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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전국한우협회 회장 

‘민족 한우’ 산업화의 꿈 

11월 1일 ‘대한민국이 한우 먹는 날’은 누구나 안다. 언제부터 우리가 한우를 브랜드화해 인식했을까. 1999년 설립된 전국한우협회의 역할이 크다. 단순한 한우 사육 농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수입 축산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우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지난 6년간 김홍길 회장은 한우를 고품질의 가성비를 갖춘 식품으로 보급하고자 노력해왔다.

“농업·농촌은 한국판 뉴딜과 지역균형 뉴딜의 한 축입니다.”

지난 11월 11일 제25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대통령이 참석한 건 17년 만으로,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농산물과 각종 작물 재배만큼이나 주목받은 분야가 축산이다. 은탑산업훈장도 김홍길 전국한우협회 회장(초원농장 대표)에게 돌아갔다. 축산 사육환경 개선, ‘의성마늘 소’ 한우 브랜드화에 앞장서고, 생산자 단체 OEM 사료(한우협회 자체 제작)를 공급해 축산농가의 생산비를 절감하는 등 여러 공적을 인정받았다.

11월 17일 서초구 제2축산회관 내 전국한우협회(이하 한우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홍길(58) 회장은 “한우협회는 ‘국민과 함께하는 안정된 한우산업’이라는 슬로건 아래 농민이 한우 사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며 “은탑산업훈장 수상은 코로나19 및 태풍, 수해 등 국가적 위기에도 한우산업과 한국 축산업계 관련 단체와 직원들이 하나가 돼 이룬 쾌거”라고 말했다.

한우협회의 어깨도 더 무거워졌다. 이틀 전인 15일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체결됐다. 이날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들이 협정문에 최종 서명했고, 각국 비준 절차가 남았지만 사실상 15개 회원국의 다자간 FTA 체제가 출범했다고 보면 된다. 농수산물 등 분야에서는 핵심 민감품목인 쌀·고추·마늘·양파·사과 등과 수입액이 많은 바나나·파인애플 등 민감품목 정도만 양허(일정 세율 이상으로 관세를 올리지 않도록 한 것) 제외로 보호할 정도로 아직 협상이 시작단계이기는 하다. 하지만 회원국의 농수축산물이 주요 교역 대상으로 떠오른 만큼, 한국 축산농가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한우협회는 한우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20년 넘게 대비해왔다. 김 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우협회는 어떤 곳인가.

한우협회는 한우를 사육하는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단체다. 농업·농촌을 이끄는 한우산업의 기반을 닦고, 계속 발전하기 위해 정부 및 국회 등과 함께 각종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있다. 한우 농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집회를 열면 우리가 앞장서기도 한다. 한우 할인판매 행사, 11월 1일 ‘한우 먹는 날’ 같은 한우 소비 활성화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한우가 생산돼 식탁에 오르기까지 소비자가 한우를 신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을 하는 단체라고 보면 된다.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1980년대부터 여러 나라와 경제공동체로 엮는 자유무역협정 얘기가 나오고 축산물 수입이 시작되면서 1984년 육우 수입에 따른 소값 파동, 1996년 공급 증가에 따른 소값 파동 등 한우산업은 큰 위기를 맞았다. 정부는 한우산업의 경쟁을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고품질 한우 생산과 전업·규모화 정책을 폈다. 한우산업의 변곡점이었던 1999년 한우 농가의 권익을 대변하는 구심점으로 창립된 게 한우협회의 시작이다.

기억나는 성과가 있나.

가장 큰 성과는 ‘원산지표시제’다. 한우협회는 수입 쇠고기에 맞서 한우가 온전히 ‘한우’로 유통되는 구조를 만들고자 시작했다. 지금의 쇠고기이력제와 원산지표시제가 자리 잡는 데 발판이 됐다. 덕분에 수입 쇠고기에도 이력제가 적용돼 문제가 발생하면 역학조사가 이뤄져 바로 차단할 수 있다.

쇠고기등급제와 자조금제도도 성과 중 하나다. 지금은 누구나 한우 등급을 칭하는 용어로 투플, 원플이란 말을 사용한다. 한우협회가 축산물품질평가원이라는 전문기관과 쇠고기등급제를 구축하고, 소비자 기호에 맞는 고품질 한우를 적극적으로 홍보한 덕분이다. 자조금은 말 그대로 ‘농가가 스스로 돕기 위한 자금’이란 말로 농축산물 시장 개방과 소비 확대, 수급 불균형 등에 대응하고 경쟁력 강화에 활용하는 자금이 됐다. 이 재원으로 한우홍보 대사를 선정하거나 11월 1일 ‘한우 먹는 날’ 개최, 한우나눔, 급식 맛체험 등 다양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청탁금지법의 국내 농축산물에 한정한 선물가액 증액, 숯불구이축제, 농축협 정상화 운동, 기업자본의 축산 사육 저지 등이 기억난다.

