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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 FIU(금융정보분석원) 공습경보! 지상경제, 지하경제 모두 놀랐다 

 

김노향 조세일보 기자
CJ 비자금, 전두환 일가 추징금, 제 3의 대기업 해외자금 유출정보 추적의 진원지…시중은행뿐만 아니라 증권사와 저축은행 등 비(非)은행권 조사도 강화 방침

▎서울시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 7층에 사무실을 둔 금융정보분석원.



2013년 8월 14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빌딩 7층 복도에 들어서면 통유리 현관문 너머 내부가 어두컴컴한 사무실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냉방기도 가동 않고, 전등도 소등한 걸로 봐서는 공공기관임에 분명하다. 금융정보분석원(Korea Financial Intelligence Unit·KoFIU, 이하 FIU). 사무실 규모도 아담한 편인데다 사람 왕래가 드물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눈길을 거의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기관을 고만고만한 정부 산하조직 정도로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번 정부 들어 대기업 총수의 첫 구속사건이 된 CJ그룹 비자금 수사나, 전직 대통령 일가를 초토화시킨 추징금 환수 작업에도 금융계에서 ‘FIU’로 줄여 부르는 금융정보분석원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심지어 FIU가 기업과 금융기관의 운명을 들었다 놨다 한다며 금융권의 ‘중앙정보부’,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寶庫)’라는 말도 들린다.

실제로 FIU는 지난 2010년 70억원에 이르는 수상한 자금이 해외 계좌에서 CJ로 흘러든 사실을 포착, 검찰에 알려준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자료를 건네받은 검찰이 상당기간 내사에 이은 공개 수사 및 압수수색 등의 절차를 밟아 마침내 이재현 회장을 구속수감하기에 이른 것이다. 검찰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작업도 FIU가 거든 것으로 금융계에서는 보고 있다.

특히 추징대상 비자금이 직계 가족 및 친인척으로 분산, 은닉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FIU가 지원사격을 했으리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하지만 FIU는 관련 보도나 소문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는다. 이명순 FIU 기획행정실장은 “관련법에 따라 특정기업이나 개인에 관한 사항을 외부에 말할 수 없도록 돼있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삼갔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울트라 ‘갑(甲)’으로 불리던 기업과 유력 인사가 줄줄이 사법처리 선상에 오르면서 FIU는 새 정부의 뉴스메이커로 부상하고 있다. 이 조직의 안테나가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있을 해외 비자금 수사의 향배도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현장에 있는 이들이 먼저 알아차리는 법이다. FIU의 한 관계자는 “지난 13년 동안 일반 국민에게는 FIU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다”면서 “우리와 관련한 뉴스가 이렇게 많이 쏟아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 말대로 자고 일어나보니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FIU 나서면 60조원의 세수 추가 확보 가능

조세 전문가들도 FIU가 정부의 세수확보 작업은 물론이고 기업의 금융거래 관행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FIU 자료를 이용해 탈세 조사를 할 경우 지하경제 1%당 6000억원의 세수가 더 확보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FIU의 금융거래 정보가 지하경제 양성화에 활용될 경우 일대 파문이 예상된다. 다른 국책 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FIU 정보는 기업뿐 아니라 일반인의 사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금융에 관계된 사생활이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기업들이 은행거래를 꺼릴 만큼 매우 민감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금융계 및 언론, 전문가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FIU는 어떤 기관일까? FIU의 역사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외환 위기 후 탈세나 재산 은닉, 외화 반출 등 자금세탁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이를 근본적으로 차단해야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2001년 11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됐다. 금융기관을 이용한 범죄 자금의 불법세탁 행위와 외화의 불법유출 방지가 설립 목표다. 당시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산하기관으로 출발했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정부 조직개편에 따라 금융위원회 소속으로 편입돼 오늘에 이르렀다.

주로 하는 일은 금융회사로부터 자금세탁 의혹이 있는 거래나 금융정보를 수집·분석해 검찰·경찰·국세청·관세청·중앙선관위 등 법 집행기관에 제공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금융권의 검은돈 흐름을 한눈에 파악해 사법 당국에 정보를 제공하는, 내부고발 기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정부기관 간 유기적 협업체제가 생명이다. 70명 남짓한 FIU 정원의 절반가량을 법무부·국세청·관세청·경찰청 등 관련기관이 파견한 전문 인력들이 채우고 있다. 나머지 절반만 금융위 소속 직원이다. FIU는 원장을 정점으로 2개 실(기획행정실·심사분석실)과 4개 과(제도운영과·심사분석1·2·3과)로 짜여있다. 기획행정실이 자금세탁 방지 관련 법령의 개정과 국제공조 방안 등을 주업무로 한다면 심사분석실은 금융거래 정보를 직접 조회하고 분석하는 일을 담당한다.

