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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23) 황산에 올라 천하를 생각하다 

 


▎천하 제1경 황산(黃山). 기송(奇松), 괴석(怪石), 운해(雲海)가 어우러진 웅장한 풍광은 “황산을 보지 않았다면 산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말로 유명하다.
자연은 위대하다. 그 속에 몸을 담그면 풀잎 하나, 벌과 나비, 야생화와 나무로 이루어진 숲, 상큼한 공기 등과 대화하며 걷게 된다. 대도시 고층빌딩과 자동차, 인파와 뒤섞여 지내다가 가끔 주변의 산을 오르면 여유로움과 생각할 시간을 선물받고 귀천, 빈부, 상하좌우를 가르지 않고 포용해주는 자연에 감사하게 된다.

학창 시절에는 고속도로나 철도 등 교통이 불편한데도 호기심이 충만하여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들을 등산해보고 싶고, 제일 큰 섬들을 방문해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 2명과 한라산 등반을 했다. 기차를 타고 목포로 가서 배편으로(목선인 황룡호로 기억한다) 제주로 들어가 용두암과 검은 모래로 유명한 삼양해수욕장에 들렀다. 안내자를 따라서 한라산 관음사 코스로 등반을 시작했고 탐라계곡과 개미등을 거쳐 백록담 정상에 올랐다. 이어 영실을 거쳐 중문으로 내려와 중문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제주도 북쪽 바닷가에서 시작해서 한라산 정상을 지나 반대쪽인 남쪽 바다까지 제주도의 남북을 오롯이 걸어서 종단한 것이다. 몹시 지쳐서 순환도로 근처에서 배낭을 멘 채로 벌렁 드러누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시 제주로 와서 그 당시에는 제일 큰 여객선인 도라지호를 타고 밤을 새워 부산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의 만용이었거나 아무것도 몰랐던 나머지 그런 여행길에 나섰던 것 같다. 그러나 돌아보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고 자연의 위대함을 알게 된 계기였다. 물론 대단한 극기 훈련이기도 했다. 그 후 지리산과 설악산도 학창 시절에 등반했다. 아울러 거제도와 강화도를 방문해 섬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 후 시간이 많이 지나서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된 이후로는 매년 유럽의 알프스산맥, 미국의 로키산맥, 일본의 홋카이도 등을 찾아 대자연에서 스키를 타며 ‘생각 여행’의 시간을 갖곤 한다.

중국의 리더들이 모두 올랐던 황산


▎황산의 맑은 계곡 바위 위에 적힌 시 한 수.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에서 빛나고, 맑디맑은 물은 돌 위를 흐르네(明月松間照 泉石上流).”
중국인들은 예부터 산둥성에 있는 타이산(泰山)을 신령한 산으로 여긴다. 중국의 다섯 명산인 오악(五嶽: 타이산, 화산(華山), 헝산(衡山), 헝산(恒山), 쑹산(嵩山) 중 하나인 타이산을 동양 고전을 함께 학습하는 학우들과 올랐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던 타이산은 진시황제를 비롯한 여러 황제가 천하를 평정한 후 하늘과 땅에 왕의 즉위를 고하고, 천하의 태평함에 감사하는 봉선(封禪) 의식을 거행한 곳이다. 걸음이 불편한 소년이 어머니와 함께 큰 향을 들고 소원을 빌기 위해 제를 올리려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일찍이 공자는 타이산에 올라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이는구나(등태산소천하: 登泰山小天下)”라고 했다. 현대적 의미로 의역하면 우리나라 시장에 머물지 말고 글로벌 무대로 나아가 시야와 안목을 크게 넓히라는 뜻이 아닐까? 타이산을 방문한 지 몇 년 후에 ‘황산을 보지 않았다면 산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천하 제1경 황산(黃山)을 찾기도 했다. 안후이성(安徽省)에 있는 황산은 황산사절(黃山四絶: 황산의 4가지 유명한 것)로 유명한 기송(奇松), 괴석(怪石), 운해(雲海), 온천(溫泉)이 있어서 예전부터 수많은 시인묵객이 찾았고 지금도 매년 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명승지다. 황산도 케이블카로 올랐는데 안내자가 황산의 정상 부분은 1년 중 200일 이상 운무에 덮여 있어서 맑은 날씨가 드물다고 했다. 운이 좋게도 구름 사이로 밝은 해가 나타나곤 하는 덕분에 운해가 들고 나는 황산의 중요한 부분을 대략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아주 흥미로운 곳은 몽필생화(夢筆生花)가 있는 지역과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 지역이었다. 몽필생화의 전설이 재미있다. 천재 시인이자 시선인 이백이 황산을 방문해 노스님을 만나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작품을 한 수 남기고 술기운에 붓을 허공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노스님이 떠나가는 이백을 배웅하고 돌아서는 순간, 이백이 던진 붓은 봉우리가 되었고, 봉우리 뾰족한 부분에는 어느덧 소나무가 우뚝 섰다.

