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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재집권플랜| 좌담-보수논객 3인이 말하는 보수정권 재창출 방정식 

'보수가 한나라당을 버릴 수도' 

사회·정리 박성현 월간중앙 차장 [psh@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사진기자 [jeonmk@joongang.co.kr]
민심 떠난 한나라당으로는 박근혜 후보 내세워도 대선 승리 장담 못 해 주류 가치 대변해온 보수세력이 향후 10년 선진화·통일과제 수행해야 10년의 기다림 끝에 집권한 보수진영이 눈앞의 재·보궐 선거에 쩔쩔맨다. 내년 총선은 더 좌불안석이다. 집권 당시의 거창한 비전과 약속은 오간 데 없이 집권세력은 요즘 여론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보수를 걱정하는 보수이론가에게 보수가 살길을 물었다. [좌담참석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월간중앙> 좌담회를 끝내고 활짝 웃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 박세일 서울대 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왼쪽부터).

보수정권의 재집권 전략을 논하는 좌담회 참여를 요청했을 때 보수진영의 전문가들이 난색을 표시했다. 변수가 많아 대선을 논하기는 시기도 이르거니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보수정권을 보듬고 어떤 변명을 해줘야 할지 난감했던 까닭이다. 이번 좌담회에 참석한 보수이론가·지략가 3인도 그런 부담을 안고 토론에 임했다. 참석자들은 청와대나 한나라당 등 보수로 분류되는 정치세력이 민심 이반에 너무 둔감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현실을 분개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기득권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좌담회에서는 대한민국을 발전하게 하는 보수의 가치를 현실정치에서 구현하는 액션플랜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을 갈아엎는 정도의 변화를 시도하되 여의치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세력이 당의 울타리를 깨고 나가 보수의 기치를 높이 들자는 파격적 방안도 나왔다. 진보진영의 집권은 나라를 다시 미궁을 빠뜨릴 우려가 있어 막고 싶은데 지금의 한나라당으로는 진보진영을 당해내기 어렵다는 절박감에서다. 좌담회는 4월 13일 오후 <월간중앙> 회의실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사회자 내년이면 대선이 치러집니다. 차기 정부는 집권 5년 동안 뭘 하는 정부여야 할까요? 혼신을 쏟아 풀어야 할 과제, 전면적으로 맞닥뜨릴 시대정신을 말씀해주십시오.

박세일 1960년대, 1970년대 국가적 목표가 산업화였다면 1980년대, 1990년대는 민주화라고 하겠습니다. 2000년대부터 향후 2020년대까지는 선진화와 통일이 국가적 과제이자 국가의 비전이라고 봅니다. 나라의 각 분야를 선진화하고 통일국가로 나가는 게 2020년까지의 중요 과제입니다.

이상돈 저는 다음 정권이 최근 10년의 두 개 정부의 난맥상을 바로잡는 일만으로도 벅차다고 봅니다. 노무현정권에서 야기된 북핵 문제, 남북관계 문제 그리고 현 이명박정권의 재정파탄, 4대강 환경파괴, 남북갈등을 해소하자면 5년도 모자랍니다. 장기적 과제로 박 교수님이 말씀하신 이런 일들이 중요하죠. 노무현정권을 심판한 게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입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도 이명박정권 심판입니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는 앞서의 두 정부 실패를 거름 삼아 국가를 통합하고 국민을 화합해야 합니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간이 돼야 합니다.

윤여준 차기 대통령의 임기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핵심은 국가통합이라고 봅니다. 요즘 대한민국이 해체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들 정도예요. 국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구제역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서 국가를 믿어서 안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공동체의 해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시대과제는 선진화·통합·치유

박세일 현 정부는 선진화를 주장했지만 아직 나라는 산업화와 선진화의 중간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정부는 각 분야를 제대로 선진화하고, 통일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처하는 정부가 돼야 합니다. 한 10년 정도는 그렇게 국가를 끌고 나가야 한다고 보는 거죠.

사회자 다음 정부에서 그런 국가적 과제를 담당할 세력의 자격과 그들이 숭상해야 할 가치는 어떤 게 있을까요?

