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10) 

어떻게 보이는가 

독일 분석심리학자 융(Jung)은 우리가 타인에게 보이려고 사용하는 사회적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페르소나는 ‘가면’을 뜻하는 희랍어에서 비롯되었는데, 한 개인이 사회적 요구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가지는 공적인 얼굴을 의미한다. 즉, 사람들은 회사에서는 부하로서, 상사로서, 가족 내에서는 딸로서, 배우자로서, 엄마로서 역할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가면을 쓴다는 것이다.

▎헨리 몰랜드 [가면을 벗은 수녀]
그런데 이런 가면과 실제 자아가 지나치게 다른 경우, 가면 속에서 갈등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은 자신의 가면이 너무 크거나 너무 작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해진 시대. 과거보다 더 쉽게 여러 경로로 타인에게 자신을 노출하는 기회가 많아진 요즘, 자신이 쓴 가면이 스스로에게 어떤 감각으로 다가오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융은 우리가 이 가면을 적절한 시기에 벗고 편안한 상태에 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야 또 필요한 때에 이 가면을 다시 꺼내 쓰고 타인에게 적절한 가면으로 잘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손에 가면을 들고 있다. 검정 베일을 쓰고 깊게 파인 가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또 황금빛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다.

영국의 로코코 화가 헨리 로버트 몰랜드(Henry Robert Morland)가 그린 [가면을 벗은 수녀(The Fair Nun Unmasked)]라는 작품이다. 그림 속 주인공은 검은 베일과 십자가로 작품 제목에 있는 수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러나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 보여 신심 충만한 수녀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수상쩍다. 손에 든 가면은 또 뭔가. 가면은 본래 얼굴을 의도적으로 가릴 때 쓰는 물건 아닌가. 그림 속 여인의 정체를 추정할 수 있는 요소들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녀’라는 제목에 흔들리지 말고 ‘가면’으로 여인을 판단해야 한다. 수녀는 그녀의 가면일 뿐이다. 실상은 관능적인 가슴을 드러내며 남자들을 유혹하는 매춘부이다. 당시 유럽 귀족사회에는 가면무도회가 대유행이었다. ‘가면’을 쓰고 만나 욕망을 분출하던 시대였다. 매춘부뿐만 아니라, 특별한 이유로 신분을 감추고 이성을 만나야 했던 사람들에게 가면무도회만큼 좋은 무대는 없었을 것이다.

적응을 위해 만든 사회적 가면들-페르소나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1901
페르소나는 적응의 가면이다. 그렇기에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적응의 가짜 가면을 덧붙이고 덧붙여 진짜 자신과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좀 더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썼던 가면이 이제는 원래의 얼굴로 돌아오기 어려울 정도로 두꺼워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는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할 때, 모든 인물을 심도 있게 고려하여 접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명함, 눈에 보이는 간판, 혹은 누군가에게서 들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타인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가, 또 어떤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가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황금빛 배경 속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 관객을 응시하고 있는 여성은 유디트(Judith)이다. 이 그림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고대 이스라엘 여성 유디트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유디트는 미인계로 적장인 아시리아 왕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을 구했다. 임진왜란 때 적장을 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기생 논개와 견줄 만하다. 그러나 화가들은 유디트를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표현했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겁에 질렸지만 묵묵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영웅의 모습으로 유디트를 묘사했다. 이 그림에서는 유디트가 비록 성스러운 애국 열사이지만 약한 여성임이 드러난다. 아시리아 왕의 목을 베는 순간 몸을 뒤로 빼고 있다. 옆에 있는 하녀 얼굴에도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 그림으로 유디트를 접한 사람들은 유디트의 숭고하고 용기 있는 모습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클림트가 그려낸 그림 속에서 유디트는 관능적인 표정을 지으며 적장의 목을 들고 있다. 적장의 목은 오른쪽 아래에 대부분 잘려 그려져 있고, 클림트가 중요하게 다룬 것은 적장이 유혹을 당해 목숨을 잃을 만큼 대단했던 그녀의 성적 매력이다.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유디트] 1571
클림트는 [키스]라는 그림으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화가이다. 그의 그림 대부분은 여성과 성이 주제인데, [유디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클림트는 “성은 삶의 가장 결정적 요소이다”라며 수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졌는데, 그의 사후에 14명이 친자확인 소송을 했을 정도였다. 그림 속 유디트는 아무렇지 않게 걸친 옷과 벗겨져서 가슴이 보이는 모습, 복잡한 장식이 드러난 황금 목걸이와 장식, 황금빛 배경 앞 화려하고 매혹적인 모습이 특징적이다. 이 그림은 유디트의 행위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유디트라는 인물의 관능적인 모습에 집중하여 제작되었고, 그 결과 퇴폐적인 여성이 살인에 대한 죄책감 없이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클림트의 그림으로 유디트를 접한 사람들은 유디트를 한낱 요부 정도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그림으로 유디트를 접한 사람들은 유디트를 영웅으로 판단할 것이다. 유디트라는 인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이는가에 따라 그녀에 대한 평판은 영웅에서 요부로,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 중 진실은 얼마나 될까


▎에드가 드가 [스타] 1877
인상주의 대표 화가인 에드가르 드가는 발레리나 그림으로 잘 알려졌다. 그의 그림에는 아름다운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데, 사실상 그가 나타내고자 한 것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가 나타내고자 한 것이 여성의 추악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보이는 것과 실제의 모습이 얼마나 큰 간극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드가는 미술사에서 보기 드문 여성혐오 화가였으며, 여성의 불행을 간절히 바랐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

드가가 13살이던 시절,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삼촌과 외도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미인이었던 어머니는 부유한 은행가인 아버지를 배신하고 삼촌과 내연관계에 빠졌다. 드가의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를 용서했지만 그 사건 이후 드가의 가정은 완전하게 무너졌다. 그 시간을 거치며 드가는 여자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고 어머니가 불행해지기를 바랐던 소년은 여성 전체를 혐오하는 성인 남성으로 자랐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 세상 여성들이 모두 불행해지기를 바란다”, “여성들과 이야기를 하느니 울어대는 양 떼들과 있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여성이 역겹고 끔찍한 존재라고 생각한 드가는 여성의 추악함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혐오하는 대상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장해 그 안에 존재하는 추악함을 더욱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소재가 발레리나였다.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발레리나라는 직업은 가난한 소녀들의 전유물이었다. 소녀들은 발레리나가 되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폰서가 필요했다. 가난한 소녀들은 돈 많은 스폰서를 만나 무대에 오르고 생활비를 받아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드가가 생각하기에 발레리나는 매춘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림 [스타]에는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 화려한 발레리나가 보인다. 그리고 무대 뒤편에는 양복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서 있다. 이 남자는 오늘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의 스폰서이고, 이 남성과 발레리나가 무대 공연을 마친 후 무엇을 할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은 그 실체를 모른 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여성들을 사랑한 한 남자의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보이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이는가’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주변 사람들이 누군가에 의해 평가되고 판단되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판단되어지기 위해 만들어진 모습이 실제 자신과 점점 간극이 벌어질 수도 있고 그것이 계속해서 불균형을 만들어낼 때 가면의 주인공은 무거운 가면과 맞지 않는 가면 때문에 고통받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가면은 나만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를 비롯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타인의 보이는 모습 또한 실제 모습과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실제가 어떤지는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는 사실은 세상에 상당히 많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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