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특집ㅣ이석기 쇼크! - “ 이석기는 비겁한 남자, 왜 밀실과 광장의 언행 다른가” 

인터뷰 - 심상정, 통진당을 통박하다 

한기홍 월간중앙 기자 사진·김현동 기자
원전 건설에도 반대하는 마당에 북 핵무기 보유 찬양은 시대착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 현실적인 힘과 영향력 인정해야



‘이석기 사태’ 이후 심상정 진보정의당 원내대표는 착잡하고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노선이 확연히 다른 경쟁 정파의 실세가 ‘큰 사고’를 친 것에 대한 대응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정원이 이석기 수사의 주체라는 점에서 그 착잡함의 강도는 심대했을 것이다.

그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찬반 여부를 둘러싼 당내 이견을 잠재우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이석기 의원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집권 보수세력의 정국 구상에 말려들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했을 것이다. 시간도 부족했다. 체포동의안 찬성의 논리를 세우는 일도 초단시간 내에 해치워야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9월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그의 방에서 약 2시간 30분에 걸쳐 이뤄졌다. 과거 민주노동당을 같이했던 시절부터, 2012년 통진당과 결별했던 시간 사이를 종횡으로 훑어가며 소위 ‘자주파’ 진보세력의 패권주의와 과도한 친북 성향을 비판했다. 특히 북한 정권을 ‘집권당’으로 부르고, 북의 핵무기 보유를 찬양한 이석기 의원의 발언은 헌법을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망상을 담고 있다는 것이 심 의원의 견해다.

이석기 의원 구속 후 국회 제명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요.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합니까?

“국회 제명은 반대죠. 이석기 의원은 아직 피의자 신분으로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 추정한다는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극단적인 진영논리 때문입니다. 일관된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급하다고 우물에서 숭늉을 달랠 수는 없는 만큼, 기다릴 때는 기다려야 하는거죠. 헌법정신과 민주주의를 공고히 지키는 과정입니다.”

다른 정당의 사정은 어떻게 파악했나요?

“민주당은 우리 당보다 정치적인 사안에 더 민감하지만 제명안에 대해 정략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요, 새누리당이 (제명을) 서두르는 것은 지나치게 정략적인 태도라고 봅니다.”

체포동의안 찬성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해체 의미

결국 국회제명은 쉽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하겠네요?

“어렵습니다. 재적 3분의 2 찬성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의원 신분 보장의 취지는 정략적 희생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것이고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의원 제명은 1957년 김창룡 방첩대장 암살에 연루됐던 도진희, 1979년 <뉴욕타임스> 반유신 인터뷰 파문 당시 김영삼의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두 사건 모두 정쟁의 소산입니다.”

녹취록을 근거로 판단할 때 이석기 의원의 내란 예비음모 혐의는 유죄 판결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겁니까?

“법률전문가에게 자문도 구했지만, 내란음모 혐의가 국정원 근거자료만으로는 확증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녹취록에 드러난 발언내용은 거의 사실이라고 봐요. 통합진보당 쪽에서도 두 대목 정도를 빼고는 사실관계 자체를 부인하진 않으니까요. 녹취록만으로 판단할 때 이 의원이 용인하기 어려운 발언을 한 것은 틀림 없습니다. 국회의원의 발언이라 보기엔 대단히 부적절하죠. 이제 사법부가 판단하고, 국회는 민생문제에 전념해야겠지요.”

체포동의안 찬반 여부를 둘러싸고도 당내에 상당한 진통이 있었던 것 아닌가요?

“반대하는 분이 적지 않았죠. 그렇다고 강제적, 권고적 당론을 만든 건 아닙니다. 원내대표를 맡은 이후 의원들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했어요. 저를 제외하곤 다 초선의원이지만 그들 모두 헌법상의 권한과 책임을 스스로 행사하고 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국회의원은 정당의 성원으로서의 의무보다 국민에 대한 책임이 우선입니다. 그 점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정당이 대중정당이지요. 그런 원칙에 따랐다고 봅니다. 의원단 회의, 당 대표단 연석회의, 지역 의견 수렴 등을 거치며 충분히 토론했어요.”

