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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TECH POWER] 전민용 블루닷 대표 

동영상 시장 잡겠다는 반도체 설계자들 

동영상 콘텐트 홍수 시대. 뜻하지 않게 반도체 설계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무한대로 인프라를 늘릴 수 없는 데이터센터 입장에서 볼 때 비용 절감 대안으로 떠오른 블루닷은 반도체 설계자산을 꺼내들었다.

▎전민용 블루닷 대표는 “데이터센터가 폭주하면서 회로를 재설계해 용도를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래머블 반도체가 주목받고 있다”며 “특히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수요에 발맞춰 반도체 위에 얹을 수 있는 AV1 인코더 (전용) 반도체 IP를 개발했고, 올해 말 클라우드 서비스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3월부터 글로벌 IT 기업들이 각국에서 서비스하는 영상 화질을 낮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와 자가격리 사례가 늘면서 인터넷 사용이 급증한 탓이다. 유럽연합(EU)이 가장 먼저 유럽 내 인터넷 트래픽 폭증을 해소하기 위해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에 요청했다. 이후 구글도 유튜브의 기본 화질 설정을 ‘일반화질(SD)’로 바꿨고, 페이스북도 동영상 서비스 화질을 낮췄다.

고화질 콘텐트 수요가 줄어든 건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고화질 동영상을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로 보고 싶어 한다. 온라인 동영상 콘텐트 서비스(OTT), 주문형 비디오(VOD), 전자상거래, 온라인 게임 수요까지 고려하면 트래픽은 이미 몇 배나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특히 데이터센터는 비상이 걸렸다. 온라인 게임,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데이터센터의 서버용 D램,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처리 능력은 사실상 포화 상태다. 가격도 만만치 않아 마냥 증설할 수도 없다. CPU 한계도 분명해졌다. 입력 순서에 따라 연산하는 ‘직렬’ 컴퓨터 구조인데, 시스템 전체를 통제하거나 어려운 연산을 할 때는 유리하지만 일정한 규칙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고용량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비효율적이다.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Field Programmable Gate Array)가 각광받는 이유다.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특성을 동시에 갖는 FPGA는 목적에 맞게 회로를 수정해 사용할 수 있는 반도체다. 이미 칩의 구조 설계가 완성된 CPU, GPU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현재 국방, 통신, 가전, 자동차, 각종 스마트 기기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반영하는 데 유리하다. 성능도 CPU보다 20배 정도 더 좋고, 에너지 효율도 뛰어나다. 문제는 활용 능력이다.

블루닷은 동영상 콘텐트 시장을 겨냥해 FPGA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8월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로 사무실에서 만난 전민용(47) 대표는 “SNS 비디오, 클라우드 게이밍, 가상·증강현실(VR·AR), OTT·VOD 등 5G 시대에 반도체 기술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며 “특히 우리는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에 필수적인 초고해상도(4K/8K), 초고화질 지원 비디오 인코더 반도체 설계자산(IP)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영국 프로세서 설계와 제조를 위한 반도체 IP 개념과는 다른 것 같다.

그렇다. ARM의 IP를 조합하고 핵심 기능을 더해 생산업체가 만드는게 우리가 아는 반도체다. 이미 용도가 정해진 CPU, GPU, DRAM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FPGA도 물리적으로는 반도체가 맞지만, 방식은 조금 다르다. 백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시 고치고 수정해 실시간 프로세싱, 동영상 인코딩, 자율주행(AD) 등 다양한 분야에 맞는 반도체 설계를 그 위에 얹을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반도체 IP는 프로세서와 비디오, 오디오, 그래픽, 메모리, 인터페이스 등 반도체칩에 삽입돼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수십 가지 미세한 블록(Block)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소프트웨어라고 이해하면 되나.

아니다. FPGA의 단점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활용도다. 기본 구조가 반도체이기 때문에 개발자가 회로를 입맛대로 바꾸려면 반도체 회로 설계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반도체 미세공정기술이 발전하면서 칩 하나에 많은 걸 심을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카메라 센서에서 수집한 영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기 위해선 센서 내에 특수 IP 블록이 필요한데 해상도와 용량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연산처리 프로세싱 능력을 심어줘야 한다. 칩의 활용도를 높이는 두뇌를 만든다고 하면 흔히 소프트웨어를 생각하지만, FPGA는 바탕이 되는 칩 위에 다른 칩을 설계해 박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수요 외에 동영상 콘텐트 시장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

언제나 그렇듯 업계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코로나19 사태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수요가 폭발했고, 각국 정부, 기업이 인터넷 네트워크 자체가 다운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도 인프라 과부하로 CPU, GPU, 서버용 D램 설치를 늘리고 있으나 쉽지 않다. 막대한 비용도 문제다. 그래서 FPGA를 활용하려고 하는데, 방법이 어렵다. 백지 같아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반도체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으면 그냥 허울만 좋은 슈퍼컴퓨터에 지나지 않는다. 동영상을 압축하는 인코딩 과정에선 다시 CPU를 써야 한다. FPGA에 고화질, 고압축에 특화된 반도체 IP를 심으면 어떨까 싶어 뛰어들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정한 표준 압축 기술이 있지 않나.

