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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9) 

한반도 유민들의 신라방과 21세기 한인 교포 사회 

당나라는 중국 왕조 중에 가장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나라였다. 당에 체류하는 이민족을 우대했고 주변국에서 사절단과 유학생 등을 유치했다. 이런 개방정책으로 말미암아 중국 곳곳에 ‘번방(蕃坊: 외국인 거주 구역)’이 형성됐는데, 신라방 혹은 신라촌으로 불리던 신라인 사회도 그 중 하나였다.

▎적산 법화원에 세워진 장보고상. / 사진:윤태옥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전쟁에서 지고 지배계급이 바뀌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제시대 친일파들처럼 운 좋게 정복자의 편에 붙어먹고 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참하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살육을 당하기도 하고 노예로 전락하기도 하고 전쟁터로 끌려가기도 한다. 7세기 당나라는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면서 백성 수십만 명을 당나라 험지와 전쟁터로 끌고 갔다. 당시 고구려 요동지역에 남은 인구가 2만 명이 못 될 정도로 줄었다. 668년 평양성이 함락당하고 3만 명에 이르는 장군, 관리, 기술자, 예술가, 군인과 백성이 묶인 채 당나라의 내륙 장안(시안)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끌려갔다. 신라로 망명해 당나라와의 전쟁에 합류했던 사람들은 신라인이 되었고, 북만주나 동만주 오지로 탈출한 유민들은 거란, 선비, 말갈 등에 흡수됐다. 힌두쿠시산맥을 넘었던 전설적인 장군 고선지가 이끄는 군대는 상당수가 고구려인이었다. 백제 부흥군을 이끌다가 당나라에 투항한 흑치상지는 당나라 7대 장군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했지만 처형당했다. 일부는 극적으로 나라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산둥반도에서 당나라의 존립을 위협했던 이정기 왕국도 고구려 유민세력이 주축이었다. 대조영은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에서 발해를 세워 고구려를 계승했다.

백제 유민들도 당나라로 끌려갔거나 일본으로 도망쳤다. 백제 유민들과 고구려 유민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자 일본에서는 왕실 교체 같은 변란이 일어나 정치적 혼란이 격심했고, 심지어 유민세력 간의 전투도 벌어졌다. 하지만 대거 유입된 백제의 군인, 학자, 기술자들은 신흥 일본을 경제적, 문화적으로 부흥해 670년 일본국이 탄생했다.

장보고의 핵심 네트워크 신라방


▎『입당구법순례기』의 저자 구법승 엔닌의 석상, 백제계인 엔닌도 신라방에 거주했던 한반도 유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당나라에서의 구법활동을 잘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 대륙의 국가들은 내륙을 횡단하는 실크로드 경영에 주력했고 전통적으로 해상활동이 약했다. 섬나라인 일본도 가까운 바다에서만 활동했지 먼 바다에서는 약했다. 왜구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한참 후인 14세기부터이다. 당나라는 중국의 왕조 중에 가장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나라였다. 당에 체류하는 이민족을 우대했고, 주변국에서 사절단과 유학생 등을 유치했다. 이러한 개방정책으로 말미암아 중국 곳곳에 ‘번방(蕃坊: 외국인 거주 구역)’이 형성됐는데, 신라방 혹은 신라촌으로 불리던 신라인 사회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양주에서부터 등주(登州)에 이르는 해안 지역에는 신라인 사회가 곳곳에 있었다. 일본의 구법승 엔닌(圓仁)이 쓴 일기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따르면, 중국 동해안에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었으며, 그들은 선박 제조 및 수리업, 해운업, 목탄 제조 및 유통업, 칼 제조업, 소금 생산업 등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막강한 경제력과 조직망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 한반도에서 끌려왔거나 먹고살기 힘들어서 당나라 해안가로 쫓겨 온 유민들은 한반도의 서해안과 남해안 바닷가 출신들이 많았을 것이다. 당나라든 일본이든 새로 이주해 온 유민들은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기득권 세력에 덜 치이고 경쟁력이 있었던 바다와 무역에 관련된 일들을 했을 것 같다.

