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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퍼시스 기획부문 상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오피스는 필요하다” 

1983년 사무용 가구 기업 퍼시스를 창업한 손동창 명예회장은 ‘일터를 바꿔보자’는 비전을 내놨다. 37년이 지나 코로나19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퍼시스에 의뢰하는 기업들의 오피스 프로젝트는 오히려 늘고 있다.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박정희 퍼시스 기획부문 상무를 만났다.

▎서울 오금동 퍼시스 본사 3층은 IT 개발자들을 위한 오피스로 입주를 앞두고 있다. 박정희 상무는 “직군 특성에 맞게 트렌디함을 더하려 했다”고 말했다
오피스 공간의 필요성에 물음표가 붙었다. 약 10년 전부터 해외 글로벌 기업에서 불기 시작한 오피스 인테리어 열풍은 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왔다. 공유 오피스, 프라이빗 오피스, 오픈 오피스 등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는 데 발맞춰 한국 기업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사무 공간 혁신이 봇물 터지듯 진행됐다. 기업들은 ‘공용공간’을 확대하고, 회의실, 팀별 테이블 등 협업 공간에 투자했다. 각 기업 특색에 맞게 오피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썼다. 바로 코로나19 이전까지다. 최근 원격근무,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며 ‘고정된 일터’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이 질문에 답을 얻고자 퍼시스그룹을 찾았다. 엔지니어 출신이던 손동창 명예회장이 1983년 사무가구 전문 브랜드 퍼시스로 시작해 일룸, 시디즈, 데스커, 슬로우, 알로소 등 6개 브랜드를 보유한 전문가구 그룹으로 키운 기업이다. 장남 손태희 사장은 2010년부터 퍼시스에 합류, 올해 퍼시스홀딩스 사장으로 승진했다. 부엌가구를 제외하면 가정과 사무실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가구를 다루는 셈이다. 30년간 축적한 공간도면 데이터베이스와 리서치 등 사무환경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피스 컨설팅 부문에서 ‘국내 유일’이라는 타이틀을 얻어냈다.

최근 퍼시스그룹은 오금동 본사 리뉴얼을 마쳤다. 1층 로비는 카페테리아 겸 라운지 공간으로,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를 배치해 접객과 회의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4층은 내부 직원들을 위한 워크 라운지로 편안한 소파를 배치해 집과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무빙월을 설치해 공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집중 업무를 위한 1인석과 네트워킹을 위한 바 형태의 공간도 유기적이다. 입주를 불과 며칠 앞둔 IT 분야 개발자들이 쓸 3층 공간에는 세련미가 더해졌다. 화려한 컬러 시트지로 회의실 창문을 마감해 활기찬 느낌을 조성했고, 벽에는 명언 문구를 커다랗게 새겨 넣었다. 기존의 사무 층과는 또 다른 느낌을 시도했다. “IT업계의 트렌드를 참고해서 젊은 활기를 불어넣으려 노력했다”고 박정희 퍼시스 기획부문 상무가 말했다.

인터뷰가 있던 이날은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면접이 진행 중이었다. 면접자들의 긴장감이 더해지는 가운데 유리 통문으로 된 회의실 스마트글라스는 면접을 위해 실내가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시트지로 바뀌었다. 퍼시스는 인체공학 설계를 바탕으로 만든 의자부터 직군 특성에 따라 다른 책상과 캐비닛, 조명까지 기능에 충실하다.

이런 의미를 담아 퍼시스는 2016년부터 매해 일하는 방식과 공간 변화를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는 ‘퍼시스 사무환경 세미나’를 개최한다. 공간이 업무 혁신을 이루는지 연구하고 솔루션을 제시해온 기업의 현장 목소리에 매해 참석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는 8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는 11월 10일에 ‘온택트(Ontact)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사무환경 부문에서 잔뼈 굵은 전문가로 퍼시스에서만 20년간 몸담아온 박정희(46) 기획부문 상무는 기업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연구원으로, 2018년 그룹 첫 여성 임원이 됐다. 실내건축을 전공한 그는 아모레퍼시픽, 한국은행, 홈플러스, MBC, YTN, GS리테일 등 여러 기업의 사무환경 컨설팅 등을 진행하며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한국 오피스 환경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격세지감’을 누구보다 절감한 산증인이기도 하다.

바이러스 창궐로 어느 업계보다 주춤할 것이라 생각했던 오피스 컨설팅 수요는 오히려 하반기 들어 늘고 있다고 했다. 박정희 상무를 10월 7일 퍼시스 오금동 본사에서 만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혁신 오피스에 대해 묻자, “앞으로 오피스가 필요할까요?”라며 박 상무가 되물었다. 세미나의 올해 주제이기도 하다.


▎리뉴얼한 본사 1층은 카페테리아와 미팅을 할 수 있는 복합테마공간이다.
이번 세미나는 온라인으로 진행된다고 들었다. 어떤 주제인가.