윤여준 무엇보다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해줬으면 합니다. 시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국가와 국민 통합의 중심을 잡아주는 개인과 집단이 절실해요. 그리고 한계를 뚜렷이 노출하는 국회·정당·관료제에 국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도 필요합니다. 요즘 공정사회를 일러 ‘공무원이 정하는 사회’라는 비아냥도 있을 만큼 민간부문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정책 메커니즘인데요. 가치를 정책화하고 추진하는 능력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가치가 없는 비전 제시는 ‘말잔치’와 다름없습니다.

이상돈 제가 또 다른 진보정권을 우려하는 이유는 비대한 정부, 과도한 복지로 재정건전성을 해치면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핵개발에서 불거진 남북 간 문제를 당당하게 풀어나갈지도 의문입니다. 그래서 다음 정권은 현 정권과는 분명 구별돼야겠지만 전형적인 진보정권이 또다시 들어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單治에서 共治하는 국가로

박세일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고 갈등이 많은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회의 가치관과 사상이 혼란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사회에 단치(單治)문화가 강해서 그렇습니다. 독선적으로 혼자 다스리는 경향입니다. 그래서 다음 정부는 선진화와 통일을 위해 가치관과 사상의 혼란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는 뭔지, 그러자면 어떠한 가치를 소중히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야겠지요. 국가와 민족은 가치공동체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익성(利益性)만 남으면 온갖 이론을 끌어들이는 싸움을 하게 됩니다. 다양한 이익을 하나로 묶기 위해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시대의 가치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치를 제도화·정책화해야 하는 거죠. 이제 단치의 시대를 끝내고 공치(共治)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공치란 정치·사회지도자들이 함께 나라를 경영하는 겁니다. 개인이나 소수집단이 지배하는 단치로는 더 이상 안 됩니다.

사회자 정권의 운용원리가 바뀌고 참여주체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말씀 같습니다.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설명해주십시오.

이상돈 앞으로 탄생하는 정권은 국민이 자신들을 어떻게 이끌어주기를 바랄까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준다기보다는 정부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상당히 팽배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바람은 우리 사회가 성숙한 만큼 정부가 역할을 축소하고 나쁜 일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정권이 바뀔수록 상황은 더 나빠진 거죠. 나라가 그나마 이 정도에서 더 망가지지 않은 건 순전히 우리 국민의 역량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2013년 새로 들어설 정부는 과거 정권에 대한 평가와 심판을 냉정히 하고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박세일 저는 한 시대를 여는 건 새로운 생각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생각이 바로 서고 가치가 바로 서야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정치지도자 간, 그리고 정치세력 간 공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단치의 나라였습니다. 정당이 정권을 잡는 게 아니라 정당의 한 지도자가 정권을 잡아왔죠. 그래서 그 사람의 개인적 가치가 시대적 가치가 되어 한 시대를 지배해왔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연 보수의 시대고, 보수의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입니까? 한나라당의 한 정파가 정권을 잡은 데 불과합니다. 단치가 아니라 공치적인 문화를 세우려면 다수가 수긍할 공통의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여 가치를 중심으로 여러 세력을 묶고, 서로 권력을 나누어서 국가운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의 과제인 선진화와 통일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고 봅니다.

윤여준 역대 한국의 정당에 가치지향적인 요소가 있었던가요? 표면적으로 국익과 안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내걸었지만 실상은 사치(私治), 개인적·정치적 이익과 정당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소수가 기득권을 보장받는 하나의 장치와 틀이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사치시대를 오래 살았습니다. 정치지도자는 새로운 가치와 사상을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식견이 있어야 하고, 그의 삶이 그런 걸 도덕적으로 내걸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보수라는 단어가 주는 염증

사회자 보수진영이 우리 시대의 과제를 제대로 풀 능력이 있기는 하나요?

박세일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선진화와 통일과제를 보수세력이 앞장서서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주류적 가치를 유지·발전시키려는 세력이 보수세력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 선진화와 통일의 문제도 그 연장선상에서 풀어야 하는 거죠. 아직도 당분간은 보수적 가치가 한국의 중심을 잡고, 거기에 진보적 가치를 더해 선진과 통일로 나아가는 게 올바른 길이겠지요.

