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10) 

르네상스와 중화(中華)라는 도그마 

우리는 아직도 르네상스와 중국이란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서구와 중국 중심의 기존 세계관, 역사관의 프레임들을 근본부터 의심해봐야 한다.

▎우즈베키스탄 호레즘 주의 도시 히바의 지도.
2015년 메르스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 우즈베키스탄 여행길에 오른 필자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를 조심하라는 이야기와 함께 낙타를 타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필자가 아는 많은 사람은 이슬람과 테러리스트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수십 년간 유태계 미국 언론들에 세뇌를 당해서일 것이다. 기독교나 불교를 믿는 테러리스트 앞에는 종교명을 붙이지 않는데, 유독 이슬람교를 믿는 테러리스트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서구 사회의 편견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염된 것이다. 하지만 실크로드 유적지에서 내가 본 이슬람은 학문을 숭상하고 관용하는 문화였으며, 모슬렘은 우리와 다른 가치 체계를 가졌지만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왜 한국인이 한국인을 차별할까


▎우즈베키스탄 히바(Khieva) 인근의 고성, 아야스 칼라(Ayas Qala)를 낙타를 타고 내려왔다.
필자가 실크로드를 여행하고 공부하면서 가장 가슴 아프게 느꼈던 것이 우리의 편향된 세계관과 역사관이었다. 조선후기 소중화(小中華) 사상으로 작은 중국을 자처하다가 세계적 조류를 놓쳤던 한민족이 아직도 서구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는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면서 시위를 하는 태극기부대를 쉽게 볼 수 있다. 국내 대기업 구매부서들은 미국·유럽계 공급자들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고, 한국 중소기업에는 고압적인 태도로 협상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필자도 20여 년간 사업을 하면서 미국, 유럽 기업들을 좋아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어이없는 역차별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명도는 있지만 실력은 떨어지는 미국·일본·유럽 기업들과는 계산기도 제대로 두드려보지 않고 계약을 체결하고, 우리 회사는 국내 기업이라고 관심도 별로 두지 않고 만만하게 보는 일들은 여러 차례 겪으면서 분루를 삼킨 적도 많았다.

얼마 전에도 국내 대형 금융기관에서 유휴자산 매각 건으로 유럽 회사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유럽 회사가 홈페이지만 그럴싸한, 작고 실력 없는 회사였는데도 이 분야 세계 1위인 우리 회사를 제치고 유리한 협상 고지를 차지해서 분통이 터진 적이 있었다. 이렇게 서양 기업을 떠받들고, 국내 기업은 무시하는 황당한 사대주의 작태들이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별 볼 일 없는 미국·유럽 기업들을 높게 평가하고 국내 기업들은 만만하게 보고 중국 기업은 폄하하는 왜곡된 사대주의는 우리의 편향된 역사관에서 비롯됐다.

이제 한국 사람들의 평균적인 물질적 삶의 수준은 미국, 유럽, 일본에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는 분야도 많다. 한국의 패션과 음악은 세계적으로 가장 트렌디하다. 땅덩어리가 작아서인지 생활 인프라와 산업 인프라를 한국 수준으로 갖춘 나라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강남과 판교의 세련된 도시 모습을 보고 서양 친구들과 일본 친구들이 기가 죽는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지구상에 한국만큼 선진적인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렇지만 이 세련된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들이 사대주의와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렸을 때 잘못 배운 서구 중심주의 세계관 때문이다.

승자 중심으로 기록된 세계사


▎부하라 기차역 앞에 있는 실크로드 안내판.
필자가 배웠던 1970~80년대의 역사와 21세기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세상은 지난 몇십 년 동안에 천지개벽을 했는데 역사는 ‘현재의 해석’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역사학자들은 승자들이 만들어놓은 오래된 구닥다리 세계관과 역사관을 답습하고 있다.

서유럽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세계경제에서 별 존재감이 없는, 못사는 지역이었고, 19세기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중국 경제를 추월했다. 서구가 세계경제에서 우위를 점한 지는 200년이 채 안 됐지만 서점에 진열된 세계사 책들은 온통 유럽 중심으로 세계사를 기술하고 있다.

필자가 배운 세계사는 유목민족의 역사는 삭제해버리고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역사를 쏙 뺀, 승자가 된 유럽 사람의 관점에서 본 세계사와 중국 중심의 역사 서술이었다. 중앙유라시아의 나라들을 뺀 세계사로는 결코 보편적 세계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없다. 서점에 가서 ‘세계사’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을 꺼내 내용을 보면 유럽 중심의 이야기를 쭉 써놓고서 세계사라는 제목을 붙인 책이 대부분이다. 유럽이 세계사의 주역이 된 지 고작 200년밖에 안 됐는데 인류의 역사 전체를 유럽 중심으로 채색해놓은 것이다.

