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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 AI를 입다] 정인영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 대표 

‘꾸준히 차곡차곡’ 쌓는 금융투자 습관 

국내 최초 비대면 일임투자 서비스에 나선 ‘핀트’는 수익률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투자를 고객의 습관이자 경험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인영 대표는 투자 수익률을 따라가기보다, 투자를 생활 속 습관이자 문화로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이하 디셈버)은 지난 2013년 8월 설립됐다. 국내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를 기반으로 한 자산운용사지만,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대면 투자일임 서비스 ‘핀트(Fint)’를 론칭한 건 2019년 4월 들어서다.

회사를 이끄는 정인영 대표는 “회사 설립 후 6년간 기술 개발에 매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체 개발에 공들인 끝에 금융 플랫폼 ‘프레퍼스(PREFACE)’와 이를 구현할 인공지능 자산배분 엔진 ‘아이작(ISAAC)’을 내놓았고 ‘개미’들을 위한 비대면 투자일임 서비스인 핀트 론칭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핀테크 혹은 테크핀이라는 영역에 국한하기보다, 금융을 매개로 한 테크회사”가 디셈버의 정체성이라는 뜻이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세에 접어든 2019년 이후 핀트도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올 5월 기준 누적 회원수 46만 명, 누적 투자일임 계약 11만 건, 투자일임액 455억원을 기록했다. 고객 연령대도 20대가 53%로 가장 많고, 30대 26%, 40대 14% 순이다. ‘일상을 바꾸는 투자’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투자 경험이 없는 MZ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아우르는 로보어드바이저 전문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엔씨소프트 관계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도 김 대표와 엔씨소프트 지분을 더하면 80%가 넘는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서비스’라는 모토에 초기 투자자들이 공감해준 결과다. 나 역시 엔씨에서 투자경영실장으로 일하다 디셈버 설립과 함께 대표이사를 맡았다.

게임과 금융은 전혀 다른 업종 아닌가.

엔씨에서 내가 직접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나 기획자로 일한 건 아니다. 항상 새로운 투자 기회를 발굴하는 게 투자경영실장의 일이었다. 단순히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한다기보다 세상을 바꾸고 사회 전반에 기여할 의미 있는 사업 기회를 찾고자 했다. 디지털(기술)과 온라인(모바일)이 침투하지 않은 영역을 찾다 보니 금융이 보이더라. 온라인게임이란 것도 과거에는 전혀 없던 새로운 영역이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성향도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유저 스스로 적과 대결하는 양상이었다면, 최근엔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유저는 게임의 결과만 취하는 식으로 변해간다. 게임에 대한 고객 경험이 기술 발전을 타고 달라졌다는 뜻이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이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시간 부족과 사용자 환경이다. 핀트는 로보어드바이저라는 혁신 기술로 고객의 시간을 세이브해주는 것을 넘어 아예 새로운 시간을 창출해주는 서비스라는 개념으로 출발했다.

설립 이후 투자일임 서비스 출시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디셈버 설립 이후 8년 중 6년을 기술 개발과 규제 돌파에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만 명, 1000만 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한 번에 실시간으로 컨트롤하고, 개개인에 따른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선 상당한 수준의 기술적 집약이 필요했다. AI를 활용한 대규모 데이터 처리 기술 확보에 많은 시간과 자본을 들여야 했고, 이런 노력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온라인과 비대면 추세에 힘입어 고객 수용성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높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서비스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도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인식의 틀을 넓히는 데 일조했다.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일임에는 기대보다 저조한 수익률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핀트라는 서비스는 수익률보다 기술적 본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경쟁사나 기존 서비스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추구한다. 우리는 핀테크나 테크핀이 아니라 그냥 테크 회사이고, 이게 정말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다. 수익률에 연연하는 건 2, 3차 산업혁명 시기의 접근법이라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투자라는 경험을 통해 고객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더 중요한 포인트가 될 거라 확신한다. 실제로 핀트 서비스의 마케팅은 수익률을 철저히 배제한다. 대신 꾸준한 투자를 강조한다. 수익률은 전통적 금융사가 만들어낸 성과지표(KPI)의 영역이다.

수익이 어느 정도 담보돼야 고객도 만족할 수 있을 텐데.


3~4년 전만 해도 “핀트가 고객 경험에 초점을 둔 서비스”라고 말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금융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고객행동 데이터를 보면 우리의 접근법이 맞았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진다. 가령 처음에 100만원을 입금한 고객의 추가 투자금액이 300만원 수준으로 늘어난다. 편리하면서도 효율적인 핀트 서비스에 고객이 만족했다는 의미다. 핀트가 적립식투자라는 말 대신 ‘꾸준히 차곡차곡’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것도 투자에 대한 개인의 의지와 경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돈 버는 행동을 넘어 투자가 하나의 습관이자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로보어드바이저 역시 궁극적인 목표는 안정적인 수익 달성 아닌가.