윤여준 다수의 국민은 꼭 보수나 진보의 이념에 따라서 선택하지 않는다고 봐요. 모두 헌법적 가치에 충실하지 않았기에 그렇죠. 보수세력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충실히 지켜왔다고 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진보세력은 어떠했나요? 경제적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요? 우리 헌법에는 보수와 진보적 가치가 모두 녹아 있습니다. 그 속에서 보수는 보수의 가치를, 진보는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애를 썼다면 국민의 신뢰를 받았을 겁니다. 우리 국민은 보수와 진보를 따져 투표하지 않을 것 같아요. 누가 국민이 생각하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질과 도덕성을 갖췄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겁니다.

이상돈 노무현정권 시절 ‘보수’의 이름을 단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이 이념과 여러 현안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지요. 그때 우리 사회에 ‘보수’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고, 또 호응도 받는 등 좋은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이명박정권 들어와서는 국정 난맥상 때문에 ‘보수’의 타이틀을 가지고 당선되겠느냐는 우려가 퍼져 있습니다. 특히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가스통 시위 등 과격한 장면은 보수단체만 집중 노출되다 보니 이미지가 굉장히 나빠졌죠. 그래서 아무리 좋은 보수가치나 철학이라 해도 일반 대중이나 젊은 세대에게 잘 전달되지 못합니다. 선거에서 정권을 연장하는 게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정치라는 게 상대방의 실패를 먹고 사는 것이니까요.


▎`우리 국민은 보수와 진보를 따져 투표하지 않을 것 같아요. 국민이 생각하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질과 도덕성을 갖췄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겁니다.`_ 윤어준

윤여준 그래서 보수의 ‘보’자만 꺼내도 외면당한다고들 하지 않나요. 젊은 세대는 아예 쳐다보질 않습니다.

박세일 이 정권이 잘못한 것 하나만 묻는다면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걸 들겠어요. 보수적 가치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보수의 핵심가치는 자유와 공동체입니다. 이 두 가지의 가치가 국가발전과 개인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지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고 충분히 정책화하지 못했습니다.

이상돈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 신념을 가졌고, 신망과 카리스마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들어선 두 정권입니다. 한 정권은 이념과잉으로 사회갈등을 유발했어요. 또 뒤를 이은 정권은 이익집단의 정권을 연상케 했지요. 거듭 말하거니와 대통령이나 정권을 가진 사람들에 거는 기대를 줄여야 합니다. 이 시대는 국민과 친숙하고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를 요구합니다. 나라경영도 대통령의 큰 비전에 의존하기보다 정치제도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 리더십에 따르면 됩니다.

정권에 대한 기대치를 줄일 때

사회자 정치권에서 보수의 가치를 대변한다는 한나라당이 과연 일관된 행보를 보여주고 비전을 제시했는지요? 또 현실정치에서 한나라당만이 반드시 보수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나요?

윤여준 한나라당은 집권당이고 다수당입니다. 최고위원들 스스로 ‘봉숭아 학당’이라고 한다는 보도까지 나옵니다. 차명진 의원은 최고위원회의를 ‘막말이 오가는 동물의 왕국’으로 묘사하기도 하고요. 이런 세력으로 무엇을 하며,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요. 젊은 사람들이 투표하는 것을 두려워하기까지 한다니 말문이 막힙니다. 좋은 품성과 자질을 가진 분들도 많은 당인데 소수인 까닭에 아무런 힘도 못 씁니다.

