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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오 히든 챔피언] 김진한 스탠다임 대표 

신약 개발 생태계 바꿀 인공지능 

15년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이 3년 이하로 줄어들 수 있을 것 같다. AI 기술 덕분이다. 2016년부터 다국적제약사가 활용하기 시작하더니 SK그룹과 CJ헬스케어, 한미약품 등 굵직한 대기업도 한국의 AI 신약 개발사 스탠다임과 손잡았다.

▎신약 개발사 스탠다임을 이끄는 김진한 대표는 AI 기술로 15년 이상 걸릴지도 모를 신약 개발기간을 3년 이하로 줄이고자 한다.
생물공학도라면 누구나 아는 라틴어가 있다.

‘인비트로(in vitro), 인비보(in vivo).’ 순서대로 ‘생체 밖 실험실·시험관 실험’, ‘생체 내 실험(동물실험·임상시험)’을 뜻한다. 인비트로와 인비보는 고비용·저효율 신약 개발 생태계의 주원인으로 꼽히지만, 표준 약을 개발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하지만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것부터 생물 내 복잡한 기전을 100%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 신약 개발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러다 2000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실험’이란 뜻의 신조어 ‘인실리코(in silico)’가 등장했다. 인비트로, 인비보 실험에서 얻은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인실리코 환경에서 생체 내 변수를 입력해 결과값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약물이 신체, 외부 병원체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 데 주효했다. 하지만 다국적제약사들이 본격적으로 이 방식에 돈을 쓴 건 비교적 최근 일이고, 한국에선 2017년 한미약품이 미국 IT 기업 메디데이터와 협력해 인공지능(AI) 플랫폼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한미약품, 대웅제약, JW중외제약, SK㈜(SK바이오팜), 유한양행, CJ헬스케어.’

실제 AI 기술을 신약 개발에 활용하겠다고 돈을 쓴 기업들이다. 이유가 있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다국적제약사 기준으로 통상 10~15년의 세월과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가 든다. 실제 세계 1위 제약사인 화이자뿐 아니라 노바티스, 존슨앤드존슨 등 글로벌 제약사가 매년 연구개발(R&D)에만 9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투자한다. 하지만 일단 신약 개발에 성공하기만 하면 결실은 꽤 달콤하다. 글로벌 제약사가 신약 하나로 매년 20조원 넘는 매출을 올리니 말이다.

바이오업계에서 일종의 융합연구의 장이 마련된 셈이다. 더불어 AI 신약 개발사를 표방한 스탠다임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SK㈜가 약 100억원대 지분 투자를 발표하면서 단숨에 SK바이오팜(합성신약)과 함께 SK㈜의 신약 개발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 한미약품과 CJ헬스케어도 스탠다임과 손잡고 항암 신약 개발 등 초기 연구단계부터 AI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 회사의 저력은 대표의 이력과 맞물린다. 김진한 스탠다임 대표는 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컴퓨터공학 석사, 영국 에딘버러대 AI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선 생물과 IT를 융합하는 연구를 맡았다.

투자사들은 대기업보다 한 발 빨리 김 대표의 능력을 알아봤다. 지난해 3월 미래에셋캐피탈, 카카오벤처스, LB인베스트먼트 등이 130억원을 스탠다임에 투자했다. 지금까지 투자사, 대기업 등에서 260억원 이상이 이 회사에 몰린 셈이다.

지난 5월 1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스탠다임 본사에서 만난 김진한(44) 대표는 “AI를 이용하면 신약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반 이상 줄고, 실패 확률도 확 낮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스탠다임은 현재 항암, 비알코올성지방간 (NASH), 파킨슨병 분야 등에서 신약후보물질을 확보했다.
스탠다임은 정확히 어떤 회사인가.

AI 신약 개발 회사다. 개발이란 말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신약 물질을 디벨롭먼트(Development·개발)한다기보단 디스커버리(Discovery·발견)한다고 보는 게 맞다. 스탠다임의 AI 솔루션은 데이터 학습을 통해 신약군을 제너레이션(생성)하고, 최종 합성 후보를 필터링(선별)해 새로운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을 찾는다.

AI 솔루션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우리 플랫폼은 ‘스탠다임 인사이트(신규 적응증 및 작용기전 예측)’, ‘스탠다임 베스트(선도 물질 최적화)’ 크게 두 가지다. 인사이트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의약품이 다른 적응증에도 치료 효과가 있는지 탐색하는 역할을 한다. 베스트는 기존 인비트로, 인비보 실험으로 쌓은 400만 건이 넘는 분자구조를 학습하고 바꿔 파이프라인을 발굴한다. 기존 방식이라면 연구원 수십 명이 수개월간 논문 1000여 편을 읽고, 신약후보물질을 10여 개 정도 찾아내는 식이다. 여기서도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사례는 수년간 손에 꼽을 정도다.

처음 시도는 아닐 텐데.

그렇다. 기존 실험실에서 컴퓨터를 도구로 사용하는 건 일상화돼 있다. 하지만 그냥 생체를 분석하는 것과 약이 될 만한 물질을 고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후보 물질을 찾는 데만 경우의 수가 10의 13승, 10조 단위나 된다. 단순히 AI를 도입했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AI를 도입하면 어떻게 달라지나.

