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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미국 대통령 임기와 주식시장의 상관관계 

 

바이든 대 트럼프. 일각에서는 공화당의 미래가 다음 선거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똑똑한 투자자들은 누가 이기든 신경 쓰지 않는다.
진보적인 민주당은 큰 정부를 선호하기 때문에 경제와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반면 재정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은 좋은 효과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널리 받아들여지는 믿음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데이터를 훑어보면 이는 가짜 뉴스임을 알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금융학 부문 교수인 제레미 시걸은 “주식시장은 공화당보다 민주당 정권에서 더 좋은 실적을 냈다. 이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정권과 주식시장이 인과관계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1952년부터 2020년 6월까지 연간으로 환산한 민주당 정권 시기의 실질 주식시장 수익률은 10.6%, 공화당 정권 시기의 수익률은 4.8%였다.

2020년 선거가 불과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현재 일부 투자자들은 트럼프 정권과 바이든 정권의 장단점을 따지느라 바쁘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트럼프 정권이 도입한 막대한 법인세 감면 정책이 거의 확실히 취소되겠지만, 추가적인 경기부양책 및 중국과의 무역 안정화가 아주 긍정적인 요소로 예상된다.

1994년 발간된 투자 고전『장기 성공을 위한 주식(Stocks For The Long Run)』의 저자인 시걸은 “상승 시장과 하락 시장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대통령보다는 사업 주기와 관련이 더 크다”고 말했다. 현재의 환경은 2001년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기에 맞이했던 실존적 위협(테러 대신 팬데믹이 자리했다), 존슨과 닉슨 정권을 뒤흔들었던 시민 소요 사태, 1980년대 이후 로널드 레이건 정권과 일본의 무역 전쟁의 특징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대통령의 행동과 주식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포브스는 해리 트루먼부터 트럼프까지 정권별로 배당금을 포함한 주식시장의 실적을 조사했다. 전미경제조사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각 대통령의 임기 중에 발생한 호황과 불황의 수도 추적했다. 역사적으로 경제 번영이 눈부셨던 시기에 집권한 빌 클린턴 대통령 같은 일부 사례는 호황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 호황의 주인공은 개시 시에 집권하던 대통령, 이 경우는 조지 H. W. 부시이기 때문이다. 또 각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총연방부채 대비 GDP 비율도 포함했다.

최고의 누적 주식시장 수익을 달성한 대통령은 약 210%에 가까운 수익률을 보인 윌리엄 J. 클린턴이었다. 최하위는 -40%를 기록한 조지 W. 부시다. 시장을 가장 크게 뒤흔든 요소는 불확실성이었다. 한 예로 1955년 9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골프 여행 도중 갑자기 심장병을 일으키면서 주가가 하루 만에 6.5% 곤두박질쳤다.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주가는 즉시 3% 하락했다. 두 경우 모두 주가는 금세 회복됐다. 시장의 갑작스런 선회를 제외하면 투자자들은 장기적으로 매수 후 보유 전략에 안심하고 기댈 수 있다. 1945년 1월 대형 미국 주식의 인덱스에 1000달러를 투자했다면 연 수익률 11%로 불어나 2019년 말 230만 달러가 돼 있을 것이다.

해리 S. 트루먼(1945~1953) | 민주당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시 생산력이 평시 수준으로 낮아지고 실업률 상승이 뒤따랐다. 그 결과 트루먼 대통령은 임기 초에 불황과 하락 시장을 겪었다. 제임스 스택 인베스테크 리서치 및 스택 파이낸셜 매니지먼트 사장은 “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일자리가 부족했다. 불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소비자와 기업 신뢰가 돌아오면서 경제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1949년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균등한 고용권을 보장하는 공정 정책인 경제개혁을 실시하면서 또 한 번 짧은 불황을 겪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1953~1961) | 공화당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전쟁의 휴전을 이룩하고 냉전시대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적색 공포 전술 때문에 임기 내내 우려를 떨치지 못했다. 샘 스토벌 CFRA 최고투자전략가는 “많은 사람이 아이젠하워 시절을 훌륭하면서 따분했다고 생각하지만, 내 견해는 다르다”며 “미국은 경직되어 있었다. 엎드려서 꼭꼭 숨으라는 것이 당시 미국의 인기 테마곡이었다”고 말했다. 아이젠하워의 두 번의 임기 동안 세 차례나 불황이 찾아왔다. 임기 초에 한 번, 중간에 한 번, 후반에 한 번이었다. 1953년과 1958년의 불황은 대체로 연방준비제도의 엄격한 금융정책 때문이었지만 1958년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두 배로 높이면서 1960년에 또 한 차례 불황이 시작됐다.