그렇다. 기존에는 동영상 압축 코덱 H.264와 H.265(HEVC) 기술이 가장 흔하게 쓰였다. 그 덕분에 콘텐트 영상은 더 밝고 선명하게 표현하면서 기존 용량은 절반쯤 줄어들었다. 하지만 라이선스가 있어 로열티 문제가 걸린다. 2015년 글로벌 IT 기업이 움직였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삼성전자 등이 참여해 AO미디어(AOMedia, Alliance for Open Media)라는 민간단체를 만들었고, 오픈소스 동영상 압축 코덱 AV1 표준을 개발했다. AV1은 4K, UHD, HDR 등 고화질 영상을 압축하는 소프트웨어 코덱이다. 4K UHD(3840×2160) 영상을 30% 적은 용량으로 줄여준다. 이는 드론이 촬영하는 4K급 비행 영상, 자율주행차가 기록하는 라이더(3D 영상 모델링 기술) 영상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로열티 없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얼마든지 수정도 가능하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코덱의 압축률이 높아질수록 인코딩 연산량이 수십 배가량 늘면서 CPU 사용도 늘어나 인프라 증설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클라우드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서비스 사업자들이 AV1 인코더 (전용) 반도체 IP를 도입하면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나.

무엇보다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사업자를 비롯해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하는 사업자에게도 비용 절감 효과가 더 클 거다. CPU 대안으로 효율이 뛰어난 FPGA 활용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올해 하반기 FPGA용 동영상 고해상도 처리를 돕는 ‘딥필드 SR’과 압축 효율을 두 배 이상 높여주는 ‘펄서(Pulsar) AV1’를 선보일 예정이다.

창업 전부터 코스닥 상장까지 회사의 멤버였다고 들었다.

그렇다. 김동규 CTO, 한형석 CMO 모두 코스닥 상장사 칩스앤미디어에서 연을 맺었다. 난 회사 초창기에 합류했고, 김 CTO는 창업 멤버 중 하나였다. 한 CMO는 삼성전자 시스템 LSI 사업부에서 비디오 코덱 엔지니어로 활약했고, 안드로이드 동영상 편집 앱으로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키네마스터(Kinemaster) 출시를 총괄했던 인물이다. 칩스앤미디어도 반도체 IP 기업으로, 미국 NXP, 중국 하이실리콘, 대만 리얼텍 등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반도체 업체에 IP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투자를 유치할 때 회사 주요 멤버의 이력 중 반도체 설계 경력이 크게 어필했던 것 같다.

동영상 해상도는 두 배 이상, 용량은 절반 이하로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있나.

글로벌 1위 FPGA 제조사 자일링스와 미팅 중이다. 자일링스도 FPGA를 AI 환경에서 좀 더 자유롭게,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들 자신도 칩 제조사가 아닌 플랫폼 회사라며 플랫폼 생태계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도 자일링스 개발 플랫폼 바이티스(Vitis)를 내놓으면서 FPGA 프로그래밍 언어 대신 범용 프로그래밍 언어(C언어, C++, 파이썬 등)로 반도체 설계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FPGA 설계, 특히 반도체 엔지니어의 노하우에 의지했다는 측면에선 달갑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AI, 자율주행, 5G, 동영상 스트리밍 등의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고, 공급이 따라주지 않는 GPU 독주를 깰 FPGA를 활용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차원에선 긍정적이다. 우린 어떤 환경이라도 기존 FPGA를 가지고 다수의 GPU나 전용반도체(ASIC)급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세계 최대 클라우드 기업인 AWS와도 협력할 수 있겠다.

AWS 마켓플레이스 진출이 단기적인 목표다. AWS 마켓플레이스는 서비스 사업자 고객이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찾아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온라인 쇼핑몰이다. 190개 국가에 수백만의 활성 고객을 보유한 AWS에서 블루닷의 반도체 IP를 팔 수 있다. 배포 방식은 크게 아마존머신이미지(AMI), 클라우드포메이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로 나뉜다. 그중에서 별도의 인프라 구성이나 도입 절차 없이 사용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SaaS 형태로 먼저 서비스하고자 한다.

클라우드는 퍼블릭이지만, 상당수 기업이 온프레미스(내부 구축)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알고 있다. 클라우드 하면 퍼블릭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보안 같은 기업 내부 사정을 이유로 온프레미스 환경을 고집하기도 하고,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를 채택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네이버가 하이브리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블루닷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 고객 구성이 좀 달라질 뿐이다. 온프레미스 환경에선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 클라우드 환경에선 개인사업자나 서비스 사업자가 주가 될 뿐이다. 일단 올해 목표는 고해상도 작업에 특화된 서비스를 클라우드에 출시하는 거다.

인터뷰 내내 전 대표는 “초저전력 주문 맞춤형 반도체(ASIC, FPGA) IP에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이 됐지만, 막대한 자본이 투하된 라인 사업이다. ARM는 반도체 설계 도면을 팔아 수십조원 기업으로 성장했고, AI 이슈로 GPU를 만드는 엔비디아는 세계 시장을 90% 독점했다. 최근 삼성전자도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역량 키우기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여기에 블루닷은 적시에 설계변경이 가능한 FPGA 칩과 같은 특수반도체에 자사만의 IP 설계력를 투영하고자 한다. 전민용 대표는 하드웨어가 빠르게 진화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에 발맞춰 고도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려운 하드웨어 반도체를 쉽게 서비스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소프트웨어로 풀기 힘든 문제를 우리가 십수 년간 쌓아온 하드웨어 지식으로 풀어주는 거죠. 한국인이 특히 강한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링 기술을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반 개발 환경에 잘 풀어내면 반도체 IP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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