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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현 글루가 대표 

또 한 번 진화한 네일 스티커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 매출(28억원)의 15배에 가까운 매출(410억원)을 기록한 스타트업이 있다. 초고속 성장을 이룬 이 기업은 젤 네일 스티커를 제조하는 글루가다.

▎유기현 글루가 대표는 반경화 상태의 네일 스티커를 개발해 완성도와 편의성을 높였다.
지난 9월 마케팅 기업 에코마케팅이 1년 전에 투자했던 ‘글루가’의 지분 일부를 처분해 투자 원금의 3배가 넘는 수익을 실현했다. 에코마케팅은 지난해 9월 40억원을 투자해 글루가 주식 30만301주(지분율 20%)를 확보했는데, 이 중 9만91주를 매각하며 120억원 상당의 수익을 냈다. 김철웅 에코마케팅 대표에 따르면 인수 당시 200억원대였던 글루가의 기업가치는 불과 1년 만에 2000억원대로 높아졌다.

화제의 기업 글루가는 2015년 문을 연젤 네일 스티커 제조 스타트업으로, 2018년 정식 브랜드 ‘오호라’를 론칭했다. 셀프 네일 시장에서 1세대로 불리는 미국의 데싱디바, 2세대인 국내의 젤라또랩에 이어 3세대로 통한다. 후발 주자인 만큼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제품력을 높였다. 1세대가 플라스틱 팁으로 셀프 네일 시장을 개척했다면 2세대는 플라스틱 대신 얇은 스티커로 편의성을 높였고, 3세대인 글루가는 ‘젤 네일 스티커’를 개발해 착용감과 지속력을 개선했다. “네일숍에서 젤 네일을 바른 것처럼 완성도를 높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유기현 글루가 대표가 말했다. 젤 네일은 손톱에 바른 다음 LED 램프로 굳히는 것으로 일반적인 매니큐어보다 광택이 강하고 지속력이 뛰어나다.

오호라는 제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네일숍에서 젤 네일을 바르고 굳히는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오호라의 스티커는 필름에 젤 네일 원료를 입혀 60%만 굳힌 ‘반경화’ 상태인데, 손톱으로도 끊어질 만큼 유연하다. 사용자는 젤 네일 스티커를 손톱에 부착한 후 직접 소형 LED 램프로 1~2분간 굳혀야 한다. “나머지 40%를 램프로 굳히는 과정에서 스티커가 사용자의 손톱에 딱 맞게 변형되고 단단해져 완성도와 지속력이 올라간다”며 “LED 램프는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한다”고 유기현 글루가 대표가 말했다. 젤 네일을 ‘반경화’ 하는 기술인 ‘젤 네일 폴리쉬’는 글루가의 자체 기술로 스위스 국제발명전시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기술로 무장한 오호라는 론칭 2년째인 올해 특히 장사가 잘됐다. 지난해 매출액은 28억원에 그쳤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41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이 기세라면 올해 오호라의 매출 규모는 지난해의 30배를 넘을 수도 있다. 유 대표에 따르면 올해 처음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상반기 영업이익은 77억원을 기록했다.

혜성처럼 등장해 셀프 네일 시장을 평정한 유기현 대표를 만났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많은 사람이 네일아트를 패션으로 바라볼 때 기술 영역에서 접근한 인물이다. 같은 학과 친구 두 명과 3년간 네일 스티커의 완성도를 높이는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실제 매니큐어를 바른듯한 스티커를 만들어냈고, 글루가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켰다. 요즘은 신제품 개발과 코스닥 상장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30대 초반의 남자 공대생들이 네일아트 시장에 뛰어든 이유부터 물었다.

네일아트에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나.

