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빈 신년음악회의 주역, 왈츠 

매년 1월 1일, 빈 음악협회 황금홀에서는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가 열린다. 이 음악회는 세계 90여 개국에 실황 중계되고 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 음악회로 열렸다.

▎빈 음악협회 황금홀. / 사진:위키피디아
빈 신년음악회는 매년 1월 1일 오전 11시 15분에 열리는 음악회를 가리키지만, 사실상 덜 알려진 다른 두 음악회와 함께하는 패키지이다. 그 하나는 12월 31일에 열리는 ‘신년 이브 콘서트(New Year’s Eve Concert)’이고, 다른 하나는 1월 1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신년음악회 사전 연주회(Preview Performance)’다. 엄청난 인기를 끄는 이 세 음악회 표를 구하는 일이 오래전부터 매우 어려워졌고, 현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온라인 구매만 허용되고 있다. 신년음악회 표는 35유로(약 4만7000원)에서 1200유로(약 160만원)에 이르며, 다른 두 음악회 표도 꽤 비싸다. 세 음악회의 레퍼토리는 같다. 다만 연주회 시간이 15분에 불과한 ‘사전 연주회’는 모든 레퍼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주하지는 않는다. 비싼 표는 대체로 음악회가 열리기 3년 전에 전부 예약된다고 한다. 2022년 신년음악회 지휘는 새해에 82세가 되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맡기로 되어 있는데, 이 음악회가 무관중일지는 주최 측에서 아직 언급하지 않고 있다. 유대계인 바렌보임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현재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복수 국적자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존경스러운 거장이다.

많은 이에게 일종의 새해맞이 연례행사인 이 음악회는 독일 나치당의 선전 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지원을 받아 1939년에 시작되었다. 1939년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음악회에서는 슈트라우스 일가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왈츠와 폴카, 행진곡 등이 많이 연주된다. 이 작곡가들은 나치에 의해 위대한 게르만족 작곡가로 추앙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치는 그들의 후손들을 비난했고 그들의 권리를 제약했다.