내란음모죄 여부를 확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체포동의안 찬성 당론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거의 다 원외인 지역위원장들은 시민사회 활동가 출신이 많습니다. 그들은 연대활동의 경험이 풍부하고, 또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척박한 지역조직 현실 속에서, 그리고 진보의 문법으로 보았을 때,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런 일일 겁니다. 내란음모죄에 대해서는 물론 확증할 수 없어요. 많은 분이 우려하듯 ‘태산명동서일필’이 될 수도 있지요.

이 의원의 인식과 언행이 부적절한 이유는 그것이 헌법의 기본정신에서 일탈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의사가 적지 않았지만 의원단·대표단 논의를 거쳐 지도부가 정치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당내에 섭섭한 분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이견을 가진 분에게 충분한 양해를 구했습니다.”

핵무기 발언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북의 핵 보유를 ‘조선의 자랑’이란 식으로 표현했더군요.

“통진당 당원 전체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통해 통진당 내 이 의원의 비중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어요. 공당은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에 대해 진위 여부를 떠나 당당하게 수사를 받아야 합니다. 또 진상조사, 개혁을 위한 방안을 내놓으면서 국민에게 대답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당이 통째로 이 의원을 옹호하는 데 나서고 있습니다. 이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에요. 한반도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은 북한 스스로 평화를 향한 실천을 능동적으로 하는 것뿐입니다. 전 세계 진보운동의 흐름이 원전 건설에도 반대하는 마당에 북의 핵무기 보유를 찬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시대착오입니다.”

‘친북’을 넘어 ‘종북’으로 가고 있다는 판단인가요?

“용어 정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런 용어에는 슬픈 우리의 역사가 배어 있어요. ‘수구꼴통’, ‘좌빨’과 같은 험악한 용어들말입니다. ‘종북’은 좌빨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설혹 실체가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정작 그 용어는 그 실체를 지시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런 용어는 상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서슬 퍼런 딱지’의 성격을 담고 있습니다.

상생의 언어가 아니라 배제와 분열의 언어이지요. 그간 저는 이런 용어를 일체 쓰지 않았습니다. 실정법 상에 있는 내란죄를 그대로 말하면 될 터인데요. 관성적으로 쓴다는 것이 냉전시대의 유물이죠.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양 극단 세력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확인하게 됩니다.”




헌법 부정하는 통일추구는 분단 지속 시도와 같아

이 의원의 발언에는 북한을 바라보는 ‘놀라운 시각’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 놀라운 시각 중의 하나는 이 의원이 북한정권을 표현할 때 ‘집권당’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대중들의 생각과 너무도 동떨어진 이른바 NL(민족해방론자)이 표방하는 ‘반제통일론’은 대단히 낡은 노선입니다. 걱정됩니다. 통진당, 그런 노선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길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국제정세 속 북한의 위상은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특히 G2 시대가 도래하면서 핵무기를 가지고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다든지,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는 중국조차 반대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면서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분단체제를 지속하려는 시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체포동의안이 통과되기 전 “이 의원이 스스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셨죠?

“정치인으로의 정치적 책임, 법률 위반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 의원이 갖고 있는 노선은 노선 그 자체로서 평가돼야 합니다. 저는 그러나 이 의원을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을 때는 정치인으로 어떤 철학과 비전, 정책을 갖고 있느냐를 보고 선택합니다. 그가 당당하다면, 자신의 사상과 정견과 노선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제도권 내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이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과 비공개로 발언하는 것이 다르다면, 그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왜 광장과 밀실에서의 언행이 다르냐는 것이죠. 우리 당이 결국 체포동의안 찬성 당론을 내놓은 것도 국회의원의 본분을 벗어난 사람에게 국회의원의 특권을 보장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2008년 통진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을 나올 때 제기한 소위 ‘종북’의 문제를 다시 되돌아보게 됩니다.