1000만원을 투자하든 1억원을 넣든 핀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동일한 경험을 하길 원한다. 그래서 중요하게 보는 지표가 수익률 분포다. 전 재산을 핀트 서비스에 올인할 수는 없다. 안정적인 수익률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최근 유동성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금융투자가 활발했졌고, 동학개미를 넘어 서학개미까지 나오고 있지만, 테슬라가 50% 수익을 낸다 해도 밤새도록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살 수는 없다. 전업투자자가 아닌 이상 안정적이면서도 꾸준한 수익이 중요하다. 핀트가 경쟁사에 뒤지지 않는 수익률을 유지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AI 간편투자 엔진인 아이작을 내놓으며 ‘감성이 배제’된 데이터 기반 투자를 표방했다.

사람이 하는 투자는 수익률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오류를 범하기 쉽다. 아이작은 기본적으로 기계다. 빅데이터 처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고객 수백만 명이 동시에 안정적으로 적정 수준의 투자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국 증시와 뉴욕시장에 상장된 ETF 중 최적의 종목과 비중을 매일매일 새롭게 결정해 자동으로 투자하는 시스템이다. 투자 종목의 비중, 종목 선정, 자동매매가 매일 최적의 포트폴리오로 구성돼 진행된다. 금융시장의 매크로 지표나 시그널이 급격한 변동성을 띨 때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조금씩 쌓여서 큰 변화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더 많다. 시장의 작은 변화를 매일 따라가지 못하면 어느 순간 닥친 조정에 무너지기 쉽다. 최근 애플 주가가 2012년 대비 6배가량 상승했는데, 한순간의 펀더멘털 변화가 불러온 이벤트가 아니다.

AI 로직을 기반으로 한 투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나.

한국거래소와 뉴욕시장에 상장된 ETF를 매일 실시간으로 스크리닝한다. 종목별 특징, 수수료, 거래량은 물론이고 매크로 지표 분석, 가격 움직임, 매매 패턴, 시장의 반응을 AI 엔진이 종합적으로 판단해 투자 종목을 정한다.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해 매일 투자 모델 포트폴리오를 산출하고 개별 고객의 계좌별로 실시간 자동 매매에 나선다. 고객의 투자 니즈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분산형, 효율형, 집중형 중 고객이 직접 선택한 분산투자 방식을 제공해 더욱 개인화된 포트폴리오를 짠다. 안정적인 수익률 분포 안에 최대한 많은 고객이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 핀트의 차별화된 강점이다.

자산운용사 최초로 오픈뱅킹도 도입했다.

한번 투자에 나선 고객이 서비스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간편하게 계좌 연동 및 입출금이 가능한 서비스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처음으로 제로페이 모바일상품권 서비스를 도입했다. 간편투자 외에 소비와 결제까지, 금융 생활 전반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려 한다. AI로 수익률을 담보한다는 개념보다는 고객이 우리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어떤 경험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보면 된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수익률을 높이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아니라 금융을 서비스로 바라보는 회사다.

지난해 ‘AI 간편투자 증권사’ 합작법인도 출범했다.

KB증권, 엔씨소프트가 합작법인(조인트벤처) 설립을 위해 600억원을 투자했다. 새로운 증권사를 세운다기 보다는 더 편리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려니 증권사(투자중개업) 라이선스가 필요하더라. 대체투자 파이프라인을 강화하기 위해 사모전문펀드 라이선스를 획득한 것과 비슷하다. 현재 핀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기존 증권사(KB증권·대신증권) 계좌를 빌려 써야 한다. 핀트 서비스 이용자로선 헛갈리기 쉬운 지점이다. 증권사가 아니다 보니 이체한도도 하루 1000만원에 묶여 있다. 가령 1000만원을 투자해 10만원 수익을 내면 이틀에 걸쳐 찾아야 하는 현실적 불편함이 있다. 물론 비즈니스 영역 확대도 염두에 두고 있다.

간편결제 시장 협업을 위해 BC카드에서 99억원을 투자받기도 했다. 간편결제는 이미 레드오션 아닌가.

간편결제에 뛰어든다기보다 결제 시장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결제 시스템이 간편해야 하니 간편결제라 부르는 거다. 카카오페이처럼 통합적 시스템까지는 아니다. 핀트 고객에게 핀트 머니와 카드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와 투자를 연계하는 개념이라 이해하면 쉽다. 현재도 핀트 앱에 제로페이 기능이 들어 있다. 이를 통해 고객 경험을 유도하려 한다. 핀트카드도 3분기 안에 출시될 예정이다. BC카드와 협업 중인데, 이 역시 일상적 소비가 투자로 연결되는 고객 습관을 목표로 한다. 1000원 내고 900원 쓰면 나머지 100원을 투자로 돌리는 식이다. ‘꾸준히 차곡차곡’ 서비스 이용 고객의 평균 투자금액을 보면 매일 7000원, 매주 2만7000원, 매월 13만원이다. 꾸준한 투자를 원하는 고객 니즈가 생각보다 크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202106호 (202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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