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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34)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 

사막에 울려 퍼진 꿈과 도전의 목소리 

정소나 기자
최근 이집트 사막 한가운데에서 한글 축제가 열렸다. 중동이라는 낯선 나라에서도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요즘, 더 많은 한국 작가가 세계 무대에서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열정을 쏟고 있는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를 만났다.

▎중동을 무대로 활약 중인 전시기획자 이규현 대표. 피라미드 앞에서 열린 국제미술제에 처음으로 한국 미술작가의 작품을 선보여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했다.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에서 ‘한류’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국내에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K팝을 필두로 한국의 드라마, 영화 등 문화 콘텐트를 넘어 이제는 한국과 한국인,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졌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집트 국제미술제에 한국 작가를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하게 됐어요.”

지난 2024년 10월 24일부터 11월 16일까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에서 열린 국제미술제 ‘포에버 이즈 나우(Forever Is Now)’에서 한국작가 최초로 강익중 작가의 한글 설치작품 ‘네 개의 신전(Four Temples)’이 초대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전시를 진두지휘한 전시기획자는 이앤아트의 이규현 대표다. 외교관인 남편의 임지를 따라 이집트에 머물고 있는 이 대표는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조선일보에서 신문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미술 담당 기자로 근무했고, 이후 미술 전문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현재는 미술 전시기획과 아티스트들의 홍보·마케팅·출판을 담당하는 아트마케팅 에이전시인 이앤아트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그림쇼핑』, 『안녕하세요? 예술가씨!』, 『미술경매 이야기』 등 미술서적을 포함해 7권이 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박물관·미술관학 미술 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에서 어드밴스드 서티피킷 과정을 마쳤으며, 뉴욕 포드햄 대학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MBA 과정을 밟았다.


▎작품 외벽에는 작가가 ‘아리랑’의 가사를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로 새겨넣고, 작품 내벽에는 전 세계 사람 5016명이 그린 꿈과 소망이 담긴 그림을 매달아 만든 강익중 작가의 ‘네 개의 신전’. / 사진:아르데집트/이앤아트
피라미드 앞에 세계 최초로 한글 신전을 세워 화제를 모았다.

매년 가을,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포에버 이즈 나우’라는 국제미술제가 열린다. 그동안 한국 작가가 한 명도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지난 2023년, 강익중 작가와 함께 참가 제안서를 냈다.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한국 문화, 특히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대단한데 마침 강익중 작가가 그동안 해오던 한글 작업을 전 세계로 확장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화와 화합을 주제로 삼는 작가의 작품 세계가 현재 중동지역 정서에 잘 맞을 것 같았다. 특히 한글을 좋아하는 이집트인들에게 강 작가의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내 예감이 맞았다.

강 작가의 작품은 ‘네 개의 신전’이라는 제목으로, ‘아리랑’ 가사를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로 써서 언어별로 방 4개를 만든 설치작품이었다. 피라미드를 찾은 외국인들은 ‘전 세계는 하나’라는 이 작품의 주제에도 감동을 받았지만, “한글이 외형적으로도 정말 아름답다”며 찬사를 보냈다.

처음부터 피라미드 앞에 한글 신전을 세우겠다는 대단한 야심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이집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미술 전시회에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도한 일이었다. 막상 실현되고 나니 전시 기간 선보인 작품 중 가장 많은 관객이 찾아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특히 세계 유명 인사들이 찾아와 작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국내외 언론과 SNS를 타고 전해지며 크게 화제가 되었다. 운도 따랐던 것 같다.

신문기자 이력이 눈에 띈다.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 조선일보에 입사할 때는 당연히 평생 신문기자를 할 생각이었다. 미술은 그저 젊은 시절의 취미였다. 20대 때 사회부에서 경찰서 출입기자를 했는데 열흘에 한 번 정도 야근 당번이 있었다. 새벽까지 근무하고 이튿날 오후에 출근했는데, 그럴 때면 오전에는 미술 전시를 보러 다녔다. 또 가끔 잡지에 미술 관련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화부로 발령을 받아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며, 미술계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씩 갖게 됐다.

기자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출산과 육아였다. 당시로선 늦은 나이인 30대 중반에 아이를 낳았는데, 1년 365일 깨어 있어야 하고 늘 밤늦게 퇴근하는 신문기자라는 직업이 아이를 키우며 병행하기에는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어차피 평생 기자를 할 수 없다면 더 늦기 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쪽에서 일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처음엔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글도 쓰며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회사를 만들었고 이제는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팀을 꾸려서 일하고 있다. 미술작품 감상이 취미인 만큼 좀 더 미술에 대해 알고 보면 좋을 것 같아 틈틈이 미술 공부를 했는데, 그게 이렇게 직업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저서 『그림쇼핑』 등 다수 예술 관련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모두 7권을 썼는데 그중 미술 관련 책이 5권이다. 문화부 기자 초년병 시절 뉴욕으로 연수를 갔을 때 경매회사 부설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미술시장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게 2003년이었는데, 그때 막 서울옥션에 이어 K옥션이 생기며 국내 미술시장이 활기를 띨 때였다. 그동안 뉴욕에서 보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그림쇼핑』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때만 해도 경매회사나 미술시장에 대한 책이 국내에 거의 없었고, 미술시장 호황과도 맞물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나니 그 뒤로 다른 미술 책을 집필해달라는 의뢰가 꾸준히 들어왔다. 그중 2014년에 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이라는 책은 가장 큰 인기를 얻으며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국제문화교류전도 담당하고 있는데.

