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노벨상 수상자들 덕분에 뉴스거리가 생긴다. 수상자들도 대단하지만,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트 노벨도 대단하며 그런 노벨을 키우고 살게 했던 스웨덴도 좋은 나라로 보인다.
▎스웨덴 한림원을 설립한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1746~1792)의 초상. / 사진: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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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가운데에 있다. 스웨덴 서쪽에는 노르웨이가, 동쪽에는 핀란드가 있다. 입헌군주국 스웨덴에는 군림하지 않는 왕이 있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이지만 세상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러시아와 비교하면 작다. 그런 스웨덴이 한때 러시아를 공격할 정도로 강했다고 한다. 서기 1240년, 러시아 북서부에 있는 네바강 쪽으로 스웨덴 군대가 러시아를 공격했다. 노르웨이, 핀란드와 연합했던 러시아 군대는 스웨덴 침략자들을 상대로 싸워 승리했다. 러시아에 승리를 안겨준 이가 알렉산더 네프스키(Alexander Nevsky) 왕자였는데, 러시아 역사에서 이 승리와 이 왕자는 매우 중요하게 평가된다. 20세기 러시아 작곡가인 프로코피예프는 웅장한 칸타타 [알렉산더 네프스키]를 작곡했고, 이 칸타타의 두 번째 곡 ‘알렉산더 네프스키의 노래’는 도끼와 곡괭이 등을 든 농민들을 이끌고 스웨덴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던 왕자에 관해 노래한다.그런데 이런 스웨덴의 러시아 침략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한다. 네프스키 이야기를 주로 하는 쪽은 러시아인들이다. 스웨덴인들은 억울하게 침략자 누명을 쓴 것일까. 오늘날의 스웨덴 영토에서 살았던 이들이 역사에서 침략자로 묘사된 사례들은 더 있다. 우선 오늘날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반달리즘의 어원인 반달족(Vandals)의 이야기가 있다. 반달족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 스웨덴 남부에서 살다가 폴란드 동부로 이주했다. 헝가리와 루마니아에 진출했던 반달족은 400년쯤 서진해 프랑스를 짓밟았고, 약탈을 일삼다가 포르투갈에 왕국을 세웠다. 스페인에서 아프리카로 건너갔던 이들은 훔친 함대로 지중해를 누비면서 항구도시들을 약탈하다가 오늘날의 튀니지 일대인 카르타고에 왕국을 세웠고, 455년에는 로마에 난입해 여러 유적을 파괴하고 약탈했다. 문화재나 예술을 파괴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보름간 있었던 로마 유적 파괴 사건에서 유래했다.반달족 이야기는 중세 스웨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낳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일 뿐이다. 반달족이 육지에서 소란을 피웠다면, 바이킹은 바다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이들로 유명하다. 바이킹은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사람들로부터 충원되었고 반달족보다 더 오랫동안 맹위를 떨쳤다. 반달족의 문화와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이킹은 그들 고유의 신화로부터 발생한 다양한 콘텐트를 남겼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바이킹의 콘텐트를 사용했고, 오늘날의 판타지물에 자주 등장하는 오크, 드워프, 엘프, 토르 같은 캐릭터들은 모두 북유럽 바이킹 신화에도 등장했다.18세기 후반, 계몽 군주인 구스타프 3세(Gustav III, 1746~1792)는 당대 다른 나라들의 계몽 군주들처럼 고문과 사형을 제한했고, 언론 자유를 보장했으며 국방력을 강화했다. 연극과 예술, 문학을 후원했던 왕은 1786년,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인 스웨덴 한림원(Swedish Academy)을 설립했다. 오늘날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위원회를 겸한다.구스타프 3세는 1772년 8월에 쿠데타를 벌여 이전까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의회 릭스다그(Riksdag)를 무력화했다. 입헌군주국이었던 스웨덴을 전제 왕정으로 바꾸었던 이 정변을 위해 왕은 신뢰하는 장교들에게 비밀 지시를 내렸고, 이튿날 10시에 장교 200여 명이 그를 따랐다. 정변을 통해 기득권을 누려왔고 국민으로부터 매국노로 여겨졌던 귀족들 중 일부가 죽었다. 왕에게 복수를 다짐했던 이들이 생겨났고, 결국 왕은 20년 뒤에 그들에 의해 암살됐다.암살 장소는 스톡홀름에 있는 왕립 스웨덴 오페라 극장(Royal Swedish Opera)이었고, 왕은 그를 따르는 백성, 귀족들과 함께 1792년 3월 16일 자정에 가면무도회를 벌였다. 장교와 귀족 등이 가면을 쓴 채 왕을 기다리고 있다가 저격했다. 범인들은 곧바로 잡혀서 처벌받았고 쓰러졌던 왕은 살아 있다가 심각한 감염으로 사망했는데, 이 감염조차 왕의 적이었던 의사가 일으켰다는 의심을 받았다.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는 1859년에 이 암살 사건을 소재로 오페라로 만들었다.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가 그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나 이 오페라에서나 왕은 피살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왕은 여러 루트로 그 가능성을 인지했고, 특히 어떤 점쟁이가 강력하게 암살 가능성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 점쟁이는 암살 이후 수사를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초능력이 아니라 정보력이 그녀의 예측 능력의 바탕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오페라 속 점쟁이는 미스터리한 존재로서 암살 가능성을 왕에게 알려준다.