“2007년 대선 참패 후 제가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때 ‘일심회’ 사건의 처리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어요. 일심회 사건은 당시 민노당의 일부 당원이 300명에 달하는 당원의 정보를 북한 공작원에 넘긴 사건이었는데요, 저는 연루자들의 출당을 주장했습니다. 2008년 2월 3일에 열린 민노당 임시 당대회에서 당시 연루자에 대한 제명 동의안이 압도적으로 부결되는 장시간의 토론 과정을 보면서 저는 경악했습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이라는 이유로 연루자에 대해 어떠한 비판과 책임도 수용되지 않는 장면을 목격한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국가보안법이 비이성적 진보세력의 울타리가 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지요. 이석기 사태를 통해서도 적대적 공존이 이번에도 확인된 셈인데요, 이런 양극단이 마치 보수와 진보의 대결처럼 오도된 측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단호히 맞서 싸우는 것이 진보 정치인의 사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친미 사대주의 매도 용인 못해

당시 민노당의 주류였던 소위 ‘자주파’의 패권주의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셨죠?

“2007년 대선은 민노당의 참패였습니다. 저는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선거를 ‘참패’로 규정할 것을 제안했지만 이듬해 당 대회 평가에서는 ‘참패’가 ‘실망스런 결과’로 수정돼 채택됐습니다. 이것도 당권파의 패권주의가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97만 표를 얻은 2004년 대선에 비해 무려 26만 표를 덜 받은 선거가 참패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스타급 국회의원 10명을 보유하고도 말입니다. 일심회 사건 연루자 2명에게 면죄부를 준 것도 패권주의 행사죠. 수백 명의 당원 정보를 만일 당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에 건넸다고 칩시다. 엄청난 해당행위 아닙니까? 출당을 피할 길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북한공작원에게 건넸는데도 과반수가 훨씬 넘는 사람이 제명에 반대했어요.

훗날까지 다수파의 일부는 제게 ‘일심회 사건 관련자를 제명하려는 당신의 과도함 때문에 민노당이 파국에 이른 것’이라 다그치기도 했어요. 국민의 눈높이에서 당을 혁신할 의지가 전혀 없는 사람들… 그런 패권주의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었던 거죠.”

당 혁신 아이템 중에는 투명한 회계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죠.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겁니까?

“CNP라는 회사가 당 대선홍보 물량의 상당 부분을 소화했는데, 그때는 그 회사가 이석기 의원 주도로 운영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작년 통진당 선거 부정 사태가 불거지면서 처음 알게 됐죠. 또 당에 부채가 참 많았는데, 지구당은 법이 정한 회계규정을 따르지 않고, 임의적으로 자금 운용을 했어요. 명색이 공당인데, 하는 일은 서클주의적 정파 질서 안에서 이뤄지고, 그런 틀 안에서 돈 쓰는 일도 주먹구구인 거예요. 그래서 회계와 관련해서는 법이 정한대로, 완전히 투명하게 하겠다는 혁신안을 내세웠던 거죠.”

이석기 의원의 강연 녹취록을 보면 그의 미국에 대한 인식이 드러납니다. 현재의 대립구도를 ‘남과 북’의 갈등이 아니라 ‘미국과 한반도 전체’의 갈등 구조로 보는 시각이죠.

“세계 전체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 미국의 현실적인 힘과 영향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의 과정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을 친미사대주의로 매도하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역으로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남북관계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을 친북이나 종북으로 규정하는 것에도 반대죠.”

그런 관점에서 이석기 녹취록 전반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헌법질서를 넘어선 내용으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어요. 우리 사회를 가장 위태롭게 하는 전쟁상태를 가정하고, 그것을 근거로 폭력적 행위들이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이고, 현역 국회의원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의원과 통진당은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뿌리깊은 피해의식과 선민의식이 도사리고 있을 겁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민족과 민주를 위해 희생했는데,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 누구도 내 진정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 등등.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감성적 토로와 함께 자신은 ‘절대적으로 옳다’라는 고집을 피력하죠. 민주주의 제도나 절차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해요. 진보정치 전환기에 낡은 질서가 정리되는 과정이라 봅니다.”

