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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10) 피렌체에서 한국의 르네상스를 찾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내려다본 피렌체 도시 전경. 아르노강 건너편으로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피렌체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돔과 조토의 종탑, 산타크로체 성당이 보인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가 어디니? 항상 또다시 가고 싶은 도시는 어디니?”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가보고 싶은 도시가 수없이 많다. 필자에게 이 같은 질문을 한다면 지체 없이 그리고 당연하게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피렌체!”라고 외칠 것이다. 왜 피렌체인가? 주관적인 감상을 책으로 쓴다면 아마 몇 권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여러 차례 피렌체를 찾았지만 매번 피렌체의 역사, 문화, 사업, 낭만, 음식, 와인 등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특히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어놓은 인재들, 아니 천재들이 한곳에 묻혀 있는 산타 크로체(Basilica di Santa Croce) 성당을 방문할 때면 어떻게 이 작은 도시에 저렇게 많은 천재가 모여들어 인류 역사를 바꾸어왔는지 감탄하게 된다. 메디치 가문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으며, 또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지, 피렌체가 왜 르네상스의 중심 역할을 했는지 등 다양한 궁금증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피렌체의 좁은 골목과 광장을 걸으며 르네상스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우피치 미술관에서 불멸의 문화 작품들을 감상한다. 피렌체 대성당에서는 역사와 건축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낭만을 느낀다. 다리가 아프면 노천카페에서 티라미수 케이크와 더불어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휴식을 얻고, 저녁에는 맛집에 들러 이탈리아 와인을 곁들여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한다. 번잡한 생각은 이내 사라지고 도시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달콤한 시간을 누린다. 그야말로 ‘돌체 파르 니엔테(Dolce Far Niente, 무위의 즐거움)!’다.

르네상스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웅장한 모습의 피렌체 대성당과 조토의 종탑, 그리고 세례당이 겹치듯 보인다.
여행에서 짜릿한 행복감과 전율로 다가오는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또 여행의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 피렌체는 눈과 귀를 통해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접하게 해준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 디저트를 즐기는 입을 통해 미각적인 즐거움도 선물한다. 이와 더불어 가슴과 머리를 두드리는 감동까지 선물한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지난 30~40년간 우리나라만큼 발전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도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하드웨어적인 국가 인프라인 공항, 철도, 항만, 고속도로, 지하철, 통신, 인터넷, 등이 거미줄처럼 이룬 망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반열에 올랐다.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도 의료보험, 병원 시설, 케이팝, 영화 같은 한류 문화를 비롯해 선조들이 남긴 선비정신과 철학,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에 이르기까지 자랑할 만한 콘텐트가 넘친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어떤가? 많은 국민이 이 같은 자긍심을 안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헬조선’을 외치며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라는 불명예를 안고 남북, 동서, 좌우로 나뉘어서 실망과 분노, 분열에 고뇌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떤 미래를 설계하고 개척해나갈 것인가?

르네상스 중심지인 피렌체의 좁은 길을 걸으며 암울했던 중세를 르네상스 문화로 찬란하게 빛낸 천재들의 업적을 바라본다. 르네상스의 시대적 의미를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까. 글로벌 10위권 국가 진입을 코앞에 둔 지금, 앞으로의 10년, 20년 그리고 50년 후 미래를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긍정적인 생각과 활기찬 행동이 넘치고, 도전과 꿈을 이뤄내는 한국적 르네상스를 이루길 꿈꿔본다. 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가 이뤄낸 한국적 르네상스를 존중하길 바라본다. 한국적 르네상스란 무엇일까? 속도감 있게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해가고, 글로벌한 시야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를 통해 글로벌한 전략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응하는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본다. 무거운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시 즐거운 피렌체 여행을 떠나보자.

영화 속 낭만이 현실에 펼쳐지는 곳


▎아름다운 천당과 무시무시한 지옥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한 피렌체 대성당 천장화.
피렌체에 도착하면 으레 도시 중심에 있는 팔라초 베키에티(Palazzo Vecchietti) 호텔에 여장을 푼다. 이 호텔은 이탈리아 예술가 잠볼로냐(Giambologna, 16세기 말 활동한 이탈리아 조각가)가 설계하고, 중세 피렌체의 유력 가문이 소유했던 16세기 건물로, 중세 분위기를 느끼면서 숙박할 수 있는 작은 부티크 호텔이다. 필자가 팔라초 베키에티를 좋아하는 이유는 방이 20개도 안 되는 작은 호텔에서 중세시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몇 걸음만 나서도 피렌체의 인기 투어코스가 있다. 두오모 광장 350m, 베키오 다리 400m, 우피치 미술관이 450m 거리에 있어서 도보로 모든 곳을 찾을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큰 식탁을 중앙에 두고 낯선 이들과 합석하는 우아한 식당에서 식사한 후 중요 지점이 잘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들고 도보여행을 떠난다.

먼저 리퍼블리카 광장을 지나 골목을 하나 지나치면 두오모 광장이 나타난다. 아름답고 웅장한 피렌체 대성당과 조토의 종탑, 세례당이 눈앞에 겹치듯 모습을 드러낸다. 하얀색 외벽으로 윤곽을 두른 뒤 초록색과 분홍색의 대리석판으로 마감한 모습에 압도되고 만다. 피렌체 대성당(Duomo di Firenze)의 정식 명칭은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다.

