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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이 만난 아트 인플루언서(7) 소프라노 박혜상 

‘아이 엠 헤라’, 나를 대체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죠 

사진 전민규 기자·장소협조 오드포트
클래식계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노란 딱지’, 도이치 그라모폰(DG)이 톡톡 튀는 한국의 젊은 싱어를 선택했다. 지난 11월 초 데뷔 앨범을 발매한 소프라노 박혜상(32) 얘기다. 122년 역사를 자랑하는 현존 최고 전통의 음반사 DG가 전속계약을 맺은 한국인 아티스트는 피아니스트 조성진뿐이었다. 그 기록을 깬 박혜상은 코로나19로 세계 공연계가 침체에 빠진 올해도 국내와 해외를 분주히 오가며 ‘최고의 해’를 만들었다.

▎소프라노 박혜상은 11월 초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2020년은 그러잖아도 박혜상에게 잊지 못할 해가 될 예정이었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인 뉴욕 메트 오페라에서 ‘헨젤과 그레텔’로 주역 데뷔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탓에 메트 오페라 주역 데뷔는 2021년 말 ‘마술피리’ 공연까지 좀 더 기다리게 됐다. 하지만 지난 7월에 빈으로 건너가 음반을 녹음했고, 9월에는 뮌헨에서 오페라 ‘마리아 칼라스의 7가지 죽음’ 초연을 올리며 두 번이나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자가격리 중에도 되게 바쁘게 지냈어요. 집에만 있어야 하니 바쁘게 시간을 보내려고 온라인 스케줄을 잔뜩 만들었죠. 온라인으로 이태리어와 프랑스어 수업도 듣고, 미술수업도 들었어요. 다른 생각 안 해도 되는 명상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나름 좋았어요.”

DG와의 결정적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난해 영국 글라인본 페스티벌에서 공연했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관람한 클레멘스 트라우트만 DG 회장이 ‘다음 시즌에 뭘로 앨범을 만들까’ 물으며 계약을 제안하셨어요. 자기가 그 작품을 정말 많이 봤지만 저의 로지나 연기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특별했다면서요. 해외에서 처음으로 주역을 맡은 무대였는데,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됐죠. 공연 당일 영국 찰스 왕세자도 왔거든요. 왕세자와는 악수도 하면 안 되고 예의를 제대로 갖춰야 하는데, 저는 청바지에 백팩을 메고 갔죠. 무례를 범한 셈인데, 다행히 왕세자께서 재밌는 친구라며 웃어넘겨 주셨어요.

클레멘스 회장이 ‘박혜상은 과거와 현대의 시대정신을 특별한 방법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했는데, ‘특별한 방법’이 뭘까요.

저는 여러모로 경계에 있는 사람 같아요. 클래식만 하는데도 사람들이 팝페라를 해보라, 뮤지컬은 어떠냐고 하는 걸 보면 제가 모던한 느낌을 주는 모양이에요.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니 동서양의 경계에 있기도 하죠. 구세대와 신세대의 중간에 있기도 하고요. 클레멘스에게 앞서간 선배들과 후배들의 중간에서 내 몫이 중요한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어요.

[팬텀싱어 3]에 출연해 스타가 된 유채훈, 존노, 길병민과 모두 친하다고요.

존과 병민이는 친동생 같은 친구들이고 채훈이는 동갑이라 아주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며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눈 친구거든요. 다들 잘되니 좋네요. 병민이는 대학 시절 알바 삼아 작은 공연이나 행사 뛸 때 같이 노래 부르며 많은 시간 함께했고요, 줄리아드에서 만난 존은 미국 교회에서 제가 성가대 지휘할 때 부지휘자여서, 제가 자리를 비우면 존이 맡아 주곤 했어요. 얘네가 갑자기 떠서 좀 어색하긴 한데, 오히려 연락도 자주 하고 더 잘 챙겨주더군요.

여성 성악가들에게도 [팬텀싱어] 같은 무대가 필요하지 않나요.

저는 나가지 않을 것 같지만, 존노와 병민, 채훈이를 보면서 각자 달란트가 다르단 생각을 했어요. 저는 클래식이 너무 좋고, 외국에서 일해야 하니 도전이 되는 일이라 좋은데, 이 친구들을 보면 대중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음악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이구나 싶어요. 그런 무대가 생긴다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디딤돌이 될 수 있겠죠.

