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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이전에 가람 없고 가람 이후에도 가람 없다" 

시조시인이자 국학연구의 큰 스승 가람 李秉岐 (이병기) 

글·문재호 숭실대 강사 ; 사진·권태균 월간중앙 기자
외로운 길을 뚫고 나온 三福之人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가람은 확실하게 학자로서 자리매김하였다. 해방후 엄청난 숫자의 회(會)와 모임, 조직이 만들어졌으나 그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은 채 전쟁을 맞이했고 전쟁중에도 고서 수집과 주해(註解), 강의를 거르지 않았다. 그 덕분에 가람은 하마터면 우리 문학사에서 영원히 사장될 뻔했던 수많은 고전들을 발굴해냈고, 국문학 발전의 기틀을 튼튼히 했다. “지리산가” “춘향가” “청구영언”(靑丘永言) “해동가요”(海東歌謠) 등이 그의 손끝을 거쳐 우리 문학사에 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밖에도 가람은 조선 역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는 “한중록”(閑中錄)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요로원 야화기”(要路院夜話記) 등을 발굴해 냈으며, 신재효(申在孝)의 판소리 마당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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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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