피렌체 대성당은 산타크로체 성당과 베키오 궁전을 지은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1296년에 설계했다. 피렌체에 파견된 첫 교황 사절이었던 발레리아나 추기경에 의해 1296년 9월 9일 첫 공사에 들어갔다.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140여 년간 이어졌으며 이후 수대에 걸쳐 공사 중지와 재개가 반복됐다.

오랜 기간 공사가 이어져 이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많다. 대성당 건물을 완공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천장부 돔을 올리지 못해서 공사가 중지됐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후 브루넬레스키라는 걸출한 건축가가 나타나 결국 불가능에 가까웠던 거대한 돔을 완성했다. 흑사병이 창궐해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요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와 당시를 비교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은 어떨까?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두 시간 동안 긴 대기 행렬을 기다렸다가 463계단을 또 올라야 한다. 처음 몇 번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는 너무 긴 대기줄 때문에 돔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기다리지 않고 가이드를 따라 돔에 오르는 유료 급행 관광을 알게 됐다. 지난 여행에서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돔을 올랐다. 좁은 계단을 올라 천장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돔의 밑부분 통로에 도착하자 너무도 멋진 대성당 내부 광경이 나타났다. 황홀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천장화도 바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자니 천당과 지옥을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 피렌체 대성당 돔에서 맛볼 수 있는 이 독특한 경험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강추’하는 코스다.

천장화를 지나 마지막 도착지이자 피렌체의 상징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성당의 꼭대기에 올랐다. 브루넬레스키가 건축한 돔의 바깥으로, 탁 트인 피렌체 전경이 너무도 멋지게 펼쳐졌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주인공들이 만나기로 한 바로 그 장소다. 수많은 사람이 수백 계단을 올라 여기서 낭만을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친구와 몇 년 후 이곳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면 어떨까. 더없이 낭만적인 영화 속 주인공이 될 기회다.

우리가 남겨야 할 르네상스의 유산


▎피렌체 대성당 돔을 구경하기 위해서 두세 시간 동안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방문객들.
이어서 피렌체 대성당 앞에 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을 찾았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세례당 동쪽 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각된 문이 너무 아름다워서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Gates of Paradise)’이라고 칭한 작품이다. 인파에 섞여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가 일생을 바쳐 만든 양각 조각 작품인 세례당 청동문을 보면 그 내용과 섬세한 조각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발길을 돌려 대성당 뒤편에 있는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여러 중요한 작가의 작품과 유물이 많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을 놓칠 수 없다. 그가 조각한 4개 피에타(Pieta,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성모마리아가 받아든 모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이 피에타에는 특이하게 네 인물이 등장한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기 드물게 축 늘어진 모습의 예수, 왼편에는 작은 몸집의 막달라 마리아, 오른편에는 성모 마리아 그리고 뒤편에 서 있는 남자는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인 듯한 니코데무스 성인이다.

조각과 대리석 품질에 환멸을 느껴 불만에 찬 미켈란젤로는 예수의 왼쪽 팔과 다리를 부숴버렸다. 조각에는 아직도 수리된 자국이 남아 있다. 자기 무덤에 놓으려 제작했을지도 모를 이 미완의 피에타를 바라보니 여러 상념이 떠올랐다. 필자는 미켈란젤로의 첫 피에타를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보고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단단한 대리석에 조각된 근육과 혈관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했다. 그 후 밀라노 스포르차 성(Sforza Castle)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미완성 ‘론다니니 피에타’는 또 다르다. 마리아가 의자에 앉아 있는 좌상이 아니라 몸을 세운 입상 조각이다. 각기 다른 곳에 있는 네 개의 피에타 작품과 바티칸의 시스틴 채플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 작품이 머릿속을 현란하게 오고갔다. 정녕 그는 천재적 인간인가, 아니면 신이 내려와 만든 또 다른 작품인가.

골목길을 여러 번 돌아서 다음 목적지인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 성 십자가 성당)을 찾았다. 피렌체 대성당에서 남동쪽 800m 거리에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프란치스코회 성당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인류를 위해 역사적인 족적을 남긴 많은 천재가 잠들어 있다. 조각가 겸 화가인 미켈란젤로, 사상가 겸 정치철학가 마키아벨리, 천국의 문을 조각한 로렌초 기베르티, 갈릴레오, 작곡가 로시니의 묘가 있고 단테의 기념비와 유명 인사들의 영묘 등 이탈리아에서 가장 저명한 이들이 묻힌 곳이다.

르네상스가 태동한 피렌체의 천재들이 남긴 시대적 유산을 바라보며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인지 생각한다. 이를 어떻게 아름다운 유산으로 남길 수 있을까라는 숙제를 안고 또다시 다음 피렌체 방문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전, 우피치 미술관의 보물 같은 작품 이야기, 아르노강을 따라 내려가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 궁전, 그리고 도심 건너편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마주보는 피렌체의 멋진 파노라마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어가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피렌체 이야기도 여운이 남는 미완성이 더 좋겠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010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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