수상한 금융거래를 포착·추적하는 게 본업이라 할 이 기관의 속성상 심사분석실은 핵심부서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실장과 직속 팀장이 모두 현직 검사다. 심사분석실장에는 부장검사를, 직속의 전략분석팀장·심사기획팀장·정보분석팀장에는 평검사를 두었다. 검찰과 FIU의 원할한 업무 공조를 염두에 뒀다는 설명이다. 또 심사분석 1·2·3과에는 국세청·관세청·경찰청 파견 직원들이 배속된다. 전반적인 인적 구성으로 보면, 국내 주요 사정기관들의 대표선수가 모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순 FIU 기획행정실장은 “FIU는 우리 사회 전체의 내부고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그러나 고발자나 고발 내용에 포함된 기업·개인의 신원은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 앞으로 FIU는 범죄나 탈세와 관련된 자금 세탁을 적발하고 사회가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날 정부의 절전 시책에 따라 FIU의 냉방기 플러그는 죄다 뽑혀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곳만은 예외였다. 보안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전산실은 후덥지근한 다른 사무실과 달리 서늘한 냉기가 흘렀다. FIU의 중추신경계라할 중앙서버가 있는 곳이라 24시간 냉방은 물론 항온·항습 장치도 가동된다.

범죄 액션영화 <감시자들>에 나오는 범죄자들이 만약 증거인멸을 노려 FIU에 침입한다면 바로 이 전산실부터 초토화시킬 것이다. 과거에 자행된 모든 불법적 금융거래의 흔적이 바로 전산실 서브에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FIU의 한 관계자는 “이 기계들이 잘못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은 그야 말로…”라며 마치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산장비 옮길 때는 첩보영화 방불케 해

보안은 당연히 엄격하다. 모든 직원의 책상에는 개인용 컴퓨터가 두 대씩 놓여있다. 각각 업무용과 인터넷용이다.

업무용 컴퓨터의 정보는 중앙서버가 관리한다. 이 중앙서버가 있는 전산실은 단 3명의 담당 직원에게만 출입을 허락한다. 그것도 3회에 걸쳐 지문 인식기를 통과해야 한다.

아무 때나 들락날락해서도 곤란하다. 실시간으로 출입기록이 남는다. 담당 직원이라고 해도 설비에 문제가 생기는 등 업무상 필요한 때에만 문을 열 수 있다. FIU에 발령이 나거나 파견된 직원들은 초기 2주일 동안 내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정보 누설의 법적 책임에서 전산 장비의 사용법까지 배운다.

FIU 직원이라면 지인으로부터 이런 부탁을 받을 수도 있다. “나 개인적인 일 때문에 은행에서 2000만원을 송금했어. 그런데 이거 FIU에 입력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데….” 이 직원이 담당 업무와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몰래 조회해봤다면 시스템상 접속 기록이 남는다. 내부 감사나 외부감사에서 이 같은 사실이 적발될 경우 이 직원은 소명해야 하며 처벌도 받을 수 있다.

FIU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빌딩에 뒀던 사무실을 지난 4월 이곳 프레스센터로 옮겼다. 이삿짐을 나르던 날에는 첩보영화 촬영장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전산실 컴퓨터를 비롯해 전산 장비를 옮기는 데 세 대의 무진동 특수 화물차가 동원되는가 하면, 행여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경찰이 출동해 호위에 나서기도 했다.

‘소리 소문 없이 강하다’고 하는 게 바로 이 FIU를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다음은 금융위원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FIU는 대한민국 금융거래 관련 정보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단, 탈세나 불법이 의심되는 수상한 거래들만 걸러지지요. 담당 직원이 컴퓨터에 접속해 누군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모든 금융거래 내역이 줄줄이 다 나오는 거예요.”