인간이 신약후보물질 10여 개를 찾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면 AI 솔루션은 하루면 족하다. AI에는 딥러닝이라는 신경망을 이용하는 머신러닝이 있는데, 여러 비선형 기법을 조합해 모델링을 시도하는 작업에 쓰인다. 우리는 이를 활용해 물질 구조를 이렇게 바꾸면 어떤 질병에 어떤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지를 예측한 데이터를 낸다. 기존 치료제를 활용하거나 임상단계에서 상업화에 실패한 약물을 대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신약 재창출’에도 활용할 수 있다. 원래 협심증과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했던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궤양 치료제로 연구됐던 미녹시딜은 탈모 치료제로,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가 최근 코로나19 치료제로 주목받은 게 대표적인 예다. 비슷한 물질을 여러 개 만들어 전부 특허를 내는 ‘특허장벽’ 전략에도 유용하다.

현재까지 성과는 뭔가.

항암, 비알코올성지방간(NASH), 파킨슨병 분야 등에서 신약후보물질을 확보했다. 연구를 거의 마무리했거나 진행 중인 것까지 합해 올해 특허 낼 파이프라인만 50여 개가 넘는다. 다국적제약사와 공동연구한 경험도 꽤 쌓였다. 폐암,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독일·일본 업체와 공동연구했다. 외부에 잘 알려졌다시피 한미약품, SK바이오팜 등 국내 유수 업체와도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 매월 1~2개 정도의 신규 파이프라인 특허를 내는 게 목표다.

비즈니스 모델은 뭔가.

IP(지식재산권)이다. 독자적으로 IP를 갖든, 제약사와 공동연구해 IP 권리를 나누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으로선 제약사와의 협력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한 프로젝트가 시판 약물로 나오는 일련의 과정 그 자체가 우리 비즈니스의 성공이자 모델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오해를 풀자면 우린 소프트웨어 패키지 판매사가 아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소프트웨어를 파는 게 아니라 플랫폼을 제공하듯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력만 보면 창업보다 연구원으로 일하는 게 더 어울렸을 법하다.

내 평생 연구 주제인 생물학과 AI가 창업으로 이어진 셈이다. 사실 20년 전 한 벤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할 때부터 창업을 생각하긴 했다. 진지하게 창업을 결심한 건 2015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일할 때였다. 당시 그곳에서 DNA 손상을 AI 알고리즘으로 복구하는 연구, 같은 방식으로 최적의 반도체 유기 소재를 찾는 일, 스마트폰의 얼굴 인식을 딥러닝화하는 기술 등을 연구했다. 연구가 중단되면서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송상옥·윤소정 이사와 함께 2015년 스탠다임을 설립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불과 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누구도 이런 얘길 들으려 하지 않았다. 기존 방법으로 신약 물질을 찾는 것도 어려운데 검증도 안 된 AI를 활용한다니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AI가 뭐냐고 묻는 기업도 있었다. 그러다 2016년 다국적제약사 화이자와 테바가 IBM의 AI 컴퓨터 왓슨을 도입해 신약 개발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같은 해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이 대국을 펼치면서 AI 이해도가 확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신약 개발분야 AI 전문가를 찾는 건 어렵다. 사실 구성원은 융합산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금도 생물학, 의화학, 시스템생물학 등 박사급 인력이 30여 명이 포진해 협업한다. 각자의 생각이 확고해 쉽진 않지만, 공동의 목표를 설정해 끊임없이 대화하는 방법으로 풀어가고 있다.

해외 경쟁사와 비교한다면.

전 세계 시장은 크게 3개 업체가 이끈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검증까지 46일 만에 완성했다는 인실리코메디슨(Insilico Medicine), 에볼라 바이러스 신약을 개발한 아톰와이즈(Atomwise), 강박신경증 신약의 임상시험을 시작한 엑센시아(Exscientia) 정도다. 특히 신약 물질의 검증이란 측면에선 엑센시아가 가장 앞서 있다. 우리도 신약 물질을 발굴하는 것부터 결과물 검증까지 하는 ‘양보다 질’이란 전략을 추구하고자 한다. 우리가 기술 면에선 3개사와 어깨를 견준다고 자부한다.

험난한 신약 개발 과정이 한결 수월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며 김 대표는 “스탠다임의 AI 솔루션은 ‘만능’은 아니다”라며 “요술 램프처럼 없는 약을 뚝딱 만들어내는 도구로 AI를 생각하고 인간의 디자인 능력을 등한시한다면 오히려 신약 개발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진한 대표는 AI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보단 냉철한 활용을 주문하며 이렇게 정리했다.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도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일부 모델에 불과합니다. 이 이론들이 구체화한 건 정밀한 수학적 도구가 나왔기 때문이죠. AI를 활용하는 우리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린 도깨비방망이를 만들어 수십 년간 인간이 발전시켜온 신약 개발 메커니즘을 뒤바꾸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면, 포기할법한 것을 다시금 잡아주는 똑똑한 내비게이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발견’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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