학부 시절 차린 ‘AKCRON’이란 회사다. 일명 ‘원보드 컴퓨터’, 지금으로 치면 ‘태블릿’을 개발한 셈이다. 하지만 당시 카이스트는 국비 장학생이었기에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이 회사는 미국 LCD 장비업체였던 포톤다이나믹스(Photon Dynamics)에 합병됐다. 본의 아니게 1차 엑시트(Exit)를 해버렸다. 대학교 3·4학년 때는 한국 독자 기술로 설계한 소형 인공위성 ‘우리별 3호’ 프로젝트에 참여해 발사체 상단의 위성과 탑재물을 보호하는 덮개 구실을 하는 ‘페이로드 페어링’ 설계를 맡았다. 2000년엔 디지털 X레이 기술을 개발한 ‘스타 브이레이(Star V-ray)’를 창업했는데, 2005년 미국 바이다(Vidar)란 회사에 인수됐다. 2007년 덴마크 기업가와 차린 3D 이미지 시뮬레이션 회사 3DISC도 내수 40억원·수출 140억원을 기록한 회사로 키웠다.

기억나는 일도 많겠다.

사업하면 사건·사고는 일상이다. 3DISC 시절, 엑스레이 필름 레이저스캔 장비를 처음 수출했던 때가 생각난다. 20대를 수출했는데 15대가 돌아왔다. 장비를 보내기만 하면 얼라이먼트(정렬)가 틀어져 광학 장비 초점이 맞지 않은 탓이다. 어느 전자제품이든 필드에 나가면 완벽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수출 지역 환경 데이터를 모조리 취합해 자동으로 정렬하는 기능을 추가했더니 반품률이 제로가 됐다.

앞서 창업한 기업과 진단장비는 좀 다른 분야 아닌가.

경험해본 시장은 같았다. 디지털 X레이 기술을 개발하고, 응용기술 제품을 공급하면서 수년간 발로 뛰어다닌 곳이 의료업계다. 당시 병원에선 X레이 촬영을 하면 인화를 해야 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모니터에서 X레이 영상을 보지 않나. 이 기술이 스타 브이레이 작품이다. X레이 필름을 레이저 스캐너로 저장하는 기술도 3DISC가 만들었다. 이 기술은 지금 유럽 내 다수 의료기관이 활용하고 있다. 미국 FDA, 유럽 CE 등 권역별 의료기기 인증을 받은 경험도 이때 쌓았다. 당시 쌓은 영상 광학 기술 노하우는 레보스케치의 디지털 PCR 장비의 레이저 스캐닝 파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쟁업체가 늘어나지 않았나.

늘긴 늘었다. 하지만 2017년 레보스케치 창업 때나 지금이나 경쟁사는 미국 기업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현재 시장을 평가한다면 되레 레드오션이 아니라 퍼플오션(기존의 익숙한 레드오션 상품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조금 다른 상품을 만드는 것)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우린 좀 더 공격적으로 글로벌 회사를 타깃팅했다. 기존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의 위치가 확고하면 후발 주자 제품은 성능이 월등히 우수하든가, 가격이 확 낮아야 시장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우린 더 나은 성능과 체계를 갖추고 가격은 5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플래그십(최상·최고급) 제품을 본격 출시한 후 감염증을 진단하는 휴대용 장비도 내놓을 생각이다.

PCR 장비로 진짜 하고 싶은 게 있나.

암을 잡고 싶다. 암이란 게 진행되면 악성종양이 되고 생명을 앗아간다. 이내 곧 사멸해 혈액 어딘가를 떠돌기도 하고, 갑자기 다 나은 줄 알았던 암이 재발하기도 한다. 우린 혈액 샘플 한 방울로 암 발병 흔적을 정확하게 찾아내려고 한다. 지금은 암세포가 2㎝ 이상 종양화돼 몸에 이상 징후가 생겨야 암 발병 여부를 알 수 있다. 혈액 속 암세포의 특정 DNA를 잡을 수만 있다면 암 치료 환경이나 체계가 완전히 달라질 거다.

이 대표는 창업했던 경험부터 암 진단 기술이 진화하면 어떻게 세상이 달라질지 설명했다. 마치 그가 지금까지 쌓은 창업 경험이 레보스케치를 위한 준비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 그는 기술개발부터 제품 양산, 품질관리, 비즈니스 모델 구축, 권역별 의료기기 인증 처리, 빅데이터·클라우드 같은 IT 기술을 응용하는 부분까지 직접 해본 경험을 디지털 PCR 진단장비에 투영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강조한 건 ‘초심’이다. 이성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위험한 건 ‘자만’입니다. 몇 번 비즈니스를 하면서 겪었던 예측 불가의 시장은 한없이 자신을 겸허해지게 했습니다. 레보스케치를 차리면서 수많은 바이오 기업 대표를 만난 이유입니다. 마크로젠 같은 규모 있는 회사부터 중견급, 이제 막 시작한 젊은 대표까지 만나면서 제품 시안을 보여주며 가능성을 물었죠. 물론 기술 유출을 우려해 답을 피하는 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바이오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서로가 가진 강점을 내놓고 협력하고 뭉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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