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호르헤 페레스 컬렉션(Jorge M. Pérez Collection) 

예술은 죽지 않는다 

올해 3월, 코로나19로 인해 수십억 명의 삶이 갑자기 중단됐다. 곧 멈출 거라는 기대를 저버린 채 12월을 맞았다. 바이러스가 언제 사라질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적 위기는 문화생활과 미술시장에 지대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각 나라의 정치인들이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예술은 최후의 관심사다. 대다수의 예술가, 미술관과 예술 센터는 지원이 더욱더 시급하다. 왜냐하면 바이러스가 닥치기 전에도 이미 재정적 어려움에 늘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어렵게 극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예술은 시대를 불문하고 늘 가치 있는 역할을 해왔다. 예술은 의심할 여지없이 아름다움과 사랑, 사회에 대한 인류의 요구에 반응해왔고 예술이 없는 인류는 존재조차 불가능했다.

▎Jorge M. Pérez “Courtesy of The Related Group.”
2020년 2월에 열린 프리즈 LA를 끝으로 모든 국제 아트페어가 줄줄이 취소되어 온라인 뷰잉룸으로 대치됐다. 2021년 여름이 지나면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 흥분된 마음으로 다시 국제 아트페어 전시장 앞에서 줄을 설 수 있는 순간이 돌아올까? 다행스러운 것은 온라인 거래와 활동량, 예술 관련 정보 시스템이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현재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대형 갤러리들과 경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작품들은 웹사이트에서 성공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그렇다고 온라인이 그전의 모든 미술시장의 활동들을 대신할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다. 예를 들어 10만 유로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디지털 시장에서 쉽게 거래되는 확률이 높지 않은 것이 그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수집가들은 오랫동안 작품의 형태와 색, 붓질의 강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갤러리스트의 깊은 지식을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아틀리에를 방문해 작가들과 직접 대화하고 작품의 제작과정을 이해하며 특별한 짜릿함을 즐겨왔다. 수집가들의 이런 태도는 문명이 시작된 시기부터 지금까지 지속해온 인류의 변치 않는 기호였다. 즉, 갤러리와 박물관 전시 관람, 아트페어는 예술품과 만나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예술은 지금까지 친밀하게 직접 경험할 필요성을 부여해왔으므로 인터넷은 확실히 강력한 소통 수단이지만 한계가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겪는 미술시장의 위기 속에서 2020년 10월 마이애미를 상징하는 호르헤 페레스 컬렉션(Jorge M. Pérez Collection)과 호르헤 페레스 패밀리 재단(Jorge M. Pérez Family Foundation)이 2020-2021년 야심 찬 겨울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설립자 호르헤 페레스는 “대부분의 예술&문화 기관의 활동이 축소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이번 시즌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술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빛을 비추고 그 근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일하다. 따라서 예술가, 특히 경력 초기에 있는 작가들을 지원하고 창의적인 표현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해주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다. 이번 겨울 시즌 프로그램의 목표는 바로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11월 초, 파리 현대미술관은 회원들과 기자들에게 2차 팬데믹이 끝난 후 다시 만나자는 메일을 보내왔다. 많은 박물관이 셧다운을 선택한 2차 팬데믹 기간 동안, 페레스 박물관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페레스 컬렉션이 준비한 각 프로그램은 아메리칸 포 디아트(Americans for the Arts), 애니멀 러그 컴퍼니(The Animal Rug Company, ARC), 페레스 아트 뮤지엄(Pérez Art Museum Miami, PAMM) 등을 포함하여 예술 및 문화 커뮤니티 내의 다른 주요 조직과 실제 협력한 결과였다. 호르헤 페레스 패밀리 재단은 비영리 예술단체인 아메리칸 포 디아트에 25만 달러를 기부해 공공디자인에 예술을 통합하는 것을 지원, 개발 및 관리하는 재정을 후원했다. 이 공공 예술 및 시민 디자인 부문의 첫 번째 호르헤 앤 다를렌느 페레스 상(Jorge and Darlene Pérez)은 여성 조각가 비니 벡웰(Vinnie Bagwell)에게 수여됐다. 이 외에도 오픈스튜디오의 일환으로 예술을 활용하여 소외된 지역사회에 예술의 긍정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카타스트로프(Catastrophes) 프로그램, 아프리카, 라틴아프리카, 카리브해, 유럽, 미국의 예술가 39명으로 구성된 도발적인 단체전 Allied with Power(권력의 동맹: African and African Diaspora Art), 엘 에스파시오 23(El Espacio 23, 마이애미 알라파타 지역에 설립한 호르헤 페레스의 두 번째 개인 미술관)의 체계적인 억압, 세대 간 트라우마, 혼합주의, 정체성 및 영토를 주제로 다루는 Witness: Afro Perspectives(증인: 아프로 관점) 전시, 짐바브웨 출신의 마심바 와티(Masimba Hwati)가 초대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그의 관심이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반세기 동안 수집을 거쳐 이 분야의 예술가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페레스의 거침없는 단호함은 팬데믹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Kevin Beasley. Untitled (parade), 2016. Housedresses, kaftans, and resin. 87×72×48 inches. Collection Pérez Art Museum Miami, museum purchase with funds provided by Jorge M. Pérez, the John S. and James L. Knight Foundation, and PAMM Ambassadors for African American Art. Photo: STUDIO LHOOQ