고대 바다에서는 상인, 해적, 해군 등의 구분이 애매모호하다. 장보고가 암살되고 청해진 세력이 구심점을 잃자 잠잠했던 해적들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배운 역사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일본에는 신라 해적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신라 해적들은 신라의 내정이 불안해지거나 후삼국시대 같은 혼란기에는 더 극성을 부려 10세기 초반까지 ‘신라구’가 일본을 자주 침략하며 큐슈는 사람이 못 살 정도로 피폐해졌다. 14세기 후반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은 집권 초기에 수도 남경(난징)에서 가까운 주산군도 방면의 해적들을 소탕했다. 그런데 주산군도 쪽 해적들이 가야·백제계 유민들이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증거가 있다. 주원장이 해적 소탕에 나서자 주산군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반란을 일으킨 섬 중 하나가 주산군도에 속한 난수산도(수산도)다. 이들의 반란은 성공하지 못하고 100명이 넘는 해적 반란 세력들은 탐라를 거쳐 한반도 서해안에 있는 전라도 고부와 수도 개경으로 도주했다. 이들이 고려인들 사이에서 숨어 살았다. 이는 이들의 외모와 말이 한민족과 같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이 탐라와 한반도로 도주한 사실은 이들이 옛 백제나 탐라 출신의 해상 세력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4세기 왜구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무역이든 해적이든 동아시아 바다를 주도했던 세력은 백제계 유민들이었다.

발해, 신라와의 무역 창구로 성장한 이정기 왕국에서는 백제, 고구려, 신라, 발해 출신의 유민과 이주민들이 신라방과 발해관으로 불리는 동네에 모여 살면서 강력한 해상 세력을 형성해 이정기 왕국을 지원했을 것이다. 발해도 고대의 전략물자인 말을 이정기 왕국에 팔면서 이정기 왕국의 기마군단을 지원했다. 중국 동해안의 신라방, 발해관과 같은 한반도계 해상 세력들이 이정기 왕국이 멸망하자 그 대안으로 장보고를 지원했을 것으로 상상해본다. 장보고의 핵심 네트워크 또한 한반도에서 살기 힘들어서 넘어온 백제, 고구려, 신라, 발해, 가야 유민 등 다양한 출신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신라방이었을 것이다. 일본 구법승 엔닌이 산둥반도에 갔을 때 신라인들이 신라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봤지만 남쪽 해안으로 갔을 때는 신라의 풍습을 몰랐다고 한다. 엔닌도 백제계 출신이어서 쉽지 않았던 9년간 당나라 구법순례 중에 신라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엔닌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였던 엔친(円珍, 814~891)도 당나라에서 5년간(853~858) 구법활동을 하면서 신라인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받게 된다. 엔닌이 서해를 건너다닐 때는 발해인 이연효의 배를 탔다. 장보고도 옛 백제 지역 출신이었고 재당 신라인 상당수가 과거 백제 유민이거나 백제 지역 출신 신라인일 가능성이 높다. 장보고의 해외 네트워크는 신라인이라기보다는 한반도 바닷가 사람들의 해외 디아스포라가 아니었을까? 백제계를 중심으로 가야, 신라, 고구려, 발해 등 한반도 서해와 남해 출신의 유민과 이주민들이라 문화적 동질성이 있었을 것이고, 비슷한 말을 쓰면서 뭉치기 쉬웠을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인 공동 이익을 추구했을 것이다. 당나라의 신라인 사회는 당시 육상 실크로드 상권을 쥐고 흔들었던 소그드 상인들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백제계, 가야계, 고구려계, 신라계, 발해계 등 다양한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이들 간의 언어적 동질성은 꽤 높았을 것이고 서해를 배경으로 무역과 바다에 익숙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다양한 한반도 바닷가 출신 사람들이 무역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장보고를 중심으로 뭉치지 않았을까?

