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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와 닮은꼴 사정에 ‘유통왕국’ 롯데 ‘흔들’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국가 조사기관 입체 동원된 전방위 사정(司正), 결국 오너 일가 향한 수순 밟기인가? MB시절 특혜의혹과 기업 이익 중심의 경영문화도 심판대 올라

▎한여름 롯데에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사정기관의 칼바람이다. 첫 번째 칼자루는 국세청이 쥐고 있다. CJ와 닮은꼴이다. MB정부의 수혜기업이라는 평가 속에서 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그룹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롯데의 여러 사업체와 브랜드가 몰려있는 서울 소공동 롯데타운의 전경.



7월16일 오전 10시께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150명에 달하는 국세청 세무조사 요원이 들이닥쳤다. 국세청의 ‘중수부’로 통하는 조사4국을 중심으로, 조사1·2국과 국제거래조사1과 등이 이날 ‘작전’에 참여했다. 이들은 회계장부와 직원을 비롯해 이인원 부회장과 신헌 대표이사 등 주요 임원의 컴퓨터 자료까지 복사하는 등 경영 전반 자료를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작전은 롯데백화점 본점뿐만이 아니라 잠실 롯데마트와 롯데시네마, 왕십리 롯데슈퍼 본사 등 롯데쇼핑의 주력 4개 사업본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연결기준 25조437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그룹 전체 매출액의 31%가량을 책임지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롯데그룹 측은 “롯데쇼핑이 2009년 이후 정기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던 만큼 이번 조사는 정기 세무조사 성격인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롯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번 사태를 결코 범상한 일로 보지 않는다. 세무조사의 규모나 시기, 방식 등을 볼 때 특별 세무조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기 세무조사는 조사 일시를 알리고 착수하며 4∼5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롯데를 표적으로 한) 이번 조사는 사전 통보 없이 시작됐고, 시기 역시 정기 세무조사보심층취재다 빠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상 국세청 조사4국은 특정 혐의가 인지된 경우 조사에 착수하는 특별 세무조사 팀이다. 특별 세무조사의 경우에도 조사 요원이 100명을 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결국 고강도 세무조사를 예고하는 것이며, 롯데그룹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하겠다는 의지”라는 얘기가 나돈다.

현재 조사4국은 압수한 롯데쇼핑에 대한 서류와 전산자료를 토대로 금융정보분석원(이하 FIU)을 통해 금융거래를 추적하고 있다. 납품업체와 불공정거래 문제가 집중적으로 불거진 롯데마트의 경우 전산실까지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폭풍우에 휘말린 CJ그룹 역시 조사4국과 FIU가 세무조사를 주도했다.

비자금 조성, 역외탈세까지 조사할 가능성 커져

업계는 특히 국세청이 롯데마트 본사 전산실을 ‘턴’ 것에 주목한다. 롯데마트가 중국·인도네시아 등에서 대규모 해외사업을 벌이고 있는 만큼 해외 비자금 조성, 역외탈세까지 조사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를 향한 ‘사전 정지작업’ 성격이 짙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세청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감사원 등 정부의 사정기관이 전방위적으로 롯데를 흔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롯데그룹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만인 지난 2월에 시작된 국세청 조사를 시작으로 감사원과 공정위, 그리고 다시 국세청 등 사정기관의 릴레이 조사를 받고 있다.

시작은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호텔롯데였다. 국세청은 지난 2월 호텔롯데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벌여 20여 억원의 과징금을 추징했다. 일반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 1·2국이 아닌 국제거래조사국이 조사에 나선 것은 드문 경우였다. 호텔·면세점·테마파크·골프장 사업 등을 맡고 있는 호텔롯데가 일본 롯데 계열사 지분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지만 강도 높은 조사를 위한 조치였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부터는 공정위가 롯데제과의 납품업체 단가 후려 치기에 관한 조사에 들어갔고, 편의점 부당행위 조사 명단에도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포함됐다. 같은 달 감사원은 신격호 데그룹 총괄회장의 배우자·자녀·손자 등이 자신들의 회사를 설립한 뒤 롯데시네마 내 수의계약을 통해 낮은 임대료로 매장을 차린 것에 주목했다.