존 F. 케네디(1961~1963) | 민주당

케네디 대통령은 ‘다시 움직이는 위대한 미국’, ‘위대함을 위한 시간’이라는 슬로건하에 근소한 차이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집권 당시 경제는 둔화된 상태였고 실업률은 6.8%나 됐다. 케네디 시기의 하락 시장은 “케네디 대통령이 US스틸과 가격을 두고 다툼을 벌이면서 시작됐다”고 스토벌은 말했다. “월스트리트는 민간기업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정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임기 말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비극적으로 암살을 당하기 전에 경제성장을 위해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을 포함한 대담한 국내 정책을 개시했다.

린든 B. 존슨(1963~1969) | 민주당

존슨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던 날 워싱턴으로 날아가던 에어포스 원 기내에서 취임했고, 케네디 대통령이 남긴 세금 감면과 시민권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켰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고, 금리가 상승하고, 시민권 운동과 관련한 소요 사태가 잇따르면서 1966년 주식시장이 하락장에 접어들었다. 연방준비제도가 깜짝 놀라 금리를 인하하면서 불황은 피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하락 시장은 1968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달아오르면서 시작됐다. 존슨 대통령의 임기 중에 통상적인 불황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전의 손해를 메우기 위한 ‘군비 및 민생 양립 예산’ 등 차기 정권으로 문제를 넘겼다”고 스토벌은 말했다.

리처드 M. 닉슨(1969~1974) | 공화당

존슨 대통령의 임기 말에 긴축이 이뤄지면서 닉슨 대통령이 취임한 뒤인 1969년부터 1970년 사이에 약간의 불황이 일어났다.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즉 높은 인플레이션과 느린 경제성장,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았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기하기 1년 전인 1970년 닉슨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행정명령을 내려 임금과 가격을 동결했다. 1973년 아랍권 석유 금수 조치로 유가가 폭등했고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닉슨 정권이 위기에 처했다.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1973년 1월부터 1974년 10월 사이에 S&P 500의 가치가 거의 반토막 났고, 1973년 가을부터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과 16개월에 걸친 불황이 시작됐다.

제럴드 R. 포드(1974~1977) | 공화당

포드 대통령은 닉슨의 임기 중 남은 2년 동안 집권하면서 전임자로부터 많은 경제문제를 이어받았다. 스태그플레이션은 포드의 임기 내내 지속되었으나 주식시장은 1975년 반등했다. 스택은 “아주 짧은 임기였고 투자자의 역사적 관점에서는 별로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미 E. 카터(1977~1981) | 민주당

경제와 주식시장의 측면에서 조지아주의 땅콩 농부이자 전 주지사였던 카터 대통령은 힘든 임기를 보냈다. 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았으며 1979년에는 두 자릿수 수준까지 치솟았다. 스택은 “투자자와 연방준비제도에 아주 큰 스트레스를 준 시기였다”며 1980년은 “통화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해”라고 말했다. 1월 불황이 닥쳐왔지만 1980년 7월 연방준비제도가 방향을 바꿔서 금리를 낮추면서 진정됐다. 그러나 1년 뒤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크게 올리면서 브레이크를 밟아” 더 깊은 불황에 빠져들었다고 스토벌은 말했다.

로널드 W. 레이건(1981~1989) |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의 첫 임기에 미국은 또 한 차례 불황에 빠져들었다. 전후 가장 긴 불황으로 꼽히지만 그 불황 덕분에 “인플레이션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스택은 말했다. 인플레이션에 맞서 싸우는 극약처방은 높은 금리였고, 결국 미국 재무부는 1981년 8월 16%가 넘는 수준까지 금리를 인상했다. 1년 뒤 주가가 바닥을 쳤지만 1982년 11월에는 미국이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경제가 회복되자 “월스트리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워했다”고 스택은 말했다. 그 공은 상당 부분 연방준비제도 의장 폴 볼커의 몫이다. 볼커는 금리를 높이면서 긴축 통화정책을 유지했다.