“10년 후엔 무대 위 야수 돼 있을 것”


▎지난 8월 초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박혜상 살롱콘서트 ‘한여름 밤의 꿈’. / 사진:크레디아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시작으로 페르골 레시, 헨델, 모차르트, 로시니, 벨리니, 푸치니 등 유명 오페라 아리아가 담긴 데뷔 앨범 제목은 ‘I AM HERA’다. 개명 전 이름이었던 ‘소라’와 지금 이름을 한 글자씩 조합해서 만든 프로페셔널 네임이란다.

“그리스신화 속 질투의 여신과도 무관하진 않죠. 저는 ‘나쁜 여자’가 되고 싶거든요. 담대하고 도전적인 매력도 있는…. 결국 헤라가 제우스를 사로잡아 못 빠져나오게 하잖아요.(웃음) 이번 앨범에서 챌린지하고 싶었던 건 ‘I AM’ 뒤에 듣는 분들도 각자의 이름을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거예요. ‘아이 엠 순자’, ‘아이 엠 옥자’처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자기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여정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지은 제목이죠.”

그는 마치 연극배우 같았다. 리사이틀에서도 표정 연기와 감정을 듬뿍 담아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에 짐작했지만, 일상에서도 넘치는 끼와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졌다. 10년 후쯤엔 ‘와일드 애니멀’ 또는 ‘몬스터 온 더 스테이지’가 되어 있을 거라는 말도 했다. “리사이틀이라도 아리아 부를 때는 오페라극장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연기가 돼요. 제 자신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요즘 제 모습이 좋아요. 노래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족함을 느껴서 노력해야 한다 생각하지만, 노래 외적인 제 모습은 지금이 가장 나다운 것 같아요. 이대로 가면 10년 후에는 굉장한 야수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제 안에 ‘프리 스피릿’이 강해지고 있거든요. 저를 어딘가에 옭아매지 않기 시작하니 정말 편하더군요.”

어린 시절 그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개성이 강한 탓에 사람들 속에서 뭔가 어색함을 느끼고 낯선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제 안에 잠재된 끼들이 있는데 부모님이 늘 ‘조용히 하라’, ‘말을 삼가라’고 가르치셔서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유학 가면서 자유로워졌죠. 미국에선 겸손과 자신감이 같이 갈 수 있더군요. 그걸 깨닫고 너무 좋아서 한동안 미국인처럼 되려고 행동했는데, 결국 그건 실수였어요. 미국인이 되려고 할수록 그럴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고, ‘아이 엠 헤라’가 거기서 나왔어요. 내가 누군지 모르겠던 혼란의 시기도 있었지만, 스스로가 가진 걸 최대치로 끌어올려서 자기를 사랑해주는 게 중요하단 걸 깨닫게 된 거죠.”

성악가로서 동양인이라 힘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동양인인데 기 죽지 않는 게 무기가 됐다는 사람도 있던데.

동양인이라 힘들었죠. 차별대우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내가 한국인임을 인정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달까요. ‘기죽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기’라는 게 없고, ‘깡으로 할 거야’도 아니고, 그냥 ‘난 한국인이야’로 나갔어요. 연습을 100배 더해야 반은 따라간다는데, 그럼 100배 더하면 되지 뭐. 저들은 쉽게 되겠지만 난 좀 안 돼. 그렇다고 좌절하는 게 아니라, 힘들어도 좋아하니까 어쩌겠나,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마음먹은 거죠.

힘들 땐 슬럼프도 겪었겠죠.

제가 줄리아드를 세 번 만에 붙었어요. 국제 콩쿠르에서 제대로 된 1등도 해보지 못했으니,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죠. 그런 굴곡이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내느냐가 즐거움이었고, 그게 지금의 제 컬러를 만들어낸 것 같아요.

노래하면서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제가 마음껏 노래할 수 있게 모든 서포트를 해주시고 지금도 제 미래를 준비하고 계시는 엄마가 제 우상이죠. 한약방을 하시는 아버지 덕에 건강한 것 같고요.(웃음) 사실은 선생님들 영향이 커요. 박미애 선생님과 형진미 선생님, 두 분이 가슴에 많이 남아요. 전 한 번도 푸시받으면서 노래한 적 없거든요. 저한테 대단한 사람 되라고 한 게 아니라 좋은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하죠.

소프라노로서 나만의 강점이라면.

그냥 ‘아이 엠 헤라’예요.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죠. 유학 중에 어떻게 하면 특별해질까 고민이 많을 때, 매니저나 선생님은 ‘헤라 플리즈, 두 낫띵’이라고 하더군요. 그땐 이해하지 못했는데 영어 선생님의 ‘유 아 이너프’라는 말에 깨달았어요. 세상에 나는 나밖에 없는데 남처럼 되려고 했구나. 나는 유니크하니까 그저 나됨으로 노래하면 된다는 말이구나. 그걸 깨닫고 나니 최대한 나다운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게 나의 강점이라 생각해요.”