수익성이 높은 영화관 매점 사업권을 따내 운영하는 방식으로 수백억 원대의 현금배당과 주가상승 이익을 얻었다고 지적하며, 국세청에 법인세 추가 징수를 요청한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호텔 세무조사 직후 곧바로 롯데쇼핑 세무조사에 들어간 점이나 특정기업에 대해 사정기관이 전방위로 사정을 벌이는 것은 드문 경우”라며 “결국 오너 일가를 향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재계 서열 5위 롯데가 사면초가의 위기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롯데가 MB정부에서 급성장했다는 데에 그 비밀의 일단이 숨어 있다. 롯데는 인수합병(M&A)을 통해 급성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작용과 ‘특혜 논란’, 상생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회피 등의 흔적이 복합적으로 드러났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예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는 지난 정권에서 몇 가지 숙원사업을 잇달아 해결하는 등 최대 수혜기업이었다”며 “그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실제 MB정부 시절에 롯데가 벌인 사업 중 특혜 의혹이 제기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잠실 제2롯데월드 인허가를 비롯해 부산롯데타운 신축허가, 맥주사업 진출, AK글로벌(현 롯데 DF글로벌) 면세점 지분 인수, 경남 김해관광유통단지 추가 개발 등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던 사업이 결국 허가나 승인을 따냈다.

잠실 제2롯데월드는 특혜 논란이 가장 거셌던 사업이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짓고 있는 제2롯데월드는 지하 6층,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국내 최고층 빌딩이다. 하지만 성남 공군기지(구 서울공항)의 비행안전성 미확보로 인한 국방부의 반대, 고도제한에 따른 성남시와의 형평성 문제, 용적률과 건폐율 상향 조정 논란 등으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허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MB 정부 시절인 2009년 활주로를 변경하면서까지 ‘극적으로’ 사업허가 승인을 받아냈다. 이때부터 정치권에서는 “제2롯데월드가 롯데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1 롯데그룹은 MB 정부시절 급성장하며 외형이 두 배로 불었다. 2013년 1월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3년 대한상공회의소 신년 인사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 대통령 오른쪽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정준양 포스코 회장. 2 국세청은 대규모 해외사업을 벌이고 있는 롯데마트를 집중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비자금 조성이나 역외탈세 등이 조사 대상이다. 2012년 12월 베트남 다낭시 하이쩌우군에 문을 연 베트남 4호점 ‘다낭점’에 손님들이 줄지어 서있다.



MB시절 계열사 수 20여 개, 자산 갑절로 늘어

부산롯데타운은 시작부터 특혜 의혹에 휩싸였다. 호텔 등 상업 목적으로 허가를 받았으나 부산시장이 직접 나서 주거시설을 허용하겠다는 특혜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부산 도심 명산인 백양산에 십수 년째 지지부진하던 골프장 건립사업을 재추진한 것도 MB정부에 와서였다. 지난해 3월에는 롯데칠성이 맥주 제조업 면허를 따내며 맥주사업 진출에도 성공했다. 2010년 국세청이 주류 규제를 완화한 덕분이었다.

면세점 사업도 논란거리다. 호텔롯데는 2010년 면세점 운영 사업자 AK글로벌(현 롯데DF글로벌) 지분 81%를 인수해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 독과점 논란을 빚었다. 호텔롯데는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의 인수승인을 받았고 관세청으로부터 ‘면세사업권’ 승계 허가를 취득했다. 신라호텔의 파라다이스 면세점 인수에 대한 승계를 불허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당연히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특혜 시비’를 불렀다.