이어 서해대협곡을 트래킹하며 환상적인 경치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안개와 구름이 피어오르는 운해 사이로 기암괴석이 나타나 황홀한 장면을 연출을 하고 가끔 맑은 하늘이 얼굴을 내밀어 좋은 날씨에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바위산들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웅장함과 수묵화로 만든 병풍 같은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그 단단한 바위를 뚫고 올라와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들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풍경에 감탄을 연발했다. 낭떠러지 중간에 인공적으로 만든, 허공에 걸린 수많은 계단을 따라서 아찔한 느낌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대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런 절벽 계단을 만들었나 의아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구간도 있었다. 1979년 76세 고령이었던 덩샤오핑 중국 최고지도자가 황산을 등정했을 때, 황산의 절경에 탄복하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아름다운 황산을 볼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 후 21년간 14만여 개 돌계단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지금은 모든 방문객이 이 계단을 걸으며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이 없는 대자연의 장대한 광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찔한 절벽 계단에서 서해대협곡의 기암과 운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덩샤오핑, 장쩌민, 시진핑 등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천하 제1경 황산을 방문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평천하(平天下)와 치국(治國)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황산의 수려한 경치와 거대한 풍광을 접하면서 자연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잘 비유한 동양 고전 『장자』 외편 중 ‘추수편(秋水篇)’의 문구가 생각났다.

“가을이 되면 모든 냇물이 황하로 흘러든다. 그 본줄기는 커서 양편 물가의 거리가 상대편에 있는 소나 말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황하의 신 하백(河佰)이 기뻐하며 천하의 모든 아름다움이 자신에게 갖추어졌다고 생각하고,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가 북해에 도착했다. 그곳에 이르러 동쪽을 바라보았으나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황하의 신은 비로소 그의 얼굴을 돌려 북해의 신을 우러러보고 본인의 편견과 부족함을 탄식하며 말할 때 북해의 신 북해약(北海若)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공간의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에게 얼음에 대해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시간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선비에게 도에 관해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어서는 리더십 절실하다


▎단단한 바위를 뚫고 올라와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들이 기암괴석과 운해와 어우러져 있다.
첫째, 우물 안 개구리에 비유한 ‘공간’ 개념은 이 웅장하고 거대한 황산의 공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한반도라는 공간의 경계를 넘어 이제 글로벌 공간으로 무대를 확장해 나아가야 한다. 거대 시장인 중국과 일본은 당일 출퇴근 거리가 됐고, 미국과 유럽도 10시간 남짓이면 도달한다. 글로벌 시장이라는 공간은 무궁한 자원과 기회를 제공하기에 우리는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리더십으로 더 큰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2021년은 민간인이 공간을 우주로 넓혀가기 시작한 첫해다. 영국의 억만장자인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지난 7월 11일 민간 우주선 ‘유니티22’를 타고 첫 우주관광에 성공했다. 세계 최고 부자이자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뉴셰퍼드’ 로켓을 타고 7월 20일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세운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선 ‘크루 드래건’이 민간인 4명을 태우고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지구 주위를 90분에 한 번씩 선회한 후 귀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9월 30일 공군본부 산하에 ‘우주센터’를 신설했다. 이제 개인, 기업, 국가 모두가 각각의 우물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어 무한한 공간을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

둘째, 여름 벌레에 비유한 ‘시간’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은 학교와 군복무를 마치고 나면 20대 중후반이 된다. 사회에 진출해 30대 초중반이 되어 기업에서 일하면 사원·대리급에 해당한다. 이러다 보니 30대가 됐어도 아직 어린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반면 세계를 둘러보자. 프랑스·덴마크·핀란드·뉴질랜드 등에선 30대 중후반에 국가의 최고 자리인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어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 젊은이들도 ‘신(新)성숙 시대’의 개념을 가져야 한다. 나이라는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 빨리 성숙해야 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청년들은 이미 30대 중후반~40대 초중반이 되면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고 국가의 최고 리더 자리에 오르는 만큼 우리 젊은이들도 빨리 성숙한 자세로 시야를 넓혀 글로벌 경쟁에 임해야 한다. 한편, 사회 전반적으로 은퇴 시기가 앞당겨져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50대 중후반~ 60대 전후 세대는 너무 빨리 늙는 것 같다. ‘잔소리하지 말라, 라떼 이야기 하지 말라’ 등등 너무 일찍 나이 먹은 늙은이 취급을 당하거나 스스로도 노인이라는 생각에 갇혀버리는 것 같다. 100세 시대에 육십이면 너무나 젊은 청춘이다. 내 주변의 60~70대를 보아도 옛날에 비해 너무나 건강하고 왕성하게 활동한다. 그렇다면 ‘신청년 시대’의 개념을 가져야 한다. 노인이 아닌 신청년으로서 멋진 미래를 설계하고 더욱 활동적으로 사회생활에 임해야 한다.

셋째, 가르침에 속박되어 있는 비뚤어진 선비 이야기를 ‘인간’과 연관지어 생각해본다. 최근 포브스코리아가 개최한 ‘오만(Hubris) 포럼’의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첫 연사인 영국 서리대학 유진 새들러 교수는 “오만한 리더는 첫째는 권력, 둘째는 성공에 도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지선 심리학 박사는 오만한 리더를 만나며 ‘저분은 어떻게 저렇게 모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혹시 당신은 오만한 리더입니까? 사람들은 리더에게 오만하다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리더이기 때문이죠.” 포럼 초반에 언급된 멘트에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했다. 오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야망, 겸손이 함께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새들러 교수가 조언했다. 황산이나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같은 대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겸손해진다. 자연과 함께한다면 오만과 겸손, 지식과 같은 인간의 경계를 넘도록 생각의 영역을 확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대자연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품속에 들어가 공간·시간·인간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리더십’과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는 성찰로 생각 여행을 떠난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111호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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