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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23) 

반도체와 실크로드, 네로 황제에서 EUV 스캐너까지 

우리가 오늘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자동차·비행기와 같은 첨단 문명의 이기들도 실크로드로 이어진 유라시아 네크워크를 통한 문명의 교류로 서로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물건과 기술, 재료들이 서로 조합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졌다.

농업혁명, 도시혁명, 대항해시대, 산업혁명을 거치며 전신·전화·TV·컴퓨터·스마트폰이 출현한 것도 서로 다른 지역의 문명과 문물들이 수만 년간 교류되면서 만들어져왔고, 현대로 올수록 더 큰 규모의 전 지구적 교류가 이루어지며 그 변화의 속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인간의 영생을 위해 신선들이 만들었던 불로장생의 영약을 개발하려 했던 노력들과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들어내려 했던 노력들이 현대문명의 첨단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밑바탕이 됐다.

최첨단 대륙 간 미사일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2세기 무렵부터 도교의 도사들이 불로장생을 위해서 개발한 연단술에 이른다. 이때 개발된 화약은 북송 때부터 무기로 쓰이기 시작하다가 몽골제국이 중국의 화약과 무슬림의 화염방사기, 유럽의 종 주조기술을 합쳐서 공성무기 대포를 개발하는 데 쓰였다. 대포는 이후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쓰던 조총, 대항해시대의 함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다가 현대에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로 발전했다. 우리가 즐기는 설탕의 단맛에도 전 지구적 교류의 역사가 담겨 있다. 설탕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수입된 것은 5세기경으로, 이때부터 인도의 설탕은 갈래의 길을 통해 서쪽으로는 페르시아, 동쪽으로는 중국으로 전파됐다. 이렇게 설탕과 같은 생필품뿐 아니라 현대의 첨단 과학기술과 고매한 사상들도 실크로드의 문명교류를 통해 만들어지고 발전해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TV, 라디오, 오디오 같은 전자제품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도체보다는 진공관을 사용했는데 40~50대만 해도 전자제품 내부에 쓰인 진공관과 복잡한 회로들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앱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반도체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부피가 크고 전기를 많이 쓰는 진공관을 대체했고, 연산, 저장, 통신 성능도 획기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1947년 벨연구소의 쇼클리는 실리콘으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Texas Instrument가 1961년부터 양산을 시작하면서 인텔, 삼성, TSMC 같은 초대형 반도체 기업들이 탄생했다. 고성능화된 반도체를 기반으로 대용량 정보 처리가 가능해지자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초대형 IT 서비스 기업들이 출현하면서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필자가 여러 산업 분야에서 사업을 해봤지만 반도체와 IT만큼 급변하는 산업은 없었다.

21세기 인류문명에서 가장 첨단을 달리며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가 반도체 기술이다. 물리·화학·수학·전기전자·재료 등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과학기술이 손톱보다 작은 반도체 하나에 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도체는 1947년 벨연구소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발명됐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닥불로 토기를 구웠던 신석기 시대. / 사진:위키피디아
DRAM 메모리 반도체는 넉 달 동안 수백 가지 장비로 수백 단계의 복잡한 물리적·화학적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수백만 개 회사가 반도체 설계, 제조, 장비, 소재 등 수백만 개의 특화된 기술로 세계적 공급망을 만들어 협력하며 최첨단 반도체가 완성된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반도체 장비 장사꾼의 눈으로 이 복잡한 반도체 공정을 보면 인류가 모닥불부터 시작해서 플라스마까지 유리, 도자기, 야금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최첨단 반도체 기술까지 개발해온 수천 년의 먼 길이 보인다. 수천, 수만 년간 유라시아의 무역으로 촉발된 집단지성으로 발전한 소재는 인류의 역사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로 진화하며 산업혁명에서 현대 첨단문명까지 발전하게 이끈 혁신 동력이 됐다. 최첨단 반도체 기술인 3나노, 2나노, 1나노 같은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 분의 일에 불과한 미세 선폭의 반도체 기술도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유라시아 구석구석에서 수만 년간 개발된 기술과 상품을 장사꾼들이 퍼 나르면서 융합되고 발전한 것이다. 20년 동안 반도체 장비를 사고파는 장사를 하면서 반도체 장비 기술을 들여다보면, 1947년 벨연구소의 쇼클리가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기 전에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6만 년간 쌓아 올린 과학기술의 총합이 반도체의 기반 기술, 혁신 기술이 됐다. 쇼클리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호모사피엔스의 집단지성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것이다.”

600도의 모닥불로 토기를 굽던 신석기시대 사람들, 기원전 2000년경 히타이트의 대장장이들, 중국 상나라 시대의 도자기공들, 로마제국의 유리기술자들, 낙타 등에 최신 문물과 사상, 과학기술을 실어 나른 소그드 상인들, 중국·중동·이집트·유럽의 연금술사들, 르네상스의 지적 기반을 만든 이슬람 사원의 학자들, 유라시아의 과학기술을 통합한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서구의 장인, 과학자와 엔지니어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선도한 거인들은 인류사의 주역으로 떠올랐고, 장사꾼들은 이 기술들을 상품에 실어 나르며 유라시아 구석구석에서 새로운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수만 년간 축적된 호모사피엔스의 집단지성이 오늘날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어온 과정을 몇 가지 들여다보자.