전체 외형의 볼륨으로 판단해도 롯데는 MB 정부에서 큰 성장을 이뤘다. 2007년 말 46개사에 불과했던 계열사 수는 2011년 말 79개로 크게 늘었다. 2008년 43조6790억원이었던 보유 자산 총액은 2012년 83조3050억원으로 늘었다. 5년 새 갑절로 불어난 셈이다. 재계 순위는 6∼7위권에서 5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가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며 “공정위와 관세청 두 개의 태산을 넘었는데 앞으로 어떤 산을 넘지 못하겠냐는 비아냥이 많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국세청은 롯데 측의 M&A 과정에도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최근 수 년간 수조 원의 자금을 M&A에 투입했다<표 참조>. 국내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 인수도 적지 않다. 자체 보유 현금이나 국내 은행 차입, 회사채 발행으로 인수자금을 조달하기도 하지만, 해외에서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탈세가 있는지 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M&A 방법이나 자금 출처 등에 주목하며 다각적으로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그룹 유통부문의 실질적 지주회사격인 롯데쇼핑과 계열사 간 내부거래 과정의 탈루 혐의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추측한다. 롯데그룹이 계열사 간 과도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빚어 온 만큼 오너 일가 쪽으로 불똥이 튈 개연성도 있다. 롯데의 79개 계열사 가운데 일감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사실상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인 시네마통상·시네마푸드·유원실업이기 때문이다. 시네마통상은 신 총괄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최대주주(28.3%)다.

신 총괄회장의 동생 선호·경애 씨 등이 각각 9.43%, 신 사장의 장녀 혜선 씨(7.6%)와 선윤·정안 씨(각각 5.7%)도 지분을 갖고 있다. 시네마푸드 역시 신 사장이 33.6%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선호·경애 씨는 각각 5.44%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혜선·선윤·정안 씨도 5~8%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MB 정부에서 ‘특혜 의혹’ 논란이 일었던 대표적인 사업은 잠실 제2롯데월드 사업이다. 롯데그룹이 서울 잠실에 건설 중인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 조감도.
친·인척이 보유한 지분은 모두 87.98%에 달한다. 유원실업은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 씨가 57.8%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 42.1%의 지분은 모두 신 총괄회장과 서씨사이에서 태어난 딸 신유미 호텔롯데 고문이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오너 가족회사인 셈이다.

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 ‘내부거래’로 불똥 튈 수도

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과 다른 롯데그룹 계열사의 내부거래 과정에서 매출 누락이나 매입 부풀리기 등으로 탈세했을 가능성 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겠느냐”며 “롯데그룹의 자금흐름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 자금거래 여부도 점검하는 등 자연스레 오너 일가에 표적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롯데는 국내 대기업 중 내부거래가 가장 많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1년 14.16%에서 지난해 15.47%로 높아져 10대 그룹 중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크게 상승했다. 지난해 롯데쇼핑이 특수관계자로부터 가져온 총 매입거래액은 3조6732억원에 이른다.

롯데그룹 물류계열사인 롯데로지스틱스는 지난해 매출 1조9661억원의 대부분을 계열사 일감으로 벌어들여 내부거래 비율이 100%에 육박한다. 광고 계열사인 대홍기획 역시 지난해 매출 2759억원 가운데 2475억원을 특수관계자를 통해 올렸다. 대홍기획의 내부거래 비중도 30대 그룹 광고계열사 중 1위다.