이상돈 과연 한나라당으로 내년 선거를 치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현 정권은 무늬는 ‘보수’라면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많이 넘었습니다. 예를 들어 언론탄압을 했습니다. OECD 회원국 중 방송내용을 놓고 PD를 기소했다는 소리를 한국 밖에서는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기본권 침해 등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했습니다. ‘보수’라는 이름 하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또 이 정부 들어서는 과거 정권과 달리 집권세력과 여당 내부의 자체비판과 토론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의를 제기한 세종시 문제를 제외하고는 논쟁과 비판이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노무현정권 때 정부정책과 이념을 놓고 그렇게 활발한 토론과 비판을 하던 지식인그룹이 이 정권을 향해서는 입을 다뭅니다. 보수정권에 다시 기회를 달라고 국민들에게 말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왜 보수가 재집권해야 하는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박세일 동북아 전체 변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내부의 변화도 굉장히 빠르죠. 이에 대응하자면 사상과 정책적 준비도 필요하고, 국민과 더불어 풀어가려는 기본과 자질도 갖춰야 합니다. 이를 과연 한국정당들이 해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한나라당이 그걸 감당해낼 수 있는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럼 새로운 대안이 나와야죠. 열정과 헌신으로 몸을 던질 각오가 돼 있는, 누가 봐도 지금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이들이 뭉쳐야겠지요.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역사적 실험이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국민들도 모험을 해야 하는데 출신지역과 연고에 연연하거나, 사표가 되기 싫어 될 만한 후보를 찍어주다 보니 미래의 꿈과 가능성을 가진 정치세력들의 실험이 거의 실패했습니다. 국민 스스로 정치를 비판하고 이래선 안 된다고 분개하면서도 거대 여야 정당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죠. 정치적으로 우수한 소양을 갖춘 인재들도 기존 정당이나 계보에 줄을 서려는 경향이 많은 듯합니다.

지금 민심은 이미 여소야대

사회자 현실적으로 볼 때 차기 정권은 기존 정당의 이합집산의 산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클 듯합니다. 기존의 여권과 야권을 놓고 볼 때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요?

윤여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내부에 많은 변화가 올 겁니다. 외부의 새 인물들이 수혈되면 당의 모습이 바뀔 수 있기에 지금으로서는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건 요즘 같은 민심이면 재집권은 힘들다 봐야죠.

이상돈 야권은 내년 총선에서, 특히 수도권에서는 후보단일화로 갈 겁니다. 전통적으로 수도권은 야권세력이 강한 지역인데 2008년 총선은 이변이었죠. 또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는 파격적 반작용이 있었고요. 내년 선거를 조망하자면 총선은 지방선거보다 투표율이 높게 마련인데 이는 20·30대가 대거 투표에 참여한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젊은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에 비우호적이죠. 한나라당이 총선에 참패하면 지금의 정당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윤여준 내년 총선은 여소야대로 갈 게 확실해 보입니다. 의회 다수파인 야권이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는 소재를 발굴하겠죠. 그럼 현 정권이 힘으로 덮고 넘어간 문제들이 다시 불거집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권은 상당한 상처를 입게 될 텐데 그러면 대선을 어떻게 치르겠습니까?


▎`우리나라는 단치(單治)의 나라였습니다. 정당이 아니라 정당의 한 사람이 정권을 잡아왔죠. 한 사람의 가치가 시대의 가치를 지배하면 보수의 시대가 아닙니다.`_박세일

이상돈 정권 말기에는 설령 여대야소라 해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박세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결단이, 애국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한나라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지는 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언필칭 보수 우파 정권의 실패를 의미하고, 권력이 야권으로, 즉 진보 좌파로 넘어가는 걸 뜻합니다. 이게 대한민국 역사에 무슨 의미인지, 진보 좌파가 다시 대한민국을 주도할 때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인지 각자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당이 혁명적 개혁을 하려면 당내에 개혁적 리더십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기득권 포기가 불가피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역사가 미궁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사회자 한나라당이 이명박 대통령과 갈라서는 일도 있을까요?

윤여준 한나라당이 다급한 나머지 이명박 대통령과 결별도 생각할 겁니다. 예전에 되풀이하던 일입니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나라당 변화 외부에서 견인해야