“코로나19 이후 집에서만 일해야 하나, 아니면 팀별로 공유 오피스를 찾아야 하나? 업계의 고민이 깊어졌다. 사무실에서도 서로 가까이 있을 수는 없고, 리더들은 무엇이 맞는 방식인지 많이 묻더라. 이번 기회에 오피스 존재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차원에서 세미나를 준비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사전녹화 방식인 ‘온택트’ 형식으로 진행한다. 포스트, 미드 코로나 시대에 변화를 잘 이룬 기업들이 어떻게 해법을 찾아가는지 보여주려 한다.

오피스 컨설팅 실적에 타격을 입지 않았나.

전체적으로 기업들이 움츠러들다 보니 그룹사의 B2C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이 주춤하긴 했다. 하지만 그동안 오피스 컨설팅을 고민하던 기업들의 문의가 늘고 있는 추세고, 여전히 오피스에 대한 니즈가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기업들이 오피스를 새로 만들기는 하지만 어떻게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지, 달라져야 하는 방법 등을 많이 문의하는 편이다.

퍼시스의 오피스 디자인은 화려함이 덜하다.

맞다. 우리는 화려하기보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현실적이고 담백하다는 평가가 많다. 지금의 오피스를 완성 상태로 보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추후 가변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인테리어에 힘을 많이 뺐다. 본사 거주 세 달 후 진행한 POE(거주 후 평가)에서 사무환경에 대한 직원 만족도가 기존에 비해 43%가량 증가했다. 사무환경은 사람의 행동과 인체공학을 연결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퍼시스가 오피스 가구에서 입지를 굳힌 비결은 무엇인가.

‘합리성’ 아닐까 싶다. 가격적인 합리성도 있겠지만, 제안부터 생산, 영업, 물류, 서비스까지 품질을 보장하니 ‘신뢰’로 이어진다. 사무가구 퍼시스가 설립된 1983년 무렵에는 가정용 가구가 대세였다. 사무가구는 특화된 브랜드가 없었다. 1985년 시스템 가구가 생겼다. 퍼시스는 ‘퍼니처+시스템’의 약자다. 시스템 가구는 쉽게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 업계 용어로 ‘녹다운(knockdown)’ 시스템으로 가구가 호환될 수 있도록 연결한 제품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합리성에 이어) 두 번째 비결은 공간에 대한 전문성이다. 퍼시스는 업계에서 최초로 사무환경을 연구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가구를 잘 만드는 것뿐 아니라 가구가 놓이는 공간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오피스 솔루션을 제안해왔다.

어떤 길을 걸어오셨나.

실내건축을 전공했다. 대학 3학년 때 실내디자인 스튜디오 수업을 들었는데 오피스 계획을 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퍼시스에 가면 제품 이미지가 있는 카탈로그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친구와 왔다가 첫인상이 참 좋아 선택했다. 당시 사무환경을 연구하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시스템 가구가 놓일 주변 ‘환경’을 생각하는 데 중점을 뒀다.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관찰하고, 해외 가구는 어떤 쓰임새가 있는지 연구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책 쓰는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게 리서치 하도록 지원했다.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왔다. 당시 해외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 문을 두드렸다. 수많은 가구와 오피스 환경을 제안할 수 있는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했다. 우리는 ‘이종격투기’라고 표현한다.(웃음) 그때부터 사무환경 컨설팅을 더욱 전문화하며 타개 해나가기 시작했다.

오피스 컨설팅은 어떻게 시작했나.

2008년에 나를 포함한 7명의 사무환경 팀원들과 함께 시작했다. 팀원들은 각각 전문 영역에 맞게 외부 전문가와 협업하면서 연구를 진행했다. 설문지를 만들기 위해 사회과학 전공자가 나섰고, 공간분석을 위해서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연구에 매진했다. 과거에는 방법론적인 컨설팅이었다면, 현재는 직원들의 업무 환경까지 모두 제안하는 오피스 솔루션으로 진화하고 있다.

퍼시스 컨설팅으로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온 좋은 사례를 든다면.

수평적이고 유연한 문화를 가진 한국쓰리엠의 철학을 담은 오피스가 사무환경 컨설팅을 통해 잘 만들어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사무환경 컨설팅 이후 2018년 2차 사무환경 컨설팅을 진행했다. 한국쓰리엠은 ‘FlexAbility’, 즉 유연한 방식으로 성과를 창출하자는 철학을 가진 회사로, 기존 오피스 문제점을 해결하고 기업 아이덴티티가 담긴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직급 간 차등을 두지 않는 수평적 업무 공간을 위해 ‘유니버설 플랜’을 적용했고, 일하는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워크라운지 조성, 업무 특성과 유형에 따른 레이아웃과 다양한 워크스테이션을 제안했다. 변동좌석, 폰 부스, 회의 공간 등 업무 집중도를 높여주는 환경을 제안했다.