조지 H. W. 부시(1989~1993) | 공화당

41대 대통령인 부시 정권에서 미국 경제는 1990년 또 한 차례 불황에 접어들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한 달 전이었다. 유가가 치솟고 시장이 흔들렸다. “연방준비제도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금리를 인상했다”고 스택은 말했다. 경제는 부시의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둔화됐고 대규모 상업 부동산 사태가 터졌다. 그 뒤 빌 클린턴 선거 캠프의 제임스 카빌은 그 유명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선거 구호를 만들어냈다.

윌리엄 J. 클린턴(1993~2001) |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인플레이션이 3%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1990년대 주식시장 활황을 위한 “이상적인 경제 조건을 이어받았다”고 스택은 말했다. 클린턴은 임기 초 의회를 통해 세금을 대폭 인상했고 연방준비제도는 연방 자금 금리를 1994년 1월 3.25%에서 1995년 2월 5%로 크게 인상했다. 경제성장이 수그러들고 인플레이션은 억제됐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면서 월스트리트 사상 처음으로 10년에 걸친 장기 호황의 가능성이 열렸다”고 스택은 말했다. 그러나 사실 이 호황은 전 정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의 탄생을 포함한 기술 발전으로 주식시장이 역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조지 W. 부시(2001~2009) | 공화당

두 번째 부시 대통령이 집권할 때 주식시장은 아직 닷컴 붕괴의 피해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스토벌은 “W. 부시 대통령은 좋지 않은 타이밍과 클린턴 대통령의 주가 거품을 이어받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며 “W. 부시 정권은 하락 시장과 불황으로 시작해서 불황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그린스펀과 연방준비제도가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체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기는 했으나 부시 2기 정권 말기에 금리가 5%를 넘어서면서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대폭 인하했다. 이것이 주택 거품의 단초를 마련했다. “난해 한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여건이 조성되면서…결국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스택은 지적했다.

버락 H. 오바마(2009~2017) |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할 때 미국은 대공황에서 반등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 말기에 금리가 인하되고 연방준비제도는 막대한 부양 자금을 주입했으며 의회는 대규모 구제금융을 승인했다. 2009년 중반 미국은 금융위기에서 회복하며 8년 동안 역사상 가장 긴 상승 시장을 맞이할 전기를 마련했다. 오바마 대통령 임기 동안 지속된 긴 호황은 기술혁신과 실적, 금리인하로 인해 촉발됐으며 주식시장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도널드 J. 트럼프(2017~?) | 공화당

*2020년 7월 8일 기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미국은 이미 8년 동안 역대 가장 긴 경제회복을 겪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선거에 승리하자마자 공화당 대통령이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시장이 곧장 급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시장은 어떻게 봐도 역사상 최고 수준이 아니다”라고 스토벌은 말했다. 미중 무역 전쟁과 코로나19 팬데믹 등 주요 사태는 “시장이 견디기 힘든 수준”이다. 미국의 상당 부분이 코로나19 사태 속에 봉쇄되면서 미국은 2020년 2월 불황에 접어들었다.

대통령들의 실적

어떤 대통령이 최고의 주가 수익률을 달성했는가? 지금까지는 민주당이 우세하다.

대통령 | 소속 정당 | 임기 | 주가 | 수익률(%)

클린턴 / 민주당 / 1993~2001 / 210

오바마 / 민주당 / 2009~2017 / 182

아이젠하워 / 공화당 / 1953~1961 / 129

레건 / 공화당 / 1981~1989 / 117

트루먼 / 민주당 / 1945~1953 / 87

부시 / 공화당 / 1989~1993 / 51

존슨 / 민주당 / 1963~1969 / 46

트럼프 / 공화당 / 2017~ / 43

카터 / 민주당 / 1977~1981 / 28

포드 / 공화당 / 1974~1977 / 26

케네디 / 민주당 / 1961~1963 / 16

닉슨 / 공화당 / 1969~1974 / -20

W. 부시 / 공화당 / 2001~2009 / -40

- 출처 YCharts

- SERGEI KLEBNIKOV, HALAH TOURYALAI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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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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