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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상수경영(上手經營)’(7)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 

역사에도 말로써 망한 자들과 침묵으로써 흥한 자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아주 말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단지 가려서 하라는 말이다.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야 하고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조직의 리더일수록 더욱 그렇다. 말은 아낄수록 값이 나가는 법이다.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침묵은 금이다’라는 경구는 그야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침묵의 힘’을 강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우화가 있다. 타우라스산을 넘는 두루미 이야기다. 타우라스산은 터키 남부의 토로스산맥을 일컫는 듯하다. 지중해 연안과 평행을 이루며 동쪽으로 유프라테스강 상류까지 450㎞를 완만하게 이어 아나톨리아 고원과 지중해 연안을 나눈다.

우화에 따르면 타우라스산 정상은 독수리의 서식지다. 왜냐하면 철새인 두루미가 타우라스산을 넘어 이동하기 때문이다. 두루미는 아주 시끄러운 새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날 때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두루미의 이동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독수리들에게 먹이가 도착하고 있다는 좋은 신호가 된다.

하지만 노회한 두루미들은 수없이 타우라스산을 넘지만 거의 희생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입에 돌을 물고 가는 까닭이다. 돌을 문 입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으므로 독수리한테 희생되지 않고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다.

두루미들이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에 돌을 물 정도로 지혜로운 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혼자 살겠다고 다른 동료들에게는 그런 지식을 전파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라는 비난도 무의미하다. 다만 말을 삼가는 게 여러모로 이롭다는 것이 검증이 필요 없는 진리라는 사실을 강조할 뿐이다. 물고기가 낚시에 걸리는 것도 결국 입을 벌리기 때문 아닌가 말이다.

역사에도 말로써 망한 자들과 침묵으로써 흥한 자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고대 로마의 코리올라누스라는 인물도 입방정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 중 한 명이다. 코리올라누스는 플루타르코스가 저서 『로마의 건설자들』 첫 장에 소개할 만큼 로마의 위대한 장군이었다. 셰익스피어 역시 『코리올라누스』라는 제목의 희곡 작품에서 비범한 인물이 욕심으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극화했다.

코리올라누스의 본명은 가이우스 마르키우스다. 로마가 오늘날 로마 남쪽에 있던 볼스키족의 도시 코리올리를 공략할 때 큰 공을 세워 그 지명을 딴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코리올리 전투를 비롯해 코리올라누스는 기원전 5세기 전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미래 로마 제국의 기틀을 세웠다.

그는 젊음을 변방의 전쟁터에서 바쳤기 때문에 명성은 자자했지만 실제로 그를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로마에서 살아 있는 전설이 됐지만, 실제로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코리올라누스는 자신의 명성을 발판으로 집정관에 입후보했다. 그가 후보 연설을 하려고 연단에 올라서자 그를 보려는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보려고 서로 밀치고 다투는 시민들 앞에서 다른 후보들처럼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았다.

다만 옷을 벗고 20년 가까이 로마의 영광을 위해 싸우다 생긴 수십 곳의 흉터를 보여줬다. 그러고는 말없이 연단에서 내려갔다. 이어 다른 후보가 연단에 올라섰지만 그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은 없었다. 코리올라누스의 당선은 기정사실이 됐다. 그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자 경쟁자들이 스스로 포기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투표 당일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선거에서 승리를 확신한 코리올라누스가 자만에 빠져 함부로 입을 놀리고 만 것이다. 자신이 겪은 무용담을 자랑했고 로마 시민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겠노라고 큰소리쳤다.

그의 말은 전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허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로마 시민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신의 아들로까지 비유되던 로마의 전설적인 영웅이 한낱 허풍쟁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코리올라누스의 자만

결국 코리올라누스는 집정관 선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그 후에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은 로마 시민들을 비난하는 말을 계속하다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결국에는 로마에서 영구 추방되고 말았다.

이처럼 말이 많으면 결국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말이 많다 보면 속내를 드러내게 되고 그로 인해 낭패를 보기 쉽다. 얄팍한 지식과 부족한 실력, 허술한 인격과 가벼운 성품이 입을 통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속언이 괜한 게 아니다.

말을 적게 해야 한다는 것은 내실이 없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실력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없는 사람보다야 더 오래가겠지만, 아무리 내공이 튼튼해도 말이 많다 보면 실수가 나오게 마련이다.

이와는 반대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국왕이었다. “짐이 곧 국가다”란 한마디가 그의 모든 의지를 웅변했다. 베르사유 궁전에 살았던 이탈리아 출신의 점쟁이 프리미 비스콘티가 지은 『루이 14세』에는 그런 태양왕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루이 14세는 국사에 대해 철통같이 비밀을 유지했다. 장관들이 각의에 참석해도 왕은 오랫동안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만 전달해줄 뿐이었다. 왕의 얼굴을 한번 보라. 그의 표정은 도대체 읽을 수가 없다. 각의를 열 때가 아니면 국사를 입 밖에 내지도 않는다. 신하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각각의 권리와 의무만 얘기해줄 뿐이다. 그 결과 루이 14세가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듣는 사람은 마치 신탁에서 나오는 말처럼 귀를 기울인다.”

무서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신하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것은 신하들이 거짓말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신하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왕의 생각이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신하들은 침묵하는 국왕 대신 계속 있는 대로 떠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자기에 대한 정보를 왕에게 제공했다.