농가와 직접 관련된 사업은 없었나.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송아지생산안정제, 암소 도태사업 등이 있다.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순히 출하량을 줄여 한우값을 올려받겠다는 게 아니다. 고품질 한우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제값을 받으려면 생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농업계에서 한우협회를 ‘살아 있는 생산자 단체’라고 부르는 이유다. 2015년부터 협회장으로 당선돼 재임까지 총 6년을 달려오는 동안 여전히 내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수식어다.

그래도 일반인이 한우를 즐기기엔 가격이 다소 부담스럽다.


한우협회도 같은 고민을 했다. 제값을 받는 것만큼이나 많은 이가 한우를 즐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한우협회 한우정책연구소에서는 한우 가격을 내리기 위해 사육법과 대내외적 환경요인 등 다각도로 방법을 연구했다. 국내 유수 연구소에 연구용역사업으로 같은 내용을 발주하기도 했다.

어떤 사업이 떠오르나.

생산비부터 따져봤다. 농가가 한우를 사육하는 데 드는 비용 중 사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의 경우 사료값이 수년간 변동이 없는 이유가 있다. 전체 한우농가 중 60~70%가 농축협의 사료를 쓴다. 독점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2019년부터 OEM 사료를 출시해 농가 생산비 절감에 일조하고, 사료 가격의 기준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OEM 사료(한우협회 자체 제작)는 일반 사료보다 한 포당 2000원가량 저렴하다. 농가 입장에서 출하 기준으로 따지면 10마리에 450만원, 100마리면 4500만원 정도 절감할 수 있다.

농가들이 OEM 사료를 반겼겠다.

그렇다. 우리가 OEM 사료를 출시한 건사료를 많이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 사료업계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사료업계 관행을 바꾸고, 사료 배합비와 원가를 농민에게 공개하고 싶었다. 이 모든 게 우리의 기본 원칙인 ‘농민이 잘 길러 출하한 한우가 잘 팔리는 구조를 만들자’에서 출발했다. 농축협에만 의존했던 구조를 바꾼 거다. 가축 생산은 농민이, 판매는 기업이 전담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사료만으론 한우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

맞는 말이다. 한우의 우수한 품질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즐기기 위해선 ‘가성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산자가 한우 가격을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한우 농가가 한우협회 OEM 사료를 쓰고, 농기자재를 공동구매해 사육 생산비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OEM 사료를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건 한우 한 마리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 중 50% 정도를 사료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비자가 한우에 거는 품질 기대치를 충족하기 위해서 무항생제, 친환경 등 여러 안전인증 시스템을 구축해 축산 환경을 관리하려면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그냥 한국 농가에서 키웠다고 한우가 되는 게 아니다.

한우란 이미지가 굉장히 좋다.

그 말은 곧 소비자의 기대가 높다는 뜻이다. 한우는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다. 농민들도 자긍심을 갖고 있다. 한우협회는 한우 사육 생산비가 올라가고 있지만, 최대한 감내하면서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료뿐만 아니라 사육 기간을 앞당겨 생산비를 낮추는 정책을 검토하고, 한우자조금을 활용해 할인행사도 자주 연다. 매년 11월 1일 한우 먹는 날이 정착한 것도 이런 노력이 이어진 덕분이다. 최근엔 NS홈쇼핑과 손잡고 한우가정간편식(한우한마리 곰탕, 한우 도가니 우족탕, 한우 한판)을 출시하기도 했다.

한우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나.

한우란 이미지에 정답이 있다. 마블링에 일부 이견이 있지만, 한우 마블링은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인산을 수입 쇠고기보다 많이 함유하고 있어 오히려 나쁜 콜레스테롤을 잡아준다. 농촌진흥청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우만의 깊은 맛과 풍부한 육즙이 내는 풍미는 전 세계 어떤 소도 흉내 낼 수 없다고 한다. 한우에는 수입산 쇠고기보다 단맛과 감칠맛을 좌우하는 성분이 많고, 신맛과 쓴맛을 내는 성분은 적기 때문이다. 쇠고기등급제를 정착시켜 소비자 개개인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등급으로 한우를 분류하면서 품질을 보완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6년간 한우 농가를 지키려고 발이 땀이 나도록 뛰었다. 무엇보다 최근 가장 기분 좋은 소식은 귀농 이유 제1순위에 한우 사육이 꼽혔다는 얘기였다. 한우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명품 소로서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선 젊은 인력의 힘이 필요하다. 한우는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해왔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일할 소가 모자라 우금령(牛禁令)이 내려질 정도였고, 산업화 시대에는 대학을 상아탑(象牙塔) 대신 우골탑(牛骨塔)이라 칭했다. 생일날엔 한우 미역국을 먹고, 추석과 설날에는 한우 떡국을 먹는다. 더군다나 최근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수입 축산물 가격이 폭등했고, 식량주권의 중요성이 다시금 대두했다. 이를 계기로 한우산업에 국민적 관심과 사랑이 더 커지기를 바란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

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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