롯데쇼핑 등 8곳은 100% 수의계약을 통해 일감을 몰아줬다. 대홍기획의 최대주주는 롯데쇼핑의 신 사장이다. 대홍기획은 이 혐의로 지난 5월부터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밖에 롯데건설·롯데상사·롯데알미늄 등 계열사도 내부거래 비중이 60~80%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초 정권이 교체되고 경제민주화가 이슈로 등장하자 롯데그룹은 3월 롯데쇼핑 시네마사업본부에서 전국 직영 영화관의 매점을 직접 운영키로 결정하고, 유원실업·시네마통상·시네마푸드 등과 맺었던 관리 운영계약을 모두 해지했다. 롯데로지스틱스의 일감을 외부에 공개입찰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황급하게 조율된 이 같은 조치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다. 공개입찰 전환 후에도 내부 거래 비중은 여전히 9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고, 금액도 총 매출의 10%에도 못 미치는 1550억원에 그쳤다.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행태는 그뿐만이 아니다. 롯데는 가격 허위 표시, 계약직 근로자의 불공정거래 행위 등으로 공정위에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롯데닷컴은 할인율 허위 표시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같은 해 12월에는 롯데마트가 서면계약 없이 파견인력을 사용하는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하다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억5000만원을 부과받았다. 단지 지난 정권에서 수혜를 입었다는 이유로 롯데가 사정기관의 타깃이 된 것은 아닌 듯하다. 일부에서는 롯데의 기업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롯데그룹의 하청업체로 있었던 부산의 한 기업인 A씨는 롯데에 대해 “10원짜리 장사하는 사람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미래를 보고 투자 못한다”고 못박았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껌·초콜릿·캔디 등 주전부리는 원가가 10원 단위로 결정된다. 오너는 몇 원 아끼려고 고민한다. 그러니 수백억·수천억 원의 돈을 사회나 미래를 위해 쉽게 투자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을 위해서는 다르다. 롯데가 부동산 재벌인 점을 상기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롯데 기업문화의 안타까운 단면이다.”


▎롯데그룹은 골목상권 문제 등 경제민주화 현안의 중심에 서있었다. 2012년 7월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롯데백화점 정문에서 중소기업살리기전국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롯데 불매운동 선포식’에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주자인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롯데, 기업문화도 되돌아봐야 할 계기 맞아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단돈 ‘87엔’을 들고 현해탄을 건너 자수성가했다는 신 총괄회장은 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신 총괄회장은 한때 도쿄 일대 수백만 평의 땅을 보유하면서 1988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세계 부호 랭킹 4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롯데그룹의 2008년 국내 토지 보유액은 10조3153억원에서 2011년 말 기준 13조6245억원으로 10대 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3년 새 무려 32.1%가 증가했다. A씨는 이어 “롯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적자 나는 일을 맡기도 했다”면서 “갑의 위치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기업이 롯데”라고 덧붙였다.

롯데 기업문화를 분석한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은 롯데의 기업문화가 중소기업과의 상생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경제관과 거리가 있음을 지적한다. “롯데가 내세우는 비전2018에는 사회적 책임부문이 없다.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책임감을 제시했지만 사회적 책임이라기보다는 윤리적 경영 지침에 불과하다. 국민에 대한 대기업의 책무는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골목상권 문제가 터졌을 때 유독 롯데에 비난이 집중된 것을 보라. 직원에 대한 투자도 인색하다. 반롯데 정서가 생기는 이유다. 현 정부의 정책과 이질적인 부분이 많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롯데는 다른 기업이 해외에서 외화벌이를 할 때 국민의 주머니를 노렸다. 정서상 비호감 기업이다. 투자에도 매우 인색하다. 투자를 단순히 백화점 짓고 마트 세우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투자는 부동산 투기와 비슷하지 않나? 백화점 지으면 그 주위에 땅값이 오를 것이고 나중에 팔면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 투자 말고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실시하는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R&D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직원에 대한 투자는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그래서 롯데 제품은 창조의 산물보다 모방한 것이 많다. 롯데가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이익만을 좇는 기업문화에 대한 비난도 있다. 2010년 논란을 일으켰던 ‘통큰치킨’에 이어 ‘빵집’ 논란도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됐다. 신 총괄회장의 외손녀 장선윤 씨의 빵집 ‘포숑’이 ‘서민 밥그릇 뺏기’라는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8개월 만에 빵집 사업을 접었지만, 철수 한 달 후 장씨의 남편 양성욱 씨가 ‘물티슈’ 사업에 진출했다가 다시 손을 떼는 등 대기업의 골목상권 장악 비난 여론에 롯데는 계속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롯데슈퍼 일부 매장은 ‘농수산물 매출비중이 51%를 넘으면 의무 휴업을 피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활용해 휴무 대상에서 빠지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롯데 기업문화의 문제점은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10대 그룹 92개 상장계열사 전체 직원 수(2012년 9월 사업보고서 기준)는 57만1000여 명이다. 이중 비정규직은 3만 5000여명으로 전체의 6.2%에 불과했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9개 상장계열사 직원 4만500여 명 중 8450여 명이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 비율(20.9%)이 10대 그룹 평균치보다 무려 3배 이상 높았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유통업의 특성상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장기적으로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롯데의 일방통행식 기업 경영문화는 유통업계 라이벌인 신세계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신세계그룹은 2007년 8월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직원 5000여 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신세계의 정규직 전환비용은 연간 160억원, 올 1월 기준 누적액이 9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이득도 적지 않다.