말을 듣고 난 뒤 루이 14세는 “두고 봅시다”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 말은 루이 14세가 “대화가 끝났다”는 뜻으로 애용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그는 그 정보를 나중에 유용하게 써먹었다. 대부분 말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처럼 리더는 되도록 말을 아껴야 한다. 말은 아끼되 행동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 말로써 허점을 드러내지 말고 침묵 속에서 숙고한 뒤, 과감하고 결단성 있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바람직한 리더십이다.

살펴볼 만한 예가 있다.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도시를 재설계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한 르네상스 건축의 대가 크리스토퍼 렌 경(卿)의 이야기다.

그는 한 도시로부터 시청사 건물을 설계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가 설계한 시청사는 그의 다른 작품만큼이나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건물의 주인이 될 시장이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기둥이 약해 2층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트집을 잡았다. 그러면서 기둥을 더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 시대의 위대한 천재들이 모두 그렇듯 뛰어난 건축가이면서 물리학자·공학자였던 렌은 시장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둥을 추가하면 오히려 건물의 균형을 해쳐 붕괴 위험이 더 높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군소리 없이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둥을 두 개 더 세우도록 했다. 새 설계도를 본 시장도 만족해했다.

흐루쇼프 서기장의 고함

그 후 100여 년이 지나 보수공사를 위해 사다리에 올라 건물의 천장 부분을 살펴보던 인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 추가된 두 기둥이 건물 지붕을 받치고 있지 않고 천장과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저 기둥 모양만 하고 있는 가짜였던 것이다.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던 가짜 기둥으로 인해 렌과 시장, 두 사람 모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렌이 고집을 부려 논리적으로 시장을 설득하고자 했다면 건물을 지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인간의 불안이나 심미안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그렇지만 행동은 말보다 훨씬 설득력이 강하다.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번의 몸짓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옛 소련의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이 어느 날 전임자인 스탈린의 범죄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연설 도중 한 사람이 관람석에서 외쳤다. “당신도 스탈린의 동료였지 않소. 그때는 아무 소리 못 하다가 왜 이제 와서 그를 비난하는 거요. 부끄럽지도 않소?”

흐루쇼프는 화난 얼굴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며 고함쳤다. “누구야, 그런 돼먹지 못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장내는 얼어붙었고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서슬퍼런 얼굴로 좌중을 돌아보던 흐루쇼프가 한참 후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내가 왜 그때 스탈린을 막지 못했는지 여러분도 아셨을 겁니다.”

스탈린 집권 당시 그에게 대항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흐루쇼프가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아무 말 못 했다고 설명했다면 비웃음만 살 게 분명했다.

따라서 흐루쇼프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그러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실제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 후 비슷한 비판이 결코 나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아주 말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또 그럴 수도 없다. 단지 가려서 하란 말이다.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야 하고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조직의 리더일수록 더욱 그렇다. 말은 아낄 수록 값이 나간다.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영국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의 말도 다른 뜻이 아니다. 피천득 선생이 제대로 설명한다. 수필집 『인연』에서다.

“침묵은 말의 준비기간이요, 쉬는 기간이요, 바보들이 체면을 유지하는 기간이다. 좋은 말을 하기에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말은 은같이 명료할 수도 있고 납같이 무겁고 구리같이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금강석 같은 말은 있어도 그렇게 찬란한 침묵은 있을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은 말로 이루어지고 말로 깨졌다.”

좋은 말이 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딱 들어맞는 사례가 있다. 중국 전국시대에 위나라 초대 군주인 문후가 전설적인 명의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들 3형제 모두 의술에 정통하다 들었소. 그중에서 누구의 의술이 가장 뛰어나오?”

편작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맏형이 으뜸이고 둘째 형이 다음이며 제가 가장 부족합니다.”

이에 문후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대의 명성이 가장 높은가?”

편작이 대답했다.

“맏형은 환자가 고통을 느끼기 전에 표정과 음색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큰 병을 알고 미리 처치합니다. 발병의 근원을 제거해 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환자는 맏형이 자신의 병을 치료해줬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고통도 없이 수월하게 환자의 생명을 구해줬음에도 명의로 세상에 이름을 내지 못했습니다. 둘째 형은 병이 나타나는 초기에 치료합니다. 아직 병이 깊지 않은 단계에서 치료하므로 그대로 두었다면 자칫 목숨까지 잃을 큰 병으로 진행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자신의 병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치료한 둘째 형도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저는 병세가 아주 위중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병을 치료합니다. 그래서 제가 맥을 짚고 침을 놓고 독한 약을 쓰며 피를 뽑아내고 큰 수술을 하는 것을 다들 지켜보게 됩니다. 치료 행위를 직접 두 눈으로 보았으므로 다들 제가 큰 병을 고쳤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저의 의술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됐습니다.”

좋은 말이 길 필요는 없다

말 역시 편작 형제의 의술처럼 길지 않아도 힘이 더 강할 수 있다. 의술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예를 더 살펴보자. 말이 짧을수록 두뇌 능력이 더 우수하다는 과학적 증명이다.

미국 뉴욕대 의대 인지신경학센터, 보스턴 프레이밍엄 연구단, 하버드대 인구·발달연구센터, 하버드대 공중보건대 등 10개 기관의 공동연구 결과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보다 뇌가 훨씬 젊고 뇌기능도 더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학회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 8월 17일 자에 실린 공동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인지 회복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경청 습관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인지 회복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사람은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 발병 가능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경청 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뇌의 나이가 최소 4살 젊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뇌의 부피도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의 말을 앞세우기보다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도 더 우수하다는 것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자신이 말을 듣기보다는 말을 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연구 보고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연습을 통해 뇌 기능과 인지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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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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