필자가 학교에서 배웠던 국사와 세계사는 도무지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다. 수, 당의 삼국 침략이나 임진왜란, 3.1운동, 한국전쟁이 세계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선생님들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한반도의 역사적 사건들은 세계적 조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가 배운 국사에서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국지적 사건으로 취급했다. 한민족의 우수성을 열심히 강조한 국사를 배우면서 애국시민은 되었지만 보편적인 세계관을 배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배운 국사에는 연변 조선족과 구소련 고려인은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고, 북한사도 매우 단편적으로 다뤄 반공의식 고취라는 목적 아래 부분적으로 배웠다. 20세기 유물인 냉전이 21세기에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 20세기 역사의 한 축이었던 구소련의 역사를 배울 기회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21세기 한국인의 역사 인식은 냉전시대 대한민국 통치자들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역사는 쉽게 듣지만 구소련의 역사가 한반도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알려주는 학자는 많지 않다.

한반도 역사를 세계사라는 큰 맥락에서 공부한다면 우리는 역사를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살아 있는 교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태극기부대 어르신네들은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상당 부분은 냉전시대에 대한민국 지배층이 만들어놓은 편협한 프레임의 국사와 세계사에서 기인한다. 미래에 태어날 우리의 후손들은 좀 더 보편적인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한국사를 공부해야 한다.

부하라 기차역 앞의 실크로드 안내판에는 고대 중앙유라시아의 실크로드 핵심 거점들이 표시돼 있다. 찬란한 문명의 중심, 중앙유라시아 도시들은 대항해시대 이후에 유럽에 주도권을 뺏기고 지구촌의 오지로 쇠락했으며 그들의 역사는 잊히고 있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중앙유라시아는 오늘날 CNN과 같은 서구 언론이 서구중심주의로 덧칠을 해 위험하고 못살면서 야만적인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땅으로 간주되고 있다. 16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바부르의 정원을 가졌던 아프가니스탄의 카불(KABUL)은 이 시대에는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됐다.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 중동 국가들은 대항해시대 이전까지 세계사의 주역이었고, 오히려 유럽이 16세기까지는 로마시대를 제외하고는 세계사에서 변방이었다. 5000년 전 신석기시대에서 막 벗어난 에게해 지역의 변두리 문화를 ‘에게문명’으로 정의하면서 그 후 3000년간 고도의 금속문화를 가진 북방 유목문명을 야만으로 홀대해왔다.

15세기까지 유럽 사람들도 그리스 문명을 이집트 문명의 후계 문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이 잘살기 시작하자 그리스 문명에 대한 멋진 채색이 시작됐다. 고대 그리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스반도 중심의 국가가 아니라 지중해를 둘러싼 무역국가였으며, 그 학문의 중심은 이집트 지역의 알렉산드리아였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그리스 학자 중 대다수는 오늘날 이집트 땅인 알렉산드리아 출신들인데도 우리는 그들을 이집트가 아니라 현대 그리스의 지리적 위치와 관련짓는다. 그리스 문명은 그리스반도의 문명이 아니라 지중해를 둘러싼 유럽, 아시아, 이집트의 환지중해 문명으로 히타이트, 페니키아, 시리아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많은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페니키아 출신이었고 그리스로 귀화한 인물이었다. 그리스 신화는 이집트로 간 수메르 신화를 재수입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포세이돈을 비롯한 몇몇 신(神)을 제외하고는 그리스의 모든 신이 이집트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이집트에서 유래된 신들에 대한 관념과 신앙이 지중해를 거쳐 그리스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신의 이름이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전해졌다. 나는 신들의 이름이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유래했음을 직접 탐문하여 알아냈으며, 대개 이집트에서 유래했다고 확신한다.”

남근(男根)이 달린 헤르메스상을 숭배하는 관습과 기타 몇 가지 사회적 의식이나 제의도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전해진 것으로 본다.

“축제와 행렬, 그리고 제물 바치는 의식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이집트인이고, 그리스인은 이런 것들을 그들에게 배웠다. 그 증거로 이런 관행들은 이집트에서는 아주 오래됐으나 그리스에는 최근에야 도입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스 문명의 모체는 이집트 문명이라는 것이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의 확고한 시각이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images/sph164x220.jpg
202010호 (2020.09.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