2018년부터 함께해온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2014년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만들었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다양한 문화 교류 활동을 지원하는데,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는 재단의 모태인 한세실업이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바탕으로 성장했기에 문화 지원을 통해 그들에게 보답하겠다는 재단의 뚜렷한 비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또 당시 이사장으로 활동하던 조영수 명예이사장님의 동남아 국가에 대한 진정성 있는 동반자 의식도 존경스러워 지금까지 협력사로 일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앤아트는 아시아 각국의 미술을 국내에 소개하는 미술 전시인 국제문화교류전의 홍보를 담당한다. 지금은 2025년 4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7번째 전시인 태국 현대미술전을 준비 중이다.

전시를 준비하며 겪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미술 전시기획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일이 반반 섞인 재미난 작업이다. 물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작가와 머리를 맞대며 기획하는 게 주된 일이지만, 두 팔 걷어붙이고 몸으로 해야 하는 일도 많다. 특히 제작 방식이나 전시 형태가 다양하고 복잡한 현대미술에서 운송, 설치, 철거는 전시기획의 ‘복병’이다. 가장 최근에 기획한 강익중 작가의 피라미드 전시는 유네스코가 관리하는 세계인류문화유산인 피라미드 앞에 작품을 설치해야 했기에 제한도 많았다. 또 거센 사막의 모래바람에 작품의 철골 구조가 옆으로 기울어 하나하나 매달아놓은 드로잉이 자꾸 떨어져 전시 기간 중에도 계속 드로잉을 다시 매달아야 했다.

이 작품이 초청된 전시인 ‘포에버 이즈 나우’는 매년 가을 3주 동안 계속되는데, 작년과 달리 올해는 연장 전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심 기뻤다.(웃음) 설치작품을 계속 관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최대 5m 높이의 작품이기에 ‘혹시 딱딱한 포맥스 보드에 인쇄된 드로잉이 관람객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며 전시 기간 내내 신경을 곤두세웠다. 전시가 끝나고 철거까지 다 마치고 나서야 다리 뻗고 잘 수 있었다.


▎정승우 이사장과 이규현 대표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지역의 한류 열풍부터 전시기획, 한국 미술계의 최근 이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사진:아르데집트/이앤아트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피라미드를 찾은 사람들이 강익중 작가의 작품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나도 행복했다. 이 작품 제작을 위해서 봄여름 동안 이집트와 한국의 문화센터, 국제학교, 난민학교에서 작품에 들어갈 아이들의 드로잉을 수집했다. 이렇게 모은 아이들의 꿈을 담은 그림 수천 점이 훌륭한 작가의 손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기획하는 일은 정말 가치 있는 작업이었다.

아들이 중학교 때 내게 “엄마는 직업이 뭐예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일을 해”라고 답했다. 예술 기획은 그런 일인 것 같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예술시장이 잠잠한 편이다.

미술작품을 사고파는 전통적인 미술시장만 생각한다면 기복이 있고, 지금은 침체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의 소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 예술시장이 잠잠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요즘 미술관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들을 보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이렇게 미술 전시 공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사진을 찍어서 SNS로 공유하며 예술을 일상의 동반자로 들이는 사람이 많아지면 예술시장은 활기를 되찾을 거라 생각한다.

상속세·증여세의 예술품 물납제도가 시행되었다. 대표님의 의견은.

기립 박수를 칠 일이다. 미술품 물납제는 내가 신문사에서 미술 담당 기자를 하던 2000년대 중반부터 논의되었는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실현되어 다행이다. 잘 알려져 있듯, 해외 유명 미술관에 미술사 대가들의 명작이 소장되어 있는 것은 미술품 물납제도의 기여가 크다. 앞으로 미술품 물납제가 활성화되고 영역이 더 확대되면 미술시장을 투명하게 하고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문화재 국외반출제도와 관련하여, 제작 후 50년이 경과한 작품은 자동으로 문화재로 간주되어 해외 전시나 아트페어 출품에 큰 제약이 되어왔는데.

제작한 지 50년이 지났다고 해서 무조건 반출이 안 되는 것은 아니고 문화재감정관실의 확인을 받아 케이스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현대미술 작품이 문화재로 분류되어 반출이 불허된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관련 법 실행의 유연성이나 개정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23년 곽인식, 김환기 등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반출 문제로 논란이 시작되었고, 이제 점점 해외의 영리·비영리 전시에서 한국 현대미술 작품을 찾는 수요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앞으로 유연성 있게 적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어떤 큰 포부를 가지고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상황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다 보니 오늘 이렇게 전시기획자로 포브스코리아와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다.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문학에 재능이 없어 픽션 대신 논픽션을 쓰는 신문 기자가 되었고, 미술작품 판매 플랫폼으로 구상했던 이앤아트는 작품 판매에는 도통 소질이 없는 것을 깨닫고, 내가 잘할 수 있는 현대미술 기획·홍보·마케팅 에이전시로 방향을 바꿨다. 미술계에서 일하면서 해외에 거주하다 보니 해외 미술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일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크고 뚜렷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 선상에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잘 할수 있는 것에 집중해봐도 좋을 것 같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501호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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