신세계 관계자는 “지난 6년간 들어간 정규직 전환 비용이 900억원가량이지만, 업무 숙련도 향상, 회사 충성도 상승 등으로 인한 회사 이미지 개선 등 긍정적 효과가 크다. 이마트는 계산 오류 건수가 2006년보다 2011년 기준 75%가량 감소했고, 계산원의 친절도가 높아지면서 소비자 불만 건수도 70%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직원들 처우도 상대적으로 인색하다. 신세계보다 직급에 따라 연봉이 적게는 600만~700만원에서 많게는 1500만~1700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롯데의 한 직원의 말이다. “신입사원 때는 적게 받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경쟁사인 신세계에 들어간 친구와 연봉 이야기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차이가 조금 나겠지 생각했지만 같은 직급인데 1700만원까지 차이가 났다. 성과를 앞세우니 야근도 많이 하는데 참 기분이 씁쓸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04년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장 자리에 오르면서 굵직한 M&A를 여럿 성사시켰다. 재계에서 그를 ‘M&A의 큰손’으로 부르는 이유다. 아이러니하게 이젠 M&A가 그의 발목을 잡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처럼 직원이나 사회적 책임엔 무관심했지만 오너의 배당금 확보나 탈세에는 열심이었다는 회사 이미지가 문제다. 지난해 기준 신 회장 형제는 비상장사인 롯데역사가 올해 주주배당금을 늘리면서 각각 279억원, 262억원가량의 고액 배당금을 챙겼다. 롯데시네마의 매점 운영권을 독점하며 돈을 번 시네마통상·시네마푸드·유원실업의 수익금 대부분도 오너 일가의 몫이었다. 감사원 조사결과 유원실업과 시네마통상은 280억원의 현금배당과 782억원의 주주차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내부거래·배당엔 ‘큰손’ 직원·하청업체엔 ‘짠손’

OECD가 지정한 조세피난처 44개국에 국내 대기업이 설립한 법인은 47개. 그중 13개가 롯데 것으로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롯데는 내수시장으로 먹고 사는 기업이다. 국민의 소비행위가 곧 밥줄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조세피난처에 가장 많은 법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 돈 벌어 세금은 안 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편법이든, 불법이든 이익만 좇겠다는 기업활동을 국민이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울산시에 사는 정모(45) 씨는 반롯데 정서를 이렇게 전했다. “롯데자이언츠 광팬이지만 롯데칠성과 관련된 하청업체에서 일한 후 롯데제품을 사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게 세상 이치겠지만 기본적인 예의와 상도는 지켜야 하지않나. 조금만 불평하면 나가라고 하는 것은 예사고, 단가 후려치기는 기본이다.”

MB정부의 최대 수혜 기업이라는 평가 속에서 고속 성장을 거듭했던 롯데그룹이 ‘세무조사’라는 첫 번째 장애물을 만났다. 사정기관의 칼이 그룹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롯데그룹이 최대 난관을 어떻게 풀어낼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201309호 (201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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