마이애미 기반의 쿠바 출신 컬렉터


▎Kelley Johnson. Untitled, 2020. Acrylic and Flashe paint on canvas. 91 1/2×73 1/2 inches. Collection Pérez Art Museum Miami, museum purchase with funds provided by PAMM’s Collectors Council with additional contributions provided by Karen Bechtel, Evelio and Lorena Gomez, Jorge M. Pérez, and Craig Robins
호르헤 페레스(Jorge M. Pérez, 1949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더 릴레이티드 그룹(The Related Group) 회장으로, 부동산 개발업에 성공한 억만장자이며 자선가이다. 그는 스페인계 쿠바인 부모와 함께 1968년, 마이애미로 이사하기 전까지 콜롬비아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쿠바 정부에 의해 국유화된 제약회사의 책임자였다. 페레스는 롱 아일랜드 대학(Long Island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를 마치고 미시간대학교에서 도시계획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대학 시절, 주머니에는 늘 단 한 푼도 없었지만 그는 포커에 능했다. 기숙사 내부에서 있었던 포커에서 처음으로 이겼을때 그는 곧바로 호안 미로(Joan Miró)와 만레이(Man Ray)의 석판화 몇 장을 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무실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적이면서도 서로 다른 두 작가, 미로와 만레이를 선택했던 그의 다채로운 기호는 보츠와나 작가 파멜라 파시모 선스트럼(Pamela Phatsimo Sunstrum), 독일계 미국 작가 프리델 쥬바스(Friedel Dzubas), 코펜하겐 작가 퍼 컬크비(Per Kirkeby), 카메룬 작가 바르텔레미 토고(Barthelemy Toguo), 스페인 작가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 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의 변치 않는 관심을 특별히 받고 있는 작가는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리 크래스너(Lee Krasner)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페레스에게 감상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다. 페레스는 갤러리, 아트페어, 옥션에서 작품을 구입하고 있으며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만큼 자신의 선택에 자신 있다는 뜻이며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잡히지 않고 하나의 예술 작품을 훔칠 수 있다면 모네의 ‘수련’이라고 주저 없이 답하는 페레스는 부인 달렌트와 사이에 네 자녀를 두었다. 가족들을 위한 거실에 알렉스 카츠(Alex Katz), 케네스 놀런드(Kenneth Noland), 훌리오 르팍(Julio Le Parc),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 솔 르윗(Sol Lewitt), 올가 드아마럴(Olga de Amaral)의 작품을 두었고, 침실에는 안 크레벤(Ann Craven), 도날드 슐탄(Donald Sultan), 그렌다 레온(Glenda Leon), 마이클 골드버그(Michael Goldberg), 데이비드 살(David Salle), 프리다 오루파보(Frida Orupabo)의 작품을 설치했다. 이 작품들은 늘 대중과 수집품을 공유하려는 그의 의지대로 페레스 박물관과 엘 에스파시오 23 전시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페레스의 소장품들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프리다 칼로(Frida Kahlo),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로베르토 마타(Roberto Matta), 루벤 토레스 롤카(Rubén Torres Llorca), 제크 게이(Jef Geys), 마이클 로우(Michael Loew) 등 총 1000여 점에 달했다. 2011년 헤르조그&드뫼롱(Herzog & de Meuron)의 디자인으로 새로 탄생되는 마이애미 아트 박물관 건립을 위해 페레스는 3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박물관의 명칭은 페레스 아트 뮤지엄으로 바뀌었고 2016년 그는 다시 1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기부금에는 쿠바 현대미술을 지원하는 500만 달러 기부가 포함됐다. 또 사후에 자신의 전체 컬렉션을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페레스는 2017년까지 170개가 넘는 작품을 PAMM에 기증했다.