꿈의 테너가 있다면.

파바로티 음색이 대체 불가능했던 것 같아요. 로베르토 알라냐도 좋아하죠. 전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빠져 있을 때 알라냐가 데뷔했던 DVD를 보면서 열렬한 팬이 됐고, 언젠가 같이 노래 부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멋진 테너 많이 만나서 한국에 초대하고 싶어요.

오페라의 세계관이 현대인에게는 낡은 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갖는 이유가 뭘까요.

오페라는 비밀을 얘기해주는 것 같아요. 우리가 다 뻔히 알고 있지만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했던 도발적인 이야기들을 풀어주면서 속 시원히 긁어주는 거죠. 예컨대 ‘코지 판 투테’에서 여자들이 고결한 척하면서도 사실은 남자들에게 은근히 흘리면서 결국 그 사랑을 받아내고야 말잖아요. 모차르트의 재주 덕분에 그런 이야기를 한바탕 웃으며 즐기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달까요.

“아름다운 한국 가곡 세계에 전파할 계획”


▎박혜상은 내년 뉴욕 메트 오페라극장에서 ‘마술피리’로 주역 데뷔를 앞두고 있다. / 사진:전민규 기자
DG와의 데뷔 앨범 녹음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팬데믹으로 베를린에서 잡혔던 일정이 취소되어 거의 포기 상태였지만, DG 스태프진이 발품을 팔아 기적처럼 빈에서 비엔나 심포니카의 연주로 녹음이 가능했다. “제 녹음이 코로나19 이후 DG의 첫 녹음이라 굉장한 도전이었어요. 서로서로 조심해야 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다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어요. 아무래도 도전이 되긴 했죠. 매일 3시간 동안 쉼없이 노래한다는 게 엄청난 집중이 필요하더군요. 한 번 녹음할 때 페트병 8개 이상씩 물을 마셨는데, 제가 물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줄 처음 알았어요.(웃음)”

이번 앨범에는 한국어 가곡 2곡을 담았는데, 122년 DG 역사상 최초란다. 서정주 시에 김주원이 작곡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와 나운영 작곡의 ‘시편 23편’이다. “한국 문화를 알리고 싶기도 했지만 저의 자유로운 영혼을 전달하기 위해선 한국 곡이 제일 좋았어요. 유럽 오케스트라가 한국 가곡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제가 일일이 가이드를 해야 해서 시간이 걸리긴 했죠.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는 않게’ 같은 한국어 노랫말의 애매한 경계를 설명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는 너무 좋았고 다들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해주시네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악기 편성을 기꺼이 다시 해주고 제가 원하는 색깔이 나오도록 애써주신 김주원 작곡가에게도 감사하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굉장히 자랑스러웠어요. 제가 리사이틀 때마다 우리 가곡을 불렀지만 앞으로 더 많이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회가 되면 가곡 앨범을 발매해서 세계에 알리는 데 이바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

수록된 18곡이 하나하나 특별한 사연이 있고, 10차례 이상 레퍼토리를 바꿨을 정도로 선곡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그중 딱 한 곡만 들려줄 수 있다면 ‘시편 23편’을 들려주고 싶단다.

“저는 선택적 홈리스거든요. 집이 없고 슈트케이스 두 개로 여행을 하는데, 그 노래를 부를 땐 제 안에서 집이 느껴져요. 어느 공간에 가서 편한 게 아니라, 집이라는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곳은 마음속에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곡이거든요. 꼭 한 곡만 듣는다면 그 곡을 들으시면서 내 안에 있는 편안한 집에서 위로받으셨으면 싶네요.”

남들보다 바쁘게 보낸 2020년이지만, 스스로를 재정비할 수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항상 스케줄에 따라 세계 여기저기로 투어를 다니느라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상의 ‘루틴’이 주어졌고, 이를 온전히 활용하고자 애쓰며 살았던 날들이다. “루틴이 생기면서 충분한 생각과 연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게 되게 좋았어요. 운동도 2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고요. 그런 습관이 오래 이어지다 보니 정체성이 된 것 같아요. 2021년에는 연주를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열심히 훈련한 만큼,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도전하고 싶습니다.”

※ 유주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휩쓸던 영광의 기억을 품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살아왔다. 2010년부터 중앙SUNDAY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을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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