이상돈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이기자면 사람과 정책을 모두 바꿔야 합니다. 과거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은 이를 허용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럴 것 같지도 않습니다. 현 정권과 거리가 있는 여권 내 세력은 올 연말이라도 자구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과 결별하거나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다른 정당을 꾸리는 겁니다. 박 전 대표 쪽에서 그 정도는 생각하리라 봅니다. 외부에서 압력을 넣어서라도 이를 견인해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박세일 원래 총선에서 지면 대선에서 이긴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은 그럴 것 같지 않아요. 왜냐하면 총선과 대선 사이의 기간이 너무 짧거든요. 그 기간이 길면 승자의 오만을 보고 국민이 생각을 또 바꾸는데, 내년은 그런 오만을 보일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내년 총선에서 야권이 이기면 기존 권력에 가하는 공격뿐 아니라 잠재적인 여권의 대선후보에도 신랄한 공격이 시작될 것이고, 이와 연관해 역사 청문회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지면 대선에서 진다는 전제 하에 지금까지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을 근본적으로 반성·정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이 사는 길은 혁명적으로 완전히 바꾸는 겁니다. 당 간판부터 바꿔야 해요. 심지어 당의 철학까지 모두 다시 세우고, 당의 제도·체질·문화 등을 모두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희망도, 변화도 없습니다.

사회자 보수진영에는 부동의 1위인 박 전 대표가 과연 정권 재창출을 끝까지 책임져줄 수 있을지 불안감이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이상돈 2007년 대선 국면에서는 처음엔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전신)의 정동영 후보가 제3후보인 이회창 후보에게 밀렸다가 선거에 임박하니까 역전하면서 전통적 지지표를 끌어모았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보면 박 전 대표의 현재 지지율도 안심할 게 못 됩니다. 야권에서 교통정리가 끝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박 전 대표도 그 점을 잘 알 겁니다. 지금 입장에서는 확실하게 행동에 옮기기도 힘들다고 봐야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오늘날 한나라당 내의 이른바 미래세력의 처지 아닙니까?

윤여준 한나라당에서 때로 소수의 소장파들이 개혁의 목소리를 냈지만 세력이 약해 반향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제 박 전 대표가 결심을 해야 합니다. ‘내가 대선 나가려고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되므로 대안을 제시한다’고 말입니다. 친이계가 당의 중심에 서면 지는 게임입니다. 박 전 대표가 유력한 주자고, 늘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박근혜 중심으로 모여서 승부를 제대로 걸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박 대표도 미적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링에 올라 실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짤막한 논평으로 정치를 하는 건 더 이상 어렵습니다.


▎`올 연말이라도 자구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과 결별하거나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다른 정당을 꾸리는 겁니다.` _이상돈

박근혜 미적거릴 시간인가

박세일 대한민국의 실패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 구성원들이 깊이 고민해야 하며, 이는 박 전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이 보는 한나라당은 과거 정당이며, 지도부 역시 과거 정치인들입니다. 미래 정당, 미래형 리더십을 세워야 합니다. 과거 정치인들이 나서서 당을 미래형으로 만들기는 어렵죠.

이상돈 제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바는 박 전 대표가 결단을 내려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총선과 대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설령 지더라도 건전하고 강한 야당으로 자리매김하는 거죠. 과거를 봅시다. 1960년 4·19 이후에 여당이던 자유당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민주당은 자기네끼리 싸워 더 불행해졌습니다. 박 전 대표는 건전하고 소신 있는 정치세력과 마음을 합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현 정권의 실패로 야당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참패의 충격에서 완전히 회복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박세일 이념적 정체성에서 자기정리를 못하는 야권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건 대한민국을 위해 아직 때가 아니라고 보기에 정권재창출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다음 국정운영 세력은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통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 확실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단순한 정책프로그램으로서가 아니라 그 세력의 일상적 삶을 통해 국민에게 약속과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의미에서 한나라당의 경우 과연 선진화와 통일을 감당할 희망적 세력으로 바뀔 수 있느냐, 혁명적 개혁을 준비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단지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다음의 5년과 10년 후의 대한민국을 성공시킬 수 있는 새 정치세력을 만들어내는 게 당 개혁의 철학과 비전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당 개혁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속이는 짓이 되기 쉽습니다. 그 부분부터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사회자 박 전 대표가 그 일을 하는데 적임자인가요? 그 준비가 됐다고 보는지요?

박세일 본인이 1등 주자라고 생각한다면, 또 1등을 하자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미래의 지도자라면 그 시대의 과제를 풀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녹취 정리=이용우 월간중앙 인턴기자)

201105호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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