우울한 관중을 달래다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황금홀과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 사진: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슈트라우스 가문의 작곡가 중 으뜸으로 평가된다. 1825년 출생한 그가 1872년 미국 뉴욕에 초대되었을 때 오케스트라 단원 1087명과 가수 2만 명이 그의 지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을 연습시키는 일도 엄청나서, 그는 보조 지휘자를 20명이나 구해야 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이름을 알린 걸작들은 조국 오스트리아에서 작곡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왈츠’가 이름과 달리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시대에 작곡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866년, 중부유럽의 강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국은 베를린 기반 신흥 강국 프로이센과 치른 전쟁에서 패배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자존심이 상했고, 그들의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빈의 남성 합창단은 쾌활하면서도 애국적인 음악을 공연하기로 했다. 작곡 의뢰를 받은 슈트라우스 2세는 같은 해에 합창곡의 작곡을 마쳤고, 1867년 2월에는 그 초연이 이루어졌다. 이 곡은 이후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어 합창곡보다 더 인기를 끌었다. 슈트라우스 2세는 이후에도 오스트리아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능력을 발휘했다. 이를테면 1873년 4월 8일 금요일에 빈 증권거래소에서 주가가 폭락했고, 며칠 후 증권거래소가 폐쇄됐다. 1873년부터 1896년까지 유럽은 대불황(Great Depression) 혹은 장기불황(Long Depression)이라고 불리는 시기를 보내야 했다. 슈트라우스 2세는 ‘웃음의 아리아’와 경쾌한 ‘서곡’ 등으로 유명한 오페라 [박쥐](Die Fledermaus)를 이 무렵에 작곡해 충격을 받은 빈 시민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4분의 3박자 리듬인 왈츠는 슈트라우스 이전에도 빈의 상징이었다. 나폴레옹을 패망에 이르게 한 유럽의 지배자들은 1814년 빈에 모여 전후의 국제질서를 모색했다. ‘빈 회의(Congress of Wien)’로 알려진 유명한 국제회의에서 다루어야 할 사안이 산적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해 회의에서 의견을 조율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회의를 주도한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는 이 상황에서 파티를 자주 열었다. 수많은 군주와 귀족, 고위 외교관이 왈츠에 맞춰 춤추고 프랑스산 포도주를 마셨다. 오스트리아의 한 귀족은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프랑스혁명이 뒤흔들었던 구체제, 즉 왕과 황제, 귀족, 성직자가 지배했던 낡은 체제는 노련한 메테르니히의 수완 덕분에 다시 힘을 얻었다. 유럽은 억압과 검열, 탄압이 있던 과거로 돌아갔고, 공화정과 자유를 꿈꿨던 몇몇 불온한 예술가는 현실에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낭만주의 예술세계로 이동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도 잠시 불온한 세계를 꿈꾸었던 것 같다. 그는 가곡집 [겨울 나그네] 중 ‘봄의 꿈’에서 차가운 현실과 허망한 꿈의 세계를 대조했다. “나 꿈속에서 오색 만개한 꽃을 보았네. 저 화창한 오월처럼. 나 꿈속에서 푸른 들판 잔디를 보았네. 새들이 지저귀는.” 짧은 전주가 끝난 후 시작되는 첫 부분의 이 가사는 적당히 경쾌하고 생기 있는 장조 선율이다. 가사가 알려주는 바대로, 꿈같은 달콤함의 세계다. 이 부분이 끝나면 가수는 돌연 외침과도 같은 거친 선율을 빠르게 내뱉는다. 가수의 외침과 피아노가 연주하는 짤막하면서도 강렬한 불협화음이 교차한다. 낮은 음역의 트레몰로를 연주함으로써 피아노는 음악을 긴박하게 몰아간다. 그 끝은 슬픈 단조다. “닭이 울어 잠에서 깨어 보니 어둡고 추운 밤. 지붕 위의 까마귀 소리쳐 울고 있네.” 이 부분의 가사다. 달콤한 꿈이 깨진 후의 차가운 현실을 표현했다. 달콤한 꿈은 열광적 혁명이 약속했던 시민적 자유의 세계였을까. 차가운 현실은 복고주의자 메테르니히 시대일까. 세 번째 부분에서 음악은 매우 느리고 체념하는 분위기로 바뀐다. 절뚝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피아노에 의해 불편한 세계가 그려진다. “유리창에 꽃잎을 그린 건 누구였을까? 그대는 한겨울 품은 꽃의 꿈을 비웃었나?” 이것은 당대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면한 환멸과 냉소의 음악이다(베로니카 베치, 『음악과 권력』, 노승림 역, 컬처북스, 2009).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 가곡은 왈츠를 떠올리게 하는 리듬을 반주로 하는, 꿈같은 달콤함의 세계로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슈베르트는 왈츠를 많이 작곡하지 않았다. 위에서 다룬 가곡과 [미완성 교향곡] 1악장의 제2주제는 왈츠를 떠올리게 하는 드문 경우다. 누군가 이 음악들에 맞춰 춤을 춘다면 무척 슬픈 춤이 될 것이다. 소박한 그는 화려한 왈츠보다 시골스러운 렌틀러(Ländler)를 선호했다. 렌틀러는 18세기 말경에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독일 남부 등에서 유행했던 4분의 3박자의 민속 춤곡이었다. 시골 축제에서 민속의상을 입고 땅(Land) 위에서 추는 건강한 춤곡 렌틀러가 연미복을 입고 궁정이나 고급 살롱에서 추는 우아한 왈츠의 원형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슈베르트 이후 브루크너와 말러 같은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은 렌틀러와 왈츠를 추상적 교향곡의 세계에 접목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도나우강은 독일어이고, 영어로는 다뉴브강이라고 한다. 이 강은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를 지나 흑해로 빠져나간다. 사진은 이 강가에 세워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 사진: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추상적 교향곡에서 렌틀러와 왈츠는 현실을 상징한다. 대조적으로, 춤곡으로서 왈츠는 많은 경우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이들이 기대는 음악이었다. “왈츠는 우리의 오감을 달콤한 황홀경으로 사로잡는 현대적 주술이다. 슈트라우스 2세가 자신의 춤곡을 지휘하는 방식은 아프리카적이다. 그의 왈츠가 내뿜는 뇌우가 작렬할 때, 그의 팔다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악마가 사방에 나타난다. 이 음험한 사람의 손에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힘이 쥐어진 것이다. 왈츠는 검열을 피할 수 있고 음악은 사유의 경로를 통하지 않고 우리의 감정을 직접 자극한다. 연인들은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며 왈츠를 추고 욕망을 분출한다. 하느님도 그들을 막지 못한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아들 하인리히 슈니츨러가 한 말이다. 세기가 바뀔 무렵, 꿈의 도시 수도 빈은 이러한 왈츠와 함께 가벼운 오페라인 오페레타로도 유명했다. 오페레타 [유쾌한 과부]의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는 유명한 [금과 은의 왈츠]도 작곡했다.

전기, 자동차, 타자기 등 현대 문물의 사용을 금지하며 등 유 램프로 거리를 밝혔던 고풍스러웠던 도시 빈은 제국과 황실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수도였다. 제국과 황실(Kaiserlich-Koniglich)의 나라는 ‘카카니아(Kakania)’로 줄여서 불리기도 했는데, 이 독일 조어에는 ‘똥의 나라’라는 조롱의 뜻도 있었다. 왈츠의 나라를 똥의 나라라고 조롱했던 이들은 바로 그 나라의 실험적 모더니스트였다. 쇤베르크,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같은 이들에게 빈은 작고 쾌적하지 못한 집에서 나와 화려한 카페에서 쉬는 노동자들로 득시글대는 도시였다. 오스트리아는 오늘날 1인당 GDP 5만 달러가 넘는 부국이다. 빈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였는데,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12위로 하락했다고 한다. 19세기 빈 사람들의 춤에 대한 열정을 병리적인 것으로 보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는데, 다른 대안이 없다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왈츠와 같은 음악을 즐기는 것도 현명한 삶일 것이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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