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맨해튼에서 처음 만나 내게 위스키가 함께하는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열어준 아란 위스키. 2025년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며 인생 첫 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 아란섬으로 떠났다.
▎아란 증류소가 자리한 로크란자의 작은 항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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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의 어느 날, 나는 해마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리는 회사의 신년 킥오프 행사에 참석했다. 미팅을 마치고는 조금 여유 있게 귀국하느라 뉴욕에서 환승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뉴욕에서의 3일이라는 선물 같은 휴가를 얻었고, 혼자서 신나게 맨해튼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생활을 엿보는 기회를 만들었다.사실 이때만 해도 나는 위스키에 대해서 그저 보통사람의 상식보다는 조금 더 아는 수준이라, 출장을 갈때면 면세점에서 발렌타인 17년을 사거나 조금 과용하면 기내에서 조니워커 블루나 로열살루트 21년을 쳐다보는 정도였다. 솔직히 싱글 몰트위스키가 뭔지, 스코틀랜드엔 어떤 위스키가 있는지 잘 몰랐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처럼 그 당시 인기 있던 와인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 뉴욕 여행을 다녀온 이후 내 위스키 인생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이때 만난 위스키 덕분에 나는 앞으로 열리게 될 새로운 위스키의 블루오션을 상상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서 10년, 20년 계획을 세우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의 인생 로드맵을 만들어갔다. 내가 지금부터 좋아하는 위스키를 즐기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수십 년이 지난 후 변화된 환경에서 나는 어떤 경쟁력을 가지게 될까? 분명히 전통적으로 위스키를 업으로 삼아온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를 바라보고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때가 되어서도 많지 않을 것이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내가 그동안 IT업계에서 배우고 익힌 콘텐트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능력은 대상에 무관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니, 한 20년쯤 후에 내가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해야 할 때 나의 큰 무기가 되어 ‘덕업일치’라는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내 첫 번째 위스키인 아란을 만났다.
운명처럼 시작된 새로운 위스키 인생
▎내 인생의 첫 번째 위스키, 나폴레옹 코냑 캐스크 숙성 아란 위스키. 그 맛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진한 초콜릿 향기만은 뚜렷하다. 유일하게 내가 지금껏 보관하는 위스키의 빈 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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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왔으니 뉴욕을 제대로 즐겨보고자 나는 맨해튼 한가운데에 숙소를 잡고, 매일같이 지하철로 오가며 뉴요커들과 같은 공간을 누비고 있었다. 하루는 호텔 근처를 산책하다가 언뜻 보아도 꽤 내공이 있어 보이는 파크 애비뉴 리커숍을 발견했다.맨해튼 거리 중에는 숫자 대신 이름으로 불리는 거리가 몇 개 있다. 이 파크 애비뉴는 원래 4번가인데 철로가 있던 자리를 공원으로 조성해 파크 애비뉴가 되었고, 뉴욕에서 가장 럭셔리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후 부동산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파크 애비뉴와 3번가 사이엔 렉싱턴 애비뉴가 생겼고, 파크 애비뉴와 5번가 사이엔 매디슨 애비뉴가 생겼다. 특히 매디슨 애비뉴는 영화산업의 할리우드처럼 광고산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곳이다. 이렇게 비싼 땅을 제대로 활용하고자 두 거리를 더 만들었기에 이곳은 맨해튼의 다른 거리와 비교하면 폭이 딱 절반이다. 또 렉싱턴과 매디슨 애비뉴 일대는 원래 파크 애비뉴 지역이라 종종 파크 애비뉴란 명칭도 쓴다. 그런 연유로 이 파크 애비뉴 리커숍은 매디슨 애비뉴에 있었고, 금주법이 폐지된 1933년에 개업했으니 꽤 유서 깊은 곳이다.처음으로 제대로 된 리커숍에서 다양한 위스키의 라인업을 보고 놀라기도 하며,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것에 신이 나서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촌스럽지만 강렬한 디자인의 라벨을 붙인 위스키 하나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리고 이것이 신생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에서 만들어진 아란 위스키이고 그중에서도 몇 병밖에 없는, 귀한 싱글캐스크 위스키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웬만한 고숙성 위스키보다 비싼 이름 모를 위스키였지만, 이 아란 위스키는 운명처럼 호텔로 돌아가는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바로 내 새로운 위스키 인생의 시작이었다.
추억을 담아 떠난 아란섬으로의 여정
▎위스키의 숙성 향으로 가득한 창고. 증류소장 스튜어트의 배려로 원하는 위스키를 종류별로 마음껏 시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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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5년 후 나는 그 위스키의 추억과 함께 페리를 타고 아란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란섬은 스코틀랜드 본토와 스프링뱅크 증류소가 있는 킨타이어반도 사이의 내해에 있는 작은 섬이다. 글래스고에서 쉽게 갈 수 있어 그 지역 사람들이 주말에 낚시나 골프를 하기 위해 즐겨 찾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앞서 글래스고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스프링뱅크를 먼저 찾았기에, 그곳에서의 내 첫 아란행은 조금 험난했다.아침 일찍부터 출발 예정지로 명시된 크로닉 항구에서 하염없이 페리를 기다렸다. 무인 대합실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풍랑은 점점 거세졌지만 다른 승객들도 몇 명 있어 뭐 큰일이야 있겠냐 싶었다. 그런데 대합실에서 한참 떨어진 주차장 전광판에 풍랑이 거세지면 페리가 타버트에서 출항할 수도 있다는 안내문이 떴다. 분명히 그 문장엔 ‘May’라고 적혀 있어 확인차 페리회사로 전화를 하니 전화가 안 된다. 로밍폰이라 현지 통화가 안 되어 급한 대로 공중전화 부스로 가보니 수화기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그래서 같이 배를 기다리던 현지인에게 부탁해 택시를 불러 타버트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뒤늦은 점심으로 숙소에서 직접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으며 또다시 페리를 기다렸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전화가 터져 페리회사에 확인하니 지금은 다시 배가 크로닉으로 들어오니 당장 크로닉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급히 택시를 다시 불렀는데 아까 그 택시다.