테너가 주인공인 오페라가 흔치 않은데 -많은 이탈리아 오페라 속 주인공은 소프라노가 맡는다- 이 오페라에서 왕은 테너이며, 화려한 노래를 여러 곡 부른다. 오페라는 실제 역사의 정치적 배경은 거의 다루지 않으며, 왕을 죽인 이를 기득권 귀족이나 장교가 아닌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설정한다. 푸른 도미노 가장복을 입은 왕의 신하 레나토가 자기 아내와 왕이 부정한 관계라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이나, 그 사실을 알게 된 그가 암살자로 선택되는 과정도 우연적이다. 베르디에게 정치적 이야기를 필연적인 드라마로, 혹은 예술적으로 승화할 능력이 없었던 걸까. 사실 그의 시절에 이 오페라는 스웨덴 왕 이야기가 아니라 보스턴의 총독 이야기로 공연되었다. 19세기 중반의 유럽에서 왕의 피살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이야기였다.
▎1974년 당시의 아바(ABBA). / 사진: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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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3세는 독일에서 온 작곡가들에게 작곡을 의뢰했고, 자신이 오페라의 대본을 쓰는 등 오페라나 고전음악에 관심을 보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스웨덴은 유명한 고전음악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웨덴 음악가는 두 세기 후 팝의 세계에서 등장했다. 그룹 아바(ABBA)는 너무도 유명하다. 아바는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데뷔했고, 2024년 5월, 스웨덴은 아바의 50년 전 영광을 재연했다. 스웨덴이 이 콘테스트를 개최한 데다가, 스웨덴 출신 가수가 또 우승한 것이다. 이로써 스웨덴은 아일랜드와 함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최다 우승국(7회)이 되었다. 유로비전은 유럽 최대 팝 축제이자 가장 큰 규모의 국가 대항 가요제이며 결승전 TV 생중계에는 2억 명 가까운 시청자가 시청한다.1982년 8월, 해체 직전의 아바가 ‘The Day Before You Came’을 싱글로 발매한 몇 달 후 올로프 팔메가 의원 내각제 국가인 스웨덴의 총리로 선출되었다. 구스타프 3세 이후 스칸디나비아 전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정치인은 스웨덴을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바꾸었다. 보수층의 비난을 받았던 팔메는 1986년에 피격당했는데, 현직 총리를 죽인 범인을 스웨덴 경찰은 지금까지 잡지 못했다.전설이 된 팔메는 스웨덴 대중문화에 깊은 영향력을 남겼다. 스티그 라르손 등이 쓴 [밀레니엄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팔린 스릴러/추리소설 연작으로서, 성폭력 문제를 키워드로 삼았다. 이 시리즈 속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리스베트인데, 이것은 팔메 총리 부인의 이름이기도 했다. 여주인공 리스베트의 캐릭터는 스웨덴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 속 삐삐를 모델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좋아했던 작가이다. 한강은 어린 시절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스웨덴은 아바 말고도 훌륭한 대중 가수를 많이 배출했다. 1992년에 데뷔한 에이스 오브 베이스는 아바의 후광을 노렸다고 추측되는 스웨덴 그룹이다. 아바와 다른 스타일의 노래들을 발표했고, 한때 아바를 능가할 것 같다며 기대감을 자극했지만, 아바와 달리 짧은 전성기를 누렸다. 좋은 새해를 기대하며 아바가 부른 ‘해피 뉴 이어’의 가사 일부를 회고하며 글을 마친다.
더 이상의 샴페인도 없고 불꽃놀이도 끝났네요.여기 우리 둘, 나 그리고 당신어찌할 바 모르며 울적한 기분인데그게 파티의 끝이죠.그렇게 아침은 잿빛으로 보이네요.[…] 해피 뉴 이어, 뉴 이어.우리 모두 희망을 품기를,힘써보려는 의지를 갖기를 만일 아니라면,우리 차라리 다 내려놓고 죽는 게 나을지도.당신 그리고 나.※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