반도체를 만들 때는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올리는 공정이 많다. 인류가 불을 다루기 시작한 후 도자기와 청동기, 강철을 만들면서 가마 온도를 올리는 기술 개발은 기나긴 여정이었다. 8000년 전 신석기 시대 메소포타미아에서 600도의 모닥불로 토기를 굽기 시작해서, 기원전 3500년에 950도까지 온도를 끌어올리면서 청동을 녹일 수 있게 되어 청동기 시대가 열렸다. 기원전 2000년쯤 지금 터키 지역의 히타이트가 숯과 풀무를 이용해 철의 녹는점인 1560도까지 온도를 올리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철기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유라시아의 반대편인 중국 대륙의 은나라, 상나라에서는 1000도 이상의 고온이 필요한 최초의 자기, 원시청자를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신석기시대에는 모닥불을 써서 600~700도에서 빗살무늬토기를 굽기 시작했다.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울 때 800~1000도에서 구운 것을 도기, 1100~1400도에서 구운 것을 자기라 하고, 토기, 도기, 자기를 모두 합쳐서 도자기라 부른다. 모닥불의 600도에서 가마를 사용해 1000도까지 올리는 데 1만 년이 걸렸고, 1000도에서 1100도까지 올리는 데 600년이 걸렸다. 1200도에서 1400도까지 올리는 데 다시 500년이 걸렸고, 1400도에서 현대의 초고온까지 올리는 데 다시 500년까지 걸렸다.

11세기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는 1만2000㎞ 떨어진 중국 한나라에서 수출한 비단옷을 걸치고 검투사들의 경기를 관람했다. 그때 네로 황제는 에메랄드로 정교하게 만든 한 알짜리 렌즈로 검투사의 경기를 확대해서 보았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유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장신구를 만드는 수준이었는데, 유리 장신구와 유리 가공기술은 바닷길을 통해 신라까지 전해졌다.


▎네로 황제의 흉상, / 사진:위키피디아
16~17세기 네덜란드 유대인 공동체는 보석무역을 독점하면서 독보적인 보석·유리 연마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안경직공도 많았는데 이들은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이용해 망원경과 현미경을 만들어 근대 과학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네덜란드의 안경은 1592년 임진왜란 때 한반도에 들어왔고, 곧이어 17세기에는 비단옷을 입은 청나라 강희제가 콧등에 안경을 걸쳤다. 광학기술이 한 단계 더 발전하여 17세기 말 독일에서 개발된 카메라는 19세기 후반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47년 개발된 반도체(트랜지스터)로 미세화되는 회로 패턴을 그리기 위해서 점점 더 고가의 카메라(스테퍼, 스캐너)가 개발되었고 요즘은 온갖 기술이 집약된 2000억원짜리 최첨단 반도체 장비인 EUV 스캐너가 팔리고 있다.

네로 황제가 검투사 경기 관람용으로 사용했던 에메랄드 렌즈가 전 인류적 문명교류를 통하여 수많은 기술이 융합되면서 2000억짜리 최첨단 EUV 스캐너로 발전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ASML이라는 회사에서 EUV 스캐너는 5나노, 3나노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장비로, 연간 50대 정도밖에 만들어내지 못한다. TSMC와 삼성, 인텔이 서로 사고 싶어서 줄을 서도 못 사서 미래 반도체 패권이 “ASML로부터 EUV 스캐너 장비를 몇 대를 살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모래로 유리를 만드는 기술은 긴 여정을 거쳐 1947년에는 트랜지스터 반도체 발명으로 이어졌다. 지난 70여 년간 반도체 만드는 기술과 공급망은 인류의 온갖 첨단 기술을 소화하며 고도로 복잡해졌다. 반도체가 더 중요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대만, 미국 등 세 나라에 불과하다. 최첨단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나라도 미국, 일본, 네덜란드뿐이다. 이 복잡한 반도체 기술은 또 한 번 인류의 역사를 바꾸고 있으며, 특히 한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인류에게는 언제나 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이 있었다. 180만 년 전 남아프리카 동굴에서는 모닥불이 첨단 기술이었고, 기원전 1200년경 히타이트(지금의 터키)는 철기를 사용하며 근동을 지배했다. 지금은 황당해 보이는, ‘납’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도 현대 과학, 특히 화학의 기초를 이루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연금술사들은 원소기호를 탄생시켰고, 각종 실험방법과 실험기구, 과학적인 해석 방법을 고안해냈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은 인류의 집단지성을 발현해 과학기술을 급속히 발전시켜 지금은 유전자를 조작하고 원자보다 작은 단위를 다루는 기술까지 발전해왔다. 어떤 시대나 기술의 새로운 가치를 먼저 발견하고 선점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지배했다. 그런 점에서 불, 금속, 마구, 유리, 반도체와 같은 혁신 기술은 인류의 역사를 선도해왔다.

새로운 기술의 기원과 원조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열린 마음으로 그 첨단기술에 과감히 투자하던 문명이 세상을 지배했지, 그 기술을 발견한 사람들이 선도하지는 않았다. 기원전 18세기 근동에서 가장 먼저 전차를 도입한 히타이트가 근동을 제패했듯이 말이다.

한반도가 21세기에 주목받고 있다. [오징어게임], [기생충], BTS 같은 한류 콘텐트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조선 기술은 세상의 진화를 선도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원조 논쟁을 벌인다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에서 인류가 장사꾼들이 퍼 나른 상품과 기술로 축적해온 기술과 문화를 누가 포용적으로 수용하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지배할 것이다.

※ 김정웅 대표는…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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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호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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