이석기 녹취록에 대한 이정희 통진당 대표의 ‘장난감 총’, ‘농담’ 발언이 큰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한때 단식을 하다 접고, 이 의원 변호인단에 합류했더군요. 지난 몇 년간 이 대표는 영욕의 시절을 보냈는데요, 그간 그의 ‘정치적 처신’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이석기 사태 이후 이 대표의 행보, 대단히 실망입니다. 작년 통진당 사태 때는 배신감마저 느꼈고요. 한때 저는 이 대표의 정치적 자질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어요. 2011년 통진당에 제가 합류했을 때 이른바 당권파의 완고함에 대해서는 충분히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분당 이후 민노당 대표로 영입된 이정희의 모습은 국민들에게도 상당히 신선했죠.

사실 당 대표라는 자리는 오랜 시간 검증을 거쳐야 하는 자립니다. 치열하게 운동했던 사람도 아니고 당원도 아니었던 사람을 발탁해 대표로 세운 건데, 그것은 대단한 변화로 당시 민노당이 국민과 적극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 아니냐… 저는 그렇게 보았던 겁니다. 이정희는 야권연대 추진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대단히 유연했고, 통합진보당을 만들어 혁신할 때 다양한 갈등이 생겨도 이 대표가 커버할 수 있으리라 보았던 거죠.”

그런데 왜 실망과 배신감을 느낀 건가요?

“결국 통합을 해서 일하다 보니 이정희를 떠받치고 있는 체제는 정파적 질서이지 정당적 질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정희의 처신을 보면 그 구조를 이해할 만한 대목도 있어요. 그 이전에는 평등파와 자주파가 치열하게 대립했는데 2008년 분열이 되면서 민노당은 한 정파가 지배하는 당이 되었죠. 주도권을 가진 세력이 영입한 대표이다 보니 처음부터 정당정치를 그렇게 배운 겁니다. 당내 이견이 많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당을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 관리하면 당의 자산이 풍부해지죠.

이정희는 결국 패권적 정파의 장이 된 것입니다. 이석기 사태 직후에도 이 대표와 통합진보당의 행태에 국민의 실망이 컸습니다. 처음엔 완전 날조라고 했다가 다음날 바뀌고 또 바뀌고… 우리가 체포동의안 통과시킨 이유 중 하나도 변명과 꼬리 자르기 행태에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정희가 통진당의 대표로서 당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오로지 정파적 질서에 충성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젊고 유능한 여성 정치인으로 국민의 사랑도 많이 받았는데 너무 아깝고 안타깝습니다.”




채동욱 검찰청장 낙마는 일종의 ‘친위쿠데타’

요컨대 자신의 독자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인가요?

“통진당은 2011년 말 민노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 등 3당 합당으로 출범한 후 저와 이정희·유시민·조준호 등 4인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됐어요. 통합 이야기가 나온 이후 처음 이 대표를 만나 그의 정치 스타일을 관찰하게 됐죠.

저는 정계에 들어온 후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정치를 배웠지만 이 대표는 처음부터 정파 질서에 의해 선택되고, 대표가 되고, 대표로서의 롤(역할)을 부여받고, 그 제한된 롤 속에서 능력을 발휘해온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석기 사태가 불거진 가운데 채동욱 검찰총장의 낙마라는 변수가 돌발했습니다. 국정원이 검찰총장을 저격했다는 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저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를 일종의 친위쿠데타의 결과로 봅니다. 혼외 자식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스캔들의 진실이 아니라 이 사태의 타이밍과 전개 양상입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청장 두 사람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국정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도해 검찰과 국정원이 극도로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특정 언론에서 보도가 되고, 진위를 가리기 위한 공방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무장관이 특별감찰을 지시한 것은 옷 벗으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죠. 대단히 걱정스럽습니다.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임명된 첫 번째 총장이 물러나면서 지난 대선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수사의 동력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옵니다.