한국 사무 공간은 어떻게 변해왔나.

1980년대 오피스에는 책상 칸막이가 없었다. 교무실과 비슷한데 팀원들이 일렬로 앉아 있고 팀장 좌석을 맨 끝에 두어 권위적으로 볼 수 있게 했다. 1990년대부터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점차 개인 칸막이가 생겼다. 당시에는 팀 간 구획이 굉장히 분명했다. 2000년대 들어 팀별 구획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직이 자주 바뀌면서 그때마다 레이아웃을 바꾸고 파티션을 뜯어 공사하는 게 더 큰일이 되다 보니 최근에는 팀장, 팀원의 자리 구분이 없는 기업도 늘고 있다. 임원석은 아직 구분돼 있지만. 파티션도 최소화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촉발로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콜센터 등 특정 분야에서는 칸막이가 더 높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고민하는 기업도 있다.

기업에 공통적으로 조언하는 내용은.

기업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답은 없다. 퍼시스는 ‘젊어야 하는 기업이 있다면 정확해야 하는 기업이 있어야 한다’는 캠페인도 했었으니까. 단지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건 몇 가지 있다. 먼저 팀장석 구분을 없애는 것이다. 관리하기 쉽고 사무실을 이전할 때 굉장한 효율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수평적인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2000년대 초반 어느 회사를 갔는데 책상 종류가 4가지였다. 사원 1.2m, 대리 1.4m, 차장 1.6m, 부장 1.8m인데 팀장석 옆에는 자리가 더 있었다. 비효율적이다. 두 번째는 회의실인데, 일괄적으로 직사각형 테이블이 아닌, 협업이든 강의든 다양한 방식에 선택할 수 있는 이동형 가구를 함께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협업 공간이 될 만한 휴게 라운지는 있으면 좋다고 제안하지만 기업 상황에 따라 다르다.

사무공간은 ‘조직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어떻게 조율하고 적용해왔나.

대부분 기업에 인사나 기업문화 전문가들이 있고, 회사가 나아갈 방향, 직원들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추구하는 바가 있다. 사무환경 TF 컨설팅을 할 때 인사팀이나 기업문화팀과 얘기하게 되는데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공간에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도와준다. 우리는 공간 경험이 많으니 반응하는 공간과 연결점을 찾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층의 면적이 좁아 여러 층을 사용하는 경우 어떻게 하나.

층간 소통을 위해 자사 사옥인 경우 내부 계단으로 위아래층을 연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사비용이 많아지므로 회의실만이라도 공용공간으로 제안한다. 예컨대 6층 사람들이 7층 회의실을 공용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방식이다. 공간이 넓으면 자율좌석제를 제안한다. 그런데 직원들의 업무 효율 면에서는 같은 층이 좋은 듯하다.

다양한 소통 위한 공간 많아져야


현재 한국 오피스 시장은 어떤가.

연구 관점에서 봤을 때 과거 오피스 형태가 미국, 독일, 아시아 등 국가별로 가구 구성이나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면 요즘은 오피스 레이아웃이 세계적으로 비슷해졌다. 일본은 아직도 약간 다르지만 한국은 유럽 오피스와 유사하고, 가구도 디자인과 품질 면에서 비슷해졌다. 해외 오피스나 가구와 비교해 더 고민하는 건 색채다. 한국이 해외 오피스에 비해 덜 화려한 점이 있다. 외국은 스탠딩 문화가 자연스러워서 자유분방한 느낌이 있지만, 한국은 문화적인 차이로 아직 스탠딩 가구를 불편해한다. 한국은 책상, 의자, 회의 테이블 같은 시스템 가구가 많은 반면 해외는 ‘라이프 퍼니처’라고 부르는 소파나 라운지 제품 등이 오피스에 더 많이 들어와 있다. 이 부분도 퍼시스가 생활 공간으로서의 오피스를 고민하면서, 고객들에게 새롭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오피스가 필요할까.

지금과 똑같진 않겠지만, 오피스는 여전히 필요하다. 집에서 작업하고 보고서도 쓸 수 있는데, 굳이 모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과 얘기할 때 언어만으로는 담지 못하는 중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는 “창의적인 활동은 만나지 않고선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오피스는 일하는 공간으로서 홈오피스가 될 수도 있고 출근할 사무실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출근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현재 함께 일하는 사무실 공간은 직원들이 업무를 하며 성장할 수 있는 교육, 창의적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협업,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들로 변할 것이다. 전형적인 업무를 위한 사무실로 한 곳에 집중되기보다는 개인들이 공간을 선택하여 일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4층을 ‘서로의 광장’이라는 이름의 워크라운지로 활용하고 있다. 미팅도 하고, 교육이나 휴게 공간으로 쓰이는 다목적 공간이다. 직원들이 우리가 공간을 계획할 때 생각했던 모습대로 정말 다양하게 이 공간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매일 확인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만들어진 퍼시스만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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