유대인들이 2000년간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다가 영국과 미국이 세계 패권국가로 성장할 때 무역과 금융의 인프라를 제공하면서 같이 성장해 전 세계의 경제를 휘어잡았다. 그런데 우리는 불과 1300여 년 전 처절했던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기억조차 못 한다. 나라가 망해서 도망갔거나 먹고살기 힘들어서 유민이 되었던 한반도 사람들을 장보고가 규합해 동아시아 상권을 제패했듯이, 먹고살기 힘들었던 20세기에 한반도 사람들은 전 세계에 퍼져나가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동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확대하며 180개국 750만 명의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할 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중국 동포들 덕분에 한결 수월했다고 한다.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750만 명 한민족 네트워크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네트워크를 조직화하기 위해서 2002년부터 대규모로 열리는 세계한상대회는 장보고가 1200년 전에 구축한 신라인 네트워크를 벤치마킹해서 시작됐다고 한다.

신라방의 쇠락


▎복원된 완도의 청해진 본영. 장보고는 이곳에서 동아시아 해상경영을 하다가 골품제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부하 염장에게 암살됐다.
동아시아를 주름잡았던 한반도 해상 세력은 14세기까지 동아시아 바다를 장악했지만 장보고 이후에는 한반도 출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합하여 원스톱 플랫폼으로 제공할 수 있는 세력이 나오지 못했다. 당나라와 일본의 백제·고구려·신라·가야 유민들은 장보고 때 같은 통합적 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점차 그 유민들도 현지인으로 동화됐다. 21세기의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보면 화교나 인도인,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같은 단합된 힘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없어도 구약과 율법을 중심으로 전통을 이어오다가 대영제국과 미국의 도약과 더불어 세계경제의 주도 세력이 됐다. 고려 말 삼별초의 난 이후부터 한반도의 정권들은 지리적 장점을 활용하지 못했고 해금정책과 공도정책으로 바다로 나가지도 못했다. 결국 시대착오적인 주자학의 폐쇄적 이데올로기에 빠져 동아시아 바다의 해상 주도권을 일본과 서구 열강에 빼앗겼다.

필자는 30여 년 동안 4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유럽 등 여러 나라의 한인 교포 사회의 성장을 지켜봤다. 개도국에서는 한인 교포들이 주류사회로 진입하기도 하지만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에서는 우리 교포들이 현지 주류사회로 진입하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 어느 나라든 한인 교포 상당수는 한국과의 무역, 관광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어떤 교포는 “한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교민 사회는 독감에 걸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행히 한국 경제와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현지에서 교포들의 위상도 같이 올라갔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실리콘밸리 지역의 한국 음식점에 가면 한국 사람이 대다수였는데 요즘은 미국인이 훨씬 더 눈에 많이 띈다. 싱가포르에서는 10여 년 사이에 한국 음식점이 몇 배가 늘었다. 요즘은 중화권, 동남아의 웬만한 푸드코트에 가면 대부분 한국 음식점이 입점해 있다. 20년 전 선진국에서 중저가 음식에 속했던 한국 음식은 이제는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어 대부분 나라에서 가격이 비싼 축에 속한다. 이렇게 해외 한인 교포 사회는 모국 남한의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강성하지 못하면, 한민족의 정체성과 당당한 세계관을 다시 세우지 못하면, 20세기 먹고살기 힘들어서 전 세계에 디아스포라를 만든 한민족 교포 네트워크도 중국 대륙의 신라방이 쇠락했던 길을 따라갈 것이다. 8세기 장보고의 한반도 유민 네트워크가 그랬듯이 21세기 한민족 네트워크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는 중국인, 유대인, 인도인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지켜보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고구려, 백제의 최후와 그 유민들의 깊은 한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한 한민족 네트워크를 장보고처럼 통합할 수 있다면 180개국 750만 한민족 네트워크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네트워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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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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