아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재학 시절 ‘글루가’라는 창업 동아리를 만들었다. 취업보다 창업을 원했던 건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직접 도전하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6~7개 아이템으로 2년 반 정도 창업에 도전했다. 대부분 상당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했다. 현실적인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네일아트는 개인적으로 궁금한 분야 중 하나였다. 어머니나 여자친구를 보면 네일아트에 대한 니즈는 있지만 정작 네일숍에는 잘 가지 않더라. 이유를 물으니 숍에 가서 주기적으로 관리를 받기엔 번거롭고 한 번에 5~6만원씩 지출하기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반면 시중의 셀프 네일 제품들은 간편하고 저렴하지만 완성도가 떨어져 망설여진다는 평을 했다. 가성비 좋은 셀프 네일 제품의 퀄리티를 네일숍 수준으로 높이면 시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지금의 글루가 창업으로 이어졌다.

기술개발에 매달린 기간만 3년


▎최근 출시된 오호라의 가을 컬렉션 이미지.
‘반경화 젤 네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매니큐어 종류 중에서도 젤 네일이 2~3배 오래 유지되고 광택도 더 많이 난다. 젤 네일의 원료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 지속력을 높이고 숍에서 바른 듯 완성도가 높을 것 같았다. 젤 네일을 필름에 바르고 스티커 형태로 제작하려면 약간의 경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반경화’ 기술이 필요했다. 관련 논문들을 읽어보니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군에서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었다. 논문을 보며 젤 네일 원료를 섞고 반경화를 시도했는데 실현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전문가가 모인 네이버 카페에 장문의 글을 올려 도움을 청했다. 놀랍게도 도움을 주겠다는 댓글이 달렸고, 만남이 성사됐다.

누가 도움을 줬나.

해당 기술을 국산화하는 연구 회사에 근무 중인 분이었다. 화성에 있는 허름한 화학공장에서 만났다. 반경화 기술에 쓰이는 필름과 비슷한 것을 갖고 있었다. 젤 네일 스티커를 만들기 위해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잘 안 팔릴 테니 고생하지 말라’며 돌아가라고 하시더라.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이 3주간 매일 공장에 출근해 공장 청소를 하며 친분을 쌓았다. 결국 공장 내 10㎡(3평) 면적을 연구 공간으로 내어주셨고 기술 관련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네일 스티커는 필름 8개 정도를 압축해 만드는데, 색을 입히고 디자인을 넣으려면 필름 한 장 한 장에 젤 네일 원료들을 각각 다른 종류와 배율로 조합해야 했다. 원하는 결과물을 내기까지 3년 정도 걸렸다.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신 그분은 지금 글루가 기술총괄이사로 계신다. 이젠 우리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웃음)

연구하는 3년간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었나.

다행히도 여러 기관에서 연구 가치를 인정받아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2015년에 중소기업청에서 1억원을 지원받은 것을 시작으로 청년창업사관학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에서 총 3억~4억원을 지원받았다.

기술개발을 마치고 곧바로 제품을 출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개발을 하고 나니까 ‘해외에서도 잘 통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2017년, 확인차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발명전시회에 참가했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글로벌 뷰티 회사의 한 임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1위에 해당하는 금상을 받았다. 이후 우리 기술의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더 자세히 타진하고 싶어 2년 동안 일본, 베트남 등 해외에서 열리는 뷰티 박람회 투어를 다녔다.

박람회에서 해외 소비자들은 어떤 평가를 했나.

이탈리아에서 열린 ‘코스모프로프’에 참가했을 때였다. 한 할아버지가 부스에 오더니 자신의 손톱에 시연을 요청했다. 열심히 스티커를 붙이고 굳히는 작업을 해드렸더니 마음에 든다며 동료 직원 7명을 더 데려왔다. 시연을 마치자 할아버지가 돌연 우리 공장을 직접 보고 싶다며 다음 주에 한국으로 오겠다고 했다. 황당했지만 명함을 받아보니 로레알 본사의 임원이었다. 함께 전시에 나간 미국 유통 파트너가 만류해 공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글로벌 뷰티 기업의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으로 뿌듯했다.