FIU에 입수되는 금융거래 정보는 크게 두 가지다. 2000만원 이상의 현금거래(CTR), 1000만~2000만원 사이의 의심거래(STR)다. 의심거래는 금융회사 직원이 신고를 해야만 FIU에 보고된다. 만일 자금 세탁이나 불법행위가 의심되는데도 이를 숨기면 현행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 된다. 즉 ‘방조죄’다.

누군가 자신의 금융거래 내역을 손금 보듯이 들여다본다고 생각해보라. FIU는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CJ그룹,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롯데그룹 등 제 3의 기업 금융권 자금흐름을 꿰뚫고 있을 수 있다. 금융거래를 하는 대기업과 부호들은 이 기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그게 바로 FIU가 가진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자는 사슴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혼신의 힘을 다 쏟는다고 했다. FIU도 마찬가지다. 부정한 방법으로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범죄 혐의를 잡기 위해 많은 국가 기관의 협조를 받는다.

은행원 A씨는 최근 거래처의 계좌에서 갑작스럽게 해외송금이 늘어난 게 수상하게 여겨졌다. 그는 상급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지점장은 자료들을 검토한 뒤 FIU에 신고했다. FIU 직원들은 예금주의 직업·연령·재산 심지어 가족관계와 출입국 기록까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정부 기관들에 협조를 구했다. 시청 및 구청, 국민건강보험공단,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자료를 건네받아 정밀 분석에 들어간 지 한 달. 탈세와 횡령 혐의가 드러나자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49개 국가와 국제 공조체제 구축

글로벌 시대를 맞아 금융거래는 이제 국경이 없다. 자금 세탁 수법도 차츰 진화하고 있다. 해외 거래나 조세피난처로 자금을 은폐하는 등 자금세탁 방식이 교묘해지자 국가 간 정보 공유의 필요성도 한층 커졌다. 금융분야 국제 공조 또한 FIU의 몫이다.

국제사회는 198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의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Financial Action Task Force on Money Laundering)’를 설립하고 해마다 정례회의를 연다. 이 회의에서 자금세탁 방지 제도와 관련한 규정이 보강되면, 개별 국가도 그에 걸맞은 법개정에 나선다.

FIU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FATF 규정에 부합하고자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노력해왔다”고 전했다. FIU는 설립 8년 만인 2009년 FATF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다. 벨기에를 포함해 미국·영국·일본·중국·호주·폴란드·브라질 등 49개 국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따라서 각국의 역외 탈세, 자금세탁과 관련한 정보는 바다를 건너서도 추적이 가능하다. FATF 규정에 따라 FIU 직원이 해외 FIU 직원에게 금융거래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FIU의 감시망에 걸려드는 금융거래는 얼마나 될까? FIU에 따르면 지난 2002~2011년 10년 동안 의심거래는 89만687건 발생했다. 지난 2011년에는 32만9463건 발생해 전체의 약 37%를 차지했다. FIU 설립 직후인 2002년의 275건에서 10년 만에 100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고액 현금거래를 포함하면 1년에 1114만436건, 은행이 영업하는 평일 기준으로 추산할 때 하루 약 4만6418건이 접수된다.

FIU 직원이 이 자료들을 일일이 다 들여다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불법 혐의가 밝혀지지 않은 자료들은 데이터베이스(DB)에 차곡차곡 쌓인다. 훗날 의심스러운 징후가 다시 발견될 경우 비교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는 11월부터는 보다 큰 확대경을 가지고 금융거래를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까지는 금융회사 직원이 1000만원 이상의 의심 거래는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고, 1000만원 이하는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오는 11월부터는 금액에 관계 없이 의심스러운 금융거래를 모두 신고하도록 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바뀌었다.

FIU도 이 변화의 물결을 타야 한다. 그동안 FIU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외부에 제공하는 정보를 최소화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검찰에 고발된 사건이나 불법 혐의가 입증된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금융거래 정보를 주지 않아도 됐다. 오는 11월부터는 자금세탁이나 탈세가 의심스러운 정황만 있어도 검찰과 경찰은 FIU에 공조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FIU는 과거보다 많은 금융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해야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법 개정으로 세무조사 과정에서 금융거래 정보의 활용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FIU 관계자는 “새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에 맞춰 향후 기업 비자금 추적에 더욱 매진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또한 그동안 대형 시중은행의 금융거래에 집중한 것과 달리 앞으로는 증권사와 저축은행 등 비(非)은행권조사도 강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받거나 검·경의 수사 선상에 오른 기업들에는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1309호 (201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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