헤르조그&드뫼롱이 건축한 페레스 박물관(PAMM)은 정면이 만(Bay) 쪽을 향하고 있어 마이애미의 자연과 도시 경관을 반영하고 문화적 명소로서 도시의 급속한 성장에 대응하고 있다. 2970㎡ 규모 갤러리와 교육 시설, 상점, 해안가 카페, 외부 광장 및 정원으로 구성된 건물은 지역 주민들에게 역동적인 소셜 포럼으로 다가가고 있다. 또 지역의 주요 현대 시각예술 및 교육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기관의 사명을 실행하고 있다. 3층 구조의 건물 및 조경 시설에는 모든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도록 1만8580㎡ 공간이 포함되어 있으며, 1만1148㎡ 내부 공간(박물관의 이전 시설에 비해 3배 증가)과 외부 공간 7432㎡로 구성된다. PAMM은 박물관 벽보다 훨씬 높은 플랫폼과 캐노피가 그늘진 베란다를 만드는 것이 인상적이다. 프랑스 식물학자인 파트리크 블랑(Patrick Blanc)이 고급 원예 기술을 활용하여 디자인한 토착 열대식물은 구조 기둥과 플랫폼 사이의 캐노피에 매달려 있다. 파트리크 블랑은 파리의 카르티에 재단과 케 브랑리 박물관 조경 작업으로 이미 명성을 떨쳤다. 가볍고 신선한 공기에 개방된 넓은 계단은 플랫폼을 만과 해안 산책로로 연결하여 커뮤니티, 자연, 건축 및 현대미술을 결합하는 지속적이고 열린 시민 공간을 만들었다. 전시 기획 큐레이터와 협력하여 헤르조그&드뫼롱은 PAMM의 증가하는 컬렉션을 가장 잘 전시하고 개발하기 위해 일련의 갤러리 유형을 개발했다. 다양한 디스플레이 모드가 비선형 순서로 배치되어 방문자가 박물관의 컬렉션과 물리적 공간에 자신의 경험을 시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Myrlande Constant. Exorcism, 1994-2019. Sequins, glass beads, and silk on cotton. 40×50 inches. Collection Pérez Art Museum Miami, museum purchase with funds provided by PAMM’s Collectors Council with additional contributions provided by Karen Bechtel, Evelio and Lorena Gomez, Jorge M. Pérez, and Craig Robins
2019년에 페레스는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Miami-Dade County)의 예술 및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크리에이트 그랜트 프로그램(CreARTE Grants Program)을 설립했다. 페레스 패밀리 재단은 다양한 예술가와 단체에 매년 교부금 100만 달러를 수여하고 있다. 2019년 페레스로부터 100만 달러를 기부받은 플로리다 국제대학교의 메트로폴리탄 센터는 호르헤 M. 페레스 메트로폴리탄 센터(Jorge M. Pérez Metropolitan Center)로 알려져 있다.

매년 300개 이상의 현대미술 박람회들을 즐겼던 수집가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앞에서 의기소침해 있고 페어들은 줄줄이 취소됐다. 돌진하는 자동차의 기름 역할을 했던 페어가 문을 닫으면서 미술시장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작은 규모의 신생 갤러리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거물 갤러리들과 경매장은 새로운 모델에 적응할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유튜브를 통한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옥션에 나온 매우 세밀한 판매 작품 설명, 큐레이터들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갤러리 전시의 원격 설명, 박물관 디렉터들의 친절한 작품 소개 등이 실행되고 있다. 10월부터 내년 1월까지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와 고대 그리스&로마, 특히 도나텔로와 다빈치, 미켈란젤로, 범바이야(Bambaia, 16세기 밀라노 조각가)의 [인체와 영혼 ‘Le corps et l’âme’]을 기획하고 있으며 기획자, 마크 보르만의 설명을 온라인으로 상세히 즐길 수 있다. 이 또한 팬데믹으로 인해 박물관이 잠정 폐관함으로써 관람자들에게 주어지는 긍정적인 경험이다. 예전에 보았던 2분가량의 홍보 자료와는 차원이 다르다.


▎Viktor El-Saieh. Fet Chaloska, 2005-16. Acrylic on canvas. 72×96 inches. Collection Pérez Art Museum Miami, museum purchase with funds provided by PAMM’s Collectors Council with additional contributions provided by Karen Bechtel, Evelio and Lorena Gomez, Jorge M. Pérez, and Craig Robins
예술에 대한 수요 욕구가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진 시기를 맞아 투자자들은 지금까지 투자했던 분야가 아닌 다른 투자처를 찾고 있으며 예술은 그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분야로 다가간다. 현재의 위기는 아마도 예술을 더욱 사려 깊게 감상하는 긍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예술가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예술은 모두를 위한 열정이자 기쁨의 원천이다. 페레스 박물관을 제외한 유럽의 박물관들이 2차 팬데믹으로 다시 문을 닫고 있지만 곧 다시 열릴 것이다. 예술 애호가들은 그 순간이 오면 당분간 잊었던 이 독특한 경험에 다시 푹 빠질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면서 각 나라의 정치계가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의 예술가들을 지원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2012호 (2020.1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