해외서도 통한 오호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1만원대 네일 스티커지만 직접 네일아트를 받은 것처럼 높은 완성도다. 다양한 디자인을 반경화 상태로 필름에 구현하려면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보석(파츠)이 붙어 있는 디자인이라면 LED 램프로 굳힐 때 필름이 손톱에 맞는 굴곡으로 딱딱해지기 때문에 분리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반경화에 쓰이는 접착제도 따로 개발했다. 이처럼 제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세밀한 것까지 신경 쓰는 게 우리의 강점이다.

하지만 처음엔 주목받지 못했다.

처음엔 수입원으로 OEM을 택했고 아모레퍼시픽 등에 납품했다. OEM으로 얻은 수익은 마케팅이 아닌 오호라 제품을 개발하고 만드는 일에만 투자했다. 결국 오호라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 매출이 저조했고 주요 수입원인 OEM을 멈출 수 없는 구조가 됐다. 당시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비책이 필요했다. 고민이 깊어질 때쯤 에코마케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에코마케팅과 손잡은 계기는.

에코마케팅 측에선 단순히 제품을 납품받아 홍보하는 형식이 아니라 더 깊은 관계를 원했다. 우리 회사에 투자하고 직원을 파견해 회사의 성장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 제안을 받아들였고 2019년 9월 30일 지분투자를 받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다.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지만 에코마케팅과 미팅을 하고 나니 믿음이 생겼다. 4년간 네일 시장을 파고들었던 우리 못지않게 깊고 넓게 알고 있었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고. 이를 충족해주기 위해 이미 많은 제조업체를 만난 상태였다. 우리는 마케팅 능력이, 에코마케팅은 좋은 제품이 필요했는데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졌다. 현재 글루가에는 에코마케팅 직원 50여 명이 파견돼 있다. 제품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함께 진행하며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다.

올해 글루가는 사상 최대 성장을 이뤘다. 코로나19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나.

코로나19 이후 ‘셀프’로 할 수 있는 네일아트에 관심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직접적으로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코로나19가 우리의 성장을 가속화한 건 사실이다. 사람은 기존의 행동 습관을 바꾸기 어려워하는 특성이 있다. 새로운 걸 받아들여도 익숙한 것까지 버리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기존의 습관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네일숍만 다니던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셀프 네일 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잘나가는 글루가의 지분을 매각한 에코마케팅의 행보에 의문을 갖는 시선이 많다.

일각에선 에코마케팅과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지분 매각 건은 내년에 있을 글루가 상장에 대비한 큰 그림이었다. 투자자 입장인 에코마케팅은 현시점에서 시장 가격을 어느 정도 확정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나 또한 이를 받아들여 지분 매각에 동의했다. 결과적으로 1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상장하기 전 기업가치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됐다.

셀프 네일 시장의 규모가 커지며 플레이어가 많아졌다. 기술 장벽도 낮은 편인데 이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경쟁자들이 늘어나면 시장의 파이가 커지지 않나. 어차피 시장을 독식할 생각은 없다. 경쟁자들과 함께 성장하되 시장을 이끄는 리더가 되는 게 목표다. 우린 누구보다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기업이다. 지금도 스티커의 단점으로 꼽히는 ‘머리카락, 이물질 끼임 현상’ 등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와 시도를 하고 있다. 또 디자인의 디테일을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다른 플레이어에게 따라잡힐 걱정보단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에 집중할 것이다.

1년 후 이루고자 하는 성과가 있나.

상장과 월 매출 1000억원 이상이다. 이 성과들이 쌓여 언젠간 글로벌 1등 브랜드가 되고 싶다.

유기현 대표는 에코마케팅과의 파트너십에 대한 의견을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많은 분이 에코마케팅과 끝까지 함께할 거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아직 몰라요. 현재는 같은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글루가를 글로벌 1등 브랜드로 만들고, 에코마케팅엔 지분투자를 통한 동반성장이라는 지금과 같은 사례를 여럿 만드는 것이죠. 목표를 달성해도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싶진 않아요.(웃음)”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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