한참을 달려 크로닉에 도착하니 풍랑이 아침보다 더 거세 많이 불안했다. 잠시 후 크로닉 선착장에서 페리회사의 직원이 드디어 나타나 미안하지만 다시 타버트로 가라고 한다. 오늘 예정된 페리는 총 7편인데 모두 취소되고, 단 한 편만 타버트에서 출항한다고 했다. 나도 택시 기사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제는 친해져 이름도 알게 된 캘빈은 세 번째 택시비는 안 받겠단다. 나는 그렇게 풍랑 덕분에 새로운 스코틀랜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30분이면 도착했을, 바로 눈앞에 보이는 아란섬을 하루 종일 기다린 후 타버트에서 3시간이나 걸려 결국 저녁에 도착했다. 당일 오후에 가보려고 호기롭게 예약해둔 아란 위스키와의 첫 만남을 고스란히 날려버리게 되었다. 사정을 설명하니 풍랑이 자주 이는 바다라 증류소에서도 흔쾌히 예약을 취소하고 환불해주었다. 로밍해 간 전화도 터지지 않아 뒤늦게 방문 예약을 취소했지만, 꼬치꼬치 따지지 않는 대인배스러움이 다음 날 아란과의 만남에 큰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아늑한 분지에 자리 잡은 깔끔한 증류소 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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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 증류소와의 첫 만남
▎커다란 증류기가 반겨주는 아란 증류소의 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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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에서 맞는 첫 아침이자 떠나야 하는 마지막 아침, 가지고 간 봉지 라면으로 ‘뽀글이’를 해 먹었다.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자라면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뽀글이의 맛은 30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더불어 나의 아란 위스키도 뉴욕에서의 첫 만남처럼 여전하기를 바라며 숙소를 나섰다. 2㎞ 남짓한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아늑한 분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증류소의 풍광이 점점 눈에 가득 차기 시작했고 내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다른 증류소들처럼 우중충하고 낡은 모습이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잘 정돈된 외관은 깔끔한 아란 위스키 맛의 스펙트럼과도 일치해 보였다.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수염이 덥수룩한 털보 직원이 한 명 나왔다. 깔끔한 인상이었지만 뭔가 더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 그는 스튜어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사투리도 심하지 않아 아란을 재미있게 소개해주었고, 어제 겪은 풍랑을 얘기해주니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러고는 아란 위스키에 얽힌 추억을 얘기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아란 위스키에 대한 내 팬심에 감동한 스튜어트는 앞장서서 어제 풍랑 때문에 보지 못한 아란 위스키의 가장 은밀한 창고를 활짝 열어주었다.위스키의 숙성 향으로 가득한 그 창고는 마치 디즈니랜드에 온 듯한 신비로움을 자아냈고, 이 기쁨은 스튜어트가 나를 몇몇 시음용 캐스크 앞으로 인도했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비록 아침이지만 스튜어트의 배려 덕분에 원하는 위스키를 종류별로 마음껏 시음했고, 스튜어트도 내 핑계를 대며 꽤 많이 마셨다. 알고 보니 그는 이 증류소의 소장이어서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어쩐지 나와 함께 다니며 가는 곳마다 직원들과 즐겁게 인사하고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긴 했다.
초창기 아란 위스키의 맛과 여러 가지 새로운 도전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시음 후에 아란 위스키의 초창기 실험적인 시도가 이제는 거의 완성형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다른 스카치에 비해서 이렇다 할 근사한 스토리도 없고, 외딴섬에 있는 작은 신생 증류소로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더욱 새로운 것을 완성도 있게 만드는 것일 뿐, 다른 왕도는 없었다.
▎아란에 온 나를 환영해주는 스튜어트. 아침부터 호기롭게 숙성 창고의 문을 열어준 그는 아란 증류소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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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바로 내가 뉴욕에서 처음 마셨던 아란 위스키가 그들 역사의 첫 번째 시도 중 하나였다. 나와 본격적인 위스키 인생의 시작을 함께한 나폴레옹 코냑 캐스크에서 숙성한 첫 번째 아란 위스키.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이제는 인정받는 많은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섬 남쪽에 증류소를 하나 더 지어 피트위스키만 별도로 생산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이를 포함하여 또 다른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부는 새로이 정규 라인업에 추가되고 또 그만큼 기존 위스키가 빠지게 된다. 이처럼 인생도 세상도 위스키도 계속 순환한다. 멋지지 않은가? 그렇게 아란과 아란을 만드는 사람들을 언제나 응원한다.내 오랜 친구, 아일라섬에 있는 짐 맥켈만의 집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진 석판이 있다.“오늘의 비가 내일의 위스키가 된다.(Today’s rain is Tomorrow’s Whisky). ”15년 전 아란과 함께 시작한 나의 위스키 인생, 내일의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2025년의 새로운 태양을 맞이한다.
※ 박병진 - 30여 년간 IBM, SAP, SK 등 국내 및 외국계 기업,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망라하여 임원 및 CEO로서 대한민국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해왔다. 포브스와 동아일보에 ‘박병진의 위스키 기행’, ‘박병진의 광화문살롱’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동아일보사의 최고위과정인 ‘광화문 살롱’의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현재 요리, 여행 사람들의 이야기를 펴내는 출판사 ‘북스 레브쿠헨’ 대표와 어린이 창의력 플랫폼인 ‘테일트리 코리아’의 대표이사로서 유쾌한 N잡러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