특히 김기춘 비서실장 등장 이후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잇따라 옷 벗은 일에 주목하게 됩니다. 국정원 개혁 문제를 화두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기 직전의 시점에서 총장이 낙마하게 된 것도 불행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이죠.”

최근 검찰 행보에 대한 범보수층의 우려가 총장 낙마에 원거리에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놓고 이해를 도모하는 세력의 일련의 커넥션이 강화되고 있다, 저는 그렇게 해석합니다. 거기엔 분명 청와대의 기운이 작용하는 것이고요. 그 커넥션에 청와대가 만일 배제돼 있다면 그것이 사실 더 큰 문제일 수 있죠. 박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 중 ‘아버지의 정치철학과 국가관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발언한 것이 혹시 ‘유신의 향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앞으로의 정치는 매우 위태롭게 전개될 거예요.

사실 여러 제도개선을 통해 집권세력이 과거처럼 검찰을 제 멋대로 주무를 수 없게 되었죠. 그 상황이 오기까지 지난한 과정 속 우리 사회의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됩니다. 함부로 손댈 수 없고, 무겁게 생각해야 하는데 일사천리식 과정을 통해 입맛에 맞지 않는 총장을 도려낸다는 것은 과거 정권에 있었던 아픈 기억과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석기 사태를 계기로 진보정의당 중심의 진보세력 결집의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는지, 또 구심점 형성의 계기로 활용하고픈 욕망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보정의당 중심의 진보세력 결집, 그건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욕망이죠. 그러나 통진당 사태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국민에게 지지를 받긴 어렵다고 봅니다. 모든 진보는 똑같지 않다, 심상정과 정의당이 갖는 진보는 다르다, 합리적이다, 필요하다, 이런 평가를 국민으로부터 받아내는 계기로 삼을 순 있으리라 봅니다.

‘진보는 유능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뼛속 깊이 각인하고 우리 정의당이 어떻게 실력을 기르느냐가 관건이겠죠. 진보를 위한 특별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정성과 신념의 문제로만 민주주의를 가볍게 여겼던 것이 진보의 독소였다면, 진보는 민주주의에 더 철저히 각성하고 스스로를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정당의 성격 정해지면 연대 모색할 수도

국정원 개혁, 어떻게 추진해야 합니까?

“대통령의 생각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유불리를 생각하면 안 되고, 국정원 개혁이 대통령 정통성 강화에 오히려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국정원이 정보기관으로서의 임무를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은 집권당 내부에서도 나오는 소리입니다. 음지에서 일해야 할 사람들이 양지에 나와 사회를 진동시키는 일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정치적으로 줄을 대고 정보 장사를 하는 상황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이건 박 대통령에게도 독이 됩니다. 정치에 부역한 정보맨들은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무소불위의 수사권, 비대한 국내정치 파트, 과다하게 계상되는 특수직무 활동비 등을 바로잡는 제도적 차원의 노력은 국회가 주도해야지요.”

안철수 의원과의 연대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최근 독대한 적이 있습니까?

“국회 의원회관 방 하나 건너 안철수 의원 방이라 자주 보는 편입니다. 최근 그를 만나 앞으로 만들 정당은 ‘안철수 당’이 아니라 ‘공당’이 돼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연대의 가능성은 있지만 먼저 그가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이냐가 중요 변수입니다. 그걸 보고 판단할 문제입니다. 제1야당이면서 10% 대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이나 국민에게 엄청난 어음을 받아놓고 구체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안 의원이나 급하긴 마찬가지일 겁니다. 안 의원과 저는 서로를 응시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의원의 정당이 창당되는 과정에서 진보정의당이 그 흐름에 합류할 가능성도 있는 건가요?

“저는 진보정의당의 원내대표로서, 스토리가 있는 정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국민과 정치인 사이에는 어음거래가 가능하지만, 정치인과 정치인, 정당과 정당 사이에는 어음거래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국민에게 분명하게 책임질 수 있는 전망과 내용을 갖고 정치적 판단이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철수